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2 상륙
    2022년 01월 09일 04시 02분 36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728x90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7769bh/87/

     

     

     알현실에서,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자랑스러운 전투부대의 단장들이 모여 나란히 무릎 꿇고 있다.

     그라도라, 에레미야, 슈젠, 알버트, 고로 효우에, 필미리아, 그리고 카론을 수호하는 할드로기아와 카론을 보좌하는 루슈카.

     평소대로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오늘에 한해서는 평소의 그것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모두가 기대의 눈초리를 카론에게 보내고 있으며, 진정되지 않는 모습으로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

     하얀 공간에 오도카니 놓인 흑요석의 옥좌에 자리 잡은 카론은, 작게 헛기침을 하고는 모두를 둘러보았다.

     

     "먼저 오늘까지 계속 참아준 점에 감사한다. 군대로서는 불만이었겠지만, 그런 제군들의 힘 덕분에 에스텔드 바로니아는 안정된 국가에 크게 가까워졌다. 아직 자재와 식량이 남아도는 건 아니지만, 이대로만 가면 차츰 개선될 것은 틀림없다. 이제, 우리들은 후환의 우려 없이 성왕국과의 전쟁에 임할 수 있다."

     

     그 말에, 모두가 안도에 가까운 기쁨을 느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평소와 다름없는 일을 해왔을 뿐이라서, 전쟁을 시작할 분위기가 나지 않음을 내심 불안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행동에는 의미가 있었으며 요 3개월 동안 결실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리고 카론이 소극적이지 않았음을 알고 무의식적으로 어깨의 힘을 뺐다.

     

     "사자라가, 바밀리아가 성왕국으로 침공한다는 보고를 해줬다. 모처럼의 축제인데 우리가 늦는 것도 실례 아닌가. 그러니 먼저 정보의 공유부터 시작하고 싶다. 모두가 모이는 때는 아마 지금 밖에 없겠지. 그러니 지금 알려두고 싶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임을 확인하고서, 카론은 루슈카에게 눈짓을 했다.

     

     "그럼 이제부터, 성왕국의 정보를 전달한다. 발언은 자유롭게 해도 상관없다고 카론님께서 허가를 내리셨다. 신경 쓰이는 점이 있다면 바로 말하도록."

     "네~!"

     

     기다렸다는 듯이 기운차게 소리 내는 에레미야에게, 모두가 못마땅한 시선을 보낸다.

     

     "......어라?"

     

     생각 외로 분위기가 변하지 않았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에레미야를 보고, 카론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린다.

     

     "그런 상태로도 상관없어. 평소대로 가자."

     

     카론도 힘을 뺀 것을 보고, 그라도라는 한숨을 깊게 쉬면서 갈기를 쓸었다.

     다른 자들도 제각기 긴장을 풀고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럼 루슈카, 빨랑 물어보라고. 뭐 거의 알고는 있지만."

     "어이 개새끼, 너......그 거의를 머릿속에 넣지 못한 바보가 몇 명이나 있는지 알고는 있는 거냐?"

     "뭐~?"

     "왠지 지금, 러블리츄츄한 내가 불명예스런 대접을 받은 느낌이 드는데요!"

     "츄츄라니 정말 웃기는구려. 역시 파밀리아는 머리가 빈 것이 분명하오."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고로베도 그 안에 들어있는걸?"

     "그런, 설마ㅡ"

     "오, 모르십니까? 달걀 껍질 쪽이 그나마 낫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만?"

     "속담인가 생각 했더니, 그거 코로베를 말하는 거였네. 마을에서 자주 들었어~"

     "거짓말이라고 누가 말해주지 않겠소......당신들 너무 하구려!"

     "좋아, 진행시켜."

     "엥? 여기선 딴지를 걸어야 하거늘......?"

     

     말이 시작되자 분위기는 자연스레 평소의 것으로 변해간다.

     작전 전에는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은 여유롭게 알아야 할 일을 알아가는 시간이니까.

     그리고 그것은 카론에게도 해당된다.

     

     '잊은 일이 없는지 확인해야겠어. 응.'

     

     그를 위한 루슈카였다.

     

     "먼저, 천공연환에서 해준 이야기부터 말하자. 마술적인 기억의 암호화가 걸린 모양이었지만, 어떤 통에 담그고 만지작거려서 암호를 풀은 덕분에 나름 얻어낸 모양이다."

     "이미 정보는 충분히 얻었는데 또 나왔어? 조금 영문을 모르겠는데."

