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왕도에서 (2) ~과거와 현재~ ――164――
    2022년 04월 25일 10시 14분 37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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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1219gv/166/

     

     

     

     "저기, 뭐가 어쩌다 그렇게 된 겁니까."

     뭐가 뭔가 상황을 당최 모르겠다. 일단 설명 플리즈. 그렇게 생각하자 대신관의 옷을 입은 그 사람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브라지우스 이자크 레페라고 합니다. 피오니 방어전의 공로자인 자작 각하를 처음 뵙겠습니다."

     "정중한 인사 송구스럽습니다. 베르너 판 체아펠트라고 합니다. 예라, 제게는 부디 편히 말씀해주십시오."

     귀족인 내게는 존댓말을 해왔다. 그럼 방금 전의 사과는 내게 아니라 리리한테 했던 건가. 왠지 성가신 일이 벌어질 듯한 기색이다.

     

     "그래서, 상황을 확인하고 싶습니다만."

     "개요 정도면 좋겠나, 아니면 자세히 설명을 듣는 쪽이 좋겠나."

     "......개요부터 부탁드립니다."

     

     세이퍼트 장작이 그렇게 말해와서 대략적인 설명부터 요구했다.

     

     "흠. 단적으로 말하자면, 용사에 관해서 옆 나라 데리츠담이 피리를 불고, 우리나라 안에 그게 맞춰 춤춘 자가 있었네. 하지만 그게 외부로 누설된 결과 현재 왕국과 교회 측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대응할지 상담 중. 이게 개요라네."

     

     데리츠담. 분명 트라이오트의 동쪽에 위치한 나라였다. 그곳이 피리를 불었다는 말은.

     

     "저기, 혹시 트라이오트의 상황과 관련 있습니까."

     "경한테 책임은 없지만 그 말대로라네. 데리츠담이 구 트라이오트령을 탐내고 있지."
     "가능하다면 국경선을 서쪽으로 넓히고 싶다. 하지만 군을 움직이기는 무섭다는?"

     

     그런 상황에서 마장 정벌의 소문을 들었다는 거구나.

     

     "단번에 대군을 일으켜서 지배지역을 넓히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국내의 마물이 무섭지. 그래서 군을 동원하는 사이, 용사를 국내에 머무르게 하려는 생각으로 보이네."
     "판결의 피고라는 형태로 말이죠."

     "난 그와 그다지 친하지는 않지만, 부당한 판결의 피고가 되었음에도 주민이 곤란하다고 듣는다면 마군의 문제에 손을 뻗지 않을까 싶네."

     

     있을 법하다. 

     누명인 것을 알면서도 판결을 질질 끌고, 그 사이 마젤을 이용하려는 심산인가. 결국 이 소송은 처음부터 시간 끌기가 목적이었다.

     

     "피리를 부는 측의 의도는 알겠습니다."

     "소송은 신전에 대해서 이루어졌다. 용사가 성녀님한테 불순하고도 발칙한 태도를 취했다는 이유로. 신전재판은 대륙 어느 나라에서나 신전이 있다면 그곳에서 열리게 되어있으니, 이대로 간다면 피고인이 있는 데리츠담의 신전에서 열리게 되겠지."

     이번에는 레페 대신관이 입을 열었다. 발칙하다니.

     

     "쓸데없이 만졌다던가, 미혼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지붕 아래에서 함께 잠들었다던가."

     "함께 여행하면 그런 일은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나도 그리 생각한다. 하지만 그 소송은 서류상 처리되어 버렸지."

     

     왜냐고 생각했는데, 이유를 듣고 매우 화가 났다.

     마젤을 고소한 귀족A 왈 '용사라고는 해도 평민이니 글자도 못 쓴다. 그러니 대리인을 경유해서 소송의 내용을 이해하고 재판에 나올 것을 이해한다는 서장을 받아놓았다'고 한다. 마젤은 학교에서도 성적이 상위였는데.

