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1화 사랑2022년 02월 17일 07시 51분 57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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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두운 사이, 쟈넷 일행은 신전을 나왔다.
데니스는 쌍두마차의 짐칸에 군의와 함께 타게 되었다. [심해진다]는 본인의 말대로, 고열이 나고 있다.
뷰라의 말에 의하면, 그의 군은 [훈련 중]이라는 명목으로 [성스러운 화염]이 있는 동쪽 언덕 부근에 주둔 중이라고 한다.
"기척이다."
루드가 속삭였다.
기척이, 신전의 작은 정원을 엿보고 있다
"엎드려!"
쟈넷은 구르마스에게 안겨진 채 지면에 엎드렸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쏟아진다.
뷰라가 신전에 동행시킨 병사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이대로 돌파하기란 어렵다.
"구르마스, 아직 홍련석 남아있어?"
"너무 무리하지 마시길."
그렇게 말하면서, 구르마스는 품에서 홍련석 한 조각을 꺼냈다.
"괜찮아. 보기에만 화려하게 할 뿐이니까."
말하면서, 쟈넷은 돌을 손바닥에 올리고는 눈을 감았다.
역시 휴식했다고는 해도 원래의 컨디션이 아니다. 하지만 아쉬워할 때가 아닌 것도 분명하다.
"은의 용이여."
푸르게 빛나는 비늘을 두른 거대한 용이 그곳에 나타났다.
거대한 그것은, 추격자들을 그 업화로 비추고 있다.
환영이라고는 해도, 화염의 신을 본뜬 이상 용의 몸에 약간의 열이 깃들었다.
불태울 정도는 아니지만, 만지면 뜨겁다.
"퓨르다!"
제각각 비명과 경외의 외침이 들린다.
쟈넷은 용을 조종해서 비늘의 업화를 시퍼렇게 불태웠으며, 그 입에서 화염이 새어 나오게 했다.
"히이이이이."
추격의 병사들은 전의를 잃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자들은 쫓지 않아도 된다!"
뷰라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검격의 소리가 그치고, 주변은 다시 조용함을 되찾았다.
"쟈넷 님."
구르마스의 목소리에, 쟈넷은 집중을 풀었다.
용의 모습이 사라지고 어둠이 돌아오자, 쟈넷은 무의식적으로 무릎을 꿇었다.
"훌륭하지만, 정말로 무리만 하시는 분이군."
뷰라는 어이없다는 듯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능력의 전부를 걸고 싸우겠다고 말했으니까요."
쟈넷은 싱긋 웃었다. 솔직히 몸은 무겁다. 하지만 누가 강제하고 있는 것도, 내몰린 것도 아닌다.
자신의 의지로 길을 열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다. 아끼다가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마술사이기 전에 하리스 님의 약혼녀라고 저는 말씀드렸습니다만."
뷰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당신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하리스 님이 어떻게 될지. 생각만 해도 저는 두렵군요."
"......정말 그렇습니다."
뷰라의 말에 루드가 동의했다.
"무슨 의미?"
쟈넷은 옆에 있던 구르마스에게 물어보았다.
"......하리스 님께 직접 여쭈시는 게 어떻습니까?"
구르마스는 그것만 말하고는 쟈넷을 마차에 태웠다.
"갑시다. 날이 밝기 전에."
비즐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동쪽 언덕의 옆에는, 습지가 펼쳐져 있다.
여기는 빙설산맥에서 오는 바람이 강한 지역이기도 하여, 농경에 알맞지 않아 민가도 거의 없다.
그래서 군대의 훈련이 여기서 이루어지는 일은 딱히 드물지 않다.
날이 밝기 전에, 군의 캠프에 도착했다.
습지와 숲의 경계라고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바라프의 분노를 진정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신전이 주둔지의 중심이다.
프리마베라에는 여러 신전이 있지만, 바라프를 모시는 곳은 이곳뿐이다. 하지만 이곳으로 신자가 기도를 드리러 오는 일은 없다.
ㅡㅡ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바라프의 분노는 정당할지도 몰라.
쟈넷은 생각했다.
몰랐다고는 해도, 퓨르는 바라프의 남편이다. 인간의 자식 주제에, 에라흐는 바라프한테서 남편을 빼앗은 것이다.
그렇지만 그랬다고 해서 대대손손 이 토지에 분노를 부딪히는 신을 존경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경외는 해도, 숭배하기란 어렵다.
데니스를 마차에서 내리는 걸 도와준 쟈넷은, 신전의 문을 열었다.
들것에 눕혀진 데니스를 구르마스와 루드가 날랐다.
"열은 내려갔네요."
군의가 침대에 눕혀진 데니스를 진찰했다.
하지만 아직 의식이 없이 잠들어 있다.
쟈넷은 아버지의 이마에 솟아난 땀을 천으로 슬쩍 닦았다.
"병중인데도 무리하게 했어요. 전 불효녀네요."
"그 이상으로 마술사공은 무리하고 계십니다."
루드가 그렇게 말했다.
"당신도 조금 쉬는 편이 어떨지."
"예. 그렇네요."
쟈넷은 수긍했다.
확실히, 어제부터의 강행군은 몸에 부담을 준 모양이다.
몸이 휘청거린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다.
휘청거리면서, 쟈넷은 방을 나가려 했다.
출입구에 서서 손잡이를 만진 순간, 문이 열렸다.
몸이 기울어지며 그대로 앞으로 쓰러지더니, 의식이 날아간다.
"쟈넷?"
하리스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온 기분이 들었다.
목구멍이 아프다.
그리고 뜨겁다.
