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왕도에서 ~대책과 배제~ ――96――
    2022년 04월 05일 23시 52분 55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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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1219gv/96/

     

     

     

     "뭐라고나 할까, 죄송합니다."

     

     아버지에게 깊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가문을 휘말리게 하는 사태가 될 것은 조금 예상하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형태가 되었을 줄이야. 하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평온......하기보다도 냉정하게 나의 죄송하다는 마음을 뿌리쳤다.

     

     "기억해둬라, 베르너. 궁정귀족으로서 대신이 된다면 이 정도의 일은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각오해두거라."

     

      그 '이 정도의 일' 안에는, 만의 하나 마젤이 망명하면 가문도 목숨도 사라진다는 일도 포함인데. 의외로 아버지의 담이 크다는 것에 놀라고 만다. 대신이 될 정도니까 당연하다고나 해야 할까, 근육뇌 세계의 탓인가.

     오히려 나로서는 대신 따윈 되고 싶지 않은 기분이지만.

     

     "그리고 너는 마젤을 믿고 있지 않느냐."

     "그건 그렇죠."

     

     그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내가 단언한 덕인지, 아버지는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그럼 됐다." 라고 손쉽게 이야기를 끝냈다. 하지만 내 쪽은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서 확인해두고 싶다.

     

     "혹시, 주변에는."

     "맞은편의 슈트로머 백작 저택과 오른편의 유넬 자작 저택에는 기사단 사람이 항상 주재해 있고, 뒤편의 구 디르 남작 저택에는 남작이 내무대신 보좌로 임명되었기 때문에 이사해서 빈집이 되었다. 현재는 고레츠카 공이 관리하고 있지."

     "......도둑이 들어올 여지는 전혀 없네요."

     

     제대로 가드당하고 있잖아. 고레츠카라면 근위사단 부장 말인가? 구 디르 남작 저택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어찼을까. 다른 귀족과 상업길드라면 반대로 부러워할 수준이라고.

     

     "나라의 예산으로 저택을 경비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돼. 아리와 안나는 귀족 요리사로서의 일을 배우게 되겠지. 리리는 당분간 예의범절을 배우게 될 거다."

     "알겠습니다."

     

     다만 마젤의 가족은 왕도습격 전에 피난시킬 예정이었는데. 이거 어쩌지.

     

     일단 생각해봐도 어쩔 수 없어서 인사하고서 아버지의 집무실을 나와서 내 집무실로 들어간다.

     일단 탁자 위가 치워져 있다는 점에 안심. 서류가 쌓여있는 사이드 테이블 따윈 없다. 없다면 없다.

     그쪽을 보지 않으려 하면서 시제품이 들어있는 두 상자를 탁자 위에서 열어본다. 겉모습은 기대한 대로 같다. 조금 체크해볼까. 그 후에 다른 것의 의뢰서도 써야지. 할 일이 많구나.

     

     

     

     시제품의 동작 체크를 끝내고 의뢰서 작성의 순서인데, 음~ 제대로 안 된다. 펜을 들지 않은 다른 쪽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고 만다. 노크가 들려도 건성으로 대답했다.

     

     "실례합니다, 베르너 님, 차를 들고 왔는데, 요......"

     

     내 대답을 듣고 쟁반에 티세트를 올린 채 방에 들어온 리리가 절규하고 있다. 음, 나도 타인의 방에 들어가서 이런 꼴을 보면 그럴지도 몰라. 발 디딜 곳이 없으니까.

     

     "저기, 이건."

     "아~ 꼴불견이라 미안. 조금 제대로 안 되어서 말이야."

     

     쓴웃음을 지으며 펜을 세운다. 바닥에 둥근 물체가 무수히 흩어져 있는 것을 확인한 나였지만 참 부끄럽다. 

     둘이서 전부 주워 모아 방구석에 모아둔다. 쓰레기통에 다 담지 못할 정도가 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

     

     "미안."

     "아뇨,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저기, 차를 갖고 왔는데요."

     "아아, 그랬었지. 잠시 쉬어볼까."

