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죽음2021년 10월 23일 21시 18분 55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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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5장은 끝입니다.
왕성에서 일어난 소동은 에스텔드 바로니아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마을은 당연한 듯 활기찬 일상을 보내고 있었으며, 이름 일행이 날뛰었을 무렵에도, 진압된 후에도, 다음 아침에도 변한 일은 없었다.
화려한 전투는 단단하고 중후한 미스릴의 벽을 넘어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았고, 내부의 성벽을 수호하는 코우렌과 소우렌만이 마을에서 침입자가 오지 않나 멍하니 바라보는 정도인, 딱히 대단한 일 없는 결말을 맞이했다.
수십 명이 목숨을 바쳤음에도, 결국 그 정도의 일에 불과했다.
짐마차의 바퀴가 덜컹거리며 돌아간다.
나무바퀴가 돌 때문에 튀어오를 때마다 화물은 큰 소리를 내었고, 그 때마다 마부인 남편의 옆에 앉은 부인이 불안한 듯 돌아보았다.
대량의 나무상자 안에는, 이 나라에서 생산된 야채와 과일이 한가득 실려있다.
마물을 상대로 두려움에 떨면서도 교섭한 결과, 한 청과점과 거래할 수 있었다.
사르탄의 상인 부부에게 있어 이 화물은 도전이며 전재산이기도 하다.
들뜬 표정의 남편은 활기차게 "괜찮아."라고 말했지만, 부인으로서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사자라 씨가 충격완화의 마술도 걸어줬으니까."
"그래두요......"
부인은 몇 차례나 화물을 돌아보며 확인했는데, 그러다 문득 옆에서 걸으며 호위하고 있는 산잔사가라와 눈이 마주쳤다.
겸연쩍은 듯 시선을 돌리는 그녀에게, 사자라는 호쾌하게 웃어보였다.
"걱정 붙들어 매시게나! 대단한 술법은 아니지만, 당신들이 장사를 못하게 될 정도로 시시한 마술이 아니거든."
그렇다 해도, 운명을 좌우하는 상품인 것이다.
사자라를 믿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걱정되는 것은 걱정되는 것이다.
"그래도 무슨 일이 생기면......지르카가 변상해주겠지."
"뭐? 내가?"
사자라의 반대편에서 걷고 있던 지르카가 놀라서 소리내었다.
아름다운 금색 사자인의 그 목소리는 분위기를 개선시키기 위한 연기였다고 알고 있었음에도, 가슴에 와닿는 듯한 훈훈함이 있었다.
"당신이 내 고용주이지 않은가?"
"확실히 그렇지만......뭐, 네 술법이면 무슨 일이 일어지는 않을 테니."
"꽤나 기대하고 있구만."
"하핫, 강자는 따르고 보는 주의라서 말야."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사자라와 지르카.
짐마차의 후방에는 리코트와 오그노르가 따라오고 있었고, 더욱 뒤에서는 포르파가 걸어가고 있었다.
"음후후~"
"산 거냐?"
"음~? 뭐 그래. 여러가지 덤도 받았고 말야."
그녀를 치장하는 보석들은, 어느 것이나 버밀리아나 사르탄에서도 꽤 보기 어려운 물건들이다.
아무리 지르카라 해도 손에 넣지 못할 수 있을 정도의 고급품을 여보라는 듯이 몸에 달고 있는 모습은, 부자연스러움 그 자체였다.
"오그노르도 왠지 기분 좋아보이던데?"
대답해야할까 주저하던 오그노르였지만, 손가락으로 커다란 루비를 박은 반지를 매만지면서 시선을 돌렸다.
"보나마나 난장판을 벌이고 왔겠지. 너 그런 걸 좋아하니까~ 저쪽에서는 어딜 가든 출입금지라고 들었다구?"
"남의 취향에 참견하지 마."
"아 그러셔. 아~ 불쌍해라~"
"......그것보다, 저건 왜 저래."
오그노르가 코를 흔들어 후방을 가리켰다.
맨 뒤에서 걷고 있는 포르파는, 본래 푹신했던 깃털을 꾹꾹 눌러서 몸을 작게 만들며 이상할 정도로 떨고 있는 모양이다.
