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98 그 날의 계속(2)2022년 08월 20일 15시 20분 39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원문 : https://estar.jp/novels/22241232/viewer?page=926
'ㅡㅡㅡ되겠어.'
쏟아내는 맹타를 종이 하나 차이로 피하면서, 나인은 그런 확신을 품었다.
소스케의 움직임은 확실히 빠르다.
그 6문 중에서도, 이 정도의 민첩성은 지닌 마술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움직임 자체는 너무 직선적이다.
보다 더 복잡하고 애매한 몸놀림을 가진 나인이 보기에, 못 잡을 상대가 아니다.
로긴스가 경계해서 그런지, 소스케가 가진 초강력한 공간간섭을 봉인했다는 사실도 나인한테는 더욱 좋은 상황이다.
"ㅡㅡㅡ느려!"
열풍처럼 마구 날뛰는 소스케를, 나인은 확실하게 능가하고 있다.
이제는 단순해진 주먹을 종이 하나차이로 피하고, 둔중한 궤도를 그리는 발차기를 쳐낸다.
그리고 다시 소스케의 팔이 흔들렸다.
나인은 냉정하게 간격을 재면서, 주먹에 손등을 맞댔다. 잘 보니 발디딤이 평소보다 크다. 이거라면 공격한 후에 발을 걸면 쓰러트릴 수 있다.
뜻을 굳히고, 한걸음 앞으로 내디딘다.
"ㅡㅡㅡ!"
몸을 뺀다.
발을 걸려는 그 순간, 나인의 본능이 경종을 울렸다. 완전히 간파했다고 생각했던 소스케의 주먹. 그것을 그대로 휘두른다면, 어떻게 될까.
그건 나인도 모른다.
모르지만, 어쨌든 몸의 위기를 느꼈다.
백스탭에 완급을 섞으면서 거리를 벌린다. 그러자 즉시 출현한 아지랑이 같은 잔상이, 나인이 나아가는 곳을 시각적으로 막는다.
그제서야 나인은, 이것이 악수라고 깨달았다.
불현듯, 소스케와 눈이 맞았다.
"ㅡㅡㅡ아.'
강인한 하반신이 바닥을 디디는 순간, 순식간에 거리가 0이 되었다.
그리고 섬광으로 변하는 소스케의 주먹.
공격을 확인하기도 전에 나인이 머리를 굽히자. 뒤늦게 뒷머리 몇 가닥이 날아가버렸다.
"ㅡㅡㅡ이런."
알고는 있었지만, 잔상에 의한 분신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마치 처음부터 진짜를 알고 있는 듯한. 아니면, 처음부터 잔상 따윈 보고 있지 않은 듯한.
일렁이는 분신에는 눈길도 안 주고, 단지 진짜 나인을 향해서만 목표를 정하고 있다.
이렇게 잔재주를 전부 간파한다면, 이쪽도 큰 재주로 상대할 수밖에 없다.
"Temporary, lives."
마언을 자아낸다.
다음 순간 소스케의 눈에 비친 것은, 무수히 늘어난 나인들의 돌진이었다.
고밀도로 모인 군중은 그야말로 인간의 벽.
단지 결점이라고 한다면, 그 강도 뿐이다.
펑.
지진을 발생시킬 듯한 기세로, 소스케는 단번에 지면을 차올랐다.
그대로 양팔로 안면을 지키면서, 나인의 무리 안으로 돌진한다.
단지 그것만으로 집단은 와해되었다.
소스케는 특수한 기술을 쓴 게 아니다.
그냥 몸통박치기를 썼을뿐.
반대로 말하자면, 이 연약한 오합지졸을 격파하려면 돌진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인도 예상한 바.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소스케는 나인이 일부러 마련한 분신 집단 안에서도 가장 밀도가 짙은 루트를 간파해 돌파했다.
"화마장."
몰아치는 열풍.
갑자기 나타난 불꽃의 폭풍이, 소스케를 감싸며 압축한다.
어떤 요마도 불타버릴 절기이기는 하지만, 소스케가 상대라면 움직임을 봉하는 정도의 효과만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
잠시라도 발을 묶으면, 그것만으로도 승기는 보인다.
이때다 싶어 온몸에 마력을 끌어올리며, 소스케를 향해 일직선으로 질주한다.
지금 상태로는 결계 탑에 몸이 안 보인다.
그러니 일단 균형을 무너뜨리나.
그걸 요격이라도 하는 듯 화염의 결계가 깨졌지만, 나인이 내민 구타의 속도는 소스케의 방어보다도 빨랐다.
"ㅡㅡㅡ윽."
클린 히트.
전투 시작 후에는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소스케였지만, 통각은 제대로 있는 모양이다.
명치의 충격에 의해 소스케가 지은 표정은, 언뜻 봐도 고통이라고 판별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이다ㅡㅡㅡ'
호기로 본 나인이 다시 거리를 좁혀서, 일부러 급소에 공격을 감행한다.
