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성왕국2022년 01월 09일 20시 57분 31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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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사리아 대륙의 남부, 로이스 해안 일대를 에스텔드 바로니아 제8단이 점령하고 나서 6일이 지났는데도, 아렌하이트에서 군대를 보낼 기색은 없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덕에 순조롭게 진행된 해안선의 요새화는, 에스텔드 바로니아가 자랑하는 전선 부대를 모두 수용할 수 있을 만큼의 시설을 완성하였고, 반어인들은 동료의 도착을 기다릴 뿐일 시간이 이어졌다.
그리고 7일차.
드디어 본대가 루사리아 대륙의 모래를 밟게 되었다.
대열을 흩트리지 않고 줄줄이 행진하는 이형의 군세가, 대륙과 대륙을 잇는 거대한 해룡의 등을 건너는 광경은 압권이면서도 흉악한 광경이었다.
수인과 아인뿐만 아니라, 마수와 거인, 형용하기 어려운 괴물까지도 나부끼는 깃발을 따라가듯이 규칙적으로 걸어가고 있다.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솟아 나왔다고 표현해도 과언을 아닐 것이다.
가을의 청명한 하늘 아래,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그라도라의 부대였다.
튼튼한 늑대인간을 데리고 레비아탄의 등에서 내린 그라도라는, 도착을 환영하는 반어인들 중에 오랜 지기를 발견하여 성큼성큼 걸어가서는 가벼운 느낌으로 손을 들어 보였다.
"여어, 고래. 10년 만이잖아."
"이 얼간아. 14년 만이다. 그보다, 우리들 계속 지하가람에 있었다고? 조금은 만나러 오지 그랬어."
"그러고 보니 그러네?"
에드워드도 마찬가지로 손을 들어 하이터치를 나눈다.
고래와 늑대라서 접점이 없어 보이는 2명이지만, 비슷한 성격 덕분인지 의외로 잘 맞는 사이였다.
"보고는 들었어. 편한 일이었다지?"
두 사람은 제각각의 부하를 데리고, 볼만해진 방위 설비를 바라보면서 근황을 말하기 시작했다.
"너무 편해서 하품이 그치질 않을 정도였다고. 하지만, 근처에 정찰도 나타나지 않는 건 좀 이상해."
"그랬구만. 그래서 육지에서 사는 우리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뭐 그래. 너희라면 잘 조사할 수 있지?"
"어디까지 들어가 보냐의 문제겠지만... 주변의 지형은?"
"동쪽은 카란드라까지 가는 도중에 요새가 몇 개 있을 뿐. 남서에서 서쪽에는 산이 몇 개 있어. 아렌하이트는 그 앞이고. 결계 탓에 탐색계 마술이 통하지 않아서, 어디까지나 눈으로 본 정도지만."
"그래. 우리도 신도에서 조사를 시켰지만, 볼만한 거라곤 난잡한 지도밖에 안 나왔어."
"참 원시적인 세계야."
"카론 님이 없었다면 우리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겠지만."
"싯싯싯! 맞는 말씀!"
에드워드는 턱을 들며 크게 웃으면서, 그라도라의 어깨를 팡팡 쳤다.
그리웠던 자와의 대화에, 자연스레 부하들도 마음을 놓는다.
"어이 바보들, 왜 기분 나쁘게 남자끼리 부둥켜안고 있는 거냐. 고로 효우에도 아니니 그만둬."
하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대가 나타나게 되면 이야기는 바뀐다.
찌릿찌릿한 싸움의 분위기를 보이며 나타난 군복 차림의 여자 목소리에, 에드워드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여어, 샥스핀맨."
넌더리가 난다는 표정의 에드워드였지만, 루슈카의 언짢아하는 표정을 흘끗 바라보고선 곧장 고개를 돌렸다.
"잠깐, 루슈카 누님이 오셨다고."
"헐, 기세 등등하셔."
"누님 하이~!"
"안녕하쇼!"
"예~이! 바로니아의 화약고께서 오셨다!"
"시끄러! 입 닥치고 일하지 않으면 척추를 뽑아버린다!"
"와~ 혼났다!"
"음청 화내네. 역시 누님이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을 일이 아니라고."
예상하던 군대의 등장에 흥분한 반어인들이 떠들썩하게 말을 걸자, 그라도라보다도 짧다고 소문난 루슈카의 도화선에 바로 불이 붙었다.
