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왕도에서 (2) ~과거와 현재~ ――205(●)――
    2022년 05월 10일 15시 26분 11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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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1219gv/209/

     

     

     

     레페가 경악의 표정을 지은 것은 베르너가 이곳에 나타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체아펠트 기사단과 함께, 근위부단장인 고레츠카를 포함한 근위기사들이 다른 문에서 돌입해온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어.....어째서 근위가."
     "왕태손 전하의 호출이었다네."
     "세이퍼트.....!"

     

     분위기에 안 맞는 느긋한 어조였지만, 연세가 느껴지지 않는 몸가짐으로 세이퍼트 장작이 레페와 대화할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왔다.

     주변에는 기사단과 마수가 살육전을 벌이는 중임에도 기묘한 공백지대가 생겨났는데, 그걸 이해하는 자는 세이퍼트뿐이다.

     

     "루웬 전하는 베르너 경을 마음에 들어 하셨고, 전하의 약혼녀는 리리 양과 친하다지 뭔가. 사정을 알게 된 두 사람이 폐하께 리리 양의 구출작전을 탄원한 게다. 폐하와 왕태자 전하께서도 그걸 승인하셨고."

     "설마 그럴 리는......"

     "그러고 보니 경은 그 일의 세부사항을 모르겠군."

     세이퍼트가 막 생각났다는 듯 설명을 더했다. 시작은 마물폭주 때부터다.

     

     "마물폭주 때 베르너 경이 적의 책략을 간파한 덕분에 기사단이 구원받은 것은 분명하지만, 왕태자 전하는 물론 전하를 지키던 근위도 같은 입장이라서 말일세."

     옥쇄를 각오했던 근위들의 앞에서 전황이 바뀌었다. 가장 큰 격전지가 되었을 터인 전장 중앙의 최전선으로 체아펠트 부대가 스스로 병력을 전개했기 때문에다. 그 결과 근위기사들은 전황이 어려운 곳만 지탱하는 것으로 끝났고, 왕태자 자신도 지휘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마물의 대군을 대거 상대하게 되자 큰 손해도 각오하고 있었던 근위들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상태로 철수할 수 있었다. 왕태자 전하의 안전을 지킨 것도 포함해, 베르너 경을 은인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적지 않게 있다네."

     

     용사의 가족을 맡고 있는 체아펠트 저택의 호위에 근위기사들이 참가한 것에는 국왕의 명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근위들 중에서도 베르너 개인에 대한 은혜를 갚고 싶다는 소리가 있었기 때문에 거부감 없이 왕명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번에 폐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기사단이 왕도 방위전의 준비로 움직일 수 없는 현재, 움직일 수 있는 최대 전력을 써서 단시간에 처리해야 한다고."

     그와 동시에, 왕의 그 발언에는 단독으로 리리를 쫓아간 베르너에 대한 질타의 의미도 담겨있는 것이 사실이었지만, 그걸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이해력이 낮은 베르너가 아닐 거라고 세이퍼트는 생각하고 있다.

     

     "혼자서 쫓아간 것은 좀 무모했지만, 나로서는 젊은이다운 행동이라 생각하네. 자작한테도 그런 면이 있었구먼."

     "어, 어떻게 여기를."
     "왕도의 수로를 조사하던 부근부터 시작해야겠구먼."

     

     레페 일행이 이용했던 수로에도 이미 나라의 조사원이 들어간 것이었다. 그 때문에 물의 원류에 해당하는 부분은 크룸셰 산보다 더욱 오지에 있는 산이라는 것까지는 파악하였다. 왜 물이 흘러오지 않는 점을 이제부터 조사하려던 참이었던 것이다.

     

     "의외로 크룸셰의 호수와 왕도의 수로는 같은 원류일지도 모르지. 그쪽은 나중에 조사할 필요도 있을 테고. 어쨌든 지하수로와 크룸셰의 호숫물을 끌어오는 수도교가 거의 평행한 것은 파악하고 있었다네."

     "그것만으로도 이렇게나 빨리?"
     "그건 베르너 경의 운이 좋은 것과 여태까지의 준비가 중첩된 결과라네."

