비오라트의 번역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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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11월 10일 16시 24분 07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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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를 숙인 레오루드를 보며, 클라리스는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지크 군. 잠시 자리를 비워줄 수 있겠어?"

     

     "그래. 나는 밖에 있을 테니 이야기가 끝나면 얘기해."

     "응. 고마워."

     지크프리트가 바깥으로 나가기 전에 레오루드에게 한마디 남긴다.

     

     "레오루드. 아마 괜찮을 거라 생각하지만, 이상한 짓은 하지 마라."
     

     "알고 있다."

     "그럼 됐고."

     그것을 끝으로 지크프리트는 방에서 나갔다. 남은 자는, 레오루드와 클라리스 두 사람 뿐.

     클라리스는 둘만 남게 되자 약간 두려움을 느꼈지만, 눈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레오루드 님. 부디 고개를 들어주세요."

     "하지만ㅡㅡ"

     "이제 와서, 사과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

     적어도 클라리스는 레오루드를 용서할 생각이 없다.

     

     "레오루드 님. 지금 제가 왜 불렀는지 아시나요?"

     

     "어......아니, 모르는데."

     

     "창녀, 비치, 얼빠진 여자. 뭐, 여러 가지로 들었지만, 전부 다 악의에 가득 찬 것들이었지요."

     "윽......"

     

     설마, 클라리스한테 그런 불명예스러운 별명 붙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는 레오루드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역시 몰랐나 보네요. 그것도 어쩔 수 없으려나. 레오루드 님은 제아트에 간 뒤로 변했으니까요."

     클라리스의 말대로다. 레오루드는 결투가 끝난 순간 마코토와 동화하여 다시 태어나지만, 본격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제아트에 가고 나서다.

     

     레오루드는 제아트에서 운명을 이겨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왕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래서, 클라리스가 레오루드 때문에 괴롭힘 당하던 일은 알 여지도 없었다.

     

     "레오루드 님이 제아트에서 눈부신 활약을 할 때마다, 저는 수많은 매도를 듣게 되었답니다.

     근거 없는 소문까지 듣는 일도 있었고요. 저와의 약혼이 싫어서 일부러 연극을 꾸민 거라는."

     그런 일은 결코 없었지만, 소문이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법. 부정하려고 하면, 사람이란 더욱 재미있어한다.

     

     "결정타는 전이마법의 부활이었네요. 그로부터는 저만이 아니라 가족, 친척에 이르기까지 피해가 갔답니다.

     신동을 알아보지 못한 가련한 일족이라며 무시당했거든요."

     담담하게 사실을 고한 클라리스의 말은, 마치 나이프처럼 레오루드의 마음을 찔렀다.

     

     "얼마나 제가, 얼마나 가족이 상처 입었는지 아세요?

     모르겠죠? 그야, 레오루드 님은 저의 얼굴과 몸에만 흥미 있었으니까."

     솟아나는 마음은 분노다. 클라리스는 순수하게 레오루드가 미워서 견딜 수 없다.

     

     "왜 이제 와서 변했나요!

     왜 제가 그런 일을 겪어야만 하나요!

     피해자는 저였는데!

     왜, 레오루드 님만 모두한테 칭찬받고, 제가 욕설을 들어야만 하나요!

     왜, 이렇게나 괴로워져야만 하나요!

     왜, 이렇게나 상처 입어야만 하나요!"

     

     쌓이고 쌓였던 울분을 부딪히는 클라리스는, 모든 것을 드러냈다. 추악한 그 모습을 누구한테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지크프리트를 내쫓았다.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검은 감정이 폭발한다.

     

     "대답해주세요, 레오루드 님. 저의 뭐가 문제였나요?

     저의 뭐가 불만이었나요?

     어째서, 저와 파혼한 순간 변해버린 건가요?"

     

     대답할 수 없는 레오루드는, 단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대답해주지 않네요. 역시, 레오루드 님은 제가 싫었던 모양이네요."

     

     "아, 아니. 그렇지는 않다!"

     "그럼, 왜 대답해주지 않는 건가요!"

     

     "그건......"

     "역시 대답해주지 않으시네요......"
     

     진실을 말해줄 수는 없는 레오루드는,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나는 결투에서 진 그날 어느 꿈을 꾸었다. 그건 내가 죽는 꿈이었지.

     클라리스도 아는 대로 난 막돼먹은 사람이었으니, 원한을 사서 죽는 건 그리 머지않은 미래의 일이겠지.

     그래서, 나는 그 꿈을 꾸고 결심했다. 이제부터는 어엿한 사람이 되기로."

     "그런 이야기를 믿으라는 건가요?"

     

     "믿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밖에 할 말이 없군."

     레오루드는 클라리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클라리스는 아무리 봐도 수상쩍은 그 이야기를 믿을 수는 없었다.

     다만, 변한 것은 사실이며 부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진실은 모르겠지만 클라리스는 레오루드의 말을 믿기로 정했다.

     

     "좀 더 빨리 그 일을 깨달아줬다면 다른 미래도 있었을지도 모르는 거네요."

     "......미안하다."

     "사과하지 말아주세요. 이제 와서 당신이 사과한들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다만, 부디 부탁할게요. 이후로도 결코 길을 그르치지 말고 나아가 주세요.

     저는 평생 용서할 생각은 없지만, 그럼에도 받아들이려고 생각한답니다.

     이제 두 번 다시, 저 같은 희생자를 내지 않겠다고 맹세해주세요."

     용서는 안 한다. 하지만 지금의 레오루드를 받아들이겠다고 클라리스는 말했다.

     레오루드에게 덮쳐져 추문에 휩싸이고, 그가 활약할 때마다 상처 입은 클라리스가 받아들인 것에 매우 느끼는 바가 있었다.

     

     (아아......이렇게나 좋은 여자를 나는 상처 입히고 괴롭힌 건가......)

     

     얼마나 버티기 어려운 굴욕이었을까. 클라리스가 받은 슬픔, 괴로움, 분노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 틀림없다.

     그걸 받아들이는 클라리스는, 확실히 메인 히로인으로 있을 만한 그릇의 소유자였다.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저지른 죄는 지워지지 않는다.

     레오루드는 그 사실을 가슴에 새기며, 클라리스에게 두 번 다시 길을 벗어나지 않음을 맹세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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