     

     "그거 어느 귀족입니까."
     "미안하지만 그건 나중에 설명하도록 하자. 일단 고소가 받아들여진 문제를 설명하고 싶다만."
     "......알겠습니다."

     

     보통, 재판은 피고도 고소당했음을 승낙하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다. 아무리 이 세계가 중세풍이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서류상에는 '글자를 읽을 수 없지만 대리인이 설명을 받고 승낙했다' 라는 대리인의 서류와, 설명이 제대로 이루어졌음을 증명하는 입회인 증명서까지 형식적으로는 제대로 갖춰졌다고 한다.

     

     "데리츠담에서 설명을 받았다는 서류가 바인 왕국에 신전에 제출되었고, 서류상 문제가 없다면 수리될 것이다. 담당인 마라보와 대신관이 처리했다."

     "마라보와 대신관님의 의도는 뭐지요."

     그래도 고소당한 자가 용사다. 확인해도 될 텐데 확인도 안 하고 처리한 이유가 있을 터.

     

     "마라보와 대신관은 바인 왕국에서 고소한 귀족의 친척이다. 금품도 움직이는 모양이더군."

     내심 힘 빠졌다. 설마 하던 연줄이냐고.

     

     "하지만 여기서 다른 문제가 생겨났다. 담당이 된 마라보와 대신관의 부하인 캠벨 사제는 이 건을 이용하려고 한 것이다."

     캡벨? 어딘가에서 들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더니, 리리를 영입하러 왔던 사제잖아. 어, 그거 혹시.

     

     "대신관의 자리가 하나 비어있는 건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캡벨 사제는 자기가 그 자리에 앉기 위해 이 문제를 이용하려 했다. 이 재판을 무마시키는 대신 리리 양을 교회에서 봉사하는 수습생으로서 자기 수중에 두려고 한 것이다. 용사를 신전 측에 끌어들이기 위해서."

     

     오빠의 부당한 소송을 각하시켜줄 테니, 그 대신 교회에서 일하라는 말인가.

     

     "하지만 캠벨 사제는 리리 양과 접촉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문전박대했고, 요즘은 나와 함께 서고에서 작업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이 보기에는 행방불명이다. 확실히 리리와 접촉하는 건 의외로 어렵겠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캠벨 사제가 시간을 질질 끄는 사이 어딘가에서 착오가 생겨서, 재판의 서류를 다른 부서 사람이 목격해버린 것이다. 그 인물은 여직원이었늗네, 그 직원이 다른 직원한테 '용사가 교회 내의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것도 불순죄가 이유다' 라고 말하고 말았다."
     "음~ 결국은."
     "이미 이곳저곳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주로 교회에 대한 불만이지만."

     대신관님, 고뇌의 표정을 짓고 계신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있다면 교회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는 소동이 일어날지도. 아니, 어쩌면.

     

     "혹시."
     "자작은 이해가 빠르군. 일부 귀족이 교회에 불순이라니 무슨 말이냐며 공개질의서를 보내 놓았다."

     재상의 발언에 나조차 머리를 감싸고 싶어졌다. 

     

     "그중에는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체아펠트의 책임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 하지만 그 소리에 관해서는 내가 억누르마."

     

     저기, 왕태자 전하. 온실인데도 마이너스 온도로 내려간 것처럼 착각할만한 소리를 내기 말아주십쇼. 저조차도 무서운데요. 일단 화제를 돌리자.

     

     "음, 분명, 서류는 수리했다면서요."
     "그 말대로. 적어도 재판을 시작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지. 오히려 재판을 열지 않았을 경우, 신전재판의 존재 의의가 의심받게 되어버린다."

     

     대신관이 고뇌의 표정으로 대답했다.

     

     "서류가 위조되었다고 공표할 수는 없습니까."
     "그렇게 하면 대신관 공의 명예와 고소한 귀족가의 반발이 문제라네. 그 귀족가에서 우리 일족이 서류를 위조했다는 거냐며 소란 피우면 귀찮아져서."

