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 박은(拍隱)의 크롬(4)2022년 08월 29일 22시 24분 09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원문 : https://estar.jp/novels/22241232/viewer?page=1179
혼란을 틈타 코즈미가 도망친 것은 1분 전의 일이다. 신수들은 그런 말을 안 했지만, 분명하게 코즈미를 도망치게 하려고 행동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발걸음은 환자와 마찬가지였다.
소환문양에서 전해지는 열기는 가슴만이 아니라 온몸에 전해져서, 이제는 달리는 것도 힘들다.
열기의 정체는 마력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고밀도의.
돌이켜보면, 진과 아롤의 상태도 묘하게 이상했다.
말을 걸지 못했다기보다, 마치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던 듯한ㅡㅡㅡ
"코즈미 님ㅡㅡㅡ"
그리고 아무 징조도 없이, 눈앞에 크롬이 내려섰다.
옷은 군데군데가 찢어지고, 이마에서는 피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도저히 약해졌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다.
"하아...하아...!"
후퇴하면서, 대책을 생각한다.
몸은 만신창이지만, 여기서 순순히 붙잡히면 자기 몸으로 기회를 만들어 준 타카츠키에게 면목이 없다.
지금 여기서 크롬에게 대항할 방도는 없다.
방금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고밀도의 마력.
힘이 넘쳐나고 있다면, 이걸 방출하면 된다.
"하아...하아ㅡㅡㅡ읏!!"
아무 특징도 없을 터인 바람의 술식.
전에 미즈키한테서 배웠던 그것은, 놀랄 만큼의 고위력으로 코즈미한테서 방출되었다.
눈앞의 경치는 폭파하는 것처럼 날아가버리고, 나무들이 나뭇가지처럼 꺾인다.
하지만 사람에 맞은 느낌은 없다.
피해버렸다.
먼지도 나고 있어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
완전히 놓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즈미는 크롬의 다음 일격을 어렵지 않게 간파했다. 사각에서 들어오는 손바닥에, 마찬가지로 손날을 갖다 댄 것이다. 치유와 소환을 주류로 하는 코즈미지만, 근접전에서는 완전히 문외한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어린 시절부터 겐사이한테 배웠었던 코즈미에게 있어, 맨손 격투는 그럭저럭 친숙한 것이었다.
"아악...하악...하악...!!"
심장의 가속이 멈추지 않는다.
정신을 놓으면 파열할 듯한.
많으면 좋은 것은 마력이지만, 이 상황에서는 틀림없이 독이다. 어쨌든 그릇이 파괴되지 않도록, 쏟아지는 마력을 연료로 바꿔나간다.
육체강화, 장벽, 자가치유, 영역술식.
종류를 불문하고 연이어 발동한다.
"코즈미 님..."
그녀의 사태가 이상한 것은, 크롬의 눈으로 보아도 확실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어떻게 될지 상상이 안 간다. 탐색은 그만. 코즈미를 위해서도, 단번에 끝장낸다.
시공간을 도약해서, 단번에 접근한다.
코즈미도 이것에는 반응하지 못했는지, 쉽사리 홀드에 성공했다.
"코즈미 님, 이제 그만두세요."
"으으...으으으...!"
범상치 않은 상태다.
마치 뭔가에 빙의되는 것처럼, 저항을 그만둘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그제야 처음으로, 코즈미한테서 그녀와는 다른 마력이 솟구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
쩌억.
코즈미의 주위 공간에 균열이 생겼다.
동시에 질풍이 휘몰아쳤고, 버티지 못한 크롬은 후방으로 날아가버렸다. 대미지는 없지만, 술식을 발동시킬 틈을 줄 생각은 없다.
이것은 아마도 여파.
혹은, 뭔가 엄청나게 무서운 현상의 예고.
코즈미는 옷의 위로 가슴을 억누르면서, 어떻게든 호흡을 가다듬었다. 마력의 소비가 완전히 따라가지 못한다.
코즈미 정도로는 한 번에 쓸 마력량에 한도가 있다.
이대로 간다면 파열한다.
일단, 수는 있다.
아직 한 번도 못 본 3번째 소환수를 소환하면 된다.
신수한테 있는 마력을 죄다 쏟으면, 아마 균형이 잡힐 것이다.
하지만ㅡㅡㅡ
"하아...! 하아...!"