     "그곳은 우리들 기준으로도 진짜 미친 곳이라고."

     "뭐, 카론 님의 도움은 되니까. 그래서, 그 기억에 의하면 적 병력은 대략 20만. 용자는 7명이 있다고 한다."

     "상당한 수가 있군요. 정말 싸워볼만해 보입니다."

     "수는 아무래도 좋아. 문제는 용자다. 정보를 모으지 못한 자가 1명 있다고 한다."

     

     지금 어느 정도의 이름과 얼굴이 판명된 자는 6명.

     딱 한 사람, 누구의 뇌를 뒤져보아도 얼굴과 이름과 능력을 알 수 없다고 한다.

     

     "[금혼]자일, [참렬]아르간, [노도]리드그리프, [성은]그로키시니아, [파괘]아이네스, [청람]오반. 이것이 현재 판명된 용자다."

     "어라?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나요? 머리도 꽃밭이었던......"

     

     파밀리아가 모두의 의문을 대변하자, 루슈카는 오늘 가장 냉혹한 표정으로 비웃었다.

     

     "귀국하자마자 처리당했다. 덕분에 큰 정보는 얻지 못했지."

     

     어울리는 결말이었다. 그럴만한 여자였다. 그런 점에서는, 성왕국 녀석과 같은 의견인 루슈카였다.

     '화관' 루슈카 세레스타의 일부 상황은 몇 겹으로 은닉된 감시마술을 써서 루슈카의 눈과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직접 보고 있었던 자는 루슈카 뿐이었다.

     

     "실화냐."

     "정말 유쾌했다고? 다른 데도 안 들르고 성으로 향하길래 성녀를 만나려나 생각했더니, 약을 마시고 눈을 뜨자 수조 속이었다. 우리들이 보아도 무능의 극치였으니, 웃음이 멈추지 않더라."

     "루슈카, 기분 좋아 보이네~"

     "주인의 거성을 어지럽혔던 게 정말 화가 났겠지."

     "성을 고친 건 루슈카가 아니라 부하였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우리가 설치했던 감시의 눈은 무능을 처리한다는 바보 같은 이유로 어영부영하게 끝나버렸다. 하지만, 마지막에 기묘한 것을 보여주었다."

     

     루슈카가 아공간에서 자신만만히 꺼내 든 것은, 어린애가 낙서한 듯한 그림이었다.

     커다란 타원 안에 유체생물 같은 선의 궤적이 있고, 화살표를 긋더니 물음표를 써놓았다.

     잘 알 수 없는 선의 위에는 졸라맨을 몇 개나 그려놓았는데, 표현하고 싶은 게 뭔지 제대로 알 수 없다.

     하지만, 루슈카는 자신만만해하고 있다.

     

     "이거다."

     "......뭐? 뭐야 이 그림은."

     "뭐야 그라도라, 너 예술도 모르는 거냐?"

     "예......술......?"

     

     카론조차도 의문으로 생각하고 있다. 알버트까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개성적이군요."

     

     알버트가 필사적으로 쥐어짜내어 맞장구를 쳐주었을 뿐, 모두는 그 이상 뭐라 하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그래서, 그게 뭔지 가르쳐주지 않으면 대화가 진행되지 않겠는데."

     "음. 이 안에 들어있는 물체 말인데...... 잘 알 수 없었다."

     "무, 무시하도록 하죠! 슬슬 저의 러블리한 뇌가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어버리니까요!"

     "그런 생각도 했지만, 아무래도 신경 쓰여. 저건 언뜻 보면 마물을 배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 눈으로는 마물이라고 판별할 수 없었던 거다."

     

     안타까워하는 루슈카를 보고, 알버트는 의도를 짐작하였다.

     

     "우리들은 서로가 인간인지 마물인지 간단히 구별할 수 있습니다만......루슈카 양이 그런 애매한 대답을 하였다니, 정말 기묘한 일이군요. 설령 우리들이 모르는 마물이라고 쳐도, 인간지상주의의 아렌하이트가 그런 짓을 하다니 정말 도리를 모르는 녀석들인가 봅니다."

     "다시 말해, 일단 가서 생각한다는 말이지? 항상 하던 짓이잖아. 공격하고 나서 차근차근 조사하면 돼."

     "맞아~ 결계를 부수면 정보야 더 모일 테니~"

     ".......음. 아니, 그래도 명심해두길 바란다."

     

     낙관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에스텔드 바로니아는 계속 그래 왔다.

