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3부-9 침식침범 프룩투스(후편)
    2022년 11월 09일 10시 20분 30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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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이 카산드라."
     "뭔가요, 협력자 씨."

     관광지의 분위기는 얼어붙어 있었다.

     옆을 지나가려 하던 학생들도, 공격마법의 출현에 움직임을 멈추고 있다.

     

     "방금 전부터 신경쓰였는데...... 너 말이야, 마리안느랑 아는 사이였어?"
     "이 나라에 왔을 때, 우연히 알게 되었거든요."
     "어? 진짜?"
     "네...... 인생에서 제일 가는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우정을 느끼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답니다. 하지만,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네요."
     "어어어, 잠깐, 어? 그, 그건 좀 그...... 괘, 괜찮겠어? 그만둘까?"
     "아니요ㅡㅡ이미 늦었어요. 주사위는 던져진걸요."

     그 말고 동시에.

     카산드라 씨의 온몸에서, 절대영도의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지크프리트 씨ㅡㅡ!"
     "알고 있다!"

     움직이지 않는 나를 유이 양이 품고 뛰어서 물러난다. 가호를 발동시킨 걸까.

     대신 앞으로 뛰어든 자는, 대검을 휘두르는 지크프리트 씨.

     

     "선제공격을 확인한 이상, 실력을 행사하겠다!"

     혼신의 힘으로 내지른 도신은, 그러나 둘러친 물의 베일에 가로막혔다.

     그 충격으로 대지가 파이고, 포장되어 있던 도로가 솟아오른다.

     

     "저건ㅡㅡ물이 충격을 받아들이고 있어!? 마법 제어로 보이지만, 저렇게나 완벽히......!?"

     날 품은 채로, 유이 양이 놀라는 목소리를 냈다.

     몇 번을 베어보려고 했지만, 지크프리트 씨의 참격은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카산드라 씨는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방어용 베일의 뒤에서 공격용 물의 날개를 전개했다. 기사가 그것을 보고 방어의 자세를 취하자.

     

     "!?"

     

     직후, 지크프리트 씨가 즉시 몸을 피했다. 그답지 않은 명백한 회피행동.

     방출된 물의 가시가 공중을 베었다. 간격을 둔 지크프리트 씨는 검을 중앙으로 들었다. 그의 뺨에 한 방울의 땀이 흐르고 있다.

     몇 초 늦게 깨달았다. 카산드라 씨는, 붉은 머리의 기사가 대검으로 방어를 한 것을 보고 나서, 그 방어를 피하는 식으로 공격을 재구성했던 것이다.

     

     "지크프리트!"

     지원을 해주기 위해 유트가 뛰어들었다. 모르는 사이 영창을 끝내었는지, 양팔을 화염으로 두르고 있다. 하지만 [이그니스]정도의 출력은 없는, 다른 마법이다. 13절 영창을 하고 있을 틈이 없었던 모양이다.

     

     "유트! 무리하면 안 된다!"
     "알고 있어! 하지만 이 녀석, 진짜로 강해!"

     둘이서 덤벼보았지만, 아직도 여유만만하다.

     거센 연격을 피하고 받아내는 카산드라 씨는, 싸늘한 표정으로 부정형의 베일을 다룬다.

     

     "저 출력...... 13절의 완전영창으로 보인다......!"

     "모두 도망쳐! 여기에서 벗어나!"
     "이쪽으로 대피시켜!"

     린디가 재빠르게 대피를 외치자, 유이 양과 로이는 위험한 위치에 있던 통행인들을 잡아끌거나 품고서 피난시켰다,.

     

     나만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안전지대에 놓여서, 단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떨고 있다.

     

     ......죽었어? 아버님이? 설마.

     그럴 리가 없어. 죽이려 해도 안 죽는 사람인데.

     

     문득 바닥을 보았다.

     전투의 여파로 날아왔는지, 실버 넥타이 핀이 굴러다니고 있다.

     쭈뼛거리면서, 떨리는 손으로 주워 든다. 피가 묻어서 청결한 반짝임을 잃었다. 루비에는 금이 가 있다.

     이제 사줄 수는 없겠구나, 싶은 영문 모를 생각이 떠올랐다.

     

     "......어이 카산드라. 괜찮은 거지? 마리안느가 상대라도."
     "네, 상관없어요.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를 쓰도록 하세요."
     "오케이."