짜증을 내던 루슈카의 눈이 책임을 묻는 것처럼 에드워드에게로 향했지만, 그걸 어떻게 할 수 있었다면 이미 그렇게 했을 거라는 뜻을 담아 세로로 갈라진 고래의 눈이 도망치는 것처럼 하얀 막에 감싸였다.
"노스페리타리아스는 어딨나!?"
"단장이라면 지금쯤 침대에서 슬리핑하고 있지 않겠어?"
"뭐라더라~ 우리 분위기에 따라오지 못한다더라~"
"마자~ 무진장 피하는 거 개웃겨~"
"우리랑 있으면 단장 텐션은 수직하강~!"
"......그렇겠지."
왁자지껄한 반어인들을 보면서 쥐어짜 내는 루슈카의 말에는, 동정만이 담겨있었다.
해안에 내려선 자들이 순서대로 작전의 준비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며 곧장 기분을 가라앉힌 루슈카는, 시끄러운 그들을 무시하기로 정하고 에드워드를 바라보았다.
"마술 부대가 도착하면, 바로 결계를 파괴한다."
"뭐야, 진군하지 않는 거냐고."
"기껏해야 훔쳐보기 방지의 결계지만, 이번에는 신중하게 나아간다. 먼저 카론 님의 힘으로 이 대륙을 파악해나가는 게 최우선이다."
루슈카의 눈에는, 이 대륙을 감싼 결계가 파이 반죽처럼 겹쳐져 있는 것이 보인다.
현재 있는 땅에서는 가장 외부에 있는 결계에만 접촉할 수 있기 때문에, 적 본거지로 향하는 동안 결계를 여러 번 해제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을 내렸다.
"안쪽까지 확 쳐들어가면서 강제로 부수면 될 거라 생각하는데."
"잘 들어, 고래. 우리들이 이번에 해야 할 일은 교섭도 시위도 아니야. 우리들한테 침을 뱉은 어리석은 자들을 근절시키러 온 거다. 무식한 돌격을 해서 이곳저곳으로 도망치게 되면 볼품없는 잔당 사냥이 시작되어버려."
"최후의 최후까지 싸우지 않으면, 최후의 최후까지 죽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라도라의 보충을 듣고서, 에드워드는 그런 거였냐고 감탄하며 납득하였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제부터 뭘 하면 되는데."
"우리가 모두 건너면, 레비아탄을 데리고 물자 운송 루트와 레스티아 대류 주변해역의 경계에 전념해라."
"하늘의 경계는?"
"그건 남겨둔 군대로 대응한다. 전부 손써뒀다."
앞으로 1시간 정도 지나면 모두 건널 거라고 루슈카가 덧붙이자, 에드워드는 크게 기지개를 켜면서 만족스럽게 웃었다.
마치 휴가를 즐겼던 것처럼, 오랜만의 육지 일을 즐긴 고래는 부하를 부르더니 철수 준비의 지시를 내렸다.
"그럼, 슬슬 가볼 때인가. 짧은 시간이었지만 재미있었다고. 국왕님께 잘 말해줘."
"타리아한테도 잘 전해줘."
"알았어~ 무슨 일이 있으면 곧바로 갈게. 바다가 거친 때는 빼고. 잘 있어라 개야~"
일을 '부여받은' 만족감을 가슴에 품고, 에드워드는 반어인들을 게리고 바다 밑으로 돌아갔다.
그와는 오래 대화하지는 않았지만, 왕을 모시는 일이 우선인 자들에게 있어 그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같은 군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
코 밑을 문지르면서 에드워드 일행의 심정을 헤아렸던 루슈카는, 짧은 다리로 다가오는 목수 차림의 드워프를 눈치채고는 표정을 굳혔다.
"왔다고."
"잘 왔다. 먼저 이 해안선의 시설을 증설한다. 그 후에는 진군에 맞춰서 중계지점도 건설해줘야겠다."
"예이예이. 설마 우리들이 공작부대로 뽑힐 줄은......"
"불만인가?"
그렇게 묻자, 드워프는 수염을 쓸면서 호쾌하게 웃었다.
"에이 설마! 카론 님의 지휘 하에서 일하는 영광된 일이라며 그 녀석들도 불타고 있다고!"
"그럼, 그 의지를 건축에서 보여봐."
"부드러운 말도 해주시다니, 이거 내일은 하늘에서 슬라임이라도 떨어지지 않을런지?"