     원래가 게임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렇게 할 뿐이다.

     

     "저의 보고는 이상입니다. 카론 님."

     "그래. 상대는 면밀하게 국토 전체를 마술방벽으로 둘러놓았다. 우리들이 관측할 수 없는 이상, 모두의 눈을 믿을 수밖에 없다."

     

     카론이 일어서자, 분위기가 팽팽해졌다.

     

     "우리들의 싸움이다. 최선을 다하는 분투를 기대하마. 지금 이 시간부터, 모든 공격부대는 아렌하이트 침공을 시작하라!"

     

     명랑한 선언에, 단장들은 짧지만 강하게 대답했다.

     주먹을 마주치거나 옷깃을 바로 하는 등, 제각각 기합과 각오를 다지면서 알현실을 빠져나갔다.

     남겨진 카론과 루슈카, 할드로기아가 집무실로 돌아가려고 하자, 대문 앞에서 멈춰 선 에레미야가 카론을 돌아보았다.

     

     "왕님!"

     

     왠지 연약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카론이 멈춰 선다.

     에레미야는 카론의 앞까지 달려와서는, 부끄러우면서도 불안하게 손을 내밀었다.

     카론은 잘 모르겠다는 채 그녀의 손을 잡았다.

     평소의 활약과는 걸맞지 않을 정도로 가느다란 여자의 손이었다.

     

     "왜 그래?"

     ".......잘 모르겠지만, 걱정돼."

     "흠. 확실히 이번에는 사전조사가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결계를 넘어서면 조금씩이지만 최적의ㅡㅡ"

     "아니, 달라."

     

     그녀의 손가락에 가벼운 힘이 담긴다.

     

     "왕님이 걱정돼."

     "내가? 전선에 나설 일도 없는데?"

     "응.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위험하니, 그건 안심이지만......왠지, 왕님한테 정말 괴로운 일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감이니까, 뭐냐고 물어도 제대로 대답할 수 없지만......"

     

     이런 애매하고 불명확한 이야기를 카론에게 전해야 할지 고민했던 에레미야였지만, 정말 말해야만 할 듯한 기분이 들었다.

     카론은 가만히 고개를 숙일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으로도 에레미야는 충분했던 모양인지 평소의 밝은 미소를 지으며 "갔다 올게요!"라며 기운차게 달려 나갔다.

     

     "......걱정, 인가."

     

     안전한 곳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남자를 걱정하다니, 에레미야도 이상한 말을 한다.

     뭐든지 평소대로의 일이 아닌가.

     '적을 죽이는데 걱정을 할 리가 없다.'

     없는 것이다.

     

     

     

     

     루사리아 대륙의 동쪽에 위치한 아렌하이트 성왕국은, 레스티아 대륙에서 찾아온다는 '마왕의 군세'를 대비하기 위해 북쪽 로이스 해안선에 대규모 바리케이트를 구축해놓았다.

     흙담에 마술 강화를 부여한 벽은, 수십 킬로미터의 거리에 걸쳐 바다와 육지를 분단하고 있다.

     3개월의 기간 동안 만든 것치고는 조잡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언제 어디에서 상륙할지 모르는 적을 대비하면서 구축한 것이라서 이게 한계다.

     그럼에도 요소요소마다 간이적인 성채를 구축해놓고, 거기서 머무는 병사들이 주야로 바다 저편을 교대로 감시하고 있다.

     

     "그보다, 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만......"

     

     요새 위에서 밤의 어둠을 바라보고 있던 은색 갑옷의 병사가, 마찬가지로 바다를 바라보던 상관에게 가볍게 물어보았다.

     

     "지금, 저희들은 어떤 상태입니까?"

     "마왕이 북쪽에서 쳐들어올 테니,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수비하는 거라고."

     "그렇지요......그럼, 카란드라는 누가 그렇게 한 겁니까?"

     "그러니까, 그것도 마왕이 한 짓이라고 설명했잖아."

     "그럼, 쳐들어온다면 서쪽에서 오지 않겠습니까?"

     "그쪽은 파쇄의 성기사군이 담당하고 있다."

     "그렇습니까......"

     "넌 뭘 물어보고 싶은 거냐."

     

     짜증내는 상관에게, 병사는 약간 당황하여 보충설명을 한다.

     

     "아니 그, 정말로 공격해 올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그 카란드라가 멸망했다는 것도 아직 믿을 수 없는데, 갑자기 마왕이라고 해도 와닿지 않는다고나 할까......"