온몸이 아프다.
화염이 일렁거리면서, 몸을 불태운다.
ㅡㅡ다음에 다시 태어날 때는, 자신의 의지로 살고 싶어.
쟈넷은 부탁했다. 몸이 창백한 화염에 휩싸인다.
"쟈넷!"
절규에 가까운 남자의 외침 소리.
그리운 목소리다. 하지만, 쟈넷은 이미 대답할 [목소리]가 없다.
빠져나가는 힘과 함께, 세계는 점점 멀어진다.
"열어! 쟈넷! 열어줘!"
문을 부수는 소리.
화염은 크고 맹렬하게 날뛴다.
"그런......"
절규하는 남자의 목소리.
불타는 몸을, 남자는 가슴에 품었다.
화염은 더욱 기세를 더했다.
"쟈넷."
상냥하게 부르는 목소리.
눈꺼풀을 들자, 그곳에는 걱정스러워하는 하리스의 얼굴이 있었다.
"......황자님."
목이 따갑다. 목소리가 약간 쉬었다.
"괜찮은가? 잠꼬대를 했었다."
하리스는 말하면서 쟈넷의 볼에 손을 대었다.
"......잠꼬대?"
쟈넷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라프의 신전 안의 방일 것이다. 창문이 막혀있어서 시간을 모르겠다.
침대맡에 놓인 자그마한 램프가 치익 하는 소리를 내고 있다.
온몸에 아픔이 달린다. 아마 무리를 한 탓일 것이다. 머리도 조금 무겁다.
"지금 것은, 꿈?"
성스러운 화염에 불태워진 기억이 보여준 꿈일까.
"구르마스한테서 들었는데, 많이 무리를 한 모양이더군."
하리스의 목소리에 비난의 색이 깃든다.
"조금만, 그랬어요."
몸을 일으키려 하자, 하리스가 몸을 부축해준다.
당연하다는 듯이 커다란 가슴에 몸을 기대게 되자, 쟈넷은 두근거렸다.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감. 너무 상냥한 손.
"......이쪽이 꿈일지도."
문득 중얼거렸다.
"왜 그래?"
"아뇨......왠지 여러 일이 너무 많아서 혼란스러운 모양이에요."
쟈넷은 하리스의 눈을 볼 수 없어서, 고개를 숙였다. 뜨거운 피가 몸을 돌자, 동요가 심해진다.
"저, 어떻게 된 건가요?"
이제야 그렇게 입에 담는다.
"내 앞에서 쓰러졌다. 벌써 반나절이 지났고."
"그런가요......"
이때, 쟈넷은 자신이 얇은 잠옷을 입고 있음을 깨달았다.
땀에 젖은 천이, 가슴의 라인을 둥글게 그리고 있다.
"말해두지만, 갈아입힌 사람은 내가 아닌 플로라다. 조금 전까지 플로라가 여기 있었지만, 데니스의 의식이 돌아왔다고 듣고 라스아가 데려갔다."
하리스가 당황하며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가요?"
"그래. 난 그녀한테 신용이 없던 모양인지, 이 방에 좀처럼 들여보내 주지 않았지만."
하리스의 말에, 쟈넷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야, 지난번 제가 부상 입었을 때의 인상이 나빠서 그렇겠죠."
"그건......미안했다."
하리스는 겸연쩍어하며 그렇게 말했다.
"네가 은룡과 내통한다고 들어서......동요했었다."
하리스는 쟈넷의 몸에서 떨어지더니 일어섰다. 떨어진 체온이 조금 그립다.
"약혼녀가 되었을 너를 귀족들한테서 지켜주지도 못한데 더해, 점점 독립시켰다. 내 옆에는 네가 아닌 리아나가 항상 따라붙어 있었다......네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다."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건, 제 쪽이에요."
"난 네게 부응할 수 없는 자신이 답답했다."
하리스가 씁쓸히 미소 짓는다.
"반란군의 수장이라면, 너를 곤경에서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네가 큰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조차 내 안에서 잊고 있었다."
"저는...... 신경 써주신 것만으로도 기뻤어요."
쟈넷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내통을 의심할 뿐이라면, 그냥 신변 조사를 명하면 끝나는 일이다. 하리스가 쟈넷을 직접 만날 필요는 없다.
"의심한 것은 충격이었지만, 제도에서 일부러 방문하신 것은 사실이니까요. 황자님이 절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싫다고 말한 적은 없다."
하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닷 쟈넷의 침대에 앉았다.
"네. 그래도 세간에서는 리아나 님과 황자님을 떨어트린 나쁜 여자라고 말하거든요."
"제멋대로의 소문일 뿐이다."
하리스는 욱한 것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걸 어떻게 다뤄야 좋을지 몰랐을 뿐이다."
하리스의 손이 천천히 쟈넷의 머리를 쓸어 올렸다.
"솔직히, 지금도 당혹스럽다."
"......저도요."
쟈넷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도 황자님께서 절 생각해주신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싫은가?"
조금, 겁먹은 듯한 하리스의 눈동자가 귀엽다. 쟈넷은 손바닥으로 하리스의 볼을 감쌌다.
"아뇨ㅡㅡ기뻐요."
하리스의 손이, 쟈넷의 턱을 붙잡았다.
쟈넷은 눈을 감았다. 입술이 포개지고, 천천히 하리스의 팔에 당겨진다.
램프의 불빛이 흔들리자, 그림자가 겹쳐진다.
"내 부인은, 너다."
쟈넷의 귓가에서 하리스가 속삭이자ㅡㅡ쟈넷은 "네." 라고 긍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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