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진군2022년 05월 28일 13시 47분 15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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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왕의 알현실이라고 불리는 방에는 옥좌가 있다.
하지만 정통한 왕이 없는 아렌하이트에는 그 자리에 앉는 자가 없어서, 예하라고 불리는 엘레나라 해도 모인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서 있을 뿐이다.
엘레나의 앞으로 나아간 오반과 자일은, 형식에 따른 인사만을 끝내고 대화를 재촉하는 듯 직립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에, 황토색 사제복과 흰 갑옷의 소년이 불만스러운 듯 얼굴을 찌푸렸다.
"늦어버린 일에 사과라던가 안 해?"
다크브라운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할 대사는 아닌 기분이 들지만, 오반은 그걸 따질 생각은 없었다.
"시간대로 왔습니다."
"중요한 이야기니까 빨리 서둘러야지. 이렇게 모이기를 기다리게 한 것도 사실이니까."
"노도 경, 이 대화가 전부 시간낭비입니다만. 그건 끝내고 나서 해주실 수 없습니까?"올바른 말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납득이 안 가는 '노도' 라드클리프 베르나트는 볼을 부풀리며 비난을 이어나갔다.
약관 13세부터 단장으로 발탁된 특출난 재능의 소유주지만, 아직 관록이 붙지 않아서 미숙함이 돋보인다.
사이즈가 안 맞는 커다란 사제복의 옷자락을 돌리며 다시금 불만을 강조하지만, 옆에 서 있던 마른 몸의 노인이 조금 앞으로 나서는 것을 보고 곧장 움직임을 멈췄다.
"라드."
"알고 있......습니다."
주름 투성이인 피부가 뼈에 달라붙은 듯한, 지금이라도 쓰러져서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듯한.
하지만 날카롭고 붉은 쌍안에는 생기가 반짝였으며, 선임 기사이면서도 '참렬'의 용자인 아르간 바이스는 엘레나한테 깊게 고개를 조아리며 옆의 라드클리프도 부추기는 듯 등을 떠밀었다.
"......죄송했습니다."
"어머나 상관없었는데. 하지만 잘 말해줬어 라드. 네 성장이 느껴져서 기뻐."엘레나는 미소를 그치지 않으며, 어머니가 없는 라드클리프의 마음을 상냥함으로 풀어냈다.
"자~ 회의를 시작하죠."
일렬로 늘어선 사람들에게, 엘레나는 처음으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걸었다.
"현재 마왕군은 로이스 해안에 거점을 두고 이 아렌하이트와 알타유 협곡 양쪽으로 진군하고 있습니다. 아무 일 없이 나아간다면 20일도 안 되어 엣차까지 오고 말겠죠."
"파쇄 경의 연락은 있었습니까?"오반의 물음에, 엘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마 아이네스도 적의 움직임은 알아챘을 테니 마술의 탐지를 피하고 있지 않을까?"
"전이문을 써서 돌아오면 되는데."
"알타유 협곡에서 제일 가까운 곳도 3일은 걸린다. 아직 도착하지 못했겠지."아르간의 말이 맞다면, 로이스 해안에서 침공하는 마왕군과 만날 가능성이 있는 거리다.
아무렇게나 행동한다면 발견되겠지만, 아이네스가 있다면 신중하게 루트를 정해서 귀국할 거라 오반은 믿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있는 전군으로 맞서야 합니까? 아직 결계는 1장만 깨졌고, 알스타 구릉지대라면 지형의 이점도 있습니다만."
"그렇습니까? 저는 레느 평원이 어떨까 생각하는데요."
"난 예하께 찬성일세. 마물을 상대로는 지형의 이점을 생각하지 않는 게 좋아."
"아르간 할배요. 그 구릉이라면 여러 가지를 갖고 가서 응전할 수 있다고. 일부러 평원에서 맞부딪힐 필요는 없잖아."
"자일, 네놈은..... 아니, 네놈들은 마물을 몰라. 녀석들은 우리 인간의 척도로 생각하면 안 되는 게다. 땅속을 진군하는 일 정도는 태연히 하는 녀석들이다."그것이 옛 전쟁에서 인류가 대패를 맛본 원인이라고 아르간은 말했다.