합류하자마자 "빨리 본국으로 돌아가자."며 지르카에게 애원을 하는 바람에, 상인이 그 움츠린 모습을 신경을 써줘서 귀국 예정을 앞당겨줬지만 도대체 무엇을 보았는지는 누구도 물어보지 않았다.
"몰라. 어딘가에 숨어들다 실수라도 한 거 아냐? 딱히 상관없지 않아?"
낙관적. 무관심.
이 파티는 그 정도의 인연과 관계성으로 성립되어있다.
모험가길드에서도 미움받는 자들이었던 두 사람이 지르카와 함께 있는 것은, 주워준 은혜와 좋은 보수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쓸데없이 파고들거나 구속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포르파가 오고 나서는 잔소리가 심했기 때문에 조용히 있었지만, 모르는 토지에서 감시의 눈이 사라지자 조금 빗장을 풀고 말았다. 하지만 후회는 없이 후련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누구도 포르파의 일은 신경쓰지 않았다.
마차는 외곽의 정문으로 다가갔다.
수인 병사가 경비를 서는 문을 마차가 지나갔고, 지르카 일행도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어?"
리코트가 갑작스러운 일에 의아해했다.
문을 건너자, 순백의 공간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의문의 공간은, 누가 보아도 초원이 아니다.
그리고 마차와 상인 부부의 모습이 어디에도 없었다.
모두가 이해불능한 상황에 혼란스러워하는 와중, 갑자기 목소리가 들렸다.
"귀금속점에서의 절도, 창부에 대한 폭행, 거기다 왕성에 불법침입이라니. 꽤나 느긋한 녀석들이로구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사방팔방에서 들려왔다.
다만, 그 목소리는 누구나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 인간들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느니라. 그들은 소중한 손님이니 제대로 돌려보내게 했으니. 뭐, 그런 것보다 문제는 너희들이니라. 모험가라는 것들은 이렇게나 품위가 떨어지는 녀석들만 있는 게냐? 적어도 내가 아는 모험가들은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전투광이고, 호기심과 공명심 덩어리같은 느낌이었거늘. 어쨌든, 너희들은 우리 에스텔드 바로니아에서 죄를 범했고, 거기다 떠나려는 짓을 하고 있느니라. 우리들이 이런 모독을 용서해 줄 정도로, 어리석은 목숨을 퍼트릴 정도로 관대할 것 같으냐."
"결계인가."
"이건 벗어날 수 없겠어. 엄청난 고도의 격리결계라고."
이런 때에도 오그노르와 리코트는 주눅들지 않았고, 포르파는 이미 검을 들고서 주변을 과도하게 경계하고 있었다.
"리코트, 오그노르.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죄송해요~ 지르카 니임. 하지마안, 요즘 제게 주시는 선물이 줄어들어서 슬펐단 말이에요오."
지르카라 해도 이런 태도에는 어이없어할 수 밖에 없었는지, 쓴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만일을 위해 말해둔다만, 이 상황에서 뭔가를 내놓으면 용서받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게야. 여기는 돈을 내면 놓아주는 만만한 나라가 아니니라.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할 바에야, 처음부터 하지 않는 편이 건설적 아니겠느냐?"
"어라라, 평소처럼은 안 되나아. 그럼 도망칠 수 밖에 없어보이네."
"그렇게 되나."
"과연, 바보들 뿐인 게냐. 이러니 고생할 법도 하구나. 뭐, 뒷처리는 잘 부탁하마. 난 일하러 돌아가야하느니라."
그 목소리가 어디론가 멀어져갔을 때.
메마른 방울 같은 소리가 울렸고,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린 리코트의 머리가 황금의 봉에 관통되어 버렸다.
피가 흠뻑 묻은 육각형의 봉은 깔끔하게 리코트의 얼굴 중심을 꿰뚫은 채다.
"! 네노옴ㅡㅡ!"
오그노르는 곧장 방어계 스킬을 모두 발동시키며 큰 방패를 소환하여 방어의 자세를 취했지만, 황금의 봉은 머리 위에서 초 스피드로 낙하하여 코끼리의 거구를 인정사정없이 꼬치로 만들었다.
불과 몇 초 만의 일에 반응했던 자는 없었다.