     카산드라 씨의 후방에서 사태를 바라보던 소년.

     그는 손가락에 건 캡 모자를 빙빙 돌리면서, 내 쪽으로 걸어왔다.

     

     "......! 마리안느 양한테 다가오지 말아요!"
     "오우. 지금 것 주인공 같았다고."

     서둘러 사이에 끼어든 유이 양을 보고, 소년이 추악한 미소를 짓는다.

     

     "아니. 그 녀석을 다치게 할 생각은ㅡㅡ아니 뭐, 다친다고 한다면 다치려나."
     "무슨 이상한 말을! 뭐가 목적으로 이런 짓을 한 거죠!"
     "어이, 마리안느. 맥라렌 피스라운드의 마지막 말을 가르쳐줄까?"

     사고가 정지했다.

     

     "카산드라한테 푹푹 찔려서, 너덜너덜해져서, 조각조각 나버려서."

     

     지크프리트 씨와 유트가 어느 사이엔가 무릎을 꿇고 있다.

     숨을 헐떡이는 그들의 뺨은, 피로 젖어있다.

     

     "걸리적 거리는 기사를 감싸고. 시민한테 공격이 닿지 않도록 힘을 안배하다가. 바보였다고, 뭐 그런 바보라는 걸 알고서 한 거지만."

     치익.

     

     "그런데도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그 남자는."

     치이익 하고 뭔가를 불태우는 소리.

     그 소리는 두개골 안에서 울리고 있다.

     나를 재촉하는 그 소리가 점점 음량을 더해가서.

     

     

     "[날 뛰어넘는 자랑스러운 딸내미가, 반드시 널 이길 거다]ㅡㅡ 라더라!"

     

     마지막으로.

     뚝, 하고 머리의 내부에서 안 좋은 소리가 났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rain fall、sky burn、glory glow, shooting、exposing、shining、coming、 justice、white、execution、Panagia]

     

     

     무서울 정도로 자신은 냉정했다.

     입으로는 목이 찢어질 정도로 비명을 지르면서도, 사고의 일부는 순식간에 회전하여 절규의 뒤에서 영창을 이어나갔다.

     13절영창 완전 홀드 오픈의, 이론상 최속의 발동이었다.

     단번에 뛰쳐나간 나는 오른쪽 주먹을 있는 힘껏 소년의 안면에 때려박으려 했지만.

     

     "당신의 상대는 저예요, 마리안느."

     

     싸늘한 감촉.

     투명한 물이, 혼신의 힘으로 내지른 스트레이트 펀치를 받아내었다.

     

     "당신은! 당신이......!"
     "어머나...... 그렇게나 화내다니요, 마리안느. 괜찮으니 안심하세요."

     돌파할 수 없다.

     사전에 영창을 끝내 두었다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어째서.

     왜냐고. 왜, 왜!

     왜 이런 얇은 막조차 부술 수 없는 거야!

     

     "희생은, 이겨내기 위한 것. 그러니 분명 당신도 알아줄 거랍니다."
     "무슨! 무슨 영문 모를 말을......!"

     

     물의 베일. 얇은 가죽 한 장 정도의 그것을, 도무지 뚫을 수 없다.

     대치가 이어진다. 무리하게 밀어붙이려 해도,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유려한 물 너머로 시선이 교차한다.

     카산드라 씨는 약간 서글픈 미소로 고했다.

     

     

     "그야 지금ㅡㅡ희생에 보답하려는 거잖아요?"

     

     깜짝 놀랐다.

     

     "......당, 신은. 당신은, 설마."
     "네....... 맥라렌 피스라운드의 살해임무를 전해 들었을 때, 운명을 느꼈거든요. 아버님을 잃은 당신은 더욱 강해질 수 있어요. 더더욱 강해질 거예요. 그야 제가 그랬던걸요."

     

     파직, 하고 몸이 튕겨졌다.

     몸을 젖히는 내게, 물의 칼날이 쇄도한다. 그것들을 손등으로 쳐내려고 한다.

     하지만 칼날은 내 요격을 회피하더니, 그대로 내 어깨에 파고들었다.

     

     "큭......!"
     "욕탕에서 만났을 때...... 몰랐어요. 몰랐답니다, 마리안느. 모르는 채로 여기까지 와버린 거예요, 우리들은."

