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왕도에서 (2) ~과거와 현재~ ――171(◎)――
    2022년 04월 26일 13시 13분 57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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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1219gv/173/

     

     

     

     베르너는 첫 교차 후, 두 번째에서는 창을 크게 휘두르며 아직 여유 있는 것처럼 결투장 반대편에 있는 상대한테 어필했지만, 세 번째 이후에는 그러기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창끝을 내린 채로 약간 주춤거리는 것처럼 말을 이동시키자, 상대는 예상대로 말을 바꾼다고 선언하지 않고 이쪽으로 향해왔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와는 다르게, 가무리히 측도 질주가 시작되는 장소까지 천천히 이동하고 있다.

     

     이 결투에서는 말의 교체가 금지되어있지 않다. 희망한다면 말을 바꿀 수 있지만, 베르너는 자기자신도 포함해 말을 바꾸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가무리히 측 기사 쪽이 체격이 좋고 갑옷도 제대로 입고 있기 때문에 말의 부담이 크다. 한편 베르너는 말도 본인도 힘을 온존시키면서 상대의 창에 이쪽의 창을 대어 충격과 힘을 흘려보낼 뿐이었다.

     초반, 가무리히 측은 분노에 맡겨 머리를 노려왔지만, 슬슬 저쪽도 냉정해질 무렵이라고 베르너는 내심 판단하고 있다.

     

     가무리히 측이 달리기 시작했다. 베르너도 그에 응하는 것처럼 말의 배를 찼다. 차는 강함의 다름을 눈치챘는지, 디스벨트는 지금까지 보다 빠른 페이스로 달려갔다.

     네번이나 달리면 피아간의 공격 범위를 파악할 수 있다. 베르너 자신, 창과 창의 장시간 전투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창술> 스킬에는 상대의 무기가 창이라면 그 간격까지 자신 있게 파악할 수 있다는 특징도 있다.

     

     가무리히 측의 자세가 조금 전까지와 다르다는 점을 확인한 베르너는, 도중에 다시 한번 배를 찼다. 속도를 오려 단숨에 거리를 좁힌다.

     일부러 상대의 창을 받아내는 형태만 취했었지만, 네 번이나 반복하면 상대도 이제 솟구쳤던 분노가 가라앉는다. 상대는 냉정해진 상태인데, 베르너는 기운 있다는 어필을 안 하게 되고 창끝을 내린 채여서 피곤해진 것처럼 보인다.

     

     가무리히의 자세는 '멧돼지의 송곳니' 라고 불리는 똑바로 상대한테 창끝을 들이대는 형태. 마상창 시합 등에서 자주 보이는 그 자세다. 베르너는 머리를 노리는 것이 아닌, 몸을 노려서 말에서 떨어트리려 하는 것을 확신했다.

     상대의 창이 디스벨트의 머리의 옆까지 왔을 즈음, 베르너는 창끝을 기세 좋게 들어 상대의 창에 부딪혔다. 창이 튕겨 난 상대의 자세가 무너졌다.

     동시에 지친 상대의 말의 걸음이 흐트러졌고, 상대는 마상에서 자세를 추스리는 것이 벅찰 정도로 몸이 기울어졌다.

     

     그대로 창대를 마찰시키는 형태로, 상대의 창을 따라가는 것처럼 창을 미끄러지게 했다. 적의 창대가 베르너의 찌르기를 위한 가이드레일이 된다.

     베르너는 상대의 창을 이용해 가진 자의 몸을 향하게 하면서, 아주 약간 각도를 바꿨다. 정강이에 힘을 줘서 말의 배를 조이자, 이해했다는 듯 디스벨트가 힘차게 달려갔다.

     

     "앗!?"
     "이야아아아앗!"

     

     지금까지와는 다른 소리가 결투장에 울리며, 베르너의 팔에 충격이 덮쳤다. 공격을 성공한 베르너조차 몸이 기울어져서 창을 들 수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베르너는 가까스로 자세를 고치고 말을 세운 다음 돌아보았다.

     동시에 무거운 것이 지면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기세에 눌려서 격돌 위치보다 훨씬 베르너 쪽에 떨어져 있다. 침묵이 결투장을 지배하는 와중, 상대가 마상에서 떨어진 뒤의 룰에 따라 베르너는 말에서 내려섰다.

