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6장 성국과 수인국> 1 막이 오른다
    2022년 01월 08일 12시 26분 42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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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7769bh/86/

     

     

     카란드라.

     마술의 대국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 협곡의 나라.

     나라로서의 발전은 너무나 뒤처져 있어서 현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낡은 구조였지만, 그걸 보충하는 마술은 다방면으로 발전하여 어린아이라 해도 마술을 다루는 게 당연할 정도로 연구가 잘 되어있다.

     생활의 사소한 일에서 대량학살의 수단까지, 마술이 있으면 어떤 미래도 만들어낼 수 있다. 대륙의 패권을 일거에 거머쥘 수 있다.

     그렇게 생각되고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의 냉랭함은 겨울의 도래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남쪽의 루사리아 대륙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알타유 계곡에는 항상 계절의 바람이 불고 있어서, 방문한 자들에게 사계절을 느끼게 하고 있다.

     좌우로 크게 나뉜 단장의 계곡의 벽면에는 동굴이 마치 벌집처럼 규칙적으로 파여 있는데, 그 안에는 몇몇 주거지가 존재한다.

     밤이 되면 불빛이 계곡 전체를 아름답게 비추어서, 방문한 자라면 누구든 감탄의 목소리를 내게 하는 광경이 된다.

     그렇게 카란드라가 자랑하는 수도가 알타유인데, 지금은 사람의 기척이 없다.

     바람을 막고 있던 장벽을 잃어서, 여러 가지 물건이 나뒹굴고 있다. 그걸 막는 사람도 없다.

     휘우웅 하고 울리는 바람소리가 메아리치는 계곡 속에서, 바닥을 흐르는 강의 근처에서 바람과는 다른 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온다.

     그것은 사람의 발소리와 기어 다니는 이형의 소리였다.

     

     "자자,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달리지 못할까!"

     

    그렇게 외친 것은, 너구리 수인이다.

    늑대와도 비슷하게 가느다란 얼굴상에다, 통나무 같은 사지와 뚱뚱한 체구.

     검정과 갈색의 짧은 체모를 휘날리면서 질주하는 그의 앞에서, 지금이라도 산소결핍을 일으킬 것 같은 표정을 한 긴 머리의 사자인이 발버둥 치는 것처럼 고개를 달려 올라가고 있다.

     

     "구, 구해줘도 되잖아! 너라면 할 수 있지!?"

     "으하하하! 넌 나의 고용주 아닌가! 조금은 하는 모습을 보여주게나!"

     "헉, 헉, 헉, 젠장!"

     "말할 기운이 있는 걸 보니, 아직 더 할 수 있겠구만!"

     

     물어오는 맞바람에 저항하면서, 두 사람이 달린다.

     그들의 등 뒤에서는 마치 만두 같은 흰 피부를 한 이형의 괴물 몇 마리가 쫓아오고 있다.

     형태는 전부 제각각인데, 눈알이 튀어나온 타원형의 머리만큼은 공통적이다.

     손인지 발인지 모르는 것을 움직이면서 쫓아오는 광경은, 설령 악몽이라고 해도 너무나 무섭다.

     그걸 흘끗 돌아본 사자인, 그란그라드=지르카는, 떨리는 비명을 지르며 속도를 높였다.

     

     "사자라! 좀 쓰러트려봐!"

     "싫은데? 공짜일은 안 한다고. 하지만ㅡㅡ"

     

     옆의 통로에서 튀어나온 하얀 괴물이, 사자인을 덮친다.

     관절이 없는 부분인데도 소리를 내며 굽히더니, 뛰고 있는 다리를 멈춰세우려고 하지만

     

     "가라! 지르카!"

     

     팡! 하고 너구리 신수인 산잔사자라가 손을 마주치자, 반투명한 붉은 말뚝이 마법진에서 뻗어 나와 괴물을 돌벽에 박아버렸다.

     

     "목숨만은 구해주겠네."

     "기쁘지만, 더 편한 방식이 좋아!!"

     

     절실한 지르카의 외침을, 사자라는 웃으면서 흘려보낸다.

     

     "내 짐이 없다면 생각해줄 수도 있다만?"

     "거짓말이지! 진짜 거짓말이지!?"

     "하하! 시끄럽기는."

     

     다시 옆의 구멍에서 뛰쳐나온 3마리의 괴물을 보고, 사자라가 지르카의 앞으로 달려 나온다.