     

     제대로 되지 않아서 조바심 났던 것은 확실하니까.

     

     "여기요."

     "고마워."

     

     한입 마셔보자 찻잎의 향기도 제대로 나고 진함도 적당한 느낌이다. 잘 우려냈어.

     

     "맛있는데. 고마워."

     "네."

     

     리리가 안심한 듯 미소를 짓는다.

     

     "그러고 보니 리리 씨는."

     "저기."

     

     불렀더니 곤란하다는 듯 소리 내었다. 뭐지.

     

     "신분 차이도 있으니, 낮춰 불러 주실 수 있을까요."

     "아, 아~"

     

     맞다. 마젤의 여동생을 막 부르는 건 뒤가 켕기지만 귀족이 고용인한테 씨를 붙이는 건 확실히 문제다. 납득도 했고 이해도 했지만 막 부르려니 의외로 허들이 높다고 이거.

     

     "알겠다. ......리리."

     "네."

     

     윽, 미소의 파괴력이 크다. 일단 어떻게든 대화를 진행시킨다.

     

     "여기서 일하게 되었다고 들었는데, 괜찮아?"

     "네. 이런 훌륭한 저택에서 일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해서, 백작님께서 말을 걸어주셨을 때 기뻤어요."

     "그, 그래."

     "그리고 여러분도 상냥히 대해 주시고, 공부도 시켜주시는데 더해 예의범절도 가르쳐주시기 때문에 보람도 있어요."

     "아, 아니, 괜찮다면 다행이지만."

     "베르너 님은 뭘 하고 계셨나요?"

     "잠깐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말이지."

     

     탁자 위에는 여러 금속의 구슬과 일부를 개조한 마도 램프, 그리고 종이와 펜. 일단 이것을 어떻게든 도면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이미지를 그리는 수준인데도 이렇게까지 복잡하다고나 할까 내 손에는 부친다

     

     "보는 대로라고."

     "저기......"

     

     곤란하다는 듯 웃고 말았다. 사각형이나 삼각형이나 곡선이 마구 뒤엉켰을 뿐이라고. 그린 나조차 그렇게 생각한다. 쓴웃음을 짓고 있자니 리리가 의외로운 말을 꺼냈다.

     

     "저기, 괜찮으시면 잠시 종이와 펜을 빌려도 될까요......?"

     "응? 상관없지만. 앉을래?"

     "네, 그럼 저쪽에서 실례할게요."

     

     기분전환과 가벼운 농담을 할 셈이었지만, 리리는 주저 없이 마도 램프를 들고 가서 내빈용 테이블 위에 내가 뭉쳐놓은 파지를 펼쳤다. 그곳에 착착 펜을 휘갈겨서......오?

     

     "잘해......"

     "여관에서는 글자를 못 읽는 손님도 계시기 때문에, 식사의 내용이나 가게의 장소 등을 그리고 있었거든요. 부모님도 칭찬했었고요."

     

     이유는 이해했지만 이건 절대 그런 수준이 아니다. 아마 리리는 그림이나 뭔가 예술계 스킬의 보유자다. 여관이 불타버려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설마 이런 재능이 있었다니.

     

     "왜 그러신가요."

     "솔직히 놀랐어."

     

     리리의 외모에서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를 방불케 하는 리얼한 그림이었지만, 진짜 잘하고 보기도 쉽다. 이건 자세히 설명해서 제대로 된 종이에 그리게 하면...... 아니 잠깐만.

     

     "리리.......는 글자도 읽고 쓸 줄 알지?"

     "네? 예, 숙소 명부의 대필을 하는 일도 있었지요."

     "계산도 어느 정도 가능하고?"

     "숙박료라던가, 식사비의 계산 정도라면요. 지금은 시간 날 대 조금 더 복잡한 계산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잠깐잠깐잠깐. 이 세계에서 글자를 읽고 쓸 줄 알며, 덧셈 뺄셈 수준이라 해도 계산의 기초가 되어있으며, 그림도 잘 그린다고?

     어쩌면 이 아이 꽤 귀중한 인재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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