     디스벨트가 그대로 결투장 가장자리까지 달려가자, 그 자리에 있던 노이라트가 달랜다. 가무리히 측의 말도 기사가 낙마한 채로 건너편 끝까지 달려가서 기사에게 세워졌다.

     

     잠깐의 침묵. 리리가 약간 안도의 한숨을 쉰 순간, 가무리히 측의 기사가 작게 몸을 움찔거렸다.

     

     "크으으......"

     "그 일격을 받고도 아직도 일어서다니?"

     

     지면에 떨어진 가무리히 측이 작게 신음하면서 일어서자, 리리의 옆에 있던 아네트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그 발언에 고무된 듯한 가무리히 백작이 큰 소리가 심판석 반대 측에서 일어났다.

     

     "그래, 체아펠트 따위한테 지지 마라! 그 꼬마를 쓰러트려!"

     "죽여, 죽여버려!"|

     

     콜트레치스 후작가의 후계자 크누트가 이어서 소리지르자, 그에 응하는 것처럼 일어선 가무리히 측이 오른손만으로 재주껏 검을 뽑아 들었다. 관객석에서 환호성이 일어났다.

     지상전으로 이행된다고 판단한 베르너도 가만히 창을 지면에 꽂고는 검을 뽑았다. 여기서부터는 검과 검의 승부가 된다.

     

     

     

     

     "질 수 없다......질 수 없다아아아!!"

     "뭐!?"

     

     다음 순간, 단번에 거리를 좁히는 일격. 가까스로 검을 양손에 들어서 그 일격을 막아냈다. 오른손만으로 휘둘렀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이 양손을 덮친다.

     묘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왼쪽 어깨에서 피가 솟구쳐서 은색의 갑옷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격이다. 이 녀석 아픔을 느끼지 못하나?

     

     "구아아아아아!"

     "큭!"

     

     힘에 맡겨 억제로 상대의 검을 흘려냈다. 거리를 재기 위해 한걸음 물러섰지만, 이미 상대가 아무렇게나 거리를 좁혀와서, 다시 휘두른 일격을 가까스로 피한다. 머리 몇 가닥 정도는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마장과 다르게 공포는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느껴지는 것은 위화감. 크게 내딛으며 검을 찌르자 그걸 튕겨낸다. 손에 충격이 전해져 왔다. 스쳐 지나가는 듯 이동해서 거리를 둔다.

     

     "구욱......구욱......"

     "어이어이, 사람이 아닌 듯한 소리는 내지 말라고."

     사람이라기보다 야생의 짐승 같은 느낌이다. 잠시, 이 녀석 사실은 마족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 생각은 곧바로 버렸다. 지금의 왕도에 마족이 잠입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왕국도 그렇게 큰 미스는 하지 않았을 거라 믿는다. 그렇다면 대체 뭘까.

     

     "그오오오오오오!"|

     "크윽!"

     

     객석에서 비명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검을 맞댄 순간, 상대가 체중을 실어 누른 탓에 내 자세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어깨에 검이 닿았지만 갑옷 덕분에 가까스로 부상은 입지 않았다.

     검을 흘려냈지만, 다음 순간 자신이 날아가고 있음을 자각했다. 차였다는 것을 판단하는 것보다 빨리 지상에서 몇 번 구르다 튕겨 일어난다. 그대로 검을 옆으로 휘두르자 상대의 몸에 맞아서 불꽃이 튀었다.

     상대의 위치를 검으로 파악했으니 그곳에서 먼 방향으로 몸을 피했다.

     

     "큭.....!"

     "베르너 님!?"

     비명이 일어나는 와중에 내 이름도 불린 듯했지만 누구의 목소리인지 이해할 틈도 없다. 미처 다 피하지 못해서 이마가 베였다. 다행히 깊지는 않아 보였고 흐르는 피가 눈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오히려 식은땀 쪽이 눈에 들어가려고 한다.

     입속에 흙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은 방금 굴렀을 때 들어간 탓이겠지. 침을 뱉는다. 그러고 보니 그 확성 마법도 어느 사이 멈춰져 있구나.

     

     조금 시선을 움직여 녀석의 뒤에 있는 심판석을 바라보니, 대신관의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뭔가 대화하고 있다. 한쪽은 레페 대신관, 또 한 사람이 이 재판서류의 수속을 받아들인 마라보와 대신관인가. 아무래도 중단하려던 차에 방해한 모양이다.