     어깨에 짊어진 것을 내려서 팔로 품은 채, 공중을 가르는 듯 휘돌아차기를 하여 3마리를 한꺼번에 절벽으로 패대기쳤다.

     착지한 참에 한 마리 더.

     한손으로 소환한 황금색 곤봉을 투척하여 꼬챙이로 만들고는, 손가락을 튕겨 세로로 회전시켜서 양단하였다.

     

     "헥, 헥, 헥."

     "......"

     

     다리를 멈추고 있던 사자라의 옆을 지르카가 지나친다.

     사자라의 시선은, 확실하게 죽였을 괴물이 경련을 하며 원래 형태로 돌아가려고 꿈틀거리는 광경에 꽂혀있었다.

     

     "뭘 하면 이렇게 되는 건지 원. 표본은 얻었으니, 뒤는 맡길 수밖에 없나."

     

     해발 1200미터나 되는 단장의 길을 지르카가 올라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은 사자라는, 의욕만은 좋게 평가한 뒤 금색의 갈기를 붙잡았다.

     

     "으악!"

     "빚이다. 출세하면 지불하게 할 거니까."

     "쿨럭, 쿨럭! 운동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해줄 테니, 빨리 도망치게 해 줘......! 그리고."

     

     지르카는 사자라의 어깨에 있는 것을 보고 굳은 표정을 지었다.

     

     "묻고 싶은 일이 있잖아? 그 생존자한테."

     

     그것은, 몸을 축 늘어뜨린 두 인간이었다.

     먼지 냄새가 풀풀 나는 로브를 두른 그와 그녀는, 눈을 뜨고는 있지만 초점이 고정되어 있지 않아서 마치 살아있는 채 죽은 느낌이다.

     

     "말을 알아들을지가 문제지만. 일단 빨리 물러나서 보고해야겠어. 아버지 공의 귀에는 가장 먼저 들어가게 해주고 싶거든."

     

     네 자루의 '사성육도혼파곤'으로 주위를 지키면서 전이의 마술을 발동시키는 사자라.

     

     "녀석들, 상상 이상으로 외도라서 말이야."

     

     전이 직후에 남긴 말은, 사람이 사라지고 괴물이 만연하는 마경이 되어버린 계곡의 바람에 묻혀 사라졌다.

     

     

     루사리아 대륙의 서쪽에 위치한 우르가 대삼림에, 수인연합 바밀리아의 수장국 카드나가 있다

     푸르게 우거진 자연의 요새에 둘러싸인 사자인의 나라는 다양하게 존재하는 수인국을 총괄하는 황금의 도시이며, 나무와 돌로 지어진 가옥이 늘어선 광경은 고대 이집트 문명 같기도 하고 어딘가 에스텔드 바로니아와도 닮은 모습이다.

     국민의 7할이 사자인인 카드나지만, 마을의 큰길을 걷는 지르카의 갈기는 누구보다도 아름다워서 그가 이 나라에서 특별한 존재라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나치는 사람들이 무심코 돌아볼 정도의 미남인 지르카였지만, 오늘에 한해서는 그 시선에 놀라움이 담겨있다.

     

     "죽을 거라 생각했어......"

     

     어깨를 푹 숙이고 다리를 질질 끄는 것처럼 걷는 모습에서는, 평소의 고고함이 티끌만큼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 원인이야 물론, 지르카가 새로이 고용한 수인 때문이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끝나면 다행 아니겠나. 네가 원했던 자유 아닌가?"

     "죽을 수 있는 장소에 가게 되는 건 자유라고 말할 수 없다고 사자라. 애초에 네 제안이었으면서....."

     "나는 놔두고 와도 좋았다만?"

     "저쪽이 더 죽을 것 같아. 네 덕분에 나의 주목도는 올라가기만 할 뿐이라고."

     "네 아버지도 참 별나구만. 측근을 죽인 것을 눈치챘는데도 날 영입하려 하다니."

     

     아버지의 화제로 넘어가자, 지르카는 다기 진저리를 치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런 사람이야. 부하, 친구, 가족들조차 이용가치로만 판단해. 그래서, 이제 볼일은 끝났어?"

     

     사자라의 어깨에, 카란드라에서 찾은 인간은 이제 없다.

     

     "그래. 이제는 알버트나 류미엘이 알아서 조사하겠지."