역시 위기감은 느꼈는지, 소스케는 크게 후퇴하였지만 다시 밸런스가 무너졌다.
거기에 추격타의 손날.
몸을 웅크려 가까스로 회피한 차에, 다리로 발차기를 때려 박는다.
그제야 겨우, 소스케는 작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나인이 감지한대로, 봉인의 핵은 옆구리 주변에 있다.
그곳에 말뚝을 꽂으면 끝난다.
승리는 눈앞.
그렇게 확신한 순간, 갑자기 소스케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예상 밖의 반격.
하지만 무리한 자세로 해서 그런지, 느리다.
명확한 고육지책의 일발.
냉정하게 한 팔로 받아내고서, 공수가 뒤바뀌는 순간에 끝자을ㅡㅡ
"ㅡㅡㅡ어?"
우지끈.
뭔가가 찌그러지는 듯한.
그런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렸다.
나인의 입에서, 단번에 핏물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몸의 내부가 갈가리 찢기는 듯한 격통.
그제야 처음으로, 내장이 파괴되었음을 깨달았다.
"ㅡㅡㅡㅡㅡ앗."
무너지려는 다리를 추슬러보기 위해 힘을 넣었지만, 직후에 관자놀이에 때려 박힌 발차기 때문에 중지되었다.
핏방울이 공중을 수놓는다.
단번에 휘청거리는 몸.
그리고 곧장, 파성추 같은 주먹이 복부를 찌른다.
그곳은 방금 파열된 내장이 있는 장소였다.
"ㅡㅡㅡ커, 어..."
올라온 피가, 토사물처럼 나인의 입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그제야 끝이라고 말하는 듯, 안면으로 주먹이 날아왔다.
나인은 나뭇잎처럼 날았고, 중력에 따라 낙하했다.
볼품없이 드러누운 나인은 손끝이 약간 떨리고는 있지만, 사실은 죽음에 이르렀다는 상태를 정말 간단히 보고 알 수 있다.
그런 나인을 무기질 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소스케는 어느 사이엔가 뺏어 든 마를 쫓는 말뚝을 오른손으로 쥐고는, 천천히 으스러뜨렸다.
◇
마주치는 검섬이 연주하는 소리는, 불규칙한 타악기와 비슷했다.
"왜 그래, 이 정도야?"
비비안의 야앵을 가볍게 흘려내면서, 시시도는 여유로운 미소로 놀렸다.
상황은 눈에 띄게 열세였다.
이미 시시도와 겨루기를 30합 정도일까. 현재, 비비안은 모든 면에서 지고 있다.
재킷에 새겨졌다고 말하는 약화의 저주. 이것이 본래 비비안이 실현할 퍼포먼스의 최대치를 대폭 내리고 있다. 더불어 탈착 불능이라는 기능도 있는지, 벗을래도 벗을 수가 없다.
이를 악물면서, 비비안은 작게 혀를 찼다ㅡㅡㅡ 이 옷만 없다면 제대로 겨뤄볼 것을.
하지만 그 계산은 맞는 걸까.
전력으로 그와 겨루면, 정말로 호각으로 싸울 수 있을까.
아니, 그건 어려울 것이다.
사정거리의 문제도 있지만, 순수하게 검술로 이길 수 없다. 역시 스승인 프레데리카 정도는 아니지만, 그는 검객으로서 높은 차원까지 도달하였다.
겨루는 도중에, 비비안은 은연중 깨달았다. 요 1개월 동안, 시시도 료우야는 계속 힘을 빼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것에 대해서는 이유를 모르겠고, 흥미도 없다. 다만 이대로는 이길 수 없다는 확신감이, 비비안의 초조함에 박차를 가했다.
◇
그리고 경악의 마음은, 이리자키도 마찬가지였다.
대치하는 자는 아나스타샤 게르첸.
이 여자 엄청나게 강하다.
격상인 미리온을 아즈마 쿄코한테 맡겼다는 사실이, 이리자키의 마음가짐을 아주 약간 둔하게 만들었다.
사실, 사태는 전혀 호전되지 않았는데도.
"끈질기군요."
아나스타샤는 작게 중얼거리고는, 아무 주저도 없이 라이플의 방아쇠를 당겼다. 강렬한 격발음보다도 먼저, AK47에서 나오는 7.62mm 탄두가 단번에 이리자키를 뒤쫓는다.
결과적으로 간발의 차이로 치명상은 면했지만, 그 대가로 오른쪽 어깨에 두 발의 총알이 명중했다.
"...젠장맞을!"
이리자키는 이를 갈면서, 쏜살보다 빠르게 다가오는 총알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회피했다.
피아의 차이는 20m 정도일까.
