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015 왕국의 종말(3)
    2022년 10월 03일 03시 51분 34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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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4568el/16/

     

     

     

     유린, 유린, 유린.

     

     나는, 그리고 내 스웜들은 모든 것을 유린했다.

     

     마을의 중심에 파고들어서, 그곳에 있는 대성당에 피난해 있던 주민들을 몰살했다. 한 명도 남김없이 고기경단의 재료로 바뀌었다. 그곳에는 임산부나 1살도 안 되는 유아도 있었지만, 내 스웜들은 남김없이 죽여버렸다.

     

     이거면 된다. 이거면 되는 거다.

     

     적은 섬멸한다. 섬멸하면 승자. 나는 게임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지만, 그게 어쨌냐는 거다. 게임이 리얼해졌을 뿐 아닌가. 결국, 섬멸하지 않으면 승리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스웜, 전진. 전부 짓밟아."

     그 명에 따라서, 스웜들은 북측과 남측에서 방위를 담당하고 있던 마르크 왕국군의 전력을 뒤에서 찔렀다. 앞뒤로 협공을 당하는 그들을 쓰러트리는 것은 쉬웠다.

     

     위협이 되는 것은 발리스타와 중장보병 뿐. 발리스타는 폐육포로 이미 기능을 잃었고, 중장보병만이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수가 적다.

     

     중장보병 하나를 쓰러트리는데 여태까지는 두세 마리의 리퍼 스웜이 희생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리퍼 스웜들도 싸움법을 학습하여, 보다 적은 피해로 중장보병을 쓰러트릴 수 있게 되었다.

     

     집합의식 만세. 하나의 스웜이 학습한 일은 다른 스웜에게 공유된다. 중장보병의 적절한 대처방법을 배우면, 이제 스웜에게 적수는 없다.

     

     그리고, 남북의 전력은 괴멸되었다. 자비 없이, 동정 없이 1명도 남김없이 죽어버렸다. 이걸로 우리들은 시그리아의 시가지를 정복했다.

     

     남은 것은 왕성 뿐.

     

     왕성을 함락시키면, 이 마르크 왕국의 적 전력은 괴멸된다.

     

     "왕성. 함락시키는 건 간단해 보이지 않네."

     왕성은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있다. 그것은 왕도가 제압되어도 왕성만은 남기려는 이유인가. 권력자를 위한 성. 세계란 그런 법이구나.

     

     "어떻게 공략해볼까요. 적은 저 성에서 버티려는 모양입니다만."
     "그냥 함락시키는 것밖에 다른 방법은 없겠어. 다행히 성벽도 없고."

     세리니안이 물어보자,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리퍼 스웜, 앞으로. 돌격 준비. 제 위치로."

     내가 집합 의식을 향해 재촉하자, 무수한 리퍼 스웜의 군세가 왕성으로 이어지는 다리 앞에 섰다.

     

     "리퍼 스웜, 전진. 돌격해라. 돌격해라. 돌격해라. 전부 짓밟아라."

     

     내가 그렇게 명령을 내리자, 리퍼 스웜의 군세가 왕성을 향해 돌격했다.

     

     우리들은 왕의 목을 베고, 왕녀의 목을 베고, 귀족들의 목을 데어 고기경단으로 만든다.

     

     하지만, 의외로 그걸 가로막는 것이 나타났다.

     


     

     "폐하. 이제 성벽은 기능을 다 했습니다."
     "서문, 북문, 남문. 전부 함락되었습니다. 왕도의 내부는 지금 적의 괴물로 들끓고 있습니다."

     국왕 이반 2세에게 그렇게 보고하는 자는, 마르크 왕국군의 장군들이다.

     

     "국왕 폐하. 조만간 이 왕성에도 적의 손길이 미칠 것입니다. 성문을 닫아놓는다 해도, 녀석들은 비집어 열어 돌파하겠지요."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결단을 바랍니다, 국왕 폐하. 보옥을 쓰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대로 모두 죽는 길을 택하시겠습니까?"

     재상인 스라바와 군무대신인 오마리가 그렇게 고한다.

     

     "결단은 내려놓았네."

     두 사람의 말에, 이반 2세가 조용히 고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서 있는 장군들과 스라바, 오마리를 둘러보고는 이 자리에 엘리자베타를 비롯한 자신의 자식들이 없음을 확인했다.

     

     제1왕자는 황토산맥의 전투에서 죽었다. 제2왕자는 아릴 강의 전투에서 죽었다. 제1왕녀는 슈트라우트 공국으로 시집갔다. 남은 자는 엘리자베타 1명. 그녀는 중요한 군무회의의 자리인 이곳에는 없다.

     

     "보옥을 사용한다. 보옥을 써서 녀석들을 물리치겠다."
     "진심이십니까, 폐하. 보옥을 한번 쓰면 이제 두 번 다시는....."

     

     이반 2세가 결의를 담아 고하자, 장군 중 한 명이 주저함을 보였다. 

     

     "이 상황에선 어쩔 수 없지.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이제 병력은 상실했고, 기사단은 괴멸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보옥을 쓰는 길밖에 달리 방법이 없지 않겠느냐."