     

    성문의 경비를 강화하고 있던 위병이, 중상을 입으면서도 스카이워크를 써서 외벽 바깥에 나타나 그 자리에 쓰러진 베르너를 바로 발견한 것이 우연이었다면, 전투를 대비해 회복술사가 성벽 부근에 모여있었다는 점은 행운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참고로 이 스카이워크는 안하임 공방전 시작 전에 프렌센한테 맡겨두었기 때문에, 여태까지 쓰지 않고 소지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치료 중에 들어온 또 하나의 소식이 레페와 리리의 뒤를 쫓기 위한 최대의 정보가 된 것이었다.

     

     "베르너 경은 수도교 순찰 임무를 맡았을 때 매뉴얼을 작성했었다네. 그리고 수도교를 순찰하던 자들은 그 매뉴얼대로 갑자기 지면이 함몰된 구멍의 보고를 바로 했었던 게다."

     

     함몰된 위치가 판명된 시점에서 베르너의 뒤를 쫓기 위해 준비하던 사람들이 모여든 것도 있어서, 즉시 행동을 일으킬 수 있었던 자들이 선행해서 그곳으로 달려갔다.

     

     "나도 놀랐지 뭔가. 그 수도교를 만든 원인이었던 함몰지대가 사실 유적의 지하 1층 부분이 일부 무너진 것에 의한 것이었다니. 그야 균열에 물이 고이지 않을 법도 하지. 천장의 균열을 통해 물이 유적으로 흘러들었을 테니까."

     그리고 목적지가 확실해졌기 때문에 일부러 걷기 어려운 지하수로로 이동할 필요도 없다. 얼굴에만 얼룩이 묻은 베르너를 포함해, 보병과 기병을 통틀어 300명 정도가 수도교 근방으로 달려가서 함몰지대 주변에 숨겨져 있던 입구를 찾아내어 유적으로 침입한 것이었다.

     

     "......왕도 방위의 책임자와 일부 근위가 여기 있는 걸 보면, 왕도는 아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군요."
     "마군이 왕도로 향해오는 건 말인가. 국경에서 스카이워크로 정찰병이 돌아왔다네. 내일 정도에는 적들이 도착하겠지."
     "그런......"

     

     세이퍼트의 어조는 뭘 이제 와서, 라는 어조였다.

     

     "경은 뭔가 착각하는 모양이네만, 왕도습격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왕실과 대신급 귀족만이 알고 있네. 그중에서 내 역할은 작전 입안까지. 이미 국가적 차원에서 움직이고 있는 이상, 내 할 일은 끝난 것이네."
     "국가가 움직있다면."

     "마군도 갑자기 왕도 부근에 나타나지는 않겠지. 왕도의 방위는 전체의 일부에 불과해. 국경의 정찰. 그곳부터 왕도까지 이르는 여러 마을과 촌락의 인적피해를 최소한으로 하기 위한 피난계획, 그를 위한 물자의 준비. 그 후의 재건의 지원계획까지가 작전이지."
     "......"

     "그륀딩 공작이 왜 요즘 모습을 보이지 않는지 생각해 보았나? 공작을 중심으로, 공직에 앉은 자들은 거의 불철주야로 왕도방위전의 전 단계는 물론 그 후까지의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행동하고 있었다네."

     

     하지만 그 탓에 인력이 부족해져서, 여러 잡무가 관계없는 사람들한테 돌아가고 말아서 베르너 경한테 쓸데없는 일을 늘려버렸다며 재상이 미안해했다고 덧붙였다.

     

     "국경에서 반드시 상대를 포착할 수는 없는 이상, 주민 피해를 최소한으로 하면서 상대를 끌어들일 전장을 이쪽에 유리한 장소로 고정시킨다. 베르너 경이 안하임에서 했던 방식을 확대시킨 것이네. 그건 좋은 참고가 되었지."
     "피난계획이라니, 저는 그런 말을 들어본 일이....."
     "그 결투재판 뒤에 왜 그렇게나 시간을 두었는지 생각해보았나. 조사를 위해 왕도의 교회 내부에 의심스러운 인물이 있다는 것까지는 파악해놓았다. 설마 경이었다고는 생각도 못했네만. 그래서 왕도의 교회가 아닌 피노이의 최고사제님이 피난계획을 직접 맡았다네."