소환 문양이 폭주하는 사이, 코즈미는 막연하게 이해했다.
이것은 자신이 다룰 수 없다.
단지 문을 여는 것만이라면 아마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뿐.
컨트롤까지는 결코 못한다.
사역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으으으...으.......!"
하지만, 이대로 저항하는 것도 무의미한 것도 사실.
연료는 얼마든지 있지만, 중요한 엔진이 미숙해서는 의미가 없다. 완전히 출력부족이다.
".......윽..............윽!"
눈이 뒤집힐 정도로 심한 구토감에 휩싸인다.
타인의 마력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자신의 개성이 사라지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이제 몸이 못 버틴다.
격류를 막아내는 것도 이제 한계다.
여기서, 이대로, 순순히 붙잡힐 바에는ㅡㅡㅡ
"아아ㅡㅡ아아아ㅏ아아ㅏ아ㅏ아앗!"
허공을 손바닥으로 친다.
평소에는 무의식적으로 안 할 난폭한 동작.
마치 코즈미 자신의 의식이 누군가에게 침식되는 것처럼. 그 충격으로 균열은 더욱 늘어나서, 조금씩 [공간]이 갈라진다
그리고.
[...달려라, 뛰어라, 달음박질쳐라]
누구한테 말하는 것이 아닌.
코즈미는, 천천히 그 말을 입에 담았다.
[만천하에 우뚝 선 은의 사지]
[천문을 삼키는 아랑의 왕]
몇 겹으로 겹쳐진 목소리가, 크롬의 고막을 진동시킨다.
코즈미의 등 뒤에서 동굴 같은 구멍이 나타났다.
[월백에 젖어든 암흑]
[호박에 갇힌 제물]
[강림하는 신위가 위장을 채우리니]
동굴 저편에서 무언가의 기척이 느껴진다.
눈으로 볼 수는 없고, 감지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있다. 무언가가.
[강림한다]
[계약에 따라ㅡㅡㅡ]
모든 마력을 해방한 크롬이, 코즈미에게 접근한다.
그대로 목을 움켜쥐고는 근처의 나무에 패대기쳤다.
"ㅡㅡㅡㅡ윽!"
후두부의 충격에 의해, 코즈미가 약간 눈을 까뒤집는다.
하지만 마력의 격류는 그치지를 않는다.
크롬은 코즈미를 나무에 누른 채로 오른팔을 휘둘러, 기세 좋게 명치를 타격했다.
가느다란 몸에 꽂히는 주먹.
하지만 코즈미는 약간 주춤거리는 것에 그쳤으며, 오히려 크롬의 팔을 붙잡고는 던져버렸다.
"ㅡㅡㅡ코즈미, 님...!"
몸을 비틀면서 조용히 착지한다.
주저 없이 죽일 계산을 한 이유는, 이대로 가면 자신이 죽을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의 위협을 느꼈다.
그 감각은 이가라시 겐조의 [산옥지장]과 비슷하다.
여기서 불러내면 위험하다.
죽이지는 않아도, 소환만은 막는 편이 좋다.
"인정할게요, 코즈미 님.
당신은 틀림없는 시키가미의 자손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아쉽다.
시대만 맞았다면, 그야말로 영웅이 될 수 있었는데. 분명하게 소환사로서 개화하고 있다.
새싹을 짓밟는 것은, 언제나 익숙지 않다.
[계약에 따라 나의 혈육은 양분이 되어]
크롬은 낮게 웅크리고는, 목표를 바라보았다.
그녀와의 거리는 약 30m.
[이루는] 것은 한순간이면 된다.
약간 망가져도, 그녀를 데리고 돌아가야만 한다.
[그 영혼에ㅡㅡㅡ]
슈팟.
크롬이 날았다.
그리고 코즈미의 목이 짓눌리는 것은, 1초에도 못 미쳤다.
"....아.............."
입에서 흘러나온 각혈이, 지면을 붉게 물들인다.
목이 짓눌렸음에도, 코즈미는 크롬한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마력에 너무 노출되었는지, 고양이 같은 예리한 눈동자다. 아픔이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도, 이걸로 영창은 못할 것이다.
한숨 놓은 순간.
크롬의 한쪽 팔이 날아가버렸다.
"앗ㅡㅡㅡ"
베여버렸다.
