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4화 그리고, 나는 화염에 불태워진다2022년 02월 18일 09시 23분 39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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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신 퓨르여!"
화염에 뛰어들면서 외친다.
"내 생명을 줄게! 나를 왕의 지팡이로 삼아! 그러니, 황자님에게 힘을! 이 나라에 희망을!"
뜨겁다.
쟈넷의 긴 금발이 불타오른다. 피부가 아프다. 자네스의 힘을 느낀다.
맹렬한 화염이 온몸을 핥는다. 화염의 열기뿐만이 아니라, 힘의 압박 때문에 몸이 짓눌릴 것만 같다.
"에라흐를 지팡이로 삼았던 것처럼! 부탁이야. 황자님을 죽게 만들고 싶지 않아!"
힘이 폭발한다.
업화가 창백한 빛이 되었다.
여전히 성스러운 화염의 목소리는 쟈넷에게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대답은 느꼈다.
[승낙]이다.
쟈넷 주변의 불에서, 자네스의 압력이 사라진다.
열은 느껴지지 않지만 답답할 정도의 [힘]이 사라지더니, 부드러운 [힘]을 피부로 느낀다.
쟈넷을 둘러싼 것은 자네스뿐만이 아닌 퓨르의 힘이다.
"이상해."
쟈넷은 중얼거렸다.
몸은 불타고 있는데도, 조금도 두렵지 않다.
결국 전과 마찬가지로 성스러운 화염에 휘감겨 불타고 있는데도, 충만해지는 만족감.
ㅡㅡ내가 바꾸고 싶다고 원하면, 바뀌어.
설령 쟈넷 자신의 생사는 변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미래는 분명 바뀐다.
지난번에는 단지 비참하게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자랑스러운 기쁨이 있다.
같은 죽음이어도, 자신은 이렇게나 바뀐 것이다.
"쟈넷!"
하리스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화염에 감싸이면서,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쟈넷은 생각했다.
그것은 꿈이었던가. 아니면 ,지난번의 마지막 기억이었을까.
"미안해요."
쟈넷은 중얼거렸다.
계속 쟈넷을 지켜주고 있었음에도 눈치채지 못했던 지난번.
그리고 지금은, 쟈넷을 부인으로 맞이하여 안아주었다. 그런데도 자신은 또다시 화염에 불태워지려 하고 있다.
"하지만......옆에 있을 테니까."
쟈넷이 제왕의 증표인 왕의 지팡이가 되면, 계속 하리스와 함께 있을 수 있다.
그와 함께, 이 나라의 미래에 광명을 가져다줄 수 있다.
창백한 화염이 은의 용으로 모습을 바꾸어, 쟈넷의 몸에 휘감긴다. 둥실 떠오르는 부유감.
화염에 휩싸였을 텐데도 뜨겁지도 아프지도 않다.
마치 사랑하는 남자에게 안긴 듯한 포근함이다.
"쟈넷! 눈을 떠! 눈을 뜨라고!"
또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쟈넷! 가지 마! 가지 말아 줘!"
비통한 외침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서, 쟈넷은 눈을 떴다.
"황자님?"
은의 용에 안겨졌을 터인 몸은, 어느 사이엔가 하리스의 팔 안에 있었다.
"어째서?"
하리스의 손에는, 녹아서 휘어진 지팡이가.
루드와 멘켄트의 모습은 없다. 두 사람을 두른 것은, 홍련의 화염. 그 화염에 자네스의 힘은 느껴지지 않는다.
있는 것은 거룩하고도 압도적인 힘이다.
[나의 혈통을 이은 자여. 화염의 딸이여]
목소리가 들린다.
화염의 벽을 등지고, 은의 용이 쟈넷과 하리스를 보고 있다.
여기는 성스러운 화염의 안인 걸까.
은의 용이 소리 없는 목소리로 말을 건다.
[그 몸을 불태우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 뜨거운 마음. 그야말로 화염의 딸일지니]
"당신은......퓨르?"
쟈넷의 말에,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용은 고개를 끄덕인 듯했다.
[원하던 대로, 화염의 딸을 왕의 지팡이로 삼으마]
"안 돼! 쟈넷을 데려가지 마!"
하리스는 쟈넷의 몸을 부둥켜안으며 용을 노려보았다.
[착각 마라. 바로 데려가지는 않으마. 이 소녀가 너의 곁에 있는 한, 나의 화염은 그대에게 응하리라]
"내가, 죽으면?"
[그때야말로, 나의 화염으로 그대를 불태워 지팡이로 삼겠다. 그리고 죽는 그때까지 서로를 사랑한다면, 그대의 몸을 불태운 화염은 또다시 시대를 바꾸리라]
"바꾼다니?"
용은, 대답하지 않았다.
은린이 창백하게 빛나는 화염 속으로 녹아든다.
[그 마음에 화염이 있는 한, 세계는 바뀌리]
"사라졌다?"
은의 용은 사라졌고, 성스러운 화염이 두 사람을 감싸고 있다.
따스한 힘이다. 이렇게나 옆에 있는데도 두 사람을 불태우려 하지 않는다.
"걸을 수 있어?"
하리스가 쟈넷에게 물어보았다.
"네."
쟈넷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리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섰다.
"길을."
하리스가 명했다.
따스한 힘이 쟈넷의 몸을 돌자, 화염이 갈라진다.
"힘이 저의 안을 돌고 있어요......이상해. 하지만, 저는 이 힘을 쓸 수 없어요. 이것이 지팡이라는 거네요."
"이 지팡이는 필요 없겠군."
