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017 변이
    2022년 10월 06일 21시 32분 33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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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4568el/19/

     

     

     

     "마르크 왕국은 멸망했다."

     내가 그렇게 고한 곳은 바움푸터 마을.

     

     나는 엘프들의 앞에서, 포로로 삼은 마르크 왕국의 사람들을 보여주었다.

     

     "저건 제2왕녀 엘리자베타......"

     "설마 정말로 마르크 왕국이 멸망했다는 건가......?"

     엘프들은 누구나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포로들을 바라보았다.

     

     "반복한다. 마르크 왕국은 멸망했다. 이제 너희들을 위협하는 적은 없다. 마르크 왕국은 이제부터 아라크네아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하지만, 너희들한테는 자치권을 줄 생각이다. 이 숲은 너희들의 자치구로서 스스로 통치하도록 하라."

     

     "그건 고마운 일이지만, 정말로 괜찮겠습니까?"

     

     내가 그리 고하자, 장로사 날 바라보며 물어보았다.

     

     "상관없다. 다만, 군대는 체류시킨다. 조사해보니, 이 숲은 북으로 슈트라우트 공국, 동쪽은 프란츠 교황국, 남쪽은 닐나르 제국으로 연결되는 요충지다. 누군가가 아라크네아와 전희들한테 군사적인 일을 벌일 경우, 이곳은 전장이 된다."

     

     "전장! 이 숲이!?"

     

     내 말을 들은 엘프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정말 느긋한 종족이다. 지도를 잘 보면 여기가 대륙 최대의 사개국과 이어진 교차점이라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확실히 여기는 도로도 없고 밭도 없다. 이 세계의 군대가 병참을 유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어려운 것과 불가능함은 다르다. 의욕만 있다면 이겨낼 수 있는 일이다.

     

     "뭐, 안심하도록 해라. 너희들은 아라크네아의 비호하에 들어갔다. 너희들한테 뭔가를 하려는 나라가 있다면, 우리들이 제거한다. 아니면 우리보다 다른 나라의 비호하에 놓이는 편이 좋은가?"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아라크네아의 여왕님 덕분에 저희들은 평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이전의 습격에서 사망한 자들의 원수도 갚아주셨지요. 그런 분의 비호하에 놓이는 것은 저희들 엘프들로서도 좋은 일이겠지요."

     일단 의견을 물어봤지만, 예상했던 대로 이의는 없는 모양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다. 내가 조사해본 바, 대륙의 주된 국가는 어디나 빛의 신을 믿고 있다. 배타적이고 야만스러운 종교의 신앙자들이다. 엘프들은 독자적으로 숲의 신을 믿기를 원하고 있는데, 인간들은 빛의 신을 믿으라 강요하고 있다.

     

     하지만 아라크네아의 비호하에 들어서면 걱정 없다. 적어도 난 엘프들의 신앙에 관여하지 않을 생각이다. 신이란 것은 어차피 없으니까, 알아서 좋아하는 걸로 믿으면 되는 거다.

     

     "그럼 이제부터 우리들 사이에 양호한 관계가 생기기를 빈다. 여기에 계약서를 준비했다. 이 숲의 엘프들은 아라크네아의 비호하에 들어가지면, 그 자치권은 보장한다는 문서다. 누군가가 대표가 되어 날인을 했으면 한다."

     

     난 그렇게 고하며 테이블 위에 아라크네아와 엘프들의 관계를 정의한 외교문서를 놓았다. 엘프들은 내 비호를 받고, 자치정부를 수립하여 이후로는 국가 내 외교를 한다는 취지의 계약서다.

     

     "그럼, 제가."

     나선 자는 당연하게도 장로였다.

     

     "그럼, 여기에 네 이름을 써. 바움푸터 마을의 대표자라는 것도."
     "여기 말인가요."

     

     솔직히 엘프의 문자는 이해할 수 없다. 뭐라 쓰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바보라고 썼을지도 모른다.

     

     "그럼, 여기에 내가 내 이름과ㅡㅡ"

     

     거기까지 말한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내 이름은 뭐였지?

     

     일본에 있었을 때는 확실히 자신의 이름이 있었을 터. 하지만 그게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마치 처음부터 내게 이름이 없었던 것처럼, 전혀 단서가 기억나지 않는다.

     

     "아라크네아의 여왕님......?"

     

     장로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을 걸지만, 난 토할 듯한 기분이었다.