팔은 바퀴처럼 돌면서 날아가더니, 근처의 나뭇가지에 걸렸다.
후퇴하면서, 공격해 온 것의 모습을 바라본다.
코즈미의 등 뒤의 구멍에서, 팔이 뻗어 나왔다.
털복숭이의 팔ㅡㅡㅡ이라기보다 앞다리.
통나무보다도 굵다.
사족보행을 하는 생물의 다리다.
칼날 같은 손톱이 나 있다.
검은 안개가 껴서, 이 거리에서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숨어있나?
어쨌든, 응전해야만 한다.
남은 한 손을 들고서, 반신으로 다리 폭을 조절한다.
"무박자."
공간간섭을 아낌없이 써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다.
하지만 내디딘 순간, 이미 코즈미가 옆으로 선회하고 있었다.
"앗ㅡㅡㅡ"
움직임이 너무 기민하다.
약간이라도 현현한 것으로, 숙주를 완전히 지배한 것인가.
"후우ㅡㅡ우우ㅡㅡㅡ우우웃!!"
날카롭게 내지르는 다리.
그것 자체는 어렵지 않게 막아냈지만, 사각에서 오는 [팔]의 일격까지는 간파할 수 없었다.
직전에 피했지만 완전히는 아니어서, 풍압으로 수십 미터나 날아가버렸다.
'큰일이다...!'
틈을 주고 말았다.
몸을 추스를 때까지의 몇 초.
소환을 끝내기에는 마침 좋은 시간이다.
이렇게 된 바에는 완전히 해방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것은 주군과의 약속으로 엄히 금지되어 있다.
어떻게 할까ㅡㅡㅡ
그렇게 주저하는 사이, [팔]은 조심스레 코즈미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팔은 그 이상 이쪽에 흥미가 없다는 듯, 구멍 안쪽으로 돌아갔다.
"기다려..!"
몸을 비틀어서 지면에 착지한다.
결국, 아주 약간 망설인 것이 화근이 되었다.
팔은 딱히 서두르지도 않고 구멍 중심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윽고 균열까지 막히자, 코즈미와 팔은 이 자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역소환..."
처음부터 저걸 노렸던 걸까.
크롬은 절단된 팔에서 흐르는 피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지 눈앞의 광경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
소스케의 실종으로부터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소스케의 부모가 사고로 사망했다.
사고사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소스케의 안부를 걱정했다.
소스케가 살아있다고 믿고 있었다.
한 가족을 망쳐버렸다.
이제 그 사실에서 도망칠 수 없다.
차라리, 누군가가 때려준다면 조금은 편해질 텐데. 소스케도, 소스케의 가족도, 마지막까지 자신을 원망했음이 틀림없다.
살아갈 때 중요한 것들이 결여된다.
그날부터 후회만이 머리를 스친다.
그녀들의 무덤을 보아도, 정말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이런 운명을 거스를 수 있을까.
앞으로 몇 년이 지나야, 소스케도 여기 설 수 있을까.
자신은 어째서 태연히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날이면 날마다 머리가 이상해진다. 그날, 자신이 소스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두통이 멎지 않는다.
잃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가족의 말대로 친구 따윌 만들지 않았어야 했다.
팔에 세 번째의 소환 문양이 떠오른 것은, 마침 그 무렵이었다.
◇
눈을 떠보니, 어둠 속에 있다.
끝없이 검은 공간.
말 그대로 한 치 앞도 안 보인다.
지면은 서늘하지만, 콘크리트의 감촉이 아니다.
".........."
그럼, 여긴 어디일까.
순간 크롬에게 붙잡혔나 싶었지만, 아니다.
자신을 데려간 것은, 좀 더 정체모를 것이었다. 소환 문양에서 전해지는 저릿함이, 계속 정수리를 친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백마(白魔) 문양의 팔이었다.
그것은 대체 뭐였을까.
"일어났구나."
등 뒤에서 전해지는 목소리에, 무심코 닭살이 돋았다.
어깨너머로 돌아보니, 뭔가가 무릎을 감싼 자세로 앉아있다. 너무 어두워서 잘 안보인지만, 실루엣으로 보면 여자일까. 마른 몸이지만, 키는 커 보이는 여성이다.
"...누구, 세요?"
쭈뼛거리며 물어본다.