:"뭘 하려고 해도 탐색이 중요하다. 연습 삼아 도전하는 건 너무 짧은 생각이지."
"하지만 모처럼 샀는데 안 쓰는 것도 문제라고. 그렇게 쉽사리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걸 노리게 된다면.....""그럼 양쪽 모두에 진을 치도록 하죠. 적 주력이 똑바로 에차를 향하고 있는 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해. 각 방면에도 병사와 장치를 보내서 별동대한테 경계시키며, 여러분들은 적 주력과 전투에 임하는 게 좋아 보입니다."
엘레나의 제안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없었다.
"여러분, 그걸로 괜찮지요?"
다시 물어보자, 사람들은 자세를 바로하여 엘레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가득한 미소에, 그들은 입을 한데 모아 다짐을 내뱉었다.
"우리의 성녀의 뜻대로."
이것은 성녀 엘레나 루시오네를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성녀가 예하라고 불리기에 어울리는 존재라고 확인하기 위한 의식에 불과하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자일만이 마음속에서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럼 이 작전의 지휘는...... 아르간한테 부탁해볼까. 자일과 라드는 그를 도와줄래?"
"대임을 맡겨주시다니, 감격이옵니다. 부디 저희들에게 맡겨주시길."
"그래. 고마워."
"예하, 저와 성은 경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오반은 아이네스를 맞이하러 가줬으면 해. 독립되어버리면 그녀가 불쌍하고, 역시 모두와 힘을 합해야만 하니까. 그로키시니아는 에차 주변의 전이문을 점검한 뒤에 합류할 예정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
"알겠습니다."따로 질문이 없음을 확인하고, 엘레나는 귀엽게 헛기침을 한 다음 양손을 하늘로 뻗었다.
"위대하신 남신께선 항상 인간의 생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도전하는 강자한테는 축복을 주고, 고민하는 약자한테는 구제를 주십니다. 모든 것은 이 지상을 다시금 신이 머무는 땅으로 만들기 위해.'
그것은 아르마 성교의 경전에 적힌, 인간의 의미.
"자하나 님께서는 고하셨습니다. [거대한 사악은 이 땅에서 사그라든다. 신의 은총은 땅에 넘치고, 가증스러운 괴물은 인간의 앞에서 죽음을 맞이하리] 라고."
성녀만이 들을 수 있다는 신의 말에 감탄의 목소리가 일어났다.
"사악을 멸하고 낙원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 인간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하나 님께서 강림하시어 영혼을 구제해주실 그날까지."
그리고는 조용한 기도로 이어진다.
먼 곳에서 들리는 종소리와 새어드는 햇빛에 휩싸인 그림 같은 풍경에, 오반은 심취하고 있었다.
신의 사랑을 받는 성녀의 그 청아함은, 어린 시절에 동경했던 은의 성녀의 동화 그 자체였다.
"자, 가세요. 나의 귀여운 용사들."
오반은 누구보다도 빠르게 충성심을 드러내려는 듯 경례 후 발을 뒤돌려서 자신의 기사단으로 향하려 했다.
"오반, 잠시 남아주실래요?"
하지만 그걸 제지한 엘레나였다.
자일은 딱하다는 듯, 아르간과 라드클리프는 질투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며 퇴실하였고, 조용해진 방 안에는 엘레나의 신발 소리만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성유물의 일이에요."
생각도 못한 이름에, 그 철면피도 약간 흐트러졌다.
"이번 싸움은 정말 격렬해지겠죠. 만의 하나 당신들이 지거나 한다면, 성왕국은 금세 자하나 님의 가호를 잃게 된답니다. 그것만은 결코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물론 모두 알고 있습니다. 마물의 침공을 결코 허락해서는 아니 된다는."
"그러니 그 만의 하나를 대비해서, 당신한테는 '절화의 성검'의 사용허가를 내리겠어요."시작의 성녀가 남신에게 하사 받았다는 비옥 중 하나를 사용해도 좋다고 들었음에도, 오반으로서는 확 와닿지 않았다.
"그......정말 있습니까?"
"네. 역대 성녀가 은닉해왔으니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만, 확실히 존재하고 있답니다. 자세한 일은 아직 말할 수 없고 장소도 가르쳐 줄 수는 없지만, 먼저 이것만은 전해두려고 생각해서요."