     "흐음? 하지만, 그건 대체 뭐였던 거야. 카란드라가 아렌하이트에 패했다고 들은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망명자는 커녕 사람도 아예 없고, 남은 거라고는 그 괴물 뿐. 그게 카란드라를 멸망시킨 거야? 마물 근절을 주장하던 아렌하이트가 정말 그런 수단을 쓸까."

     

     지르카가 바밀리아에 귀환하고 나서 바로 들은 것은, 카란드라의 멸망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누구한테 물어보아도 아렌하이트가 움직이는 징후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실제로 멸망한 이상 믿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카란드라도 그걸 느끼지 못한 채 멸망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수단으로 일국을, 마술의 극을 달리던 나라를 들키지 않고 멸망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너는 어떻게 생각해?"

     "상상은 가지만......오."

     

     눈앞에서 교차하며 막아선 창 때문에, 사자라가 걸음을 멈췄다.

     왕궁의 문을 지키는 짙은 갈색의 갈기를 가진 사자인 병사가, 두 사람에게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오고 있다.

     자신이 사는 성인데도 환영받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것은 거절보다도, 우려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지르카 님......"

     

     주변에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춘 병사가 고했다.

     

     "가르바 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그 이름을 듣고, 어깨를 늘어뜨렸던 지르카의 눈에 적의가 샘솟았다.

     

     "소문의 그 형님이냐. 그거 기대되는군."

     "사자라 공, 그렇게 말씀하시면......"

     "이미 다 알려졌는데 뭘? 그리고 난 고용된 몸이다. 담대한 녀석이 있는 편이 안심되지 않겠나."

     

     무에 통달한 형한테 겁먹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강력한 공범자의 말은, 굳었던 지르카의 얼굴에 미소를 되찾아주었다.

     

     "확실히, 네가 있다면 나도 조금은 당당하게 있을 수 있어."

     "꽤나 짖을 줄 알게 되었구만. 앙?"

     

     하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스며든 공포가 몸을 지배한다.

     당당하고 위엄 있는 차기 수왕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듣고, 지르카와 병사들은 등줄기가 얼어붙었다.

     

     "카란드라에 갔던 모양이던데, 너 따위가 잘도 살아서 돌아왔겠다?"

     

     문에서 떨어진 성의 입구에서 거는 목소리는, 부지 안에 잘 울린다.

     사자의 힘을 농축시킨 듯한 근육질 육체에, 잘 짜인 황금의 갈기.

     상처투성이인 얼굴에는 황금왕과 비슷한 오만한 미소가 드러나 있다.

     똑바로 걸어온 갑옷 차림의 그 남자, 그란그라드=가르바는, 병사를 밀쳐내고는 사자라의 앞에 서서 도발하는 것처럼 코끝을 가까이했다.

     

     "소문의 너구리한테 다 떠넘긴 거냐? 아바마마께서 귀여워하시는 신수 [은신형부]와 겨루게 하고 싶구만."

     

     지르카의 모습에서, 평소에 카르바가 어떻게 행동해왔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렇게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산잔사자라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다.

     

     "그거 잘됐군. 황금왕의 자식의 목은 꽤 값이 나간다고 하던데? 팔면 평생 놀고먹을 수 있다지."

     "......호오? 그럼 이 녀석의 목은 어때? 쉽게 가져갈 수 있다고?"

     "삼류의 목은 헐값도 안 쳐줘. 노린다면 비싼 걸로 갖고 도망치는 편이 훨씬 낫지 않겠나."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맹렬한 살의를 일으키며, 사자라는 당당하게 우뚝 서서 조소한다.

     어느 목이든, 베어내는 수고는 동일하다고 과시하는 것처럼.

     카르바는 분노의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너털웃음을 지었다.

     

     "크하하하하하! 과연! 아바마마꼐서 원하는 이유도 잘 알겠다! 히히히히! 담력도 피비린내도 장난 아냐!"

     

     카르바는 그대로 사자라한테 팔을 두르더니 어깨는 팡팡 쳤다.

     그 위력에도 미동도 하지 않는 사자라를 보고 다시 크게 웃고는, 다시 표정을 바꿔서 코끝을 뾰족한 귀에 가까이했다.

     

     "어때, 이몸한테 붙는 건? 원하는 거라면 뭐든 줄 수 있다고? 돈, 여자, 힘. 뭐든지."

     

     싱긋 웃는 카르바에게, 사자라는 입이 귀밑까지 찢어지는 듯한 위협적인 미소로 확실하게 대답했다.