"...너, 시키가미 코즈미가 틀림없지?"
이름을 알고 있어?
점점 더 누군지 모르겠다.
적일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일단 수긍해둔다.
"...여긴 어딘가요?"
"그딴 거 내가 알고 싶을 정도라고."
여자의 목소리는 쉬어있었다.
목이 이상해진 걸까.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
"...저기, 저."
"왜."
"아뇨, 저,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싶어서..."
여자의 눈동자가, 요사하게 빛난 느낌이 들었다.
"...나도 잘 몰라. 와줬으면 하고 빌었더니 네가 와줬는걸."
"그, 그런가요..."
아무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문맥에서 볼 때, 이 사람이 여기까지 데리고 온 걸까.
"그럼, 당신이 저를 여기까지?"
"그래. 네가 붙잡히면 내가 곤란하니까."
"전이 같은 거라도 썼나요?"
"전이? 뭐야 그게. 어려운 말 쓰지 말아 줄래?"
"... 죄, 죄송해요."
얼굴은 잘 안 보이지만, 여자가 이쪽을 노려본 느낌이 들었다.
"저기."
"네?"
"너, 뭔가 먹을 거 없니?"
"먹을 것...?"
"그래. 나 배고파."
"...그, 그런가요...."
식사를 걸렀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자, 이 장소에 대한 불안감이 솟구쳤다. 다행히 식량이라기엔 모자라지만, 영양소 정도라면 제공할 수 있어 보인다.
코즈미는 일단 호주머니에서 검은 꾸러미를 꺼내서는 안에서 흰 구슬을 꺼냈다.
"포도당이라면 있는데요."
"포도...?"
"하나, 드셔 보세요."
여자는 건네받은 사탕을 흥미롭게 바라보더니, 입에 던져 넣었다.
"이상한 맛. 이거 정말로 포도야?"
"아뇨, 그거 포도당이에요."
"포도...당."
처음 듣는 단어에 고민하면서, 여자는 그대로 입을 닫았다. 슬슬 이쪽에서 질문할까 싶자, 아직 여자가 대화를 시작했다.
"고기는 없어?"
"아뇨, 그런 것은 좀."
"그래..."
여자는 왠지 재미없다는 듯 어깨를 늘어뜨리고는, 다시 무릎을 감싸며 침묵했다.
방금 전부터 이런 대화의 반복인 느낌이 든다.
이대로 오래 끌면 안 좋다.
"저기, 당신은 누구인가요?"
"나는 펜릴."
"펜릴? 오~ 별난 이름이네요..."
펜릴.
우연하게도 그 신의 늑대와 같은 이름이다.
하지만 실존하는 대악마가 유래라니, 여성의 이름으로선 너무 하다.
................
"...저기, 어떻게 제 이름을 알았나요?"
"...계약했을 때 알았어."
"...계약?"
"네 팔에 턱의 문장이 있지? 그거 내 거야."
확실히, 그렇게 생긴 문장은 있다.
그 3번째 소환 문장이다.
크롬한테서 도망치는데 도움은 되었지만, 동시에 까닭 없는 공포도 느끼고 말았다.
"...무슨, 뜻인가요."
"무슨이고 뭐고, 내가 네 소환마라는 뜻이야. 여기까지 말했는데도 아직 이해 못 했어?"
".........."
"신의 늑대 펜릴과 계약한 인간은 역사를 통틀어 몇 명에 불과해. 자랑스러워하라고."
머리가, 전개에 따라가지 못한다.
어떻게 된 일이지.
그녀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거, 거짓말..."
"거짓말이 아냐. 이렇게나 친절히 말해줬는데, 왜 바로 이해하지 못해?"
만일.
만일 그녀가 정말로 펜릴이라면.
그렇다면, 코즈미는 법을 어긴 것이 된다.
소환술을 배울 때, 귀에 딱지가 얹을 정도로 들은, 그 규칙.
인간과 신수가 나눈, 반쯤 절대적이라 할 수 있는 약속을.
"아아, 알겠다."
그것은 예전에 츠치무라 나에가 구사했던 암흑의 마술.
엄벌로는 끝나지 않을 정도의 업이 깊은 금기.
"너, 바보지?"
마수와의 계약.
협회에게 있어 악마술이란, 가공할만한 최대의 범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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