"예......""[등화의 성배]는 제가, [배화의 성궤]는 그로키시니아가 여차할 때 쓰려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그...... 싫으신지요?"
점점 미간의 주름을 짓는 것을 본 엘레나의 불아한 목소리에 제정신을 되찾은 오반은, 서둘러 무릎을 꿇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나 분에 넘치는 영광이라서 놀랐을 뿐입니다."
"그럼 다행이네요."매우 기쁜 듯 미소 짓는 엘레나가 몸을 흔들자, 흰 드레스의 스커트가 푸른 머리카락을 간지럽힌다.
"이것은 시련입니다. 시대는 새로운 영웅이 태어나기를 원하고 있겠죠. 그 한 사람으로, 부디 이름을 내걸어 주세요."
엘레나가 조용히 무릎을 꿇더니, 오반의 손을 흰 손가락으로 살포시 뒤덮는다.
"부디."
거듭 부탁하는 연약한 목소리에, 오반은 단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가 용자가 되고 기사가 되어 단장의 자리에 앉아도 퇴색되지 않은 생각이, 성녀의 공허한 미소를 진짜라고 믿게 하였다.
오반한테는 그걸로 충분했다.
바깥으로 나가니, 이미 연락을 받았는지 기사들이 대열 없이 성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푸른 옷에 흰 갑옷과, 금색 옷에 흰 갑옷.
먼 곳에서 말에 탄 자일이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오반이 모는 말도 부관이 준비해놓아서, 즉시 움직일 수 있도록 해놓았다.
"수고했다."
"이미 다른 기사단들은 모든 준비를 끝내고 떠났습니다."
"그런가. 전이문은?"
"시동이 끝났다고 하니, 언제든 쓸 수 있습니다."
"알겠다. 전이하자마자 전투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명심하겠습니다."우수한 그에게, 오반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고삐를 받아 들고 갑옷을 두른 백마에 가벼운 동작으로 올라탔다.
"이것을."
내민 검을 받아 들어 허리에 찬다.
"가자."
말머리를 돌려 문 바깥으로 향하니, 기사단은 곧장 방향을 틀어서 오반의 뒤를 따랐다.
그 모습을 자일의 부하들이 따랐고, 오반의 옆으로 자일이 다가갔다.
"성녀님과의 밀회는 즐거웠나?"
"......그렇군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넘어가다니, 나한테도 말할 수 없는 비밀 이야기인가."옛 스승이었기 때문에, 거짓말을 간단히 간파하는 자일한테 냉랭한 눈을 향한다.
"라드가 노려봤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냐."이런 때에도 농담을 그만두지 않는 자일을 눈으로 제지하면서, 오반 일행은 성벽 바깥으로 나갔다.
그렇게 길을 나아가는 청람기사단과 금혼기사단.
청과 금이 겨울의 싸늘한 공기에 흰 숨결을 내뱉으며 행군하는 모습을 보아도, 마을 주민들은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모습으로 곧장 시선을 뗀다.
있다고 해도 오반을 보며 새된 목소리를 내는 어린 여자들 정도일까.
"이런 모습을 보면, 문 바깥은 비참하겠구만."
자일이, 주민들의 느긋한 모습에 악담을 늘어놓았다.
"그렇네요."
"......너의 진지하고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비뚤어진 면, 싫지는 않지만 가끔은 열 받는다고."그런 일은 없다, 고 오반은 생각했다.
"지금 실례되는 생각 했지?"
"아뇨, 그렇지는."
"거짓말. 얼굴에 다 쓰여있다고."
"기분 탓이 아닙니까? 그보다 참렬 경과 노도 경은 이미 전이했습니까?""그 할아버지는 정말 힘이 넘쳤으니까. 뭐 함께 행동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습니까. 출정 전에 인사라도 해둘까 생각했습니다만."
"할배랑 꼬맹이한테 그럴 필요 있을까."
"필요하죠. 언제 죽을지도 모르니까요."농담을 말하려던 자일이었지만, 오반의 눈을 보고 곧장 참았다.
"아직 적의 전모도 모릅니다. 만의 하나의 일이 없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악을 멸하지 않는다면, 성왕국은 끝장입니다."
"말이 통하는 상대라면 살아남을 길도 있지."
