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Theater14・first half -0×0=실/반 scene3
    2022년 05월 01일 10시 59분 40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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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0230fu/109/

     

     

     

     흙먼지가 일어나는 창고 안. 리리는 비닐테이프로 손을 뒤로 묶인 채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 있다. 내 옆에는 마찬가지로 묶여있는 카에데의 모습.

     예전에 리리를 유괴했던 범인인 후지마키가 탈옥해서, 다시 리리를 유괴. 그때 카에데도 함께 유괴당했다는 장면이다. 아카리와 미즈호는 리리가 납치되는 장면만 목격했다. 하지만 괴롭히던 상대였다 해도, 리리를 구하기 위해 선생들한테 연락을 해주었다.

     

     

     "하하하, 이제야 재회했구나, 리리. 역시 이건 운명! 이 만남은 운명이었어."

     

     

     배우 쇼지 히로 씨가 연기하는 후지마키는 상냥하고 성실해 보이는 모습이지만, 이런 악역 연기를 정말 잘한다. 쇼지 씨ㅡㅡ후지마키는 안경을 들어 올리며 혀를 날름거리더니, 기절한 척을 하고 있는 나를 찬찬히 관찰했다.

     

     

     "방해꾼이 들어온 건 뼈아팠지만, 뭐 좋아. 이전의 나라면, 흐흐흐, 저 애도 흥미의 대상이었겠지만...... 지금 내 눈에는 너만 들어오거든."

     

     

     후지마키는 그렇게 말하고는 날 위를 보게 눕히더니, 발끝부터 목덜미까지 손가락으로 쓸고 있다. 야간 피부가 잠길 정도의 힘. 불쾌감이 등줄기를 흐를 때마다, 리리로서의 굴욕감으로 폭발할 듯한 감정을 진정시켰다.

     리리. 그리고 리리야. 두 사람의 경계가 흔들리는 중요한 장면이다. 기절한 척을 계속한다는 것은, 겁먹고 도망친다는 뜻. 하지만 리리의 역할은 그게 아니다. 리리가 악한 인격으로 태어난 이유는ㅡㅡ선량한 자신을 지키기 위함이니까. 주변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잔혹하게 행동해서, 자신을 해하려고 생각하는 자가 사라질 때까지.

     

     

     자아, 눈을 떠, 히이라기 리리.

     묶이고 일방적으로 희롱당해도, 그 송곳니는 살아있으니까.

     

     

     "더러운 손으로, 만지지 마."

     "!"

     

     

     타인을 믿고 배신당한, 천진난만하고 연약한 리리야.

     그녀가 다치지 않는다면ㅡㅡ죽어도, 상관없어.

     

     

     "히, 히히. 뭐야, 기운있잖아. 넌 그래야지. 만났을 때가 생각나네.'

     "너 냄새난다고! 다가오지 말란 말, 못 들었어?"

     "으아아아아아!! 나의 리리는, 그런 말 하지 않아!"

     

     

     격앙. 분노와 함께 머리를 쥐어뜯는 후지마키. 그는 지금, 굴욕감 때문에 주변이 안 보인다. 그래서 그 틈에 어떻게든 묶인 손을 풀어야만 한다. 학대받고 함정에 빠졌던 내가,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하고 있다. 이 무슨 비참함, 이 무슨 굴욕이람.

     아아, 그래도, 주눅 들 수는 없다. 도망친다면 제일. 그게 아니어도, 내가 리리야한테 주도권을 넘기지 않고 죽는다면 그걸로 됐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어.

     누구를 다치게 해도, 관계없어.

     

     나는 단지, 자신을 위해 움직일 뿐.

     

     

     "그러니까, 관계 없는데."

     

     

     작게 중얼거린다.

     왜 그 아이들은 내게 참견하는 걸까. 왜 그 아이들은, 나와 마주 하려는 걸까. 아무리 내가 뿌리쳐도, 아무리 내가 상처 입혀도 어째서, 일어서는 걸까.

     

     

     "후우, 후우, 후우...... 머리 좀 식히고 오마. 3시간 뒤에 돌아올 테니, 너도 고분고분한 태도를 생각해두도록 해. 그렇게 있으면 친구가 안 생긴다고. 마이 스위트 허니."

     "저기, 화장실 가고 싶은데? 이거, 풀어줘."
     "거기서 해. 뭐, 내가 나중에 열심히 청소해 줄 테니까. 이히히히히히히."

     "쳇."

     

     

     창고에서 나가는 후지마키.

     콘크리트에 손목을 비벼댄다. 팔에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후지마키에게 당한 흔적이 있다. 이제 와서 늘어난다 해도 상관없다. 리리야한테 고생시킬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빨리 도망치면, 되는데. 상처 투성이인 손목을 신경 쓰지 않고, 풀린 손으로 카에데의 손을 묶은 비닐 테이프를 붙잡는다. 도망치면 돼. 혼자 도망치면 돼. 그런데, 어째서.

     

     

     "아, 아파."

     "정말, 비참해."

     

     

     움켜쥔 손은, 볼품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것이 정말 우스워서 흘러나온 말은, 그 이상으로 굴욕적이다. 마치 나까지 바보가 되어버린 것 같은.

     

     

     "컷! 좋아, 장면 전환이다."

     

     

     배역이 쑤욱 빠져나간다. 나의 비닐 테이프는 끊기 쉽도록 해놓았지만, 란의 비닐 테이프는 간단히 풀리지 않도록 보이기 위해 꽤 강하게 묶어놓았다. 그걸 벗기고 부드러운 것으로 바꿨었지만, 이다음의 장면은 쳐들어온 모두와 공동으로 촬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오늘은 선생 역할의 아이카와 씨가 다른 일로 없기 때문에, 훗날 촬영할 예정이다.