     

     설마 의식이 완전히 아라크네아한테 잠식되고 만 것인가. 그런가. 그래서 잊고 말았는가.

     

     "여왕 폐하......?"

     

     세리니안도 날 걱정스러워하며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 세리니안한테는 이름이 있지 않은가. 아라크네아의 집합의식과 이어졌다 해도, 내가 이름을 잃어버리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세리니안......"
     "무슨 일이십니까?"

     내가 중얼거리자, 세리니안이 물어보았다.

     

     "세리니안. 내게 이름을 지어줘. 뭐든 좋아. 내게 이름을......"

     "이름, 말입니까.....?"

     내가 매달리는 것처럼 고하자, 세리니안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레빌레아는 어떨까요?"

     "그레빌레아......? 무슨 의미지?"
     "거미의 꽃이라 불리는 꽃의 이름입니다."

     세리니안이 고한 것은 스파이더 플라워라고 불리는, 어여쁜 꽃의 이름.

     

     아라크네아의 여왕한테 어울리는 이름일지도 모른다.

     

     "좋아. 고마워, 세리니안. 오늘부터 난 그레빌레아다. 아라크네아의 여왕 그레빌레아. 그것이 나의 이름."

     이름을 얻은 나는 약간 아라크네아의 집합의식에서 멀어진 기분이 들었다.

     

     "이름을 쓰자. 그레빌레아. 아라크네아의 여왕."

     난 계약서에 이름과 칭호를 써넣었다. 새로운 이름을.

     

     "이걸로 계약은 이루어졌다. 이걸로 나와 너희들이 이제부터 양호한 관계가 맺어지기를 기원하마."

     이렇게 숲의 엘프들은 아라크네아의 비호하에 들어갔다.

     

     그중에는 아라크네아의 비호하에 들어가는 것에 반발하는 자도 있었지만, 상대가 마르크 왕국을 멸망시킨 세력이며, 자신들을 대륙의 유력국가가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의견을 바꿔 다른 자들의 의견을 따랐다.

     

     "이걸로 엘프의 숲은 잠깐의 안녕을 얻었다. 우리들은 대륙 최대의 국가들을 적으로 돌려도 승리할 수 있으니까."

     

     난 그렇게 고하고서 아라크네아의 첫 거점인 장소로 돌아갔다.

     

     지금도 여기는 아라크네아의 거점이다. 잠시 동안은 쓰지 않았었지만, 지금도 동력기관과 수태로, 육장고 등의 필요한 설비가 갖춰져 있다. 그리고 최신의 설비로서, 어느 시설도 건설했다. 이걸 쓸 기회는 나중이겠지만.

     

     "오늘은 바움푸터 마을에서 식사를 하고 왔으니, 따로 식사하지 않아도 돼. 말린 고기와 딱딱한 빵은 안녕이다. 오늘은 느긋하게 욕조에 들어간 다음 푹신한 침대에 눕기로 하자."

     조금 전 최신의 설비라고 썼지만, 그것은 욕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욕조는 전에 내가 몸을 씻고 싶다고 생각해서 워커 스웜한테 만들게 해 놓았던 것이다.

     

     "세리니안. 같이 들어갈까?"
     "그래도 괜찮을까요?"

     

     내가 욕조로 향하면서 물어보자, 세리니아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저는 갑옷을 벗지 못하니 방해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만......"
     "맞다. 넌 갑옷을 벗지 못했지..... 의태를 해도 안 되나?"

     

     세리니안이 두른 갑옷은 그녀의 몸의 일부다. 벗거나 떼어낼 수 없다. 적어도 세리니안이 지금의 형태인 한 불가능하다.

     

     "시험해보지 않아서 잘......"
     "흠. 언젠가 커다란 온천이라도 손에 넣는다면 생각해봐야겠네."

     세리니안과 함께 욕조에 들어가는 건 힘들어 보인다.

     

     "여왕 폐하."

     내가 어떻게 욕조에 들어갈까 고민하는 사이, 목소리가 들렸다.

     

     아라크네아의 거점은 리퍼 스웜이 경비하고 있다. 간단히 침입할 수는 없다. 지나가도 괜찮은 자는, 일부 친한 엘프들 뿐이다.

     

     "라이사?"

     

     나타난 자는 라이사였다.

     

     "왜 그래, 라이사? 무슨 일인데?"

     "네. 아라크네아의 여왕님께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요."