     특히 왕도에서 떨어진 국경 부근의 주민을 피난시키려면 준비에 시간과 일손이 필요해서, 왕도 내의 청소에 시간이 너무 걸려버렸다는 것에서 일단 말을 끊고는, 너무 많은 마도 램프 때문에 확 밝아진 주변을 둘러보던 세이퍼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 슬슬 괜찮겠지."
     "무엇을?"

     "경은 능력은 높지만 실전 경험이 부족하구먼."

     

     그렇게 말하고서 얼굴의 방향을 바꾼 세이퍼트의 시선을 쫓던 레페는 처음으로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리리의 주변에는 신병의 안전을 확보한 바르케이 부대와 여기사가 검을 휘두르며 마수를 내쫓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 인질로서는 쓸 수 없다. 그리고 베르너 자신도 직속 기사들과 유리아네와의 접근전을 시작하고 있어서, 그곳에 가는 길에는 기사단이 전력을 전개시키고 있다. 레페를 지키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완전히 분단되었음을 이제 와서 깨달은 것이다.

     

     "경들이 리리 양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으면 좀 불리해지니 말일세. 대신관으로서 마법을 쓸 수 있는 경을 상대할 때, 지시를 내리기 앞서 경의 목숨을 취할 수 있을지에 확신이 없었네. 그래서 일부러 경과 어울려 잡담을 해준 거라네."

     지휘하는 사람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무기뿐만이 아니라는 세이퍼트에 대해, 레페가 처음으로 과격한 어조를 쓴다.

     

     "세이퍼트 장작, 네놈은 모른다! 신은, 신탁은 절대적이다! 마왕을 이용해서라도 그분의 자식에게 미래를 맡겨야 했다! 내가 틀리지 않았음은 언젠가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거다!"
     "그럴 일을 없을 걸세."
     

     진심 어린 레페의 외침이었던 반면, 세이퍼트의 어조는 싸늘했다.

     

     "경 같은 사람은 역사가 증명한다는 둥 언젠가 만인이 이해한다는 둥 말하지만, 그런 일은 없다네. 지금도 귀족과 왕족이 썩었다는 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천년이 지나도 비판하는 자는 반드시 했다네. 만인이 한 명의 의견에 납득하는 일은 결코 없다는 뜻이지."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던 세이퍼트는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나도 경도 서로가 상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 경은 이상을 말하고 난 실무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네. 그리고 내 관점에서 보면, 경은 질 나쁜 망나니에 불과하다네."
     "망나니?"

     "경은 이상이라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현실이라는 길을 벗어난 게야."

     세이퍼트는 그렇게 말하고서 가볍게 손을 들었다. 다음 순간, 레페의 사각에 전개하였던 궁병대가 일제히 화살을 쏘았다. 세이퍼트가 잡담을 하는 사이. 주변의 마물을 처리하고 궁병대의 안전을 확보한 다음 신호를 기다리도록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번에 30발의 화살이 박힌 레페는 말도 못 하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거기다 만일을 위해 한 기사가 끝장을 내었다.

     

     "흠, 컴포짓 보우라는 건 대단하군. 숏 보우 정도의 크기인데도 이런 장소에서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위력이야."
     "괜찮으셨던 겁니까, 각하."

     직속 기사가 물어보았다. 세이퍼트는 작게 웃었다.

     

     "대신관을 쓰러트린 일? 교회 측은 자기들이 대응하지 못한 점이 불만이겠지만 강경수단은 못 쓸 거라네. 죄명은 명백하고, 집행한 자는 이 장작 아닌가."

     거물한테 싸움을 거는데 뒤따르는 위험성은 교회 측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지나쳤다며 폐하의 질타를 받고 반성한 내가 영지의 일부를 나라에 반환하게 될 걸세. 왕실은 책임자를 벌했으니 더 이상 죄인을 멋대로 처단하는 건 용서 못한다고 교회 측에 대답할 수 있지. 그 정도로 끝날 걸세."

     원래부터 영지를 반환할 셈이었지만 예정이 빨라졌을 뿐이다.

     

     "늙은이는 책임을 지기 위해 이런 지위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네."

     마지막으로 그렇게 대답한 세이퍼트는 전개한 궁병과 직속기사들한테도 리리의 호위를 맡도록 지시를 내리고는, 자신도 그쪽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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