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제22화 새벽녘 하늘
    2022년 02월 17일 13시 18분 53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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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7752eo/24/

     

     

     

     "제가 아는 한, 왕의 지팡이에 기대지 않고 성스러운 화염을 다루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차가운 돌바닥에 붉은 양탄자가 깔리고, 모두가 빙 둘러앉았다. 그럼에도 바닥은 아직 서늘했다.

     쟈넷은 일어나 있기 힘들어하는 아버지를 등을 받쳐주면서, 옆에 앉았다.

     데니스의 말을 듣는 모두의 얼굴은 한결같이 진지하다. 화염을 다스릴 방법을 찾지 못하면, 나라를 뒤집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돌아갈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탈출행부터 이틀 째의 심야를 맞이하려 하고 있다.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는 바라프의 제단 앞에는, 지팡이와 보석이 놓여있다. 지팡이는 은색으로 빛나고 있으며 상부는 화염을 두른데 더해, 보석을 끼울 수 있게 되어있다.

     바라프의 신상은 자애를 담은 표정이다. 오른손에는 용을 품고 왼손은 땅을 가리키고 있으며, 바람을 잉태한 것 같은 드레스를 둘렀다. 용은 은색으로 빛나고 눈에 화염이 깃든 남편 퓨르의 화신이다.

     하리스와 사랑을 확인한 지금이기 때문에ㅡㅡ쟈넷은 바라프의 분노와 슬픔이 이해된다. 남편이 배신했어도, 바라프는 남편을 사랑하고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이 토지를 미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따로 방법이 없어."

     하리스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제왕 그 자체를 해하면, 왕의 지팡이는 손에 들어와. 하지만 희생이 커져버리지."

     "플랜 중 하나로서, 의식과 병행하여 시야에 넣고 행동해야하지 않을까요."
     은룡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무리 비밀리에 일이 진행되어도, 의식이 실패한다면 제왕한테 들키지 않으리라는 보증은 없으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뷰라가 굳은 표정으로 동의한다.

     "성스러운 화염을 황자님이 손에 넣었다 해도, 순순히 옥좌를 황자님께 넘기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무력을 전부 쓰지 않고 다스리기란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나 역시 무혈로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하리스의 말은 묵직했다. 적어도 자네스와의 대결은 필요하다.

     육친의 정은 없다고 들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쟈넷의 가슴은 더욱 아프다.

     "의식과 동시진행으로 무력제재를 가한다. 제왕도 그렇지만, 재상은 무파나와 짜고 있어. 무력을 가진 만큼 얕볼 수 없다."

     "그 의식이란 것은 구체적으로 뭘 하는 건가요?"

     쟈넷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화염의 탑의 제단에 공물과 기도를 드리며, 전승을 선언하면 돼."

     공물은 홍련석과 화주. 그리고 바라프의 신전 옆에 있는 샘물. 기도의 말도 알고 있다고 한다.

     왕의 지팡이는 하리스의 기억과 관련된 자료를 대조해본 끝에, 백금으로 만들었다. 황자가 어렸을 때 한번 본 기억으로 문자가 새겨져 있다고 하지만, 새 지팡이에는 문자가 새겨져 있지 않다.

     "뭘 하려고 해도, 의식이 잘 될지 말지는 이 지팡이를 불의 신이 받아들여주시냐 마냐에 달렸구려."

     멘켄트가 은색으로 빛나는 지팡이를 바라보았다.

     "한 가지, 제가 도움이 될만한 일이 있습니다."

     데니스가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일어섰다. 휘청거리는 데니스의 몸을 쟈넷이 서둘러 부축했다.

     "전승이 확실하다면......"

     말하면서, 데니스는 바라프의 제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바라프의 오른팔의 커다란 용의 눈을 만졌다.

     박힌 눈알은 간단히 떼어졌고, 데니스는 그 안쪽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기이이이 하는 소리가 나며, 바라프의 왼손이 가리키던 바닥에 구멍이 났다.

     "계단이에요."
     쟈넷이 놀람의 소리를 내었다.

     길고 어두운 계단이 밑으로 나 있다.

     "이 길은, 동쪽 언덕의 화염의 탑의 지하까지 이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데니스는 그렇게 말했다.

     "애초에 제왕들은 이 신전에서 바라프에게 용서를 빌면서 전승의 의식에 임했다고 합니다."

     "바라프에게 용서를?"

