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013 왕국의 종말(1)
    2022년 10월 01일 23시 03분 23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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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4568el/14/

     

     

     

     아라크네아는 북측과 남측에서도 같은 수법으로 아릴 강을 돌파했다.

     

     이제 마르크 왕국에는 자연의 요새가 존재하지 않는다.

     

     왕도에 도달하기까지는 몇몇 요새가 존재하지만, 그런 것이 우리 아라크네아를 상대로 버틸 리가 만무하다.

     

     "여기도 함락이다."

     또 하나의 요새를 함락시킨 내가 중얼거렸다.

     

     "세리니안."

     "예! 무슨 일이십니까?"

     난 내 옆에 서 있는 세리니안에게 말을 걸었다.

     

     요새는 피 냄새로 진동하고 있다. 시체는 워커 스웜에 의해 운반되어 고기경단으로 바뀌어 육장고에 실린다. 육장고의 고기경단은 적절한 때 리퍼 스웜으로 변환되어 수태로에서 태어난다.

     

     난 그런 상황을 바라보면서 뜨끈한 샌드위치를 먹고 있다.

     

     이것은 요새의 병사들이 쓰던 재료와 조리기구로 만든 것인데, 안에는 치즈와 햄이 들어있다. 요즘은 말린 고기와 딱딱한 빵만 먹던 참이라, 뜨끈하고 부드러우며, 치즈의 풍미가 나는 샌드위치는 정말 꿀맛이다.

     

     "샌드위치, 먹을래?"
     "아뇨. 폐하의 음식을 받다니 너무 황송한 일이온지라....."

     그렇게 말하지만, 계속 흘끗거리며 내 샌드위치를 보고 있다. 귀엽다.

     

     "하나 줄게. 방금 만들었으니까."
     "영광입니다, 폐하!"

     

     세리니안은 던진 뼈다귀를 쫓아가는 강아지처럼 샌드위치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리고 열심히 먹으며 샌드위치를 맛보았다.

     

     세리니안을 비롯한 스웜은 딱히 식사가 필요 없다. 하지만, 그들도 오락으로서는 식사를 먹고 싶을 때도 있는 모양이다.

     

     "북쪽과 남쪽의 부대가 배치되었다."

     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집합의식을 통해 북쪽과 남쪽을 진군하던 스웜의 군세가 왕도 시그리아를 공략할 수 있는 위치에 도착했음을 확인했다. 북쪽과 남쪽은 저항이 덜해서, 마르크 왕국은 광산지대와 곡창지대를 잃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주민을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죽여버렸다. 섬멸이다.

     

     나는 아직 게임하는 감각으로 이 전쟁을 즐기는 모양이다. 적을 살려두면 승리 조건이 달성되지 않는 게임의 룰. 난 그걸 충실히 지켜서, 마르크 왕국을 자칭하는 것은 근절시키고 있다.

     

     촌락도, 마을도, 요새도.

     

     이걸로 괜찮은 걸까?

     

     괜찮을 것이다.

     

     나는 스웜들에게 아라크네아의 승리를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켜야만 한다. 설령 같은 종족인 인간을 적으로 돌린다 해도. 그리고 난 게임에서 여러 번 인간들을 학살했지 않은가. 그와 같은 것이다.

     

     그게 현실로 되었을뿐. 그것 뿐이다.

     

     "여왕 폐하, 고민거리라도 있으신지......?"

     

     내가 멍하니 샌드위치를 오물거리고 있자, 세리니안이 걱정스러운지 말을 걸어왔다. 우리들 속의 집합의식에서 내가 인간과 스웜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다.

     

     "아니, 세리니안. 고민할 것도 아냐. 나는 미워. 리나트를 죽인 기사단을 보낸 마르크 왕국이 미워. 그리고 무엇보다 너희들의 승리에 방해되는 마르크 왕국을 멸망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거든."