     

     정말로 이제는 방도가 없다. 성내에 있는 전력은 1천 명 남짓이고, 나머지는 모두 괴멸했다.

     

     "보옥은 이미 준비해놓았네. 내가 나서면 성문을 다시 닫거라. 보옥을 쓴 자의 이성은 사라진다고 들었으니까."
     "알겠습니다, 폐하."

     이반 2세는 그렇게 고하며 주먹 크기의 호박색 보석을 꺼냈다.

     

     "그 결단에 경의를 표합니다."

     

     이반 2세가 그 보석을 드는 모습에, 오마리가 경례를 보냈다.

     

     "내가 죽은 뒤에는 엘리자베타를 여왕으로 삼아라. 알겠지."

     "알겠습니다. 엘리자베타 전하를 마르크 왕국의 여왕으로 모시겠습니다."

     유언을 남긴 이반 2세를, 장군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자. 괴물들한테 한방 먹여주자꾸나. 마르크 왕국이 그리 간단히는 멸망하지 않음을 녀석들한테 가르쳐주마. 기다려라, 괴물들."

     이반 2세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왕성의 정면에 난 현관으로 향했다.

     


     

     나는 성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항복할 셈인가?"

     

     무방비하게 열리는 성문을 본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항복을 받아들이진 않겠죠, 폐하?'

     "당연하지. 이제 여기까지 와서 항복 따윌 받아들일 생각은 없어. 내가 아는 룰에는 그런 건 없는걸.'

     

     내가 아는 게임의 룰에는 항복하여 화평을 맺는다는 선택지가 없다. 전멸시킬 때까지 싸우던가, 도중에 게임을 포기하고 전멸되느냐다.

     

     그리고, 난 이 리타이어 불가능한 현실세계에서 항복을 받아들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대로 살려두면 반드시 후환을 당한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몰살시키며 전진했던 것이다.

     

     "세리니안. 경계해. 적은 아직 비장의 수를 가졌을지도 몰라."

     "알겠습니다, 여왕 폐하."

     이것이 항복의 의사 표명이 아니라면, 적은 성 안에서 뭔가를 꺼낸다는 뜻이 된다. 그것이 뭔지는 불명이다. 하지만 적이 성문을 열면서까지 그걸 내보내려고 하는 것이니, 어느 정도의 위협으로 봐야 할 것이다.

     

     "여왕 폐하. 뭔가 위험한 것이 옵니다!"

     세리니안이 내게 그렇게 외치자, 내 전방에 리퍼 스웜들이 전개된다. 이렇게 되니 정말로 여왕으로서 지켜지고 있구나 하고 느껴진다.

     

     "모습을 보여라!"

     세리니안이 씩씩하게 외치면서, 거무스름한 검을 들고 성문으로 나아간다.

     

     "네놈들이 침략자인가. 내 국토를 침략한 자들인가."

     

     세리니안의 전방에 나타난 자는 초로의 남성이었다. 의복으로 보아, 높은 신분임은 틀림없다. 귀족인가, 아니면 왕족인가. 어쨌든 살려둘 만한 상대는 아니다.

     

     "그 말대로다. 우리들이 이 나라를 침략했다. 너희 나라가 엘프의 마을을 침공하여 내 친구를 죽였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 본능을 위해, 모든 것을 우리 스웜으로 뒤덮으려는 본능을 위해 귀국을 침략했다."

     다른 이유는 필요 없다.

     

     "사악한 것들. 네놈들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다. 이 세계에 존재하지 말았어야 할 존재다. 네놈들 탓에 무수한 자들이 불행에 빠졌다. 네놈들은 불행을 가져다주는 것들이다."

     "마음대로 말하시던가. 우리들은 이후로도 본능을 따라 움직인다. 공격을 받으면 철저하게 보복한다. 그 본능을 마음껏 휘두르지. 그것이야말로 아라크네아. 내가 이끄는 아라크네아다."

     당하면 갚아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열받으면 날뛰는 것은 당연하다.

     

     "지껄이기는. 네놈들은 여기서 끝이다. 지금 여기서 사라져라, 이 진화의 보옥의 힘으로!"

     고귀한 신분의 남자가 외침과 동시에, 그가 손에 든 호박색 보석이 반짝였다.

     

     다음 순간, 남자의 몸과 근육은 수십 배로 팽창하였고, 강인한 근육과 단단하고 검은 체모로 뒤덮인 괴물로 변했다. 나는 갑작스러운 일에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지만, 곧장 해야 할 일을 시작했다.

     

     다시 말해, 이 장애물을 제거하고 승리하는 일을.

     

     "세리니안! 저걸 막아라! 리퍼 스웜은 원호다! 공격!"

     "알겠습니다, 여왕 폐하!"

     세리니안이 전방에 서서 날뛰기 시작한 거한을 막는 사이, 양측에서 리퍼 스웜이 돌격했다. 세 방향의 동시 공격이라면 적이 아무리 정체 모를 괴물일지라도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ㅡㅡ

     

     "오오오!"

