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Theater14・first half -0×0=실/반 scene5
    2022년 05월 01일 18시 35분 14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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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0230fu/111/

     

     

     

     흔들거린다.

     따스한 어둠 속.

     마치 양수 속에서 둥둥 떠 있는 것만 같다.

     

     

     『돌이켜보면, 만남은 그런 느낌이었어』

     『자존심 세고 자신만만한......소위 말하는 거만한 사람이었지』

     『그 후로 불면증에 걸렸으니, 어떻게 할 거냐! 라며 화냈을 때는, 손가락을 가리키며 비웃어줬어』

     『몇 번이나 부딪히고, 몇 번이나 화내다가, 결국은 서로가 서로를 인정했다』

     

     『라이벌이며, 싸움 친구. 친구라고, 생각했었어』

     

     『솔직히..... 음. 이런 기억은, 네 족쇄에 불과하다고만 생각했지만.....』

     『여기까지 왔다면, 여자는 배짱. 잠수할 만큼 하고서 갑자기 솟구치는 것이야말로, 호러 여배우의 진수라고!』

     

     

     흔들거린다.

     따스한 목소리가 들린다.

     떨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단지, 부드럽고 온화한 그녀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진수......라니, 그건 조금 다른 듯한.....?'

     

     

    ――――――――――――――――――――

     

    ―――――――――――――――

     

    ―――――――――――

     

    ―――――――

     

    ―――

     

    ――

     

     

     

     

     

     

     ――1990년 11월 X일.

     

     

     그로부터, 그와는 왠지 만날 기회가 늘었다. 이 넓고도 좁은 업계. 왠지 함께 연기하는 일도 늘어났고, 그럴 때마다 어깨동무를 하며 한잔 하러 가는 일도 늘어났다.

     그날도 평소대로 촬영을 끝낸 그ㅡㅡ레키에게 적당한 변장을 시키고서, 밤의 어묵집으로 끌고 갔었다.

     

     "건배~!"

     "건배. ......정말이지, 항상 그렇지만 억지구나, 너는."
     "그래?"

     

     차가운 홋피를 목에 흘려넣자, 알콜이 식도를 뜨겁게 달군다. 맥주잔을 탁자에 내리치듯이 놓자, 기분 좋은 숨결이 뱃속에서 흘러나온다.

     

     "아저씨냐고."

     "누가 아저씨야, 누가. 아직 30대 아니다?"

     "......그럼, 아줌마냐."

     "뭐라고 했어? 아・저・씨."

     

     내 말에, 레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처음에는 꽤나 거만했지만, 만남이 길어지니 저래 뵈어도 꽤 붙임성이 좋고 돌보기도 잘한다. 뭐라고나 할까. 정을 잘 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레키는 평소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흐리더니, 한숨과 함께 술을 들이켰다. 꼭 매번 억지로 끌고 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친구가 그런 표정을 지으면 신경 쓰이잖아.

     

     "...... 그래서"
     "그래서라니? 주어가 없으면 무슨 말인지 모른다고, 츠구미."

     대충 넘기려는 레키의, 굳게 찌푸린 미간을 손가락으로 찌른다. 그랬더니, 그는 눈에 띄게 어깨를 떨구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왜 그런 못생긴 얼굴하고 있는데?"
     "못생긴...... 크, 크크, 내게 그런 소리를 한 사람은, 이전에도 앞으로도 츠구미뿐이겠지, "

     

     레키는 분명 핸섬하지만, 이 업계에 얼굴이 반반한 남자가 많은 건 당연한 일. 얼굴만으로 말하자면, 난 레키보다 카키누마 쪽이 취향이다.

     

     "결혼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해?"

     "결혼? 흥미 없으려나. 나는 연기가 애인이라서."
     "뭐, 넌 그렇게 말하겠지."

     레키는 나의 태평한 모습에 어이가 없었는지, 아니면 털어냈는지 기세 좋게 남은 술을 들이켰다. 와인에는 강하지만 일본주에는 약하다고 호언하던 레키는, 그것만으로 귀까지 빨개졌다.

     

     "맞선이야."

     "어라, 축하해."
     "...... 결혼에, 흥미는 없어."

     

     어린애처럼 삐진 레키에게, 무심코 "어쩔 수 없네." 하면서 웃는다. 나이가 30이나 되었지만, 분명 그것 때문의 이야기는 아니다. 가족의 이야기를 하면 언제나 웃으면서 얼버무리던 레키. 그가 이렇게까지 고민한다면, 그냥 단순한 부모 자식 간의 이야기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평범한 부모 자식관계'의 경험치가 낮은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지만, 그에 대해서는 눈감아주기로 하자.

     

     "그럼 거절하면 되잖아."
     "어이. 그게 가능했으면 고생은 안 한다고. 가문을 잇는 걸 뒤로 미루면서까지 배우가 되었다. 그런데다 맞선 하나도 성공시킬 생각이 없다고 하면, 허락받을 리가 없어."