"푸웁! 루슈카아. 너, 크큭.......평소에 부하한테 무슨 말을 했던 거냐고."
내뿜은 그라도라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루슈카여지만, 단장격이 그걸로 두려워할 리가 없었기 때문에 권총을 뽑아서 입을 다물게 했다.
드워프는 재밌다는 듯이 웃고 나서는, 뒤에서 자신의 부하가 찾아왔음을 깨닫고 루슈카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만, 단장."
"그래."
드워프는 그라도라한테도 고개를 숙인 뒤, 부하들에게로 향했다.
"어라, 감독, 이제 이야기는 괜찮슴까?"
"괜찮으니 가자. 당분간 못 쉰다고 생각해."
그런 대화를 하며 멀어지는 것과 함께 찾아온 자는, 필미리아와 고료 효우에였다.
"왔소."
"왔어!"
"좋~아, 결계 부수고 와."
"엥!?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권총을 향하는 건가요!?"
"빨리 가. 덤으로 너도."
"긁어 부스럼이었소......"
방금 왔는데도 내쫓긴 두 사람은 도망치듯이 자신의 군단으로 달려갔지만, 일은 제대로 하기 위해 바로 행동을 시작했다.
필미리아가 이끄는 악마와 음마는, 겁을 먹고 돌아온 필미리아의 지시에 따라 곧장 마술을 발동시켜서 아렌하이트를 두른 결계의 표층 1장에 접속을 시도했다.
"흠......전부 7장인가. 먼저 1장."
"강도는 어떤 느낌인데?"
"이 정도라면 충분히 부수겠지만, 수도의 것은 하루 종일 걸릴 거라 예상하고 있다. 성왕이라고 이름을 대고 있으니, 퇴마술식을 부여해서 침입을 허락하지 않도록 해놓았겠지."
"흐음. 그럼 깨트리면 진군한다는 걸로 되지?"
"그래. 다만, 너와 고로 효우에는 서쪽으로 가라."
"뭐어?"
루슈카의 설명으로는, 적의 부대는 카란드라 방면에도 파견되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그쪽을 정벌하러 인원을 보내고 싶다고 한다.
이 전쟁의 승리는 적 거점의 점령이 아닌, 적의 괴멸이다.
어중간한 승리는 이후를 위해서도 피해야만 한다.
특히, 외국으로 망명하는 사태만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렇게 된 거다. 발견하는 즉시 죽여."
최전선에서 날뛰지 못한다는 점과 헛걸음으로 끝날 가능성에 대한 불만은 있었지만, 그라도라는 욕구를 꾹 참고는 수긍하였다.
아렌하이트의 하늘에 균열이 생긴다.
"죽지 마라."
"죽겠냐고."
붉은 마력이 침식하는 것처럼 균열을 물들여가더니, 강제로 벌리는 것처럼 확장되어간다.
첫 번째 결계는 그 압력에 견디지 못하고 유리처럼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빛의 입자가 해안선에 내려오는 광경을 보고 떠드는 병사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루슈카는 떠나가는 그라도라에게 등을 돌린 채로 산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아렌하이트는, 초대 성왕 베름 카르넨에 의해 건국된 가장 역사 깊은 나라로 일컬어진다.
아르마 성교의 총본산이며, 파마구세의 법을 설파하는 일은 옛날과 변함없고, 수도도 현재의 엣차 그대로다.
하지만 옛날에는 지금과 다르게 대륙 일대를 지배하에 두었던 대국이었다.
인마대전보다도 훨씬 오래전에 일어난 수인해방운동 때 4대 성왕이 전장에서 붕어하였고, 뒤를 이어 일어난 카란드라 침공에 의해 많은 토지를 잃어 한때 멸망의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그것을 구한 것은, 은의 성녀 후아나였다.
성녀는 자신을 용으로 바꾸어 정화의 화염으로 아렌하이트를 지켰고, 카란드라를 협곡으로 내쫓았다.
마물은 악이라고 하는 아르마 성교였지만, 그 옛날이야기가 이 나라에서 유일하게 용을 믿게 하고 성녀를 나라의 수장으로 하도록 만든 것이다.
성도에 우뚝 솟은 엣차성에는, 그 증거로 하얀 용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것이다.
평소에는 장엄한 성에 어울리는 정숙함이 흐르지만, 오늘은 서둘러 기사단 막사 안을 달리는 기사의 소리로 시끄럽다.