"없습니다, 금혼 경. 그런 길을 선택해버리면 아제라이 교와 다름없지 않습니까."
오반한테는 상식이지만, 자일한테는 침투되지 않은 사고방식이다.
아렌하이트에서 태어났다고 누구나 경건한 신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주위에 맞춰서 기도만 하는 자도 적지는 않다.
"뭐, 평민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요."
"드디어 말했구만 이 자식."
"인간이 침공했다면 그런 길도 있겠지만, 마물만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명심하십시오."
"......딱히 그런 이유 아니어도 할 일은 해."
"그 말을 듣고 안심했습니다."미세하게 입가를 들어 올릴 뿐인 미소를 지으며, 오반은 앞을 돌아보았다.
성문의 저편에는 평원이 펼쳐진 한가로운 경치와, 성벽을 따라 세워진 간소한 난민캠프에 몰려든 무수한 백성.
각지에서 도망쳐와서는, 필사적으로 비바람을 피하면서 배급되는 식량으로 끼니를 이어나간다.
그런 상태가 두꺼운 성벽 안까지 전해지지 않는 것은 딱한 일이다.
기사단을 보는 눈이, 누구나 비통한 색을 띠고 있다.
"미안하다."
난민들한테 뻗어줄 손은, 현재의 기사들한테는 없다.
노파의 목소리, 우는 아이의 목소리, 외치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단지 작게 고개를 끄덕인 오반은 말을 나아가게 했다.
전쟁의 종결만이 그들을 구할 거라고 되새기면서.
"수고들 한다."
난민촌을 빠져나가자 먼저 대기하고 있던 마술사 부대가 기사단을 보고 즉시 마술을 일으키며 경례했다.
"그럼, 무운을."
"너희들도."눈앞에 펼쳐진 청과 흑의 마력이 휘몰아치더니 커다란 전이문 앞에서 한번 멈췄고, 멀어져 가는 자일의 군과 자신이 거느린 병사들을 보면서 오반이 강하게 소리쳤다.
"우리의 목적은 파쇄 경과의 합류다. 실수 없이 이행한다. 청람기사단이여, 우리의 신을 믿고 기도하고 싸우자."
걸걸하고 굵직한 목소리들이 호응한다.
오반은 고삐를 흔들어서 단숨에 전이문을 지나갔다.
◆
여덟 다리의 도마뱀의 등에 탄 슈젠은, 쑥쑥 나아가는 에레미야와 필미리아를 쫓아가고 있다.
거대한 마수들이 길을 열어 나무도 풀도 평평해진 곳을 고양이 수인과 음마의 병대가 군기를 휘날리며 행군하는 대열의 선두.
그냥 뒤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좋았을 것을, 열심히 돌진하는 두 사람을 혼성군이 쫓아가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후방은 후방대로 땅이 뒤흔들고 숲을 쓰러트리며 에차로 직선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정말 마물다운 행군이기는 하지만, 앞과 마찬가지로 시끄럽다.
그렇다면 그냥 쓸데없는 이야기를 듣는 편이 낫다는 기분도 들었다.
이것도 저것도, 부순 결계를 넘어설 즈음부터 일어난 이상한 현상이 원인이었다.
"저기~ 이거 제대로 나아가는 거 맞아~?"
"아무리 개귀여운걸인 저라 해도 멀미할 거 같은데요!""가만히 걷기나 해. 배경은 다르지만 방향은 틀림없으니까."
주위에는 시든 활엽수의 숲이지만, 먼 곳에는 언덕이 보인다.
카론의 맵 기능으로 수도 방향은 판명 지었기 때문에 틀릴 걱정은 없는 것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하지만 개귀찮네요! 눈이 피곤해서 견딜 수가 없잖아요!"
즐거워하는 모습이지만, 말에는 가시가 돋쳐있다.
"대체 뭔가요 이거~! 마물이 힘은 아니겠죠!?"
"글쎄. 그런 장치라도 있는 게 아닐까?""마물의 색적 범위 바깥이라서? 이만큼이나 걸었지만 그보다도 멀어서? 마력 반응도 없고!"
"난 몰라."
그런 병기의 존재는 이전 세계에서도 본 적이 없다.
만일 있다고 해도 마력을 쓰지 않고 작동시킬 수 있을까.