     

     "그거에 응할 정도였다면, 한참 예전에 니 애비한테 붙었을 거다. 미안하지만 잡졸 상대로는 의욕이 느껴지지 말아서 말이야. 조금은 상대할 맛이 나야 재미있지 않겠나?"

     

     에스텔드 바로니아에게, 카론에게 유익하지 않다면 어떤 권유든 벌레소리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다.

     

     "날 죽이겠다는 뜻?"

     "딱히 죽일 이유는 없지. 그렇다 해도 죽이지 않을 이유도 없고. 부디 내 눈치를 보며 걷게나. 이 녀석처럼 말야."

     

     사자라의 커다란 손이, 지르카의 머리를 뒤덮는 것처럼 거머쥔다.

     인정사정없는 힘에 지르카가 신음소리를 냈지만, 서로 노려보는 양자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재밌어. 재밌는데 사자라아. 진짜 갖고 싶어졌다고. 이몸한테 그 정도까지 말하는 배짱도, 그게 가능한 실력이 있는 녀석도 본 적이 없어. 크하하하하!"

     

     뭐가 그리 즐거운지 몰라서, 등을 팡팡 치는 카르바를 귀찮게 생각하는 사자라.

     기분 나쁘니 빨리 사라지라고 생각하던 사자라였지만, 카르바가 다시 귀에 코끝을 가까이하자 불쾌한 기분에 이를 드러냈다.

     

     "원래는 이놈을 때려서 분풀이를 하려고 생각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그렇게 말하고, 카르바는 다시 사자라의 귀에 입을 가까이했다.

     들으나마나 대단한 이야기도 아닐 거라며 하찮게 생각하던 사자라였지만,

     

     "아바마마께서 , 아렌하이트를 공격할 거라고 결정하셨다."

     

     그 말에, 오늘 가장 큰 살기를 내보일 정도의 충격에 휩싸였다.

     이제야 때가 왔다.

     입가를 찢을 듯한 미소에는 투지와 위협이 강하게 깃들어 있다.

     카르바가 나타났을 때 이상으로, 신수한테서 방출되는 살기에 압도된 병사들이 주춤거리며 거리를 벌린다.

     

     "그거 좋은 소식일세."

     "좋아.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걸 품고 있구만. 히히히......빚 하나 졌다고? 아직 군에 전달하기 전의 이야기니까. 그때가 오면 어떻게 할지 기대하면서 기다리겠다! 카하하하하하하!!"

     

     마지막으로 어깨를 팍 치고는 묘지 쪽으로 떠나는 가르바였다.

     폭력의 화신이 사라지자 몸에 힘이 빠진 지르카가, 초조해져서는 사자라의 팔을 붙잡는다.

     

     "어, 어이! 어떻게 할 거야!?"

     "뭐? 어떻게 할 게 따로 있겠어. 난 내 일을 할 뿐이다. 자, 가자. 너는 아직 일해줘야만 하니까."

     "뭐어!? 거짓말이지!? 이 이상 뭘 더 시킬 거냐고! 그보다 애초에 난 네 고용주잖아! 그런데도 네 도움만 해주다니 왜 그래야 되냐고!?"

     "시끄럽기는. 고용당해줬을 뿐 아닌가. 그렇게나 싫다면 인력을 늘리시게나."

     "내, 내 입장이......아니, 지금 와서 리코트 일행을 잃은 슬픔이......"

     "빨리 와 바보 같은 놈."

     

     머리에 꿀밤을 맞아서 주저앉은 지르카를 놔두고, 사자라는 왕궁에 등을 돌리고는 마을 바깥으로 걸어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화려한 전쟁이다.

     기다리라고 하여 군침이 흐르는 걸 멈출 수 없었던 참이다.

     자연스레 사람이 하여 생긴 길을 성큼성큼 걸어간 사자라가 입을 손으로 가렸지만, 그 환희를 억누를 수가 없다.

     그것은, 모국의 모두가 같은 생각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더욱 불타올랐다.

     

     "좋아! 연락할까."

     

     

     

     

     중앙대륙이라 불리는 레스티아 대륙에도, 겨울의 시기가 도래하였다.

     왁자지껄했던 초목의 울음소리가 진정되자, 빨강이나 노랑으로 물든 콜드론 산맥이 마지막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다.