     

     격통 때문에 눈꺼풀 뒤에 불꽃이 튀기고, 그 자리에 무릎 꿇으려 한다.

     유이 양이 뛰어들었지만, 채찍처럼 구불거리는 [프룩투스]를 맞고 날아갔다.

     

     "분명 이건 운명이에요. 당신이 금주 보유자였다니ㅡㅡ그렇다면 이건 악몽  하지만, 이번만은 이 이상 없을 행운인걸요."
     "......!?"

     고개를 들고서, 깜짝 놀랐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카산드라 씨는, 그 벽안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그리고 웃고 있다.

     

     "서로가 더욱 높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마리안느. 자 배우세요. 이쪽으로 배우도록 할 테니까......!"

     

     뭐, 냐고.

     뭘 지멋대로 각오를 끝내 놓은 건데.

     이쪽은 전혀. 왜냐면, 우리들은, 친구인데.

     

     

    〇우주의기원 그러니까 왜 돌격한 거야 이건 진짜 도망쳐야 한다니까!!! 

    〇미로쿠 잠깐잠깐 어떻게 할 거냐고 이거

    〇고행무리 패배 이벤트를 앞당긴 게 아냐! 지면 진짜로 죽는다고 이거!!!

     

     

     "마리안느 양, 물러나! 지금의 너로는 무리다!"

    전신에서 가호의 빛을 해방시킨 지크프리트 씨가, 피를 토하며 일어선다.

     

     "여기는 내가 막겠다! 유트, 미안하지만 모두를 데리고 도망쳐라!"
     "농담, 말라고......! 친구를 내버리라는 거야......!?"
     "친구이기 때문이다, 제발......!"

     대검을 움켜쥐고서, 깊이 숨을 들이마신 기사가 카산드라 씨를 바라본다.

     

     "이 이상의 행패는 간과할 수 없다! 목적이 어떻든, 너희들은 여기서 내가ㅡㅡ"
     "아아, 아냐. 아니라고 지크프리트. 네 상대는 달라."

     

     갑자기.

     소년이 모자를 위로 던졌다 받았다 하며 놀면서, 입술을 들어 올렸다.

     

     "이미 배우는 갖춰졌다고 네게는 이미 적절한 상대가 있어. 깜짝 놀랄 비극을, 아니...... 공포극을 연출해줬으면 해."

     "......!?"
     "이 녀석이 그렇게 부탁했지ㅡㅡ안 그래? 파프닐."

     그 이름을 소년이 고한 순간.

     

     

     ㅡㅡㅡ밤이 찾아왔다.

     

     

     [잘했다]

     

     

     하늘을 보았다. 푸른 하늘이 사라졌다.

     갑작스러웠다. 필름이 끊긴 것처럼, 눈을 깜빡인 찰나에 하늘이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로 변해버린 것이다.

     

     "뭐, 지, 이건."
     "......! 날씨 조작의 대마법, 이 아냐! 단지 현현한 순간에 세계를 뒤바꾼 거야!"

     후방에서 들리는 린디의 비명.

     이 자리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세계를 덧칠해 버린다는 믿을 수 없는 행위.

     그만한 일을 해내는 존재가.

     지금, 눈앞에 나타났다.

     

     "네 말대로였어. 덕분에, 단순한 조연이었던 내가 여기까지 해낼 수 있었다고...... 이제는 종막까지 일직선이지?"

     [그래, 그렇고 말고. 그리고..... 느껴진다. 느껴진다 기사. 네놈 안에서 나의 잔해가 느껴진다]

     

     차원이 갈라진다.

     밤하늘 속에도 섞이지 않는 검정이, 공간을 갈라놓는다.

     

     [먼 옛날 나의 단말을 격퇴한 모양이로군. 기억난다..... 얄궂은 일이로구나. 나의 마지막 후손이 용살자의 이명을 지녔을 줄은]

     

     그곳에서 스윽 나타난 것은, 올려다봐야 할 정도의 거구.

     칠흑의 날카로운 비늘로 온몸을 뒤덮고, 네 다리는 지면을 칠 때마다 극대의 지진을 일으킨다.

     접어놓은 날개의 발톱이 번쩍 하고 빛난다.

     

     입의 틈새에서는 사악한 빛을 흘리며.

     사룡이, 적발의 기사를 응시한다.