     하리스의 말에, 데니스는 수긍했다.

     "바라프의 분노만 진정되면 성스러운 화염은 필요없습니다. 하지만 동쪽 언덕까지 걸어오는 일이 힘들기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마차를 써서 이동하게 되었고, 지금은 그것조차도 생략되었습니다. 하지만 귀찮아서 생략한 것이 아니라, 전승의 의식 때만 가기보다는 건국식전 때마다 신관이 가는 편이 더 좋다는 판단에서 그랬던 모양입니다만."

     "바라프의 분노인가......"

     은룡이 여신의 신상을 올려다본다.

     "원망한다면, 바람을 핀 남편 쪽에다 하라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프레드릭!"

     멘켄트가 고함을 쳤다. 은룡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먼저 바라프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한 의식을 하고, 여기서부터 화염의 탑으로 향하자. 제하를 지나간다면 적어도 탑에 도착할 때까지는 눈치채지 못하겠지. 뷰라는 병사를 데리고 대기. 연락이 있으면 바로 성을 둘러싸. 비즐은 뷰라와 함께 가라. 데니스 공은 여기서 대기."

     하리스는 둘러보면서 지시를 내렸다.

     "의식 후, 멘켄트와 쟈넷, 그리고 루드와 내가 화염의 탑으로 향한다. 은룡, 너는 무파나의 정신을 돌려줬으면 해."

     "방법은?"

     "맡기마."

     "그럼 마술사공의 여동생 분을 빌리도록 하죠. 멀리서 보면 비슷하니ㅡㅡ아아 괜찮습니다. 위험한 일은 당하게 하지 않아요."

     잠깐 쟈넷과 눈이 마주친 은룡은 서둘러 그렇게 말했다.

     "당신을 믿겠어요. 플로라를 부탁해요."

     애초에 지난번의 플로라는 스스로의 의지로 은룡과 함께 싸웠었다. 쟈넷 정도는 아니지만, 플로라도 싸울 수 있다. 그 점에 걱정은 없다.

     "새벽녘이 되면 의식을 거행한다. 준비를 시작해라."

     하리스의 말에, 일동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언니, 아버지. 저 갈게요."

     아직 어둑어둑한 와중, 플로라가 그렇게 말했다.

     쟈넷은 신전 입구에서 데니스를 부축하면서, 플로라를 배웅했다.

     싸우러 나가는 것은 처음이지만, 플로라의 표정에 불안한 기색은 없다. 오히려 후련해진 표정이었다.

     "조심해. 홍련석이 있어도 너무 기대면 안 돼. 마력은 유한하니까."

     "알고 있어요. 언니한테는 지지만, 저도 우수하다고요. 그리고 전 기뻐요. 괴로워하는 사람들한테 뭔가를 강요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사람들을 위해 가진 힘을 쓰는 걸요."

     그렇게 말하며, 플로라는 미소 지었다. 채굴장의 현장은 플로라한테도 힘겨운 나날이었으리라.

     "딸을......부탁합니다."

     데니스는 가볍게 기침을 하면서, 옆에 선 은룡에게 고개를 숙였다.

     확실히 새벽의 차가운 공기는 몸에 안 좋은 듯하다.

     "걱정 마시길. 위험한 일은 당하지 않을 겁니다."

     "아니, 저 진짜로 우수한데요? 언니가 너무 대단할 뿐이고."

     플로라가 입을 삐죽인다.

     "라스아와 구르마스가 지켜줄 거야. 네가 우수한 건 알고 있지만, 과신하지 말도록 해."

     쟈넷은 그렇게 말하면서 은룡의 뒤에 서 있던 라스아와 구르마스에게 머리를 숙였다.

     "언니야말로 무리하지 마세요. 저보다 훨씬 무리하는 주제에. 아버지도 빨리 침대에서 일어나시고요."

     "마술사공은 확실히 그런 사람이지."

     은룡이 키득거린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세계가 움직여. 당신과 함께 세계를 움직이는 일, 기쁘게 생각합니다."

     "세상은 변할까요."

     쟈넷은 중얼거렸다.

     "변합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새벽녘의 하늘이 이윽고 푸르게 물드는 것처럼."

     우러러본 하늘의 별이, 점점 멀어진다. 동틀 때가 가깝다.

     "믿을게요."

     쟈넷은 미소 지었다.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하기를 믿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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