     "어느 귀족가입니까."

     "콜트레치스 후작가라네."

     장작이 입을 열었다. 꽤나 그리운 이름을 들었구만. 아직도 있었냐고 따지고 싶어지는 가문이다. 긴급출동령이 내려졌던 피노이의 전장에 있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무심코 이상한 표정을 짓고 말았는데, 조금 오해당했을지도 모른다.

     

     "경의 나이로는 모르는 것도 무리가 아닐세. 현 국왕폐하의 외가인데, 당시의 당주는 우수했지만 그다음 당주가 꽤 평판이 나빠서 말일세."

     장작이 간단히 설명해줘서 나도 순순히 들어뒀다.

     

     "노골적인 말로 하자면 귀족사회에서는 계속 지는 쪽이었지. 왕비 전하를 고를 때에는 그륀딩 공작한테 지고, 왕태자 전하뿐만 아니라 다음 대에서도 슈람 후작한테 져버렸다네."
     "당분간 다시 일어설 여지는 없네요."

     

     그러니 비합법적인 수단을 썼던 건가. 하지만 왠지 묘한 위화감이 든다. 그렇게 생각했더니 그 이유 중 일부를 설명해줬다.

     

     "하지만 몇 대 전에는 왕비 전하를 배출했던 가문인 게다. 혈연 귀족은 많지. 그리고 콜트레치스 후작 당주는 현재 병으로 누워있어서, 후작부인이 사실상의 당주라 할 수 있네."

     당주의 나이를 생각하면 이미 상당한 나이일 터. 결국 딸과 손녀딸이 전부 왕가에 차인 여성이 사실상의 당주인가. 왠지 성격이 비뚤어졌을 것 같아. 아니 이거 어쩌면.

     

     "혹시, 고소한 것은 마젤이 목적이라기보다 제2왕녀 전하의 평판을 떨어트리기 위함입니까?"

     "부인한테는 그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장작, 이번에는 넌더리 난다는 표정을 짓고 계십니다.

     

     "차기 후작이 될 후작의 손자 중, 장남은 자기야말로 라우라 전하의 사위에 합당하다고 공언하고 있다네. 오히려 일방적으로 연모하고 있지."
     "하아. 사람됨은요."
     "행정 수완은 평균적이지만, 기질은 예술가 쪽이라네. 아름다운 공주는 아름다운 자신의 옆에 있어야 한다는 말을, 장미 꽃다발을 선물하면서 뻔뻔하게 말했다고 하네."

     그건 예술가가 아니라 단순히 기분 나쁠 뿐입니다.

     

     "한편, 차남은 부인한테 동조하고 있는 모양이라네."

     "저기, 참고로 여쭙겠습니다만, 부인과 그 자제분은 지금 어디 계신지요."
     "현 당주의 장남은 이미 병으로 사망했고, 그것도 있어서 후작 부인은 영지에서 지내고 있지."
     "부인이 설마 이렇게까지 어리석다고는 생각지 못했어."

     참견하는 왕태자 전하. 내뱉었다고. 결국 현 당주가 병으로 쓰러진 결과, 후작가 사람들이 제각각 폭주하고 있는 건가. 거기다 아무래도 총사령관이라 할 수 있는 흑막의 후작부인은 왕도의 정보를 전부 캐치할 수 없는 영지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다.

     거기에 옆나라 데리츠담이 용사를 상대로 한 재판이라는 수단을 재주껏 부추긴 결과, 교회 내부의 권력투쟁까지 얽혀서 소란이 커졌다라.

     

     나는 만나보지 않았지만, 귀족가 당주인 후작이 병으로 쓰러지지만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혼란스러운 상황은 되지 않았을 거란 생각도 든다.

     

     어쨌든 현재 상황을 간추리면,

     

     ・옆나라:데리츠담

       → 토지도 원하지만 용사의 힘도 필요하다.

         그래, 판결을 구실로 용사를 잠시 이용하자

     ・교회:마라포와 대신관

       → 후작가에 은혜를 입혀서 대신관의 지위 탄탄데스웅.