     나는 마지막 샌드위치를 입에 던져 넣고는, 그렇게 고하며 일어섰다.

     

     "자, 정복하자, 세리니안. 마르크 왕국을 멸망시키고 승리를 위해 한 걸음 나아가자. 그러고 나서는..... 생각해야지. 다른 나라가 우리들을 간섭한다면, 마르크 왕국과 마찬가지로 주저 없이 쓸어버린다."

     "알겠습니다, 여왕 폐하."

     그 후로도 우리들은 네 요새를 함락시켰다. 생존자는 없음.

     

     그리고, 우리들은 왕도 시그리아를 눈앞에 두었다.

     

     나는 전진기지를 왕도 시그리아의 전방에 배치하고서, 여태까지의 약탈로 손에 넣은 돈으로 공성병기를 언락하여 투골기의 상위호환인 폐육포를 시그리아 전면을 향해 배치했다. 폐육포는 썩은 고기를 투척하여 착지 지점 부근의 유닛에 독의 효과를 부여하고, 시설을 부패하게 만들어 파괴한다. 위력은 낮지만 부가효과가 대단하다.

     

     그리고, 워커 스웜들이 12기의 폐육포를 배치했을 때 공격의 시간이 다가왔다.

     

     왕도 시그리아는 주민의 대피도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안전한 성벽에 둘러싸인 시그리아를 향해 주위에서 무수한 피난민이 밀려들 것이다.

     

     당분간, 고기는 부족하지 않겠구나, 하고 난 생각했다.

     


     

     "세상의 종말이다! 이형의 군세에 의해 성벽을 부서지리라! 그리고 커다란 파괴의 물결이 이 세계를 뒤덮는 것이다! 빛의 신께 기도해도 소용없다! 신조차 그 괴물들의 진군을 멈출 수는 없을지니!"

     

     왕도 시그리아의 광장에서 중년의 성직자가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실로 기적적으로 어느 도시를 탈출한 사람인데, 리퍼 스웜의 러시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직접 체험했다. 그리고 그걸 이 세상의 종말이라고 판단하기에 이른 것이다.

     

     성직자의 신앙심을 앗아갈 정도로 무서운 아라크네아의 침략.

     

     "닥쳐! 여기서의 집회는 허가하지 않았다. 바로 해산하라!"

     

     신앙심을 잃은 성직자와 그에 모여든 민중들을, 기병이 내쫓는다.

     

     "무슨! 너희들 왕국군이 약하니까 우리나라가 침략을 받는 거라고! 불만 있으면 그 괴물 군단을 물리치기나 해!"

     

     민중들은 기병에게 쓰레기를 던지며 욕설을 퍼부었다.

     

     "정말 무섭네...... 대체 어떻게 되어버리는 걸까......"

     그렇게 중얼거리는 자는 20대 후반의 젊은 어머니였다. 이름은 류드밀라. 5살과 7살의 자식들을 데리고 장을 보던 그녀는, 병사들과 민중이 충돌하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두려움을 느꼈다. 평소의 시그리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분위기에 불안감을 느낀 것이다.

     

     "엄마. 괴물이 와?"
     "우리들 잡아먹히는 고야?"

     류드밀라가 민중과 병사의 충돌에서 거리를 두려고 하자, 자식들이 물어보았다.

     

     "괜찮아. 여기에는 듬직한 성벽이 있는걸. 그리 간단히는 부서질 리가 없단다. 괴물들은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가게 될 거란다."

     "그럼 안심해도 되겠네?'

     "괴물 따윈 무섭지 않아!"

     류드밀라는 자식들과 그런 말을 나누면서 자택으로 돌아갔다.

     

     

     그즈음 왕도 시그리아의 왕성에서는 비통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들은 아라크네아의 침공을 막아낼 수 없었다. 황토산맥은 함락되고 아릴 강은 돌파당했으며, 왕도까지 있는 몇몇 요새도 전부 유린당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반 2세는 재상인 스라바와 군무대신인 오마리에게 물어보았다.