     에스텔드 바로니아에도 따스함을 찾아서 난로에 불을 지피거나, 견딜 수 없다며 화산으로 이주하거나, 반대로 제철을 맞이했다며 지하에서 나오는 등, 종족마다 제각각의 움직임을 보이며 겨울의 도래를 대비하고 있다.

     나라의 중앙에 솟아있는 성에도 마찬가지의 움직임은 보이지만, 왕성만은 쾌적한 온도를 항상 유지하도록 발열 기관을 갖춘 마도구 등으로 세심히 조절되고 있다.

     메이드와 집사들이 성안을 돌아다니면서 온도계를 확인하여 난방기 같은 마도구의 온도를 조절해나간다.

     경비인 [리저드 베르세르크]가 그들과 인사룰 나누고는, 이제 곧 겨울이냐면서 창밖의 구름 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이것은 에스텔드 바로니아가 매년 계속해오던 생활의 리듬이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처음 겨울을 맞이하는 인간한테는, 어느 것이나 신기한 것이었다.

     

     "오, 그렇게 쓰는 건가."

     

     집무실의 벽가에서 웅크린 카론이, 들떠하며 작업하는 루슈카를 바라보고 있다.

     커다란 난로에는 낙엽에 쌓여있고, 굴뚝의 뚜껑을 벗기면서 루슈카가 행복하다는 듯 말한다.

     

     "저희들한테는 마술이 있으니, 난잡하게 낙엽을 쌓아도 불이 나기 쉬우니까요. 만일 카론님께서 스스로 하실 때에는, 그렇네요.....이렇게 쌓아 올려서, 발화제를 이 부근에 넣고.....되도록 저나 메이드가 꺼지지 않도록 관리하지만, 만일 방의 불이 꺼져버렸을 경우에는 저희들한테 말씀을 해주시던가 이렇게 불을 붙여주세요."

     

     자랑스럽게 말하는 루슈카였지만, 사실 방에 딸린 난로를 사용하는 건 첫경험이다.

     덧붙이자면, 왕성에서 인간이 지내기 쉬운 온기를 유지하는 것도 처음이다.

     왜냐면, 카론이 플레이어였던 시절에는 추위를 호소하던 일이 없었기 때문에, 사용할 기회가 찾아올 리도 없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식사를 하던 도중 "추워졌는데." 라고 중얼거린 것을 듣고, 제16단은 매우 시급히 난방설비를 준비한 것이었다.

     왜 여태까지 백 년 이상이나 추위를 느끼지 않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없다.

     단지, 카론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기쁨만이 병사와 루슈카에게 드러나 있다.

     

     "그럼, 붙일게요."

     

     그렇게 말한 루슈카는 탄피를 꺼내서 분해하고는, 화약을 낙엽 밑에 뿌렸다.

     그리고 아공간에서 부싯돌식 총을 꺼내서는, 공이치기를 들어서 화약 옆에 놓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공이치기 부분에서 나온 불꽃이 화약에 불을 일으키자, 잠시 강한 빛을 내면서 낙엽을 불태운다.

     뿌듯한 표정을 짓는 루슈카에게, '마술 어쩌고 한 의미가 있나?'라고 말하고 싶었던 카론이었지만, 여기선 한 나라의 왕답게 의젓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신경쓰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 오고 나서 벌써 반년이 가까운가."

     "그렇게 되네요......"

     

     난로의 불을 바라보면서, 카론과 루슈카는 여태까지의 궤적을 떠올린다.

     

     "신도 공략, 공국과의 전쟁, 마왕군의 정벌, 성왕군의 공작......파란만장했네요."

     "맞아."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아무런 힘도 없는 인간인데 마물의 나라를 통치하는 이상한 사태에 혼란을 일으켰던 것도 그리운 일이다.

     지금은 그럭저럭 왕답게 행동하게 되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리고......"

     

     루슈카는 미소를 지우더니 예리한 하늘색 안광을 카론에게 향했다.

     

     "아렌하이트에 대한 선전포고에서, 3개월이 지났지요."

     

     마물들은 이제나저제나 하며 카론의 지휘를 기다리고 있다.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에스텔드 바로니아가 주도하여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이 세계에 와서 처음이 된다.

     완전하고 완벽하게,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는 질풍노도의 기세가 되어, 왕의 의사에 따라 모든 것을 때려눕힌다.

     하지만 그런 지고의 전쟁이 계속 유예될수록, 병사들은 불만은 쌓여가고 만다.