     "기분은 알겠지만, 성녀님께서 말씀하신 일이다. 틀릴 리가 없지."

     "그건 그렇지만......"

     

     아직 석연치 않은 모양인 병사를 보며, 상관은 그것도 어쩔 수 없다며 포기하였다.

     전부 갑작스러웠던 것이다.

     3개월 전에 마왕이 부활하여 쳐들어온다고 알게 되었고, 1주일 전에는 카란드라가 멸망했다고 알게 되었다.

     아렌하이트는 이곳저곳에서 큰 소란이 일어났고, 수도 엣차는 피난민으로 들끓게 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성기사군 모두가 전쟁을 위해 행동했으며, 이 거점에 있는 자들은 모두가 1개월 이상 대기하는 중이다.

     

     "확실히, 카란드라가 멸망했다면 그쪽에서 공격할 가능성도 있겠지."

     "맞습니다."

     "하지만, 그 나라는 아렌하이트와 바밀리아 사이에 위치해 있다. 일부러 양국을 상대하는 짓은 할리가 없겠지."

     "하지만 마물 아닙니까? 그렇게 똑똑해 보이지 않습니다만."

     "그런 말 하다가, 예전의 인마대전에서 용자가 나타날 때까지 인류가 계속 패배해온 걸 잊었나?"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자."

     

     상관은 품 안에 손을 넣어서, 천으로 싼 것을 병사에게 내밀었다.

     열어보니, 그곳에는 붉은 빵 같은 것이 있었다.

     

     "넬이라도 먹고 진정해."

     "어우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거, 그리 맛있지는 않습니다만....."

     "불만 있으면 안 준다?"

     "아닙니다, 당연히 먹어야지 말입니다."

     

     병사는 받아 들어서 입으로 옮겼다.

     우물거리고는 있지만, 표정은 그리 기쁘지 않아 보인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었는데, 요즘은 계속 이것만 먹고 있지 말입니다."

     "피난민한테 먼저 주고 있는 거겠지."

     "조금은 이쪽에도 맛난 것 좀 줬으면......"

     "조용히."

     

     불만을 이어나가던 병사였지만, 갑자기 상관이 진지한 표정으로 바다를 노려보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뭐, 뭡니까?"

     "저것 좀 봐. 뭔지 알겠어?"

     

     가리킨 방향으로 눈길을 주자, 구름의 미세한 틈으로 비치는 달빛에 비추어진 바다가 보인다.

     그 바다에,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무수한 가시가 나 있다.

     

     "적습인가......? 아니, 생각할 때가 아니지. 경종을 울려!"

     

     상관의 지시보다 빠르게, 다른 보초들이 경종을 울려댔다.

     시끄러운 종소리가 밤공기를 뒤흔들자, 비번이었던 병사들이 서둘러 해안선에 진을 쳐나간다.

     다급한 호령으로 통솔을 끝내자, 밤은 다시 파도소리만 들리는 공간으로 돌아갔다.

     경계태세이기는 하지만, 과연 정말로 마물이 쳐들어올지 누구도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처음으로 겪는 이변에 과도한 반응을 드러내었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어서, 바다에 뜬 대량의 가시의 정체를 마술사가 조사할 때까지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게 화근이 되었다.

     마물과의 전쟁 경험이 없다는 점이 치명적이었다.

     물거품을 내며 바다에서 하늘을 향해 긴 물체가 날아올랐다.

     그것은 어두운 하늘에 가득 퍼지더니, 방사선을 그리며 해안선으로 떨어졌다.

     사라진 달이 마지막으로 비춘 것은, 끝에 날카로운 갈고리가 달린 칼날이 날아오는 모습이었다.

     

     "적습ㅡㅡㅡ!!!"

     

     외쳤을 때는, 이미 미처 방어를 못한 병사들에게 작살이 꽂혔다.

     절규와 함께 신성 마술이 은광을 빛내며 날아간다.

     아직 바다에 떠 있는 작살을 노린 공격이 착탄하여 물기둥이 치솟았지만, 작살은 끊임없이 바다에서 튀어나와서는 육지를 향해 쇄도하였다.

     방패를 들고 결계를 치며 방어에 전념하던 병사들만이 해안가에 남게 되자, 이번에는 바다의 가시가 작살처럼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것은 인간의 형태를 띤 물고기였다.

     지느러미나 물갈퀴가 붙은 수족에다, 점액질로 빛나는 청록색 비늘.

     그리고 머리는 완전히 물고기인 이 마물들은, 반어인이라고 불리는 마물이다.