살아서 서 있는 자는 지르카. 포르파. 그리고,
"그렇게 되었네. 함께 여행했던 정으로 바로 끝내줬지. 대단한 여행은 아니었지만 은혜는 약간 있네. 그러니 괴롭지 않게 편히 죽여주겠네."
너구리 수인은,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간 뒤 천천히 돌아보며, 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것과 같은 금봉을 두 손으로 들었다.
신수 [음신형부].
마술을 해제한 눈동자에는,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도망치자!"
포르파가 깃털을 곤두세워 경계하면서 지르카에게 외쳤지만, 그는 넋이 나갔는지 눈을 부릅뜬 채 움직이지 않았다.
리코트와 오그노르는 문제아였지만 능력은 확실했다. 특히 오그노르의 방어력은 상당한 것이어서, 조금 맞은 정도로는 꿈쩍도 하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도 일격.
스킬의 강화를 개의치 않고 관통한 위력은, 언뜻 느끼고 있던 사자라의 실력보다도 월등히 위였다.
검을 든 포르파의 깃털이 바람의 떨림을 느끼고는 본능적으로 옆으로 뛰자, 그 위치를 금의 궤적이 지나갔다.
시각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속도로 날아오르는 금의 봉 '사성육도 정파곤'은, 마치 의사를 가진 것처럼 주위를 돌아다녔다.
포르파는 이미 이 자리에서 벗어날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흰색만이 이어진 기묘한 격리결계를 부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유일한 수단은, 술자를 쓰러트리는 것. 그를 위해서는 사자라를 죽여야만 한다.
"힉, 힉, 힉, 힉."
버밀리아에서 고용한 모험가가 흘리지 않고 애써 집어넣는 호흡소리.
그 모습이, 그 방법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어이, 올빼미. 너, 성에서 보았지? 그걸 너희 왕한테 어떻게 설명할 건가?"
포르파가 본 광경은, 스콜라와 미라의 결투가 아니었다.
침입자를 적당하게 처리해가는 무서운 처형식을 보았다.
그러는 것이 마물의 문명이라면, 이 나라가 패권을 거머쥐는 날 인류는 가축이 되고 말 거라고 포르파는 생각하였다.
버밀리아의 왕에게 전할 일이야 뻔하다.
성왕국과 손을 잡아서라도 이 나라를 멸망시켜야 한다는 것.
떨리는 손끝을 보고 감정을 알아챈 사자라는, "유감이네."라고 중얼거리며 손을 치켜들었다.
"왜 당신들이 에스텔드 바로니아에 초대되었다고 생각하나?"
포르파의 주변을 나는 봉에, 피에 젖은 두 봉이 추가된다.
"수인의 나라라는 곳이 정상인지 아닌지 조사해보고 싶어서 그랬지. 그 결과는......너희들이 이끌어냈다고? 조용히 지냈다면 좋았을 텐데, 병신처럼 욕심이나 드러내서는."
사자라가 손을 내린 순간, 포르파가 달리려는 것 보다도 빠르게 세 봉이 그 몸을 지면에 꿰어버렸다.
"네놈의 인과다. 고통없는 죽음을 기뻐해."
사자라가 들고 있던 정파곤이 둥실 떠오르더니, 포르파가 고통에 신음할 사이도 없이 머리를 뚫어버렸다.
썰렁하게 조용해진 흰 공간 속에 박수소리가 울린다.
"이야, 멋져. 강하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그 포르파가 어린애 취급을 당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저래 뵈어도 버밀리아에서는 이름난 모험가 팀인데."
시체에서 뻗어나오는 피가 만드는 길바닥 위에서, 지르카는 미소를 허물지 않은 채, 동료의 죽음에 분노하는 일 없이 진심으로 사자라를 칭찬하고 있었다.
"넌 마술사? 대뜸 무술가같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혀 알아채지 못했어. 역시 에스텔드 바로니아의 간부네."
"마치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투일세? 자기가 살아난다는 것도 계산을 끝내서 그런가."
"그렇지 않아. 다만, 리코트와 오그노르한테는 언젠가 벌이 내려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게 이 나라일 거라고도 생각하고 있었을 뿐. 안전을 담보해준 것은 고맙지만,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가담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어."
"책사하고는 먼, 될대로 되라는 작전이구만."
"그만큼이나 그란그라드=지르카의 신분은 가치가 없다는 뜻이지."