이 세계 특유의 기술이라고 한다면 부정할 수 없겠지만, 리페리스나 사르탄을 보면 전의 세계를 뛰어넘는 기술이 있다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었다.
"이야~ 자기들 앞마당이 제멋대로 유린당하는데도, 성왕국이라는 녀석들은 정말 느긋하네요~ 경치를 일그러뜨릴 뿐이고 인사 한 마디도 해오지 않다니!"
"맞아~ 우리들이라면 재빨리 내쫓았을 텐데~"
"분명히 선전포고를 했었는데도 해안선은 별 것 없었고요. 얕보는 건지, 바보인 건지."
소년의 모습을 맹렬하게 일그러뜨리며 혀를 차는 모습을 보며, 에레미야는 깔깔 웃어넘겼다.
"이거, 먼저 누군가가 간다면 뒷사람한테도 제대로 딘 경치가 보이지 않을까?"
"그럴 거예요!""그럼 나만 먼저 가볼게. 그러는 편이 편하잖아?"
"너무 앞서 가지 마."
"네~"에레미야는 빵모자를 뒤집어쓰고 자세를 낮춘 다음, 스킬을 발동하며 뛰어갈 자세를 취했다.
몸속을 내달리는 힘을 이미지하고서, 그걸 온몸에 순환시키며 단번에 갈려간다.
퉁, 하고 강하게 지면을 내디딘 에레미야는, 바람처럼 재빨리 달려갔지만 그대로 속도를 줄이고서 우뚝 서고 말았다.
"어라~?"
다시 한번 같은 과정으로 달려가다가, 기세를 죽이며 다시 멈춰 선다.
"뭔가..... 에레미야 치고는 느리지 않아요?"
그대로 달려가면 될 것을 왜 저러냐고 생각하던 슈젠이었지만, 필미리아의 말을 듣고 눈을 부릅뜨며 도마뱀에서 내려와 힘을 쓰려고 의식을 집중했다.
평소였다면 그 힘을 뜻하는 말이 그려져서 원하는 대로 자신을 강화시키겠지만, 그것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필미리아, 매료의 스킬을 써 줄래? 마술이 아니라."
"어~? 써버려도 괜찮나요~? 모두 헤롱헤롱해지면 저의 하렘이 되어버릴 텐데요~? 난 정말 죄 많은 여자!""빨리."
"네네. 알겠습니다요......음......어라? 으으음?"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말한 대로 스킬을 쓰려던 필미리아였지만, 스킬의 효과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슈젠한테 통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전혀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저기~! 스킬을 쓸 수 없는데~!?"
"큰일 났네요! 어쩔래요!? 돌아갈래요!? 이불에 파고들어서 두근두근 첫 정사라도 해버릴래요!?"
"카론 님께 보고. 먼저 상황만 전해. 자세히 조사하고서 다시 연락하자."
"이건 그거죠!? 오랜만이니까 잊어버렸지만, 마물의 능력을 제한하는 쪽의 그거죠!?"
"제한이 아니라 쓸 수 없는데요~!?""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하다니...... 마술에 의한 것이 아냐. 아마 마력을 동력으로 하는 병기다. 그것도 투사형. 아마 어딘가에 설치되어 있을 터...... 에레미야, 부대를 이끌고 먼저ㅡㅡ"
스킬을 못 쓰는 것은 치명적이다.
시야의 불안정함도 그렇고, 이 이상의 진군은 잠시 멈추고서 소수를 보내어 정찰하도록 부탁하려던 차에, 필미리아의 부하가 외쳤다.
"마력 반응 확인! 남서쪽입니다!"
고개를 돌렸지만, 숲이 있을 뿐이고 아무것도 안 보인다.
"둘의 부대를 지켜!"
즉시 내민 슈젠의 말에, 마수들은 땅울림을 내면서 에레미야와 필미리아의 부대를 감싸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러자 거대한 즉석의 벽이 생겨나서, 왜곡된 시야에서 날아올 적의 공격을 대비해 모두가 몸을 낮췄다.
마술은, 얕은 각도로 하늘에서 떨어졌다.
희게 빛나는 신성마술은 코끼리와 거북, 사슴과 늑대의 목에 꽂혀들자 폭발하여 빛의 파편을 흩뿌렸다.