     

     "히, 히이이이이이!!"

     

     이 세상의 종말이라도 찾아온 듯한 비명을 지르던 인간에게, [피라니아 헤드]가 큰 입을 벌리고 머리를 물어뜯었다.

     다른 장소에서는 [인스머스 바고르]가 변형마술로 인간을 지렁이 덩어리로 바꿔나갔으며, 또 다른 장소에서는 [시 몽크・야크트]가 석장으로 중장비를 착용한 병사들을 때려눕히고 있었다.

     너무 일방적이라서 승부라고 할 수도 없다.

     설령 그들이 지방에서 긁어모은 병사에 불과했다 해도, 선전하는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아렌하이트의 바다는 대량의 반어인에 의해 제압되었다.

     그 광경을, 배에 작살이 꽂힌 상관은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쓰러진 그의 앞에, 머리 없는 병사의 사체가 구른다.

     고개를 들어보니 청록색의 반어인이 커다란 눈으로 상관을 바라보며,

     

     "우효~! 내 작살을 돌려받고 싶은 느낌? 뭐, 안 된다고는 하지 않겠지~"

     

     이상한 말을 하면서 난폭하게 작살을 뽑는다.

     

     "으윽......!"

     

     내장을 뒤집는 아픔에 외치려고 했지만, 그 대신 나온 것은 대량의 피와 약간의 숨결뿐.

     

     "자, 회수 끝~! 그럼 불쌍해 보이니 파팟 하고 죽어주는 느낌으로 잘 부탁한다고!"

     

     인간의 입을 뻐끔거리는 모습을 개의치 않는 피라니아 헤드가, 갈고리가 달린 칼날로 머리를 찌르기 직전,

     

     "형씨, 물고기 흉내 잘 내네?"

     

     그런 말을 들은 기분이 들었다.

     

     

     해안선에 파도소리가 돌아왔다.

     건물이 불타오르는 일 없이, 흙담도 그대로. 단지 여기저기에 사체가 널려 있으며 반어인이 점령했다는 점 이외에는 전과 그대로의 광경이었다.

     부대의 전개를 끝낸 반어인들은, 정해진 위치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요새에서 내륙 쪽을 노려보며 경계를 하고 있다.

     병사들이 하던 일과 정반대의 배치라는 점이 얄궂은 일이다.

     

     "인간의 반응 없어."

     "오케이~ 레비아 씨한테 연락. 바로 부탁."

     "오케."

     

     짧은 단어가 날아들지만, 그들은 성별이 불분명한 어류다.

     랭크는 낮지만, 물가에서의 전투력은 상위 랭크와도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특성을 지녔다. 하지만 뇌속성에 약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마물이다.

     마물이라면 신성도 효과가 있지만, 그 만능함에 기대고 말았기 때문에 마물의 종족을 생각해두지 않은 성왕국의 패배였다.

     적의 증원이 없음을 확인하고서, 반어인들은 새로운 전선 거점으로 삼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지시를 받고서 연이어 바다에서 나타나는 수생 마물들이 대량의 자재를 짊어지고 상륙해서, 솜씨 좋게 공사를 해나간다.

     

     "제16단은 오지 않는 느낌?"

     "개 많이 온 모양이던데. 장난 아니더라."

     "엄청 좋기야 한데~"

     "아. 부단장 온 것 같은데?

     "ㅋㅋㅋ"

     

     개의 머리를 한 물고기와 꼬리지느러미로 걷는 돌고래, 삼두악어와 비늘이 돋은 오징어가 연이어 물건을 보내는 옆에서, 커다란 파도를 일으키며 육지로 올라온 자는 커다란 고래의 어인이었다.

     해적 같은 모습을 하고 닻을 멘 거한의 고래는, 물에 젖어도 꺼지지 않는 파이프를 뻐끔거리면서 기분 좋다는 듯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다.

     산잔사자라의 바다 버전이라는 것이 적절할까. 펑퍼짐한 몸통에 땅딸막한 팔다리를 지녔고, 신장도 그 너구리와 거의 같다.

     실제로 교우관계가 있느냐는 잠시 제쳐두고서, 이 랭크 8의 고래인, [메갈로디치] 종족의 에드워드는 구름 사이의 달빛을 받으며 그야말로 악당처럼 대담하게 웃었다.

     

     "니들 일이 참 빠르구만. 오랜만의 일거리에 들떠갖고 말이야."