     

     

     [내 이름은 파프닐. 이 세계의 악성을 관장하며, 살아있는 것 모두의 안녕을 위협하는 극점────대사룡 파프닐이다]

     

     

    〇바깥에서왔습니다 파프닐이 실체로 현현했어!? 어떻게!?

    〇무적 이거 큰일 났다 큰일 났어! 아가씨 도망쳐! 어이!

     

     

     "ㅡㅡㅡㅡ목표는 나인가."
     [그럼. 빨리 죽어라]

     

     말과 동시에, 팔을 휘둘러 지크프리트 씨를 덮쳤다.

     거체에 어울리지 않는 기민한 움직임. 찰나 방어를 해보지만, 그의 몸은 먼지처럼 날아가버렸다.

     

     "그런, 지크프리트 씨ㅡㅡ"
     "......유이 양, 저는 괜찮으니......모두를......"
     "마, 마리안느 양!? 괜찮을 리가 없잖아요!"

     대답은 듣지 않는다.

     들을 여유가 없다.

     

     뜯어말리려는지 내 팔을 잡지만, 그걸 뿌리쳤다.

     돌아보며 얼굴을 봐주지도 않았다.

     

     단지, 지금은.

     울면서 이쪽을 바라보는 카산드라 씨와.

     저 뒤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소년밖에.

     

     "35%......!"

     

     출력을 폭발시키고서, 기세를 담아 스트레이트 펀치를 때려 박는다.

     카산드라 씨는 오른팔로 막아내지만, 관통한 충격이 그녀의 몸에 쇄도했다.

     

     "크으......윽."

     수 미터를 후퇴하고는, 저릿한 팔을 흔들며 카산드라 씨가 이쪽을 바라본다.

     아아 그래.

     아무것도, 아무것도 몰라. 알고 싶지도 않아. 몰라도 돼.

     알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뿐.

     

     "...... 정말로...... 정말로, 죽였나요."
     "맞아. 우리가, 맥라렌 피스라운드를 죽였어."
     "당신한테는 묻지 않았어! 카산드라 씨, 무슨 말을 들은 건가요!? 왜, 어째서! 당신은 그런 짓을, 할 사람이ㅡㅡ"

     말하는 도중이었을 텐데.

     그녀는 내 몸을 바라보면서 조금 고개를 기울이고는.

     

     "마리안느...... 그거, 재밌네요."

     눈을 의심했다.

     그녀의 몸을 두르던 마력이 맥동하더니, 반응을 폭발적으로 늘린 것이다.

     그런 바보 같은.

     그건, 그건 나의ㅡㅡ!

     

     

     "이건가요ㅡㅡㅡ액티베이트."

     

     

     직후.

     뛰어들어온 카산드라 씨의 일격이, 있는 힘껏 가슴에 들어갔다.

     

     "커, 헉."

     두 팔로 막아냈지만, 충격을 다 줄이지 못했다.

     지면을 데굴데굴 굴러간다. 유이 양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온다.

     의식이 몽롱하다. 시야가 흔들거린다. 세계가 삐걱거리는 듯한 감각이 든다.

     

     "헐, 뭐야 그거?"
     "체내의 수분을 프룩투스 사양으로 만들어봤어요. 이름을 붙이자면, 마이크로 워터 액티베이트......라고 해야 할까요."

     "흠~ 재주도 좋네. 역시나 만능을 넘어선, 전능."

     

     각본가는 이쪽을 바라보더니, 잔혹한 미소를 짓고 있다.

     

     "[프룩투스]는 만물을 비친다...... 아니, 말하자면 수면의 거울을 통해 재현할 수 있는, 금주의 최종 도달점. 네가 나빴던 게 아냐, 마리안느. 다만...... 카산드라가 정점에 군림하고 있을 뿐이라고. 모든 면에서 말이야."

     전부.

     그래, 정말로, 전부ㅡㅡ위다.

     영창을 최적화시키는 감성. 전장을 다루는 센스. 적을 타도하는 격투 기술.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무리 노력해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금주의 질이 너무 다르다.

     그녀의 프룩투스와 나의 미티어 사이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격차가 있다. 할 수 있는 일의 폭이 너무 다른 것이다.

     

     "......."

     둔탁한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린다.

     시야 한편에서, 유트가 사룡을 공격하고 있다. 아니...... 공격을 하고는 있지만, 무시당하고 있다. 사룡은 지크프리트 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〇일본대표 보여? 글자 읽을 수 있어? 대답은 안 해도 돼.