한 기사가 갑옷을 격하게 울리면서 목적의 방 앞으로 도착하자, 그대로 허가를 얻지 않고 기세 좋게 입실하여 인사도 안한 채 입을 열었다.
"제1진 유실! 적군은 침공 시작과 동시에, 알타유 협곡에도 파병했다고 합니다!"
그 보고를 듣고, 정면 책상에서 펜을 끄적거리던 장발의 남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다. 돌아가도 좋아."
기사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자신의 초조함을 소화시키지 못한 채, 지시받은 대로 방을 나갔다.
남자는 그대로 서류를 처리해 나가다가, 일단락을 낸 다음에야 겨우 일어섰다.
"드디어 왔는가."
짙푸른 사제복의 위에 갑옷을 두른 장신이 남자.
청람기사단을 거느리는 용자, 오반 크리포드는, 앞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냉랭한 표정은 곤란한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내심으로는 꽤나 곤란해하고 있다.
현재 이 아렌하이트에 존재하는 일곱 기사단 중, 여섯이 수도에 체류하고 있다.
사전에 마왕의 군세가 침공한다고 알고 있으면서도, 움직이는 것은 하나뿐. 그것도 소수의 활동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마물에 대한 방비는 없는 것과 같다.
결코 위기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오반 또한 비슷한 정도로 마음이 심란한 상태다.
그럼에도 움직일 수 없는 것은, 성녀의 명령이 내려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렌하이트의 방위는 전부 이 수도 엣차에 있는 전력이 전부이며, 지방도시와 귀족령은 독자적인 병사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정기적인 일 외에 군이 움직일 때는, 나라의 수장인 성녀의 허가가 필요하다.
명령을 위반해서 움직일지 몇 차례나 생각해보았지만, 용자의 서열 중 2위에 자리 잡은 몸으로서 제멋대로 움직여서는 주변의 귀감이 되지 않는다.
서열 1위인 은기사가 누구보다도 제멋대로 움직이고 마니까, 적어도 자신만은 규율을 지켜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가깝다.
피해가 생겨나고 대륙에 침입까지 했는데도 기다린다는 것은 확실히 병사들도 참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내버려 두면 피해가 더욱 커질 뿐이다.
슬슬 또다시 진언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노크도 없이 문이 열렸다.
"실례 좀 하자."
"......이거이거, 금혼경. 무슨 일이십니까?"
화려한 황금의 법의와 갑옷을 두른 경박해 보이는 남자는, 아무 말 없이 불쑥 들어와서는 소파에 난폭하게 내려앉았다.
좋은 소파였지만, 갑옷의 중량 때문에 이제 못쓰게 되었을 것이다.
오반은 남몰래 애도를 표하고는, 냉랭한 표정으로 금색의 남자, '금혼' 자일 카톤을 바라보았다.
"뭐야. 여자라도 있었으면 재미 좀 봤을 텐데."
"...... 마음속으로 정해둔 상대가 있어서요."
"아이네스는 바밀리아의 국경을 경비하는 중이라고? 젊은 때를 유용히 쓰게 해 주려고 생각했는데, 재미없기는."
"무슨 볼일입니까?"
"화내지 말라고. 조금 화기애애하게 만들어 준 것뿐이잖아."
서서 노려보는 오반의 눈길에 견디지 못했는지, 자일은 "알았어 알았다고."라며 손을 내젓더니, 비어있는 손을 품에 넣고서 봉투를 꺼내 들었다.
비싼 종이를 접어 만들어진 그것에는 성왕국의 심볼인 용의 밀랍이 찍혀있었다.
"예하께서 맡기셨다."
그럼 빨리 내놓기나 하라고 눈으로 말하면서, 오반은 조용히 받아 든 편지봉투는 뜯고 안을 확인하였다.
그 종이는 성녀 엘레나 루시오네의 정식 지령서였으며, 안에 쓰인 것은 자신이 원하던 것이었다.
"금혼경, 움직입시다."
자일은 갑옷을 철컹거리며 다리를 꼬더니, 등을 소파에 기대더니 이제야 왔냐는 식으로 피곤함을 보였다.
그도 계속 기다리는 일에 짜증을 느끼던 인간이다. 아렌하이트의 흙을 더럽힌 일에 화내고, 그런데도 움직이지 않는 성녀에게도 불신감을 품고 있었다.