     

     술진을 움켜쥔 레키의 손끝이 약간 하얘진다. 다시 따른 뜨거운 술의 수증기가 일어나는 수면에 비친 것은, 그의 어떤 표정일까. 수면에 비치는 나 자신을 삼키려는 듯 단숨에 마시고는, 그대로 탁자에 엎어지고 말았다.

     

     "괜찮아~?"

     "난 문제없어. 언제나 그랬지."
     "목소리가 상기되었잖아, 정말."

     그에게 걸어줄 만한 말은 뭘까? 동정? 공감? 질책? 그런 누군가의 의견으로 자신을 굽힐 정도로, 자신을 바꿀 정도로 레키는 순수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이 비뚤어진 자에게, 나처럼 같은 비뚤어진 자가 거는 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 아무 장식도 없는 진심일 것이다.

     

     "결혼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면 되잖아."
     "...... 남의 말을 듣기는 한 거냐? 츠구미."

     "다 들었거든. 하지만, 그래서 어쨌다고? 레키. 당신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건 당신뿐이고, 당신의 걸음을 멈출 수 있는 건 당신뿐."

     

     누군가한테 들었으니까.

     부모가 이렇게 하라고 들었으니까.

     자신 이외의 의지로, 삶의 방향을 강요당했으니까.

     

     그런 일이, 무슨 변명이 돼?

     내가 걸어왔던 길은, 언제나 아픔과 두려움으로 채색되었다. 술에 절은 아버지도, 남자에 빠진 어머니도, 꿈을 이룬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조부모도. 그 전부한테 제지당했다면, 지금 여기에 나는 없었다.

     

     "레키."
     "...... 뭐야."
     "부끄럽든 아무 생각 없든 볼품없든 더럽든 일단 나아가 봐. 그럼 조금은 당신을 인정해 줄게."

     "흥."

     내가ㅡㅡ솔직히 고백한다면, 내가 타인에게 오만불손한 말투를 하는 건, 그를 상대할 때뿐이다. 그건 역시, 분하지만 내가 레키의 라이벌이며 최강의 경쟁상대이며, 마음을 터놓은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라고, 생각한다.

     

     "네가 인정해 줄 필요는 없어ㅡㅡ하지만."

     "하지만?"

     "솔직하지 않은 네게, 나의 멋진 모습을 찬양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도 나쁘진 않군."
     "뭐야 그게?"

     

     기분이 돌아온 레키의 모습에, 무심코 쓴웃음이 흘러나온다. 역시 그는 이러지 않으면, 제 실력이 안 나와. 그걸 인정하는 것은 못마땅하지만...... 나쁘지는, 않을지도.

     

     "츠구미."
     "왜?'

     "말해볼게. 그렇게 한다면...... 아. 도쿄항의 부두에서 만나고 싶은데."
     "어어...... 음~뭐 좋아. 그 대신 별것 아닌 이야기면 화낸다."

     

     겨울도 한창인 때다. 바람은 차갑고 공기는 피부를 에이는 듯하다. 도쿄항이라면 바닷바람이 정말 춥다. 추위 자체에는 내성이 있는 편이라고 자부하지만...... 뭐, 좋아.

     

     "정말이지, 어쩌다 이런 꼴이 된 건지. 난 단순한 걸지도 몰라."
     "레키가 단순? 그런 사람이었어?"

     "...... 지금은 잊어. 자, 벌이도 괜찮을 텐데 왜 이런 싸구려 술만 마시는 거야. 적어도 맥주를 마셔, 맥주를."
     "싸구려 입이라 미안하네요. 하지만 호피 맛있는걸."

     술은ㅡㅡ술은,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마시는 것은 돌아가신 아버지처럼은 되지 않으려는 자신에 대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누군가와 나누는 술잔이 즐거운 자신이 있었다.

     

     "자."
     "음."

     

     둘이 모여 술로 달궈진 얼굴을 돌리면서, 술잔과 와인잔을 들면서 건배를 나눈다. 수면이 일렁이면서 튀어 오른 방울이 손가락에 닿자, 그것이 왠지 이상했다.

     

     "미래를 위해."
     "그래."

     마주친 술의 맛 따윈,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손가락에 튄 알콜의 싸늘함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내게서 열기를 빼앗은 싸늘함을, 이상할 정도의 온기와 함께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2000년을 맞이해서 술렁이는 세상 속.

     신년에 불려 나온 그 도쿄항의, 바닷바람 속.