     

     "......현재로서는 농성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식량고에는 1년 분의 식량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걸로 버티면서 적이 떠나가기를 기다릴 수밖에는."

     "언제 포위망을 풀지는 아는가? 적은 영원히 시그리아를 포위할지도 모르는 것을. 적은 괴물의 군세이니, 재정 상황 때문에 철수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네."

     오마리가 굳은 표정으로 고하자, 스라바가 그렇게 지적했다.

     

     "외국의 구원을 바랄 수 없을까? 프란츠 교황국이나 슈트라우트 공국이라면 이 나라의 궁지를 구해주지는 않을까?"

      

     이반 2세는 그렇게 고하고서 스라바와 오마리를 바라보았다.

     

     "이미 외교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원군의 출발에는 4개월이 걸리고, 도착하려면 더욱 시간이 걸린다 합니다. 이래서는 도무지 제때 도착하지 않겠지요."

     "이게 무슨 일인가! 이게 무슨!"

     

     이반 2세는 반쯤 미쳐서는 외쳤다.

     

     "이미 천사를 옹립하는 기사단은 하나에 불과하다. 그것만이 마지막 수단이다. 하지만, 어디서 싸워야 된단 말이냐. 저 벌레들은 시그리아의 마을 사방을 뒤덮고 있어서, 어디에서 침입해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건만."

     

     이반 2세는 벌레에 의해 자신의 왕도가 포위되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럼, 보옥을 쓰시는 게 어떨지......? 보옥의 힘이라면 역전도 가능할지 모릅니다."
     "보옥이라고? 그걸 쓴 역대 왕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 네가 그리 말하는 게냐."

     오마리가 쭈뼛거리며 고하자, 이반 2세가 그를 노려본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국난의 때. 보옥을 쓴다면 그야말로 지금입니다. 보옥으로 수십 만의 마르크 왕국의 백성이 구원받는다면, 갑진 희생일 겁니다."

     

     "음...... 그건 그렇다만......"

     오마리의 말에 이반 2세가 생각에 잠긴다.

     

     "정말로 우리 군으로는 막아낼 수 없는 건가? 프란츠 교황국의 응원이 올 때까지 버텨낼 수는 없는 겐가?"

     "불가능하겠죠. 이미 그 벌레들은 황토산맥과 아릴 강, 그리고 여러 요새를 돌파한 것입니다. 왕도의 성벽만으로 막아낸다는 일은 없겠지요."

     이반 2세가 필사적으로 물어보지만, 오마리는 침통한 얼굴로 말했다.

     

     "......알겠다. 그럼 성벽이 무너졌을 때 보옥의 힘을 쓰도록 하마. 바라건대 이걸로 마르크 왕국민들이 구원받기를."

     "그 결단에 경의를 표합니다."

     이반 2세가 결의를 담아 고하자, 오마리와 스라바가 수긍했다.

     

     "그럼, 변화가 있다면 알려라. 난 보물고로 향하겠다."

     이반 2세는 그렇게 고하며 군의에서 빠져나갔다.

     

     이반 2세가 떠난 뒤에도 회의는 계속되어서, 장군들도 섞여 어떻게 해야 시그리아의 성벽을 유지할지, 식량의 분배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여차할 때 탈출할 경로는 없나 등을 논의했다.

     

     

     "설마, 보옥을 쓰게 될 줄은."

     방에서 나온 이반 2세는 비통한 얼굴로 보물고를 향해 나아갔다.

     

     "아바마마. 무슨 일이세요?"

     

     그런 이반 2세한테 말을 건 자는, 엘리자베타였다.

     

     "그, 그래. 나라를 위해 어떻게 할지 걱정하던 참이었다."
     "그런가요. 역시 아바마마는 대단하세요. 항상 나라의 일을 생각하고 계시네요."

     이반 2세가 둘러대자, 엘리자베타가 존경의 눈길로 바라본다.