"그럴 거라 생각했다고. 정말이지, 성녀님은 꽤나 신중하셔. 그런 계시라도 있어서 그랬나?"
"저는 모르겠지만, 뭔가 생각이 있으신 거겠죠."
"세상일도 모르는 성녀님이 그런 생각을 하겠냐고."
불경하다고 말하기란 간단했지만, 오반은 그 말을 다시 집어넣었다
"예하께선 항상 나라의 평화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건 부정하지 않아. 하지만 성녀의 말을 뭐든지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건 그만두라고? 그렇게 안 하면 아루아 세레스타처럼 될 테니까."
"......그녀는 실종되었습니다. 누구도 어디 갔는지 모릅니다."
"바보냐. 어떻게 생각해도 그 사람한테 쓰고 버림받았잖아. 아무리 조사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고.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하게 사라졌어. 공작부대가 움직였던 흔적도 있다고. 세레스타 가문은 무관심하지만, 이건 너무 냄새가 나."
왕국으로 귀환한 것까지는 파악되었던, 바깥에서 시집온 왕족의 용자가 행방불명 되었는데도 아렌하이트에서는 큰 소란이 일어나지 않았다.
국교에 영향이 끼칠만한 일이지만, 누구나가 "문제없겠지."라며 엘레나와 똑같은 말만 하는 것이다.
자일이 아무리 말해도, 성녀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이길 수는 없었다.
"고려해두겠습니다."
"네네, 그렇지 뭐. 내 의견은 소수파냐고."
방을 나설 준비를 하는 오반의 뒤에서, 자일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바깥으로 나가자, 바삐 움직이던 기사들이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걸음을 멈추더니 선망의 눈초리로 경례를 하였다.
젊고 서열 2위이며 미남인 '청람'의 기사의 인기는, 기사단 내에서도 최고로 군림하고 있다.
경건한 아르마 신자이며 성녀의 신뢰도 두텁고, 실력도 있으며 아름다운 약혼녀도 있다.
누가 보아도 순탄한 길을 걷고 있으며, 누구나 그를 아렌하이트를 대표하는 기사로 꼽을 것이다.
그런 눈부신 미남의 등을 보던 자일은, 자신의 제자의 성장에 쓴웃음만 나왔다.
예전에는 서열 1위로서 기사단의 정점에서 서보았던 자일이었지만, 오반은 전성기의 자신조차 넘어서는 인재가 되었다.
은기사 그로키시니아가 없었다면 지금쯤 오반이 서열 1위였겠다면서, 정말 분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 기분 나쁜 여자도 나오려나."
"그로키시니아의 일을 그렇게 나쁘게 말하면 안 됩니다. 같은 기사단 동료 아닙니까."
"넌 항상 태연하구만. 실력도 모르는 녀석이 1위에 있는데 뭐라 느끼는 것도 없냐?"
"그녀의 힘은 확실합니다. 검의 실력은 제가 위지만, 용자의 힘을 쓴다면 제가 손쓸 수도 없습니다."
"......맞붙은 적이 있었던 거냐!?"
"예. 제가 2위의 자리를 받들 때, 한 번만."
처음 듣는 정보에 놀랐지만, 오반 자신이 거기까지 평가한다면 실력은 진짜일 것이다.
그렇다 해도, 자일은 정체모를 '성은'의 기사를 아무래도 좋아할 수 없는 것이다.
성녀한테 부정적인 자신이니, 성녀가 총애하는 의문의 여자를 수상히 여기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빼놓고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애제자의 반짝임을 가리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금혼경."
이름을 불리자, 자일은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이제야 눈치챘다.
용의 성녀의 조각.
오반과 자일을 들이려고 열린 문의 저편에는, 거대한 은의 용이 하늘 높이 솟아있는 정교한 조각의 아래에서, 성모처럼 미소 짓는 엘레나 루시오네와, 먼저 와 있던 세 명의 기사가 오반과 자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반 크리포드, 늦게나마 대령했습니다."
"자일 카톤, 지금 도착했습니다."
늦어버린 두 사람에게 비난의 눈길이 쏟아졌지만, 엘레나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느릿한 움직임으로 환영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나의 기사들이여. 자, 우리의 손으로 구세를 시작하도록 하죠."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따스함이 있는 성녀는, 단아하게 마물의 살육을 주장한다.
조금의 어두움도 없는 그 눈부심은, 그림자조차 없애버릴 반짝임으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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