     ・교회:그 부하인 캠벨 사제

       → 나도 대신관이 되고 싶다. 그래 이 일을 이용하자

     ・귀족가:콜트레치스 후작부인

       → 사실 여부는 중요치 않아. 왕가에 수치를 안겨주고 싶어

     ・귀족가:콜트레치스 후작의 손자

       → 라우라의 옆에 있을 자는 나다. 용사 따윈 누명으로 몰락시켜주마

     ・서민과 일부 귀족

       → 용사님과 성녀님이 불손죄라니 무슨 일입니까! 설명을 바란다!

     

     라는 말이 되는 건가.

     

     저기~ 누가 좀 두통약과 위장약 좀 갖다 줬으면 합니다만. 아~ 어쩔 거냐고 이거. 손댈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래서 말이다. 리리한테는 미안하지만 협력을 부탁하고 싶다."
     "저, 말씀인가요."

     왕태자가 미안하다는 표현을 하는 것도 드물지만, 불린 리리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대행판결을 여는 방향으로 끌고 나갈 생각이다."

     

     대행판결. 다시 말해 피고인이 어떤 사정으로 판결에 나갈 수 없을 경우, 피고의 대리인이 그 판결에 응하는 방법이다.

     

     "대행판결 개최의 준비는 내가 하마. 서류 위조의 의심이 있는 이상, 마라보와 대신관한테 맡겨둘 수는 없지. 주민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고."

     

     실무는 레페 대신관이 해준다며 나섰다.

     

     "대행판결을 열 때, 용사 공이 판결에 나가지 못하는 이유를 증명해야만 합니다. 그 증인은 제가 하지요."

     

     재상이 그렇게 말해왔다. 이건 그건가, 데리츠담에 대한 견제구나. 나라 전체가 나서서 용사를 지킨다는 선언인가. 하지만 그건.

     

     "방해받은 콜트레치스 후작가가 리리를 원망하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그 위험성은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뒤처진 책임은 방심하던 내게 있다. 그러니 이 건에서는 내가 전면에 나서마."

     예? 전하, 지금 뭐라고. 그렇게 생각하자 공기가 단번에 변했다.

     

     "재상인 팔켄슈타인, 장작인 세이퍼트, 대신관인 레페는 이것이 내 명령임을 명시하라."
     "예이."

     세 사람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재상 클래스가 증인이라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왕태자 휴베르투스의 이름으로 명한다. 할팅 일가는 용사 마젤에 대한 부당한 소송에 대항하기 위해 왕실에 협력하도록."

     "아, 네."

     

     리리가 꿀꺽 침을 삼킨 것을 알겠다. 음, 이 박력은 다른 사람은 따라 할 수 없지. 그보다 물리적인 압박감을 느낍니다만 어떻게 된 거냐고. 진짜 카리스마란 이런 것인가.

     

     "대신관 레페, 이 판결의 원고 측은 콜트레치스 후작가의 관계자가 틀림없으렷다?"
     "예."

     "평민과 귀족가로서는 법적 지식에 차이가 너무 크다. 그러니, 대행재판은 쌍방의 대리인을 내세운 결투로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떠한가."

     "왕태자 전하의 의견, 지당하신 말씀이라 사료됩니다. 대행판결은 결투로 집행하기로 결정하도록 하지요."

     

     ......그렇게 나왔나. 하지만 어라, 그럼 혹시.

     

     "대리 피고인인 리리여, 그대가 부탁할 용맹한 기사는 누구인가."

     

     그렇게 들은 리리는 내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태는 예상 밖이었지만, 내 악평이 발휘될 때다. 내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숨을 들이마신 리리가 단숨에 말했다.

     

     "저는, 저의 대인으로서 여기 있는 베르너 판 체아펠트 님을 지명하겠습니다."

     

     리리가 날 믿고 지명해준다면, 나는 그에 응해 보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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