     "부단장 어서옵쇼! 텐션 폭발시키며 초 일하는 중임다!"

     "진짜루ㅋ"

     "어어~이! 어서 오라고!"

     "죽인다."

     

     하지만, 부하들이 이런 상태여서야 통솔하려 해도 소용없다.

     달빛이 그늘짐과 맞춰서, 등을 굽힌 고래는 닻을 들었다.

     

     "불빛을 비춰라아! 우리들 에스텔드 바로니아 해양수호의 제8단의 행차시다아!"

     "예에~이!! 조명 키자 조명!!!"

     

     에드워드의 신호를 받고, 해안선의 여러 장소에서 펠라이트가 밝혀진다.

     불빛과는 다른 인공의 빛으로 비춰지는 해안을 바라보던 에드워드는, 발치의 사체를 굵은 꼬리지느머리로 들어 올리고는 못마땅하다는 기색으로 코끝에 주름을 지었다.

     

     "바다를 낀 전쟁인데, 왜 이런 잡졸을 배치한 거냐? 이 녀석들 어디란 전쟁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는 거냐고."

     "그러게. 용자도 없으니, 없을 건 다 없는 느낌~"

     "저쪽 대륙에서 했던 우리들의 전쟁은 알거라 생각했는데. 그런데도 이런 꼬락서니라니, 마땅한 이유가 없으면 납득이 안 간다고."

     

     자국에 영토에 들여도 문제없다는 자신감에 의한 이 배치인가. 그거라면 감시만 준비해서 쓸데없는 사망자를 내지 않는 방법도 있다고 생각한다.

     에드워드가 생각해서 알만한 일이 아니지만, 초반부터 기분 나빠서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어라? 그보다, 우리 단장은 어딨어?"

     

     아귀 머리가 물어보자, 에드워드는 생각을 중단했다.

     

     "아, 집에 처박혀 있다. 인싸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다면서. 지금쯤 참가하지 않았다고 후회하며 이불을 차고 있을 무렵이겠지."

     "엥~ 힘 빠져~ 하지만 그런 면이 좋다고."

     "난 사실 싫지만."

     "ㅋㅋㅋㅋㅋㅋ"

     

     어째선지는 불명이지만, 이 제8단에는 '양기'와 '낙관'에 가득 찬 성격의 마물이 많아서 단장인 [스큐라]의 '음기'와는 상성이 나쁘다.

     

     "좋아~ 모두 경계를 게을리하지 마! 뭐가 오든 본대가 도착할 때까지는 이 해안선을 지켜내라!"

     

     "예이~" 와 "맡겨줘!"라는 강한 대답이 돌아온다.

     

     "......이게 곧 루슈카 님도 오실 텐데. 이 상태라면 모두 벌 받는 거 아닐까......?"

     

     다른 군단과의 교류가 거의 없는 제8단 특유의 분위기를, 육지의 엄근진한 녀석들이 받아들일지 걱정이다.

     

     "뭐, 그쪽은 활약으로 인정시켜줘야지. 왜냐면ㅡㅡ"

     

     발치에서 전해지는 진동에, 에드워드는 톱가오리 같은 이를 드러내며 대담한 미소를 바다로 향했다.

     

     "배도 마술도 필요 없다고. 육지와 바다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은, 우리들 뿐이니까!"

     

     떨림이 격해지더니, 그 진원지인 바다가 폭발하는 것처럼 크게 융기해나간다.

     높은 파도를 일으키며 바다 밑에서 부상한 것은, 거대하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해룡의 등이었다.

     아무리 큰 마물이 타도, 설령 슈젠이 진정한 모습으로 탄다 해도 미동도 하지 않는다.

     랭크 10의 해수종.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손으로 키워져서 세계뱀조차 삼킬 정도로 성장한 규격외의 해룡 [레비아탄]을 거느리는 자는, 왕을 제외하면 이 제8단밖에 없으니까.

     

     "뭐든 상관없어. 보라고 인간들. 네놈들의 지혜로도 닿지 못할 괴물들의 싸움이란 것을 보여주겠다고."

     

     에스텔드 바로니아와 아렌하이트의 전쟁은, 이제야 막대한 죽음과 함께 막을 올렸다.

    728x90

    '판타지 > 에스텔드 바로니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4 진군  (0) 2022.05.28
    3 성왕국  (0) 2022.01.09
    <6장 성국과 수인국> 1 막이 오른다  (0) 2022.01.08
    14 죽음  (0) 2021.10.23
    13 각오  (0) 2021.10.0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