     내가 묻자, 아리사가 말하기 어려워하며 내게 고해왔다.

     

     "저도 아라크네아의 여왕님의 군세에 들어가고 싶어서요."

     라이사의 말은 의외였다.

     

     "내 군세에 들어가? 왜?"

     "저는 생각했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리나토가 죽었을 때, 제게 좀 더 힘이 있었더라면 그를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요. 그래서......"

     정말 궁금해진 내가 묻자, 라이사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랬었지. 라이사는 리나토를 잃었다. 그 일을 아직도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당연하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서 결혼하기로 약속했던 상대를 잃고서 아무것도 안 느끼는 편이 더 이상하다.

     

     "공교롭게도, 엘프는 내 군세에 필요 없어. 네가 원해도 내 군세에는 넣어줄 수 없어."

     "부탁이에요! 저도 세리니안 씨 같은 힘을 원해요!"

     

     에프의 활의 기술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내 전투 방식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 엘프를 그만둘 각오는 있어?"

     난 조용히 물어보았다.

     

     "엘프를 그만둬......? 어떻게요?"

     "방법은 정말 간단하다."

     그렇다, 방법은 간단하다.

     

     "이것은 변환로. 외부의 생물을 스웜으로 바꾸는 설비다. 곰과 늑대 같은 야생동물을 붙잡아서 스웜으로 바꿔볼까 하고 만든 것인데, 이건 엘프한테도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어."

     내가 워커 스웜들을 시켜 만들게 한 새로운 설비. 그것은 전환로.

     

     "사전에 말해두지만, 스웜은 집합의식을 지니고 있다. 네가 스웜이 된다면 그 집합의식에 삼켜지게 돼. 자칫하면 지금 가진 의식을 잃어버릴지도 몰라. 그래도 상관없다면......"

     난 그렇게 충고하며 라이사를 보았다.

     

     "부탁해요. 저도 강해지고 싶어요. 리사토를 잃은 경험을 또 하는 건 싫어요."

     

     라이사의 결의는 단호했다. 내가 충고해도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다.

     

     "알겠다. 그럼, 전환로에 들어가. 바로 끝나니까."

     난 그렇게 고하고서 아이언메이든처럼 생긴 전환로를 열고, 라이사한테 손짓했다.

     

     "네."

     라이사는 한번 숨을 들이마시고서, 전환로에 들어갔다.

     

     그리고, 난 문을 닫았다.

     

     "아, 아, 아아앗!"
     "라이사? 라이사, 괜찮아?"

     

     전환로 안에서 비명이 들리자, 내가 서둘러 말을 걸었다.

     

     그러다 비명이 그쳤을 때, 전환로가 열렸다.

     

     "이것이 스웜......"

     라이사의 모습은 변해있었다. 등에서 세리니안처럼 벌레의 다리가 8개 뻗어 나와 있고, 전갈 같은 꼬리가 달려있다. 그녀는 새로운 몸에 혼란스러운지 팔을 움직이거나 꼬리를 움직이고 있다.

     

     "어때. 아직 자신의 의식은 남아있어?"

     "네. 괜찮아요."

     라이사의 의식은 집합의식에 삼켜지지 않은 모양이다. 나도 그렇고 세리니안도 그렇고, 원래 인격이 존재하던 자는 집합의식에 삼켜지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라이사, 의태는 쓸 수 있어?"

     "의태요?"

     난 약간 흥미가 있는 일을 물어보았다.

     

     "원래의 자신의 몸을 떠올려봐. 정말 강하게."
     "원래의 자신의 몸을......"

     내 설명에, 라이사는 중얼거리면서 자신의 엘프 시절의 몸을 떠올렸다.

     

     그러자 라이사는 갈색의 머리카락을 둘로 묶은, 튜닉과 바지 차림의 엘프의 모습으로 변했다.

     

     "원래대로 돌아왔네......?"
     "원래대로는 아냐. 말 그대로 의태한 것일 뿐. 조그만 방심하면 스웜의 모습이 되어버리니까 조심해."

     

     라이사가 눈을 부릅뜨는 것이 재밌다.

     

     "자, 그럼 이제부터 잘 부탁해, 라이사. 그리고 아라크네아에 잘 왔어. 우리들은 널 환영한다."

     이렇게 난 라이사를 아라크네아에 들였다.

     

     의태의 소유자가 둘이 되었으니 전략의 폭도 넓어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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