하리스는 휘어버린 지팡이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계속 옆에 둔다면 이쪽이 훨씬 좋아."
말하면서, 쟈넷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하리스 님! 마술사공!"
멘켄트와 루드가 화염의 벽 저편에서 필사적으로 소리치고 있다.
"가자."
"네."
쟈넷은 수긍했다.
성스러운 화염이, 새로운 전승자를 축복하는 것처럼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새벽이 가깝다.
어두운 습지가 뿌옇게 빛을 반사하기 시작하여, 하늘과 대지가 나뉘기 시작한다.
세계가 약간 붉은색을 띈다.
"언니, 예뻐."
플로라가 멍하니 쟈넷을 바라본다.
묶어놓은 금발에, 순백의 드레스. 가슴에는 붉은 보석의 목걸이.
"고마워. 너도 예쁘단다."
연지를 바른 입술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플로라는 부드러운 물색 드레스. 머리카락에는 꽃으로 장식하고 있다.
"이 꽃은 구르마스 씨가 달아줬어요."
플로라가 기쁜 듯이 그렇게 말했다.
"구르마스가?"
쟈넷이 놀랐다. 그 구르마스가 무슨 표정으로 꽃을 따왔을까. 상상하자, 조금 이상하다.
"그건 그렇고, 이제 하는 거네요."
플로라는 쟈넷에게 베일을 씌워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로부터 1년이나 지났어요."
"맞아."
쟈넷은 동의했다.
성스러운 화염을 다스리자, 하리스는 제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의도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자네스는 자신의 화염에 불타서 절명한 모양이다.
그 후, 성은 뷰라 장군이 제압. 완전히 무혈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극히 적은 유혈사태로 끝난 것은 역시 이 나라에는 [성스러운 화염]을 손에 넣은 자가 절대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재상은 경질. 무파나는 은룡과의 전투 중 사망했고, 제비는 공작가로 돌려보냈다.
쟈넷은 항상 하리스의 옆에 서 있었지만, 결혼식과 하리스의 제위식은 건국의 식전까지 연기되었다.
정세가 불안정했다는 점도 있지만, 이 날을 고집하고 싶었던 이유도 있다.
"그건 그렇고, 어째서 바라프의 신전이에요?"
플로라는 의아한 듯 물어보았다.
"그래. 어째서일까."
쟈넷은 키득거렸다.
"아마ㅡㅡ필요할 거야."
변치 않는 사랑을 맹세하며, 허락을 구한다. 그래서 무엇이 바뀔지 안 바뀔지는, 잘 모른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먼저 부탁하는 일이다.
"두려워하거나 미워하기만 하면, 여신도 힘들 거라고 생각해."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플로라는 수긍했다.
"올해의 식전은, 특별하잖니? 그래서 프레드릭 씨와 아버지가 담당해. 기대하고 있어. 나도 도울 테니까."
"어머, 그거 기대되네요."
쟈넷은 웃었다.
"쟈넷, 열어도 될까."
"네."
데니스의 목소리에 들어오라고 하자, 문 저편에 데니스와 하리스가 기다리고 있다.
"예쁘구만, 쟈넷."
딸의 화려한 모습에, 데니스는 미소 지었다.
데니스는 검정 양복차림이다. 그 이후로 건강을 되찾아서, 구출했을 때보다 젊게 보인다.
"정말로, 예쁘다."
하리스가 넋을 잃은 듯, 중얼거린다.
하리스는 흰 정장 차림이다.
"가자. 새벽이 가까우니."
하리스의 말에, 쟈넷은 "네."라고 대답했다.
제왕 하리스는, 애처 쟈넷과 함께 프리마베라의 백성들의 생활향상에 힘썼다.
이윽고 주변국에서 상인과 유학생이 모여드는 풍요롭고 활기찬 나라가 되었다.
세 아이를 낳은 두 사람은, 오랫동안 화목하고 평온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거의 같은 날에 세상을 떠난 두 사람의 유체는, 유언대로 성스러운 화염에 불태워졌다.
화염은 천천히 유체를 태워나갔고, 그 연기는 빙설산맥에 도달해 눈을 천천히 녹여나갔다.
이윽고 프리마베라에는 계절이 순환하게 되었고, 성스러운 화염은 사라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1년에 1번 화염의 탑에 불을 지피며 신에게 기도를 바치기를 이어나갔다.
끝
졸작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히젠 후미토시 선생의 기획인 [제1회 글쓰기 축제] 참가작품입니다
글쓰기 축제에서는 제3회장에서 8위에 입성했습니다. 많은 분들의 조언을 받아 원고를 고치기 시작한 것이 이 작품입니다.
덕분에 초반부터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응원도 받았습니다.
역부족을 통감한 작품이지만, 현재의 저의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조금이라도 즐겨주신다면 정말 기쁩니다.
한 가지,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것이 최종화의 타이틀 (웃음)
이 작품을 쓸 때 마지막 제목은 이 부제목으로 하기로 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째선지 도중의 부제는 전부 두 글자가 되었네요. 통일이 안 된다고는 생각했지만, 일단 생각을 관철시켰습니다. 보기 흉하다면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쓸 계기를 만들어주신 히젠 후미토시 선생, 조언을 주신 여러분, 꺾일 것 같았던 근성 없는 저를 격려해주신 구독자 분들, 그리고 무엇보다, 마지막까지 어울려주신 독자 여러분. 정말로 감사합니다.
2018/6/26 아키츠키 시노부
※ 이 작가의 다른 소설번역
<이번에, 저, 성녀를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728x90'연애(판타지) > 그리고, 나는 화염에 불태워진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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