     차라리 상대의 외모가 마물처럼 변화했다면 중단했겠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상태가 이상해도 중지하기에는 결정적인 원인이라 할 수 없다는 건가.

     

     조금 의외였던 것은 가무리히 백작이 침묵한다는 점이다. 백작은 무단파의 한 사람이니 자신도 무술의 소양이 있을 터. 자기 측의 기사가 이상한 것도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백작 근처에서 죽여라 베라 하는 녀석은 시끄럽구만.

     

     리리가 창백해져서는 이쪽을 보고 있다. 이마의 상처는 피가 돋보이니까. 하지만 역시 무사함을 어필할 여유는 없다. 그런 모습들을 한번 시야에 담자, 그 시선 가장자리에서 장작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악의 경우 죽여도 된다는 뜻이라고 납득했다.

     되도록 죽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 결투재판이지만, 저쪽은 보통이 아닌 상대로만 보이고, 확실히 죽이러 올 거라면 어쩔 수 없다. 호흡을 가다듬고 검을 고쳐 잡는다.

     

     "구욱......구오.......우오오오오오!"

     

     호흡을 가다듬던 상대가 다시 오른팔 하나라고는 믿을 수 없는 기세로 검을 내리친다. 양손으로 받아냈지만 충격이 심하다. 힘겨루기의 모습이 되자 상대가 침을 흘리면서 내게 얼굴을 들이밀지만, 시선은 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이상은 생각할 틈도 없다. 왼발을 오히려 내디뎠다. 몸을 기울임과 동시에 왼손을 손잡이에서 떼고, 이번에는 내 검을 바짝 붙이며 상대의 검을 흘려낸다.

     상대는 한 손으로 들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대로 공간이 남아있는 상대의 칼자루를 왼손으로 억누르면서 품에 뛰어들어 칼날이 아닌 머리로 상대의 안면을 가격했다.

     

     "그악!"

     "이야앗!"

     

     안면을 가격 당한 상대가 반걸음 뒤로 물러난다. 그 거리가 오히려 베스트다. 왼발을 차올려서 고간 부분을 정면으로 꽂아 넣었다. 상대는 완전히 앞으로 고꾸라졋다.

     크게 생긴 틈이었지만, 가까스로 자제했다. 가무리히 백작가에 호의는 없지만, 이 남자한테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상황에 대해서 나중에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점도 있다. 나는 손잡이로 상대의 목덜미를 쳤다.

     

     앞으로 고꾸라진 자세 그대로, 상대는 그 자리에 허물어졌다. 잠시 동안의 침묵 뒤, 심판인 레페 대신관이 조용히 소리 내었다.

     

     "가무리히 측의 기사는 일어설 수 없는 상태다. 이 승부, 할팅 측의 기사의 승리로 인정한다. 그러니 이 재판은 할팅 측의 주장이 옳다고 인정하여, 마젤 할팅의 무죄를 선언한다!"

     

     큰 환호성이 일어나며, 박수가 결투장을 가득 메웠다. 나는 크게 숨을 내뱉고는 검을 치켜들며 인사.

     

     먼 곳에서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안심한 듯한 리리의 얼굴을 보고, 조금 미소를 지으면서 일부러 인사. 환호성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관객석에 손을 흔들어주며 대기실로 돌아간다.

     마젤의 재판이라고 하는 바보 같은 문제는 일단 이걸로 끝이겠지만, 아직 귀족 사이의 이것저것이나 왕도습격 문제라던가, 중요한 부분은 전혀 끝나지 않았다고. 하지만 거물 귀족을 상대로 내가 나설 차례를 없다고 생각하지만. 다음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베르너가 결투장을 떠난 뒤, 열기에 휩싸인 채인 객석을 한번 바라보고서 그 자리를 떠나는 남자가 불쾌하다는 듯한 목소리를 숨기지도 않고 작게 내뱉는다.

     

     "이게 무슨 꼴이냐."
     "예......."

     "이 이상 이 문제를 질질 끌면 왕실이 교회에 간섭해올 거다."

     왕실 측에 이용당하는 결과로 끝난 것에 불쾌감과 불만을 숨길 수가 없다. 표정에는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옆에서 따르는 남자에게 짧은 지시를 내렸다.

     

     "그쪽은 시급히 처리하라."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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