     

     "엘리자베타. 이렇게 너와 대화하는 것도 마지막일지 모르겠구나. 나는 이제 싸우러 가야 한다."
     "그런! 스테판 님도 전사하셨는데 아바마마까지 잃게 될지도 모르다니! 누군가 다른 분께 맡기세요! 아바마마는 국왕 폐하잖아요!"

     "국왕이기 때문에 해야만 하는 거다. 내가 없어도 강하게 살아가거라, 엘리자베타. 마르크 왕국의 왕녀로서 긍지 있게 살아가거라. 분명 내가 떠난 뒤에도 네가 이 나라를 번영시켜주리라 믿고 있다."

     

     "아바마마....."

     

     이반 2세가 마지막 인사를 전하자, 엘리자자베타가 눈물을 머금는다.

     

     "네. 저는 마르크 왕국의 제2왕녀로서 긍지 있게 살아가겠어요. 설령 그것이 힘든 일일지라도 그 벌레들이 제거된다면, 나를 부흥시키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겠어요. 부디, 아바마마께서도 조심하세요."

     

     "그래. 조심 하마."

     이제는 조심해서 어떻게 될 문제가 아니지만, 이반 2세는 굳이 그걸 고하지는 않았다. 말할 필요도 없었으니까.

     

     "그럼, 넌 안전한 장소에 가거라. 지하실은 어떨까. 안전한 장소에 숨어 괴물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거라."
     "네, 아바마마."

     이반 2세는 그렇게 고하며 엘리자베타를 보냈다.

     

     "국왕 폐하."

     다음으로 말을 건 자는, 근위병이었다.

     

     "그 괴물들이 엘프가 소환한 것이라는 건 사실입니까? 엘프들이 제물을 바쳐 그 괴물을 이세계에서 소환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엘프가 저 괴물들을 조종하고 있다고들 합니다."

     "쓸데없는 소문이다. 엘프들한테 그런 힘이 있을 리가. 만일 있었다면 더 빨리 쓰지 않았겠나. 엘프 주제에 그런 괴물을 사역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근위병이 묻자, 이반 2세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보다도 엘리자베타를 제대로 지켜주거라. 부탁한다."
     "옙! 목숨을 걸고 지키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그 괴물들은 어디에서 나타난 것인가. 엘프의 숲에서 나타난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엘프의 숲 어디에 그만한 수의 괴물이 숨을 장소가 있었다는 말인가. 역시 저것들은 엘프가 흑마술로 소환한 악마가 맞는 것일까.

     

     "엘프..... 모든 원흉. 엘프만 없었다면 이런 일은 안 생겼을 것을. 가증스러운 숲의 야만족들."

     빛의 신을 전혀 숭배하지 않는 엘프가 나빴다.

     

     이반 2세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 무렵 왕성 바깥에서는 성직자들이 빛의 신에게 기도를 올리며 이 미증유의 위협이 떠나가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성벽을 강철처럼 지켜내어, 괴물들이 포기하고 떠나가기를 기원하는 기도를 바치고 있는 중이다.

     

     기도의 목소리는 드높게 울려 퍼져서, 바깥까지 도달하였다.

     

     "기도하고 있네."

     아라크네아의 여왕은 시그리아의 마을이 가장 잘 보이는 장소에 자리 잡았다.

     

     "무의미한 일입니다. 신에게 기도한들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뭐, 그렇긴 해. 기도해서 어떻게 될 거였다면 군대도 뭣도 필요 없었지. 기도해도 아무것도 안 바뀌어. 그냥 자기만족에 불과하니까. 나무아미타불을 외워도 아무것도 구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

     세리니안이 고하자, 아라크네아의 여왕이 일어선다.

     

     "세리니안. 공격이다. 시그리아를 함락시켜라."
     "알겠습니다, 폐하."

     05 : 00시. 아라크네아, 시그리아를 향한 총공격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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