잠시 마수들의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지만, 마수들의 몸은 피부를 깊게 찢고 태우는 수준에서 끝났고 수인과 음마의 피해는 없었다.
"저쪽은 보이는 모양이군. 조준이 정확하다."
"여러분! 방향은 알았나요!?""응전하기에는 아직 적의 거리를 모릅니다!"
"제2파, 북동쪽에서 옵니다!"
다시 한번, 이번에는 급경사의 다른 방향에서 같은 마술이 쏟아졌다.
결과는 완전히 같아서, 피해는 미미했지만 적의 난감한 작전에 슈젠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게 할 셈인가."
"갑자기 마술이 보이다니 꽤 자극적이네요!"새된 목소리로 외치는 필미리아의 목소리는 어트랙션을 즐기는 어린이처럼 들떠 있었고,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 피어올라 있었다.
"어쩌죠!? 어떻게 할까요! 결국드디어이제야와버렸다고요!"
"그러니까 시끄럽다고."
필미리아의 웃음소리는 그치지 않는다.왠지, 다친 마수들도 웃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어느새, 슈젠의 얼굴도 웃고 있다.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왕의 호령은, 정면으로 유린하라는 뜻이 아니었구나 하고 몸과 마음에 스며들었다.
"가자!"
에레미야가 외쳤다.
"우리가 먼저 길을 뚫을게요! 미리아쨩이 원호! 슈젠이 날뛰고!"
"그런 똑 부러진 명령은 오지 않았는데."
"그러니까. 우리는 그냥 달릴 거야!"에레미야가 일어서는 것에 맞춰서, 그녀가 데리고 온 50명의 수인이 자연스레 모여들었다.
가볍게 뛰거나 몸을 풀면서, 무엇을 하려는지 일목요연한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내 앞에 길은 없다! 내가 바로 길이니라!"
"......그 말 맞아?"
"그런 법이야."
에레미야는 심술궂게 웃고서 호쾌하게 달려 나갔다.
그렇게 에레미야와 그녀의 부하들은 스킬이 없어도 말보다 빠르게 숲 속을 돌진했다.
부대를 여럿으로 나누어 숲속을 달리는 수인들.
이렇게 되었으니 조용히 있을 필요도 없었다.
이렇게 되었으니 누구도 따라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자 가라~! 우햐~!"
즐겁게 외치는 에레미야는, 누구와도 무리 짓지 않고 혼자서 숲 속을 내달렸다.
적은 에레미야를 노렸지만, 그 금색의 바람을 포착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부하들조차 따라잡지 못할 속도를 포착할 리가 없었다.
에레미야가 목표로 한 곳은 처음으로 공격이 날아온 방향이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즐겁게 달려간 에레미야는, 눈앞에 강이 보여도 상관하지 않고 돌진했다.
몸이 가라앉는 것보다 빠르게 다리를 움직여서, 물이 액체로서의 경도를 올리는 힘으로 강하게 내딛는다.
방해물이 없는 물 위를 달려간 에레미야는, 환영의 시야에서 갑자기 나타난 마술을 발견하고서 피부가 스칠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필미리아의 원호가 없었다면 그녀가 마술을 감지하기가 어려워서, 때때로 마술에 직격 해버릴 것 같아 모골이 송연했음에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오야야?"
강을 모두 건너자, 갑자기 에레미야의 스킬이 발동되었다.
범위 바깥까지 온 걸까. 몇 번이나 쓰려고 자신에게 명했던 힘이 솟아나자, 그녀의 미소가 싶어 진다.
"와아~! 돌겨억~!!"
그곳부터, 단 한 명의 돌격에 기세가 붙었다.
쑥쑥 가속하면서 메마른 흙먼지를 일으키며 질풍노도의 기세로 달린다.
갑자기 눈앞에 절벽이 나타났어도, 에레미야는 속도를 떨어트리지 않고 바위를 디디면서 절벽 위로 계속 달려갔다.
바람소리에 섞여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빨리 해!"
"괜찮으니까, 그대로 닫아!""빨리빨리빨리!"
뭔가 서두르는 소리 같다.
그렇다면 목적지라는 말이다.