평소라면 한 달음에 달려갈 거리지만, 아나스타샤의 탁월한 사격술은 이리자키에게 추격의 틈을 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총기의 숙명인 탄창 교환이라는 타임 로스는 피할 수 없다. 이리자키의 예상으로는 탄창의 잔탄은 약 10발.
물러나기만 해서는 승산이 없다.
경화술식을 한계까지 해방하여, 맹렬하게 땅을 박찬다. 그에 겁먹지 않고 발포하는 아나스타샤.
다가오는 라이플의 연사.
방어를 위해 머리를 양팔로 감싼다.
연사가 팔에 박히지만, 이리자키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이리자키의 장기인 경화마술이 아나스타샤의 술식탄을 가까스로 막아내 준 덕분이다.
그리고 사라진 총기의 사거리.
아나스타샤가 품에서 베레타를 꺼내 들었다.
다시 내딛는 이리자키.
총구가 머리를 향한다.
동시에 가속한 오른쪽 다리가 기상천외한 궤도를 그린다.
구름으로 착각할만한 하얀 하늘에, 메마른 소리가 울렸다.
◇
평소보다, 일출이 빠른 겨울이었다.
"부탁?"
햇살이 잘 들어오는 주방.
테이블의 끄트머리를 만지작거리면서, 나인은 작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이 녀석이다."
의모인 메리가 내민 서류에는, 어떤 남성의 경력이 기재되어 있었다.
어디에서 입수했는지는 제쳐두고, 나인과는 면식이 없는 사람이다.
나이는 중학생 정도일까.
사나워 보이는 얼굴이다.
"...누군가요?"
"마술사다. 자료는 수년 전의 것이지만."
"마술사...?'
메리의 말을 되물으면서, 나인은 수중의 서류를 확인했다. 다시 봐도 역시 평범한 사람이고, 그렇다 할 기시감도 없다. 다시 말해, 이름난 마술사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 남자가 왜요?"
"곤란하게도, 그는 이 세계에 마술이 있다는 사실을 몰라."
그 한 마디에, 나인은 무심코 눈썹을 찌푸렸다.
"마술사 맞나요?"
"그래. 그는 누가 보아도 마술사다."
그럼 그에 상응하는 마술의 지식과 상식을 겸비했을 터. 마술의 수련은 협회의 허가가 ㅍㄹ수이며, 또한 협회의 조력 없이는 마술을 대성할 수 없다. 그런 여러 의문은 있었지만, 일단 나인은 물어보기로 했다.
"부탁이란 건 뭔데요?"
"간단해. 만일 이 녀석이 곤란해지면, 힘이 되어줘."
......그건 과연 간단한 일일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그렇다 해도 나인은 딱히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요."
"그래."
사토 소스케.
대성군이 그 남자를 노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그로부터 약 1년 후의 이야기였다.
"부탁한다, 나인."
◇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흙탕에 빠진 나인의 의식에, 가장 존경하고 가장 동경하던 여성의 목소리가.
차츰 각성한다.
잔존 마력은 거의 7할.
스태미너에는 여유가 있다.
이어서 부상의 확인.
모든 외상을 인식.
공간간섭.
전 환부를 병렬재생.
그렇게 했음에도, 일어설 때의 무릎은 작게 떨렸다.
시야도 초점이 안 맞는다.
뇌의 흔들림은 아직 멎지 않았다.
손끝의 떨림림은 그치지 않는다.
그런 만신창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로.
다만 한 곳.
머리만이, 맑았다.
그 모습을 과연 어떻게 보았던 걸까.
지금 그야말로 마지막 일격을 막이려던 소스케가, 갑자기 그 움직임을 정지시켰다.
양자의 사이는 대략 10걸음.
나인은 입에 고인 혈액을 뱉으면서, 입가를 엄지로 닦았다.
"...여전히, 넌 강하네."
자연스레 흘러나온 한 마디.
그다음 순간에 내지른 소스케의 주먹은, 오늘 중 가장 빠른 속도로 나인의 가슴에 작렬했다. 이제는 반사도 못할 정도로 피폐해졌는지, 나인은 방어의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다 죽은 몸.
그렇게 판단한 소스케가, 필요 이상으로 휘두른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오산은 하나.
나인이 가진 불사묘라는 이명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나인은 때때로 불사신으로 칭해지지만, 이것은 봉인이 풀릴 때까지의 8번의 완전재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짜는 그다음.
묘신으로서의 힘이 완전히 구현하여 공간복사에 의한 육체재생을 마음껏 쓸 수 있게 된 지금 상태야말로, 진정한 불사묘라 할 수 있다.
기습만 당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부상당한 순간에 맞춰 재생이 가능해지는ㅡㅡㅡ
시위를 당기는 소스케의 왼손에, 살짝 새하얀 손바닥이 달라붙는다. 뚝 멈추는 예비동작. 집적된 힘은 상쇄되어, 정말 간단히 사라졌다.