     물론 그것은 카론도 콘솔 윈도우로 인식하고 있다.

     

     "진행시키고는 있다..... 하지만 역시 너무 소극적인가."

     "물론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3개월 동안 각지의 주민의 생활이 안정되었고, 품종개량과 마술의 활용으로 식량사정도 개선되었고요. 이 세계에 오고 난 뒤 품고 있던 많은 문제에 이제야 종지부가 찍힐 정도로요."

     "그래. 솔직하게 말하자면, 성왕국과의 전쟁은 조금 더 나중에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네. 어리석은 자들이 오지 않았다면 바빠질 일도 없었으니까요. 상대가 소극적인 덕분에 시간을 유용히 쓴 것은 불행 중 다행이겠죠."

     

     투쟁을 원하는 마물은 많지만, 멀리하고 싶다고 바라는 마물도 적지 않다.

     군을 전쟁에 할애하면 다른 일이 뒤로 미뤄지는 것은 필연이지만, 그만큼이나 화려하게 시비를 걸어놓은 아렌하이트의 행동이 늦어진 덕택에, 온건파의 지원을 충분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요행이었다.

     그것도, 카론은 콘솔로 확인해놓았다.

     

     "그래."

     

     간소한 대답에, 루슈카는 눈을 부릅떴다.

     

     "정말 잘 알고 있습니다! 카론 님꼐서 절호의 무대를 갖추기 위해 일부러 성왕국한테 시간을 주고 있다는 점도, 선제공격한 것이 성왕국이라는 것을 거듭 주지시키기 위해 다시 한번 기습이나 공격을 유도하고 있다는 생각도!"

     ".......?"

     

     그랬나? 하며 고개를 갸웃하였지만, 루슈카의 눈에는 카론이라는 존재만 비치는 모양이었다.

     반짝거리며 빛나는 하늘색 눈동자는, 왠지 오랜만에 보는 폭주할 때의 눈이다.

     

     "그리고 카론 님의 위엄을 떨치기 위한 준비에, 이 시간은 정말 유용했습니다! 알버트와 쿠치나시히메, 그리고 다른 모두의 의견을 참고하여 완성했습니다!"

     ".......뭐를?"

     "에스텔드 바로니아 국왕폐하의 전투복이옵니다!!"

     

     주먹을 꾹 쥐는 루슈카.

     그런 짓을 하는지 몰랐었던 카론은, 눈을 부릅뜨며 놀라고 있었다.

     

     "아......니, 뭐라고?"

     "그러니까, 전투복이요."

     "...... 필요 없지 않을까? 내가 전장에 서는 것이 아니니까."

     "아니요. 자리에 어울리는 복장은 왕의 위엄을 세우는데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전에 왕궁을 방문할 때도, 그런 용도로 맞추시지 않으셨습니까."

     "스콜라가 불어넣은 지식이지?"

     

     루슈카의 어깨가 움찔거린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어떻게 회피해야 할지 궁리했지만, 루슈카의 기색을 보아하니 그냥 입는 편이 사기가 올라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저 기대에 찬 눈이 슬픔에 물드는 것을 보는 건 가슴 아픈 일이다.

     머리의 아픔인가 가슴의 아픔인가. 도출되는 대답에 따라 결과가 변한다고 한다면, 이렇게나 보잘것없는 고민도 없을 것이다.

     낙엽에서 탁탁 튀는 소리가 들리는 와중, 대답하기 곤란해진 카론의 콘솔에 메시지 수신의 팝업이 나타났다.

     타이밍만이라면 살았다고도 할 수 있다.

     사라자가 보낸 그 내용은, 카론이 원하던 알림이었다.

     

     "협공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 뭐, 그 부근은 사자라가 재주껏 해주겠지만."

     "카론 님."

     "군단장들을 소집해. 제국과 마왕령에 대한 경계 랭크를 올리고, 전군을 남쪽 전선거점으로 이동개시. 다음에 명령을 내리면 루사리아 대륙으로 진군한다."

     

     일어선 카론은, 선반에 있던 낙엽을 손으로 쥐더니 아무렇게나 불속으로 던져 넣었다.

     

     "우리들이 지핀 불씨다. 충분히 불태우자고."

     "원하시는 대로."

     

     두 사람이 방을 나서자, 남아있던 것은 타오르는 불에 먹혀들어가는 낙엽의 탁탁 튀는 소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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