    〇일본대표 도망쳐. 이건 이미...... 명령이다. 어쨌든 너만이라도 살아서 돌아와

    〇일본대표 네가 지금 있는 세계는 치명적으로 뭔가가 맛이 갔어. 그걸 방치하면 세계를 운영하는 시스템만이 아닌 무수한 세계를 보호하는 이쪽의 시스템에도 영향이 가버려

    〇일본대표 그러니 너는 살아 돌아올 의무가 있어.

    〇일본대표 그리고 무엇보다도...... 네가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고! 거기 남아있으면 정말로 죽는다니까! 어이 제발, 부탁이니까, 이 순간만은 내 말 좀 들어......!

     

     

     그건 무리야.

     몸이 제대로 말을 안 듣는다고.

     

     발소리가 났다.

     엎어져 있는 나에게, 나를 안아서 일으키려는 유이 씨의 눈앞에, 전격이 지나갔다.

     카산드라 씨는 물의 베일로 전격을 걷어냈다.

     

     "마리안느한테서, 떨어져.....!"

     

     나와 카산드라 사이에 들어온 것은, 백은의 칼날이었다.

     로이 미리온아크가 기세 좋게 뛰어들어서 그 검을 휘둘렀지만.

     

     "enchantinglight── 크윽......!?"

     영창이 도중에 지워진다. 신음소리를 흘리면서, 로이가 땅바닥에 쓰러진 것이다.

     푸른 번개가 로이의 몸을 불태우고 있다.

     

      "끄으윽.......!?"
     "로이!? 젠장할ㅡㅡ어쩌라는 거냐고......!"

     유트의 말은, 우리들에게 손쓸 도리가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지크프리트 씨는 안부 불명.

     로이는 눈앞에서 쓰러졌다.

     유트와 유이 양, 그리고 린디는 싸울 수 있지만, 대사룡과 카산드라 씨한테 맞설 정도는 아니다.

     

     "포기해, 너희의 패배니까."

     캡 모자를 눌러쓴 소년이 양손을 벌리며 박정한 미소를 짓고 있다.

     

     "파프닐은 아직 완전히는 현현하지 않았어. 완전 현현을 이룰 때는 우리의 목적이 달성되지. 하지만ㅡㅡ불완전한 파프닐로도 이렇다. 애초에 누구도 카산드라한테 상처 하자 입히지 못했잖아. 알아들었어? 내몰린 거라고 너희들."

     뿌연 시야 속.

     문득 깨달았다.

     주워서, 손에 들었어야 했을 것이, 없다.

     

     "우리들은 루시퍼를 뛰어넘는다. 모든 것을 무로 되돌리는 그 대악마를 능가하여, 신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소년의 연설이 귀에 안 들어온다.

     카산드라 씨가 조용히 웅크리고는 주워 든, 실버 넥타이 핀.

     맞고 날아갔을 때 흘린 걸까.

     그걸 본 순간, 머리의 내부가 달구어졌다.

     

     웃기지 마.

     웃기지 말라고 너.

     

     그거 돌려내.

     돌려내라고.

     네 것이 아니잖아.

     

     세계가 색을 잃고 정체된다.

     머리 내부의, 달구어진 부분이 점점 넓혀진다.

     분노가 아니다. 지금까지의, 나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었던 분노와는 다른 감각이었다.

     

     패 버리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걸 용서할 수 없어.

     

     죽어줬으면 해.

     

     상대가 누구인지는 상관없어.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짓밟고 빼앗은 존재를, 용서할 수 없어.

     죽어줘. 죽어. 죽으라고. 죽으라고 말했잖아.

     무아무중의 상태에서, 사고의 공백을 저주의 말로 채워나간다. 시야가 깜빡인다.

     

     

     

     정신 차리고 보니 눈앞에 문이 있었다.

     

     

     청동색의 그것은, 한때 쇠사슬로 단단히 묶여 닫혀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열려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소년도 카산드라도, 그리고 사룡조차도 움직임을 멈추고는 마리안느를 보고 있었다.

     누구도 그걸 깨닫지 못했다.

     밤하늘을 오로라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건......특급선발시합에서 보았던......!"

     린디의 경악하는 목소리.

     상공에서 오로라가 겹쳐지며, 엮이면서, 대악마를 만들어간다.