     

     

     

     

    ――『나와, 결혼해줘』

    ――『뭐어?』

    ――『나는, 네가 좋다. 너를――사랑하고 있다』

     

     

    ――『너처럼 멋진 여성을 집안에 들인다면, 그 완고한 부모도 납득하겠지. 아니어도 납득시킬 생각이지만』

    ――『집안에 들인……다니?』

    ――『고생시키지 않을게. 여배우 따위 하지 않아도, 내 귀가를 기다려주기만 하면 돼. 좋아하는 건 뭐든지 줄게. 어떤 거든 준비 할게』

     

     

    ――『하아, 그래?』

    ――『그래, 그러니까』

    ――『거절이야』

     

     

    ――『난 여배우의 길에 자부심을 갖고 있어. 그러니, 미안. 너희 집안에 들어갈 수는 없는걸』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여자의 행복이잖아?』

    ――『그건 당신 생각이고. 내 신념은 아니야』

    ――『그럼, 아아 그래, 그럼 일을 못하게 되면 돼! 만일 거절한다면, 츠구미한테 일이 돌아가지 않게 하는 일도――』

    ――『――레키』

    ――『윽, 아』

     

     

    ――『해볼 테면 해봐. 흙탕물을 홀짝이는 건 익숙해. 몇 번을 벼랑에서 떨어져도, 몇 번이고 일어나 기어오를 거야. 그때를, 두려움과 함께 악몽에서 보고 있으라구』

    ――『나, 나는, 단지, 너랑』

     

     

     

    ――『좋은 기회니까 말해줄게. 나는 내 신념을 모독하는 걸 용서 못해. 기억해 둬』

    ――『기, 기다려, 츠구미, 츠구미――츠구미이이이이이이!!』

     

     

     

     ....... 그는 전에, 내게 그런 말을 해줬다. 내용은 분명 이렇게. "약하고 한심했던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 있었다. 그녀가 날 도와준 뒤, 혼자서 떨고 있던 것을 발견했었다." 그래서, 레키는 말했다. 그래서 자신도 누군가의 걸음을 도와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그런 그의 꿈을 눈부시다고 생각했다. 나는 두려움으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그런 호러 여배우로서 업계에 서고 싶다고 바랬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가장 관계가 끊이지 않게 하고 싶었던 부모님은, 이미 없었으니까.

     

     

     

     

     그의 일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내 부모의 기억과 연결되고 만다. 그래서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면 이런 기억, 발목을 잡을 뿐이니까.

     아버지는, 회사가 도산하기 전까지는 성실한 샐러리맨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철이 들 무렵에는 초췌한 표정을 지을 때가 많았고, 자주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르게 되었다. 그럼에도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에 보이는 상냥함과, 커다란 손으로 어색하게 어루만져주던 모습을 좋아했다. 언젠가 제정신으로 돌아올 거라 믿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것은, 꿈꾸는 소녀의 얕은 망상에 불과했다. 하굣길에 내리는 빗속, 주차장에 세워진 차. 고뇌의 표정으로 움직이지 않는, 아버지의.

     

     

     

     

     나의 갈 곳 없는 꿈.

     그의 올곧은 꿈.

     내가 닿지 못했던 꿈.

     그가 손을 뻗었던 꿈.

     

     

     

     나는 또다시, 관계를 이을 수가 없었다.

     

     

     

    ――『너는, 포기했어?』

     

     

     

     아니.

     그래서 나는 그날, 레키와 결별할 때 떠나던 자신에게 한 가지 맹세를 하였다.

     

     

     "내게는ㅡㅡ아무것도 없다. 그런 사람이지만 세계적인 여배우가 되어서, 누군가를 이어주는 가교가 될 수 있다고 증명할래. 증명시켜 보이겠어."

     

     그것이 나의 맹세.

     나의 꿈과 누군가의 꿈을 이어주는 가교가 되는 것.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서, 미안. 이런 꿈도 희망도 없는 것은 불필요하다며 숨겨두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안 되겠네. 항상 어딘가에서 발을 헛디뎌."

     언제나 그랬다. 후회 따위 할까 보냐! 하면서 힘껏 버텨봤지만, 결국 이렇게 과거가 뒤쫓아온다.

     

     

    ――『하지만, 나는 츠구미를 알게 되어서, 기뻤어』

     

     

     메아리치는 목소리.

     그녀가 그렇게 말해주면 정말 기쁘지만.

     

     

     "너무 깊이 잠기면 안 돼. 츠구미. 너는 너의 인생을 살아."

     

     하지만, 안 된다.

     내가 지금, 그녀의 부탁에 대답해서 보여준 정보는 여기까지. 여기까지도 그녀의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안 돼. 그래서.

     

     

     "자, 부르고 있어."

    ――『응?』

     "가야 해."

     

     

     

    ――『아――잠깐만, 츠구미! 나, 나는……』

     

     

     

     의식이 떠오른다. 내 앞에서 멀어지며, 빛의 세계로 떠오른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서, 나 또한 기억 속에서 무릎을 꿇었다. 언젠가 그녀가 나를 ――――――――――,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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