     

     거한은 포효하면서 양측에서 돌입한 리퍼 스웜을 쳐냈다. 낫이 팔에 꽂히건, 이빨이 살을 찢던 상관없이 공격을 되풀이한다.

     

     클레이모어, 핼버드, 발리스타가 아니라면 쓰러지지 않던 리퍼 스웜이 산산조각이 나서 쓰러졌다. 팔다리가 찢기고, 이는 부러지고,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단된 수십 마리의 리퍼 스웜이 쓰러졌다.

     

     "이건...... 어떻게 손을 대야 좋을지....."

     

     세리니안도 눈앞의 광전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저하면서도 가까스로 주먹을 받아 흘리고 있다. 천사들의 공격도 가열찼지만, 이 거한의 공격은 더욱 거세다.

     

     "세리니안. 리퍼 스웜과 연계해라. 저 거한의 주의가 리퍼 스웜한테 향한 순간 공격을 퍼부어. 상대는 거대화했지만, 팔의 수는 늘어나지 않았다. 양측에서 리퍼 스웜이 공격해오면 틈이 생겨난다."

     정말 어려운 지시다. 상대는 확실히 양측에서 공격을 받으면 그쪽으로 주의를 기울이지만, 그렇다 해서 세리니안이 공격할 틈이 생겨나는지는 의문이었다.

     

     "해보겠습니다!"

     

     양측에서 리퍼 스웜이 공격하며 낫과 송곳니를 드러냈을 때, 세리니안이 움직였다. 정면에서 돌진하며 파성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세리니안의 공격은 닿지 않았다.

     

     "크윽......!"

     세리니안은 거한한테 차여서 후방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가까스로 자세를 회복하고는 파성검을 거머쥐고 다시금 거한을 바라보았다. 보고 있자니 아슬아슬하다.

     

     "세리니안, 무사해!?"
     "무사합니다! 아직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당황해서 외치자, 세리니안이 다시 거한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다시 발로 차여 날아갔다.

     

     난 세리니안과 리퍼 스웜들한테 실을 쓰게 하여 남자의 움직임을 막으려고 했지만, 그것조차도 손쉽게 찢기고 말았다. 이제는 손쓸 도리가 없다.

     

     뭔가 수는. 방법은 없을까. 뭔가 세리니안을 돕기 위한 수단은.

     

     "그래. 아직 장기말은 있어."

     난 떠올랐다.

     

     "세리니안! 5초 후에 공격을 시작해! 리퍼 스웜과 동시에!"

     "예!"

     

     나는 손을 썼다. 이 상황을 타파할 수를.

     

     "디거 스웜!"

     5초 후, 디거 스웜이 기어 나와서 거한의 다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리퍼 스웜이 양측에서 공격을 감행했다. 이것으로 거한은 양손과 양발이 막혀서 완전히 무방비해졌다. 지금이야말로 공격의 기회다.

     

     "하앗!"

     

     세리니안이 그 잠깐의 틈을 파고들어, 거한의 목을 날려버렸다. 목이 베이자 선혈이 분수처럼 솟아올랐고, 거한의 몸은 경련을 하면서 지면에 쓰러지려고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쓰러지지 않았다.

     

     거한은 리퍼 스웜의 공격을 뿌리치더니, 그 거대한 양팔로 세리니안을 붙잡았다. 세리니안은 거한의 양팔을 어떻게든 뿌리치려고 했지만, 그리 간단히는 뿌리칠 수 없었다.

     

     "리퍼 스웜! 팔에 독침을 찔러!"

     나는 세리니안을 구출하기 위해 리퍼 스웜에게 명령했다. 리퍼 스웜들이 마비독을 거한에게 주입하여 양팔이 마비되자, 세리니안은 어떻게든 풀려났다.

     

     "쿨럭......"

     세리니안은 기침을 하면서도 어떻게든 일어섰다.

     

     딱하지만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세리니안, 끝장을 내라!"
     "예, 폐하!"

     그럼에도 세리니안의 움직임은 재빨랐다.

     

     그녀는 일어서더니, 머리가 없는 거한의 심장에 파성검을 찔러 넣었다.

     

     거한은 그제야 무릎을 꿇고, 지면에 쓰러졌다. 그리고 원래 크게의 인간으로 돌아갔다. 이제야 승리한 것이다.

     

     "세리니안, 괜찮아?"
     "예, 괜찮습니다, 폐하.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내가 세리니안의 옆으로 달려가자, 울먹이는 표정으로 그렇게 고했다.

     

     "울지 마. 뚝. 세리니안은 승리했어. 넌 훌륭한 기사야. 이번에도 날 위해 승리해줬으니까."
     "죄송합니다...... 여왕 폐하의 손을 번거롭게 했다고 생각하니 정말 죄송해서....."

     이걸로 왕성 앞의 전투는 끝났다.

     

     남은 것은 왕성 안에 틀어박힌 녀석들을 처리하는 일 뿐이다.

     

     이만큼 고생하게 만들었으니, 상응하는 보답을 해줘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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