세 시체를 그대로 두고, 하얀 공간 속에서 대화하는 수인 2명.
사자는 사냥당하는 쪽이며, 너구리는 언제 목을 취할까 하며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대답을 잘못하면, 그 순간 지르카는 맥없이 죽고 말 것이다. 주변에 널려있는 자들처럼.
하지만 지르카는 미소를 없애지 않았다.
처세술이 아닌, 이 일생일대의 도박에 이기든 지든 웃게 될 거라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믿고 있었으니까.
"건들거리기만 하는 꼬맹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구려."
"얼레? 안 놀래? 이래 뵈어도 그란그라드 왕의 아들인데. 그리고 네가 이 나라의 마물이라는 것을 눈치챘던 것도 그렇고."
"미안하지만, 그런 것은 아버지 공한테서 충분히 봤었네. 탐정놀이를 한 정도로 놀라달라는 건가?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보다, 내 비위나 맞춰주는 게 어떤가."
말도 안 되는 이론이다.
하지만, 그것 이외에 할 것이 없는 것은 확실하다.
사자라가 일부러 살려둔 것은, 지르카가 법을 어기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럴 생각이 들면 관리책임이든 뭐든 이유를 붙여서 빨리 처리하는 편이 시간낭비 없이 끝난다.
예의 없는 모험가들과 다룰 수 없는 아버지의 부하만을 주고 해외로 내보낸 왕자의 목숨에, 도대체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을 것인가.
그걸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지르카는 사자라가 원하는 것도 이해하고 있다.
"버밀리아에 올래? 물론, 내 새로운 부하로서."
지르카가 지금 약속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
"이래 뵈어도 왕족 찌끄레기라서, 나라 안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물론 왕궁의 안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이제부터 아렌하이트와 전쟁을 할 거라면, 버밀리아의 동향은 파악해두고 싶을 거잖아?"
"호오. 내가 마술의......카란드라에 당신의 목을 들고 찾아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건지?"
"아렌하이트의 공작부대가 카란드라의 사자를 사칭했어. 자세히는 모르지만, 카란드라와 아렌하이트는 뭔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아렌하이트를 상대하는 듯 보여도, 실제로는 두 나라를 상대로 다투려는 속셈 아니려나?"
"남쪽 대륙을 통채로 적으로 돌려도 상관없다만? 너는 자기 나라를 조금 높게 평가하고 있구만."
"확실히 그건 그래. 하지만 만일 아렌하이트를 함락시키면 싫어도 우리들과 접촉하게 돼. 그를 위한 포석을 두라고 네가......에스텔드 바로니아의 왕의 지시를 받은 거지?"
추리가 맞았는지 알아보려고 하는 지르카를, 사자라는 뾰족한 코로 비웃었다.
이 국면에서는 거짓도 둘러댐도 필요 없다.
"안 됐지만, 내가 아버지 공한테서 받은 것은 '충분히 날뛰어라'라는 말 뿐이라서. 이건 내 멋대로 한 짓에 불과하네."
"......그럼 한꺼번에 버밀리아까지 평정해버린다고?"
"이러쿵저러쿵 하며 부탁한다면 그렇게 하는 게 내 일이지. 근데, 내가 버밀리아에 갈 이점은 그것 뿐인가? 그란그라드=지르카, 네 목적과 어떻게 일치하는지 말해봐."
어느 사이엔가 사자라의 손에 돌아와 있던 네 자루의 금봉이, 지르카의 눈앞에 있다.
이 문답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 말없이 고하자, 금사자는 더욱 미소를 더하였다.
"내 친형제를 죽이기만 하면, 버밀리아는 에스텔드 바로니아에 종속되어도 좋아."
사자라는 그 대답에 미소로 대답했다.
이득이 된다면 그걸로 좋다. 마지막에 전부 흙으로 되돌려도 좋다. 에스텔드 바로니아가 영겁의 번영을 이루기만 하면 된다.
서로의 이득을 위해, 두 사람은 아무말 없이 서로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
"란라란, 라~라라라~라~"
밝은 흥얼거리는 목소리가 어두운 통로 안에 울리고 있다.
밑으로 밑으로 이어지는 경사는 좌우로 구불거렸고, 아무리 나아가도 앞의 빛이 보이지 않았다.
