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왕도에서 (2) ~과거와 현재~ ――155――
    2022년 04월 21일 19시 16분 33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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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1219gv/157/

     

     

     

     일단 왕태자 전하와의 이야기를 끝내고서 오전 중에는 집무실에서 서류 정리. 안하임의 서류는 사인만으로 끝나는 수준이지만 제대로 보아둔다.

     

     "각하, 바켄로더 자작님이 면회를 희망하십니다."
     "알았다. 응접실로 들여보내."

     오산이라고나 할까 예상 밖이었던 것은 면회인이 많았다는 점이다. 빚을 청산해주겠다고 말하는 녀석이 있는 한편, 이후의 우호관계가 어쩌고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무시할 수도 없다. 부작 시절에는 아버지가 귀찮은 일을 처리해줬구나 하고 실감.

     1명, 빚을 대신 내줄테니 딸과 결혼하지 않겠냐고 말한 사람도 있어서 정중히 거절했다.

     

     일단 오전 중에는 이런 잡무를 하다가 점심식사 전에 퇴근. 점심을 같이 들자는 성가신 권유가 나오기 전에 도망이다. 현재의 나는 독립 자작이라서 영지도 없고, 관직도 붕 떠 있어서 그런 의미로는 좋은 신분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체아펠트 저택으로 돌아가서는 몇 가지 준비시켰던 일의 확인. 오늘은 사후처리만 할 생각이라서 측근들을 모두 쉬게 했기 때문에, 호위는 대리로 두게 되었다.

     두 사람을 쉬게 했다고 사람이 없을 정도로 백작가의 인원은 적지 않지만, 급할 일이기는 하기 때문에 로테이션을 노르베르트와 상담. 그래서 전에 신세 졌던 여기사한테 이번에도 동행시키게 되었다.

     이번 외출의 주목적은 리리의 장보기지만, 이번에는 내가 빚에서 도망쳐서 두문불출하는 게 아니다라는 일면을 보여줄 필요가 있기 때문에, 백작가로 오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가게로 가게 된다. 역시 여성의 쇼핑 중에 내가 계속 옆에 있을 수도 없으니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리리도 제대로 쉰 날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성실해.

     일한 몫의 급료는 거의 저금하고, 손수건이나 자수실만큼은 티루라 씨와 자주 사러 간다고 한다. 공부용 필기구 등은 백작가에서 준비하고 있다고는 해도, 조금 더 자기를 위해 써도 좋아 보이지만.

     오늘은 그런 의미에서는 왕도의 관광이라 쳐도 될까. 호위 역할이 되어버린 것은 참도록 하자.

     

     "그래, 이거면 됐어. 배치를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주욱 확인하고서 잠시 휴식. 마젤 일행도 오후에 라우라와 우베 할배와 합류한 뒤에 출발하기 때문에, 마젤과 리리한테는 가족의 시간을 보내게 하고 있다.

     

     "수고하십니다, 체아펠트 자작님."
     "에리히 공, 수고하셨습니다."

     기분전환 삼아 복도를 걷고 있자 에리히가 불렀다. 그대로 두세 마디 대화를 했다.

     

     "저희들은 오후에 출발할 예정이지만, 자작님께는 민폐를 끼쳤습니다."

     "아니요, 이쪽이야말로."

     

     왠지 에리히가 상대면 자연스레 존댓말이 나온단 말이야. 뭐 곤란하지 않으니 상관없지만.

     

     "자작님은 오후부터 장보기라고 들었습니다만."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고민되지만요."

     "그다지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네요."

     "서로 똑같은 생각일 테니까요."
     "예?"
     "리리 양은 자작님을 귀족이 아닌 베르너 경 개인으로서 보고 있습니다. 자작님은 어떠신지."

     

     그렇게 듣자 납득이 되었다. 그렇군, 리리도 '용사의 여동생'이라는 직함으로 보이는 건가. 아마 아레아 촌락 시절부터. 그 위트호프트 백작과 교회, 그리고 국가도 그렇다. 오빠의 부속물로써의 가치로만 보이는 것은 괴로울 것이다.

     그럼 나는 어떨까. 마젤의 여동생이라는 의식은 있지만, 적어도 권력이나 떡고물의 유무로 보지는 않는다. 백작가의 아들이라는 관점에서 들어오는 혼담을 계속 무시하던 나와 입장으로는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아니 뭐 귀족으로서의 의무라는 의미에서는 내쪽의 상황이 더 나쁘지만.

     

     "그건 호의일까요."
     "어느 수준인지는 몰라도 호의가 있음은 확실합니다."
     "그렇게 생각해두지요."

     

     쓴웃음이 나왔다. 응, 뭐 그 정도의 납득은 되었다. 젊은이를 바라보는 성직자의 표정을 짓고 있는 에리히한테서 눈을 돌린다.

     

     "일단 어울릴 시간을 제대로 만들게요."

     "예, 그러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오늘은 쓸데없는 생각 말고 제대로 어울리기로 하자.

     그건 그렇고 뭐라고나 할까, 아버지나 세이퍼트 장작과는 다른 의미에서 에리히한테는 이길 수 없다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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