     

     "ㅡㅡ이 녀석! 루시퍼의 인자를 갖고 있었나!? 큰일 났다, 지금은 아직 루시퍼가 나오게 할 수는 없어.....! 카산드라!"
     "알겠어요, 억제결계를ㅡㅡ!"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지옥을 다스리는 개체이면서 세계.

     밤하늘을 잡아 찢으며 현현하는, 세계의 종말 그 자체.

     

     검은 주문을 두른 하얀 몸.

     바람에 나부끼는 하얀 머리카락.

     피눈물처럼 눈 아래의 선이, 어둠 속에서도 요사하게 빛나고 있다.

     

     

     "불렀구나, 대악마 루시퍼를ㅡㅡ아니. 를 불렀구나."

     

     

     뜨여있는 두 눈동자는 적색.

     하지만ㅡㅡ찰나의 틈도 주지 않고, 색상이 장엄한 황금색으로 덧칠된다.

     

     "과연 그럴 만도 했구나, 마리안느. 너는...... 화내는 일은 많았지만, 인간을 증오한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지."

     인자를 가진 소녀의 앞에 강림한 악마는, 무표정하게 고했다.

     우연히도 그의 위치는, 세계를 멸망시키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ㅡㅡ소녀를 구하기 위해 찾아온 최강의 히어로 같아서.

     

     "아니, 됐다. 아무 말도 필요 없다. 네 증오는 확실히 흘러오고 있으니."

     

     고개를 내젓고는, 황금색의 두 눈으로 소녀를 바라본다.

     

     "인간의 감정은 잘 모른다. 완전히 이해했다고는 생각지 않아. 하지만...... 그럼에도. 그렇게나 아름다웠던 네 심홍색을 불쾌한 검정으로 덧칠해버릴 정도의 사건. 그 아픔은 이해한다."

     루시퍼는 무릎을 꿇고서, 고개를 엎은 채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소녀의 손을 잡았다.

     손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진 그는, 상대를 안도시키기 위해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맡겨라. 지금의 네게, 세계의 파멸은 사소한 일일 터. 나라면 그들을 세계와 함께 멸망으로 보내버릴 수 있다."

     누구도 몸을 움직이기는커녕, 호흡도 할 수 없다.

     카산드라와 소년의 온몸에서 식은땀이 분출한다. 파프닐은 동요한 것처럼 거구를 뒤흔든다.

     거리를 두고 있던 린디만이, 가까스로 공황 상태에 빠져들지 않고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렇, 게나ㅡㅡ그때와는 달라. 마리안느와 대화하러 왔다고 말했을 때와는, 달라)

     

     그때는, 이런 식이 아니었다.

     단지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 이쪽의 영혼이 분쇄될 정도의 압박은, 없었다.

     

     "금주 보유자는 모두 나의 자식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 힘을...... 내가 아닌 저 하등한 도마뱀을 위해 사용하려는 모양이구나."

     "......"

     지옥을 다스리는 위대한 대악마가 일어선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전장을 가른다.

     

     [우쭐대지 마라 루시퍼, 우리는ㅡㅡ]

     "누가 발언을 허가했나."

     팔을 한번 휘두르자, 대사룡의 목에서 윗부분이 날아갔다.

     하지만 즉시 재생이 시작된다.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 데에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엄청난 재생능력을 목격했지만, 루시퍼는 표정을 전혀 바꾸지 않는다.

     

     "우쭐대지 마라? 그건 이쪽의 대사다. 너 따위가 신세계를 구축한다니, 웃기는 일. 주제를 알고, 그 대가로 죽어라. 나와의 격차에 절망하며 죽어라."

     루시퍼는 그 두 눈에, 명백한 감정을 깃들였다.

     세계 그 자체인 그는, 한 명의 인간인 것처럼ㅡㅡ

     

     

     ㅡㅡ증오를 드러내고 있던 것이다.

     

     

     "나도 밉다. 그래 밉고 말고. 이것이 증오니가. 이것이, 몸 안에서 불타오르는 이것이, 미움이라면! 그녀 대신 내가 해방시켜주마! 나는 이 먼지들을ㅡㅡ너희들을, 한 줌도 남기지 않고 소멸시키고 싶다!"

     

     세계를 끝내는 힘이.

     한 개인의 순수한 감정을 토대로, 송곳니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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