웨딩드레스같은 순백의 법의와, 버둥거리며 흔들리는 무언가를 담은 마대자루를 질질 끌면서, 여자는 백과 감색의 긴 머리를 휘날리며 기분 좋은지 가볍게 깡총거리며 안으로 내려갔다.
"챳챠라라, 챠라라, 라~라라~라~"
약간 기분 나쁜 내부에서 약간 기분 나쁜 행동을 하는 여자였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신성한 분위기만큼은 훼손되지 않았다.
아렌하이트 성왕국의 성왕이며 선택된 용의 성녀이기도 한 엘레나 루시오네는, 오늘 자국으로 돌아온 아루아 셀레스타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보낸 부대는 혼란을 일으키지 못한 채 전멸하였고, 아루아도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왕국의 용자에게 패배. 거기다 목숨을 살려주는 수치를 당하고도 뻔뻔하게 돌아온 꼬라지란.
에스텔드 바로니아에 여유와 자신감을 주게 된 결과가 되어버린 점은 불만이지만, 그건 그것대로 이제부터의 전쟁에 대한 위기감을 심어줄 수 있겠다며 긍정적인 생각을 하였다.
북쪽 변경에서 마왕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신경쓰이지만, 그보다도 눈앞의 해악을 뿌리뽑는 것이 중요하다.
아렌하이트 의회도 에스텔드 바로니아와의 전쟁에 만장일치다.
이것은 사실상, 남신 자하나의 인도하심이리라.
"라~라라~ 라라란, 랏다라~라~"
성가를 흥얼거리면서 계속 나아가자, 이제야 푸르스름한 빛이 멀리서 보인다.
마대자루를 한손으로 질질 끌면서, 에차성의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 공간에 도착한 엘레나는, 그곳에 있던 성기사에게 미소를 향했다.
"성녀님."
복잡한 조각이 새겨진 은 투구를 쓴 그 여자는, 흰 레오타드에 은의 건틀릿과 갑옷을 한 기묘한 복장을 하고 있다.
짧은 망토를 두른 것까지 합하여 제대로 된 기사가 아닌 이상한 코스프레처럼 보이게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아렌하이트의 용자 중 한 명이다.
"어머. 그로키시니아도 왔었어?"
"네. 아르마 님의 모습을 보려고요."
"넌 정말로 아르마 님을 좋아하나보네."
"네."
테너처럼 낮게 울리는 그로키시니아의 목소리에 환색을 드러내며, 엘레나는 행복하게 미소지었다.
"당신같은 훌륭한 기사를 둬서, 난 행복해. 아~ 왜 모두들 반대하는 거람. 아렌하이트에 있어 이 정도로 중요한 의식은 없는데."
"누구나 성전의 이야기로만 생각하니까요. 저희들에게 있어서 자하나 님과 아르마 님이 얼마나 위대하며 훌륭하고 중요한지 이해못하는 거겠죠."
"정말. 주교 님도 곤란한걸! 왜 얼마나 큰 희생이 필요하냐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어. 왜냐면, 그런 일은 생각할 필요도 없잖아."
"네. 하지만 저희들만으로 진행시킬 수 있었던 것은 요행이었지요."
"맞아. 카란드라에서 모아와서 다행이었어."
두 사람이 동시에 올려다 본 것은, 넓은 공간의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유리 돔.
녹색 액체로 채워진 그 안에는 일그러진 형상의 뱀과 비슷한 검은 그림자가 돌아다니면서, 돔의 정상에서 작업하고 있는 흰 천을 두른 집단이 던진 것을 포식하고 있다.
크고 작은 사이즈와 모양의 파이프가 꽂힌 돔의 기슭에는, 대량의 계기를 보며 걷는 흰색 복장의 집단이 대화를 하고 있다.
먹이가 던져지기 직전에만, 정신이 붕괴될 정도로 귀청이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여기에서는 누구나 일심단결하여 부활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 광경에, 엘레나는 눈부신 듯 눈을 반쯤 감았다.
"훌륭하네요. 이것이 인간의 힘, 미래를 만들 가능성, 자하나 님께서 주신 하사품이에요."
아름답다고 쳐다보는 것이, 만일 배양하는 연구소같은 것이 아니라 서민의 삶이었다면 차라리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에 의문을 가진 자는 이 자리에 없었다.