     

     "이야~ 좋은 연기였다. 다친 곳은 있어? 츠구미쨩, 린쨩."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쇼지 씨."

     후지마키를 멋지게 연기해 낸 쇼지 씨가 부드럽게 말을 걸어줬다. 내가 고개를 숙이자, 테이프를 막 떼어낸 린도 나란히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응응. 요즘 애들은 예의 바르고 착한 아이가 많네. 린쨩도 수고했어. .......그럼, 난 이만."
     "네."

     

     바쁘다는 듯 떠나는 쇼지 씨를, 린과 둘이서 지켜본다.

     

     "바빠보여. ......츠구미는 다음 예정 있어?"

     "딱히 없어. 린쨩은?"
     "없어. 그럼 같이 놀래!?"

     

     린은 내 손을 잡더니,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럼, 그럼, 이 다음ㅡㅡ"

     "저기~ 린쨩."
     "ㅡㅡ이나호 씨?"

     

     정말 미안하다는 듯 린에게 말을 건 사람은 이나호 씨였다. 히타치 이나호 씨. 린의 매니저.

     

     "내일 일이 오늘로 바뀌어서..... 미안해."

     "으엑...... 일이라면 어쩔 수 없죠."
     "아하하. 린쨩, 내일 나도 한가하니 같이 놀자."
     "으, 응!"

     

     다음 일로 향하는 린을 배웅한다. 그렇게 되자, 나는 혼자 시간이 남아버린다.

     

     '어쩔 수 없지. 대디와 마미한테도 부탁은 하고 있으니.....'

     

     적어도 지금은, 내 오디션을 대비하자.

     

     "코하루 씨."
     "예."
     "오디션의 일, 조금 더 들려주세요." 

     "알겠습니다, 츠구미 님."

     스탭과 감독들에게도 인사하고서, 업무용 차량에 올라탄다. 평소대로 운전수인 마카베 씨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차량의 문을 열어주었다.

     

     "오디션의 상세한 내용 말인데요, 1대1의 연기를 한다네요."
     "일대일이요?"

     "네. 상대 배우는 바꾸지 않은 채, 같은 대본으로 연속해서 한다네요. 후보는 츠구미 님 외는 1명뿐. 2조네요."

     상대를 바꾸지 않는다니, [요정의 상자] 때의 오디션을 떠올리게 한다.

     

     "심사원은 없어요. 어디까지나 관객의 앞에서 연기를 하실 뿐이라네요. 그때의 연기와 관객의 상태도 가미해서, 에마 씨의 판단으로 오디션 통과자를 결정하게 된다고 해요."

     

     그렇구나~ 선공이냐 후공이냐에 따라 난이도가 바뀔 것 같다. 2조라면 평가기준이 되는 선공이 불리하겠지만, 심사원을 두는 타입이 아니라면 신선한 무대라는 의미에서 후공 쪽이 불리할지도.

     

     "상대 배우는ㅡㅡ시죠 레키가 담당한다네요."
     "엥...... 시죠, 레키?"
     "네. 3년 동안 활동을 쉬고 있었지만, 이번에 현역 복귀의 재활훈련도 겸하는 모양이더라고요."

     시죠 레키.

     그 이름을 떠올리자, 관련된 나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분명, 첫 공동 연기에서 너무 무섭게 해 버려서 불면증을 일으키고 말았던 분이다. 그 후에도ㅡㅡ

     

     

     '어라?'

     

     

     ㅡㅡ그 후에도, 뭐였지? 표면상의 기억은 바로 나왔다. 하지만 그 이상 깊은 정보를 이끌어내려 하면, 마치 뭔가에 거부당하는 것처럼 이끌어낼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도 시죠 레키의 이름을 떠올렸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에도 이상하게 자기 안에서 그다지 관련된 추억이 떠오르지 않았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분명 과거와 관련된 인물이다. 그럴 터인데, 어라?

     

     

     '더욱, 깊이.'

     

     

     의식을 투명하게.

     의식의 저항을 억누르고.

     지식의 심연으로 내딛는 것처럼.

     

     

     '더욱, 더욱, 더욱.'

     

     

     의식 속. 새하얀 공간. 어둠을 향해 손을 뻗자, 키리오 츠구미는 당황한 기색으로 내게 달려오다가ㅡㅡ너무 서둘렀는지, 넘어졌다.

     

     

     『아. 가 아냐. 잠깐, 기다려ㅡㅡ』

     

     

     키리오 츠구미가 나의 손을 만지기 직전. 발밑이 쪼개지더니, 빛의 비누 방울이 어둠 속에서 떠올랐다. 그 모든 것이 내게 부딪혀서 터지자, 기억의 파도가 흘러들었다.

     

     

     

     

     

    ――『호러 여배우라. 뭐든 상관없지만, 내 발목이나 잡지 말라고』

    ――『뭐뭐뭐뭐냐, 그 연기는!』

     

     

     

    ――『무시해서 미안했다. 너는 틀림없이, 일류 연기자다』

    ――『가족들은 반대하고 있어서 말이야. 케케묵은 자존심만 남은 집안이지』

     

     

     

    ――『하하, 너와 있으면 마음 편해서 좋아. 이상한데, 정말 이상해』

     

     

     

     

     

     

    ――『츠구미』

    ――『너는, 대단해』

     

     

     

     

     

     

     

     

    ――『나는』

     

     

     

     

     

     

     

     

    ――『나는, 네가 좋다』

    ――『너를――사랑하고 있다』

     

     

     

     

     

     

     

     의식이, 멀어진다.

     깊은 곳에 가라앉는 것처럼.

     

     

     

     "츠 츠구미 님!"

     

     

     

     어둠 속으로 잠수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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