에레미야는 몸의 벨트에서 나이프를 뽑아 들고서, 절벽 끝을 뛰어오름과 동시에 보이기 시작한 적을 향해서 재빨리 투척했다.
황토색 옷에 흰 갑옷을 입은 기사들은 검을 들었지만, 완전히 들었을 때는 나이프가 갑옷을 개의치 않고 심장을 꿰뚫었고, 네 명은 그대로 쓰러져서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젠장! 빨리 가!"
아직 공중에 있는 에레미야는, 기사들이 지키려고 하는 전이의 게이트를 보았다.
남은 기사들을 떠나보내고 닫히는 저편에서, 거대한 기계와 소년을 보았다.
아직 닿는다.
다시 나이프를 뽑아 남은 네 명을 처리하고서, 착지와 동시에 에레미야는 문으로 뛰어들기 위해 지면을 함몰시켰다.
하지만,
"삼켜라, 흙이여."
에레미야가 한걸음 내디딘 순간, 눈앞에 거대한 벽이 나타났다.
주저하지 않고 뛰어들 셈이었던 에레미야는 멈출 수가 없어서, 세워지는 벽에 있는 힘껏 충돌했다.
"푸웁!"
벽에 달라붙어 납작해진 에레미야는, 벽과 함께 점점 위로 올라갔다.
그것은 벽이 아닌, 흙의 해일이었다.
거칠게 들어 올려지는 파도는, 에레미야를 휘감은 채로 절벽을 넘어간 뒤에 격한 소리와 함께 허물어졌다.
"냐아ㅡㅡㅡ!"
발이 닿는다면 가장 빠른 종족인 [훅스캇체]지만, 하늘 위에서는 그 발도 도움이 안 된다.
에레미야는 그대로 내려온 흙에 삼켜져서 절벽 밑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흙에 파묻힌 에레미야가 구출된 것은 그로부터 1시간 정도 뒤였다.
"퉷! 퉷!"
입에 들어간 모래를 내뱉는 에레미야한테 다친 곳은 없다.
대량의 흙에 파묻히는 것 정도로 다칠 약한 몸은 아니지만, 그 흙을 뚫고 나올 정도로 강인하지는 않다.
멧돼지가 냄새를 맡고 송곳니로 파내어 슈젠이 탄 도마뱀이 입에 물고 끌어냈을 때는 펑펑 울고 있었지만, 지금은 놓친 것에 대한 분노에 휩싸여있다.
"더 빨리 오지 그랬어!"
무모한 이야기다.
에레미야가 달린 거리를 둔중한 마수가 따라잡기는 가혹했으니까.
"와준 만큼 고맙게 생각하라고."
"으윽~! 분해~! 닿을 수 있었는데~!"
좀 전부터 되풀이하는 단어를 무시하고서, 슈젠은 절벽 위로 올라갔다.
그곳에 있던 것은, 에레미야가 죽인 시체와 거대한 차륜의 흔적. 그리고 마법진의 흔적.
슈젠이라 해도, 그 술식이 전이용의 것이라고 알아볼 수 있었다.
"과연. 느긋하게 있을 만도 했군."
마술이 있는 세계에서의 상식은, 전이문에 의한 장거리 이동의 단축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신경 쓰이는 것은 차륜의 흔적이었다.
"확증은 아니지만, 아마 그 흔적이 스킬을 못 쓰게 한 기계라고 생각해~ 이상한 모양을 소중한 것처럼 지키고 있었으니까."
뒤를 쫓아온 에레미야의 말에, 슈젠은 "그렇겠지." 라며 수긍했다.
"그 기계가 스킬 봉인을 부여했다는 거겠지. 에레미야의 이야기를 들어본 느낌이면, 내리쬐는 것일지도."
"다른 모두는 어땠는데~"
"모두 부상은 그냥저냥. 저쪽도 놓쳤다. 아마 같은 상황이지 않았을까."
"크으으으으."속도에 자부심이 있는 만큼, 놓친다는 것은 에레미야에게 있어 상당한 굴욕이다.
스킬이 봉인당하고 적이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그래도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카론 님께 보고하자. 그 판단을 듣고서 움직일까."
이건 꽤나 어려울 것 같다면서, 슈젠은 왼손으로 머리를 비비면서 진지한 눈으로 적의 거성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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