"그런데 성녀님, 그건 뭔가요?"
투구 때문에 불분명한 그로키시니아의 목소리를 듣고, 엘레나는 질질 끌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아, 그랬었지! 자, 이거."
마대자루의 입구를 묶은 끈을 건네주자, 그로키시니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끈을 풀어 안을 확인했다.
"......아하."
안에 있던 것은, 재갈을 물고 온몸을 결박당한ㅡㅡ아루아 세레스타였다.
약이라도 맞았는지, 의식이 몽롱한 모양이어서 침을 흘리며 맞춰지지 않는 시점을 필사적으로 맞추려고 하는 것이 보인다.
"이것도 넣어줘. 이제 다 썼으니까."
얼마 안 남은 립스틱을 버리는 듯한 느낌으로, 엘레나는 그 인간을 가리켰다.
받아든 그로키시니아 또한, 버리는 것을 부탁받은 지인처럼 가볍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으로 대답했다.
"이제부터 더욱 바빠지게 될 거야. 그로키시니아도 제대로 준비해야 해."
"네. 물론이죠."
"아! 마지막으로 말만이라도 들어볼까나."
엘레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허리를 굽혀 아루아의 재갈을 벗겼다.
"푸학! 엘레나, 예하.......저는 무엇을......여기는 대체......"
"괜찮아요, 아루아. 당신은 제대로 임무를 수행했답니다. 이제 아르마 님께 가도록 해요. 그럼 분명 행복한 내세로 데려다 주실 테니."
"무슨 말씀인가요? 아르마는......그건 은의......여긴......"
"아루아."
엘레나는 성녀로서의 표정을 허물지 않았다.
성녀로서 태어나고, 성녀가 되기 위해 투쟁했고, 성녀가 되지 못한 동년배를 폐기시키면서도, 성녀로서의 표정만큼은 허물지 않아싸.
그 뱃속에 혼돈이 휘몰아치고 있음에도.
"당신은 어리석고 비참하고 불쌍한......비극의 히로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장난감 같네요."
"엘레, 나......?"
"남편이 죽은 이유도 몰라. 내 생각도 몰라. 그냥 주위에 휩쓸릴 뿐이고 진실을 알려는 용기도 없고 비관할 뿐이고 아무것도 없어. 마물의 나라에서 검을 뽑았다고 듣고 놀랐었지만, 역시 당신은 그 정도 밖에 못하는 거네요. 자신의 처지도, 환경도, 닫혀버린 현재도 타개할 수 없는, 정말로 불쌍한 사람."
몽롱한 의식으로도 알 수 있었다.
엘레나가 고한 것이, 반달을 그리는 눈동자 속이, 아루아 세레스타의 존재를 모독하고 있다는 것을.
말문을 잃고 몸의 떨림을 그치지 않게 된 아루아. 하지만 엘레나는 이제 와서야 자신의 입장을 이해한 건가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고, 마지막으로 남겨두었던 그녀의 흥미를 잃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그럼, 잘 부탁해."
손을 흔들거리면서 등을 돌리고 걸어가는 엘레나의 귀에, 이제 아루아가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두운 통로로 돌아가서는 다시 노래를 부르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표면을 향해 걸어갔다.
마지막의 마지막, 아마 아루아가 돔에 내던져지기 직전에 낸, 귀청을 찢는 듯한 새된 목소리만큼은 미세하게 들린 기분이 들었다.
"역대 성녀님들의 비원이 이루어져. 이제 곧, 앞으로 조금. 후훗, 신화는 현대에 되살아나는 거야. 모두가 아르마 님의 위광에 무릎 꿇고, 자하나 님의 신성함에 눈물을 흘릴 거야."
목에 걸린 백룡의 펜던트를 만지면서, 엘레나는 환희를 억눌렀다.
"즐겨보자고요, 카론 폐하아아아."
역대 최대의 전쟁.
엘레나는 그 예감에 미소를 억누를 수 없었다.
사악한 에스텔드 바로니아와, 백룡 아르마 & 아렌하이트의 전쟁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에스텔드 바로니아 제 4권의 발매가 결정되었습니다.
아직 카론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습니다.
다음 장, 아렌하이트 전을 즐겁게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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