"핫ㅡㅡㅡ"
나인은 입가를 들면서, 동시에 확신했다.
소스케의 주먹은 이 정도가 아니다.
직접 받아봤기 때문에 안다.
확실히 위력만이라면 탁월하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지금 그의 주먹에는 마음이 없다.
적의 전의를 송두리째 앗아가는 듯한, 압도적인 절망감이 안 느껴진다.
마음을 꺾지 않는 공격은, 폭력보다도 못하다.
"아아ㅏㅏ아앗!!"
불가사의할 정도로 가속된 주먹이, 맹렬한 기세로 소스케의 복근을 찌른다.
관통하는 충격.
폭발하는 대기가 폭음을 울린다.
신역의 지면은 비명이라도 지르는 것처럼 균열을 일으켜서, 광범위에 걸쳐 두쪽으로 갈라졌다.
"ㅡㅡㅡ읏!"
엄청난 위력에 버틸 수 없었는지, 폐의 산소를 맹렬한 기세로 내뿜으면서 몸을 90도로 굽힌다.
즉시 분노로 얼굴을 물들인 소스케였지만, 반격에 나서기에는 나인이 너무나 빨랐다.
"공봉."
두 손톱으로 이루어지는 불가시의 참격이, 종횡무진으로 전개된다. 순간적으로 나오는 600에 달하는 마참은, 변칙적인 궤도를 그리면서 전부 소스케를 향했다.
팡, 하고 단번에 빛이 파열한다.
충격으로 튕겨나간 소스케는 당분간 공중을 날아간 뒤, 머리부터 수직으로 지면에 추락했다.
"...하아...하아."
숨을 고르며 앞을 바라본다.
일어서는 그는, 타박상은 있어도 출혈은 없다. 아마 대부분 손으로 떨어트린 모양이다. 역시 쉽게 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대응하다니, 슬슬 인간에서 벗어난 수준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나인이 상대해야만 하는 상대다. 은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한번 그를 맡았던 몸으로써, 나인은 지금 여기서 그를 구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일어나라구. 아직 싸울 수 있잖아?"
천천히.
재촉할 것도 없다는 듯, 소스케는 고개를 드는 뱀처럼 일어섰다.
언뜻 불안정해 보이지만, 그 두 다리는 지면에 고정이라도 된 듯 안정되어 있다.
"후우..."
거머쥔 두 주먹에 용기를 불어넣고, 강하게 한걸음을 내디뎠다. 소스케 또한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천천히 거리를 좁혔다.
마를 쫓는 말뚝은 이미 파괴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회심의 수를 직접 때려 박는 수밖에 구원의 수단이 없다.
노리는 것은 필살.
일격으로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
결전이 다가온다.
◇
그때, 갑자기 몰아친 마력의 격류는 그 자리의 누구도 예기치 못했다.
소리가 멎는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전투를 중단했다.
정숙이 찾아온 시간은 5초 남짓.
반사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속도로 일어난 감정은, 순수한 공포였다.
[...............]
사람들은, 빨려 들 것처럼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자의식을 빼앗긴 미리온과 소스케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관이다.
목조로 만들어진 그것은, 빛을 빨아들일 정도로 검은 색상이며, 역십자가의 의장으로 장식되어있다.
광택은 없고, 윤기도 없다.
마치 빛이 닿지 않는 공허.
나락을 구현한 듯한 그것은, 끝없는 칠흑을 두르고 있다.
"아무래도, 끝난 모양이군요."
바로 눈치챈 자는 아나스타샤였다. 이 1개월 동안 신역의 무녀가 하고 있던 의문의 의식ㅡㅡㅡ코린 왈 세계를 구할 인류의 비원이라고 표현된 그것이, 드디어 끝을 맞이한 것이다.
더 화려한 뭔가를 예상한 자는 결코 적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나타난 것은 단순한 관. 신을 모독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나무상자다.
"ㅡㅡㅡ"
조용함 속에서 가장 먼저 움직인 자는 소스케였다. 반응한 나인이 이어서 한걸음 내딛는다. 저 기분 나쁜 무언가가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스케의 눈동자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좋으니 빨리 다음을 시작하자고.
그런 식으로 재촉당하자 쓸데없는 일은 이제 상관없게 되어서, 재빨리 다음 전투를 시작하기로 했다.
관짝이 나타난 지 몇 초가 지나자, 땅울림이 들렸다.
나인과 소스케의 전투가 재개된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들도 마찬가지로 해야 할 일을 해야만 할 것이다.
시작은 아나스타샤가.
이어서 아즈마 쿄코가.
동결에서 풀려난 것처럼, 제각기 전의를 불태운다.
모두가 동요를 감추지 못하는 와중.
로긴스 메이브리드만이, 입가를 들어 올리며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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