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제23화 의식
    2022년 02월 17일 20시 41분 12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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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7752eo/25/

     

     

     

     바라프의 신전의 제단에 불이 지펴진다.

     제단에는 모아둔 제철음식과 아름다운 꽃.

     이것은, 숲과 물의 신 메사가 불의 신 퓨르와 물과 얼음의 신 바라프의 딸이라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바라프가 고독하지 않음을 [떠올리게] 하여, 분노를 풀게 하기 위함 때문일 것이다.

     제단의 앞에서 멘켄트와 하리스가 기도를 드리고 있다.

     데니스는 군의와 함께 방으로 돌아갔고, 쟈넷은 의식을 지켜보고 있다.

     높은 천장에서 새어들어오는 빛은 아직 약했고, 켜놓은 화염이 흔들거리며 그림자를 만든다.

     화염이 일어난다.

     애초에 홍련석의 목소리가 들린다 해도, 명확한 말로 들리는 일은 없다.

     하지만,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쟈넷은 흔들리는 등불을 바라보았다.

     전에 없을 정도로 긴장된 웅성거림으로 느끼는 것은, 쟈넷 자신의 문제일까.

     하리스가 바라프에게 시를 낭독한다. 물과 얼음의 여신을 찬양한다.

    ㅡㅡ아아, 이것은 정숙하게 살겠다는 선언이야.

     쟈넷은 생각한다.

     시조인 에라흐는, 허락받지 않은 사랑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보석이 필요한 것이다.

     두번 다시 시조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맹세가 담긴 의식일지도 모른다. 보석의 마력을 다른 여성에게 만들게 하면 안 되었던 것은, 이 의식은 어쩌면 퓨르를 위한 것이 아닌, 바라프를 위한 것이라서 그런가.

     하지만.

     만일 그렇다면, 왜 제비의 보석은 허락되었는가.

     "......저희들 일동,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있사옵니다....."

     하리스의 말이 끝을 고했다.

     멘켄트가 천천히 제단에 놓인 왕의 지팡이를 하리스에게 건넸다

     차가운 공기가 순식간에 어디론가 흘러들어서, 화염이 일렁인다.

     "화염의 탑으로."

     지팡이에 박힌 보석이 반짝거리며 빛을 낸다.

     램프를 손에 든 루드를 선두로, 하리스, 멘켄트와 쟈넷이 지하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긴 통로다.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낡은 부분은 하나도 없다.

     서늘한 바람이 입구에서 어둠을 향해 계속 흐르고 있다.

     "바라프의 신기가 흐르고 있군요."

     멘켄트가 감탄한다.

     "저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신의 사랑은 복잡할지도 모릅니다."

     대기는 공격적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되어 있다. 차갑지만 기분 좋다.

     "바라프는 하리스 님을 지지해준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루드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왜냐하면, 하리스 님은 마술사공 일편단심 아닙니까. 리아나 님이 몇 번을 유혹해도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으셨으니."

     "지금 그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 텐데."

     하리스가 언짢은 듯이 항의한다.

     "좋은 일이니, 괜찮지 않을까요? 다행히, 마술사공의 오해는 풀린 모양이고."

     멘켄트가 미소 짓는다.

     "무엇보다, 의식에 앞서 두 분이 마음을 통할 수 있었던 것은 길조. 반드시 불의 신께도 닿겠지요."

     "맞습니다." 라면서 루드가 동의했다. 본인들의 생각보다도 더, 주변 사람들 쪽이 더욱 답답해했을 것이다.

     당초엔 파혼을 신청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정말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쟈넷은 생각했다.

     "이상해요."

     쟈넷은 어둠 속으로 뻗어있는 길을 걸어가면서 중얼거렸다. 신발 소리가 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그런 조용함 속, 램프 안에서 타오르던 불이 끊임없이 쟈넷에게 속삭인다. 가슴이 술렁거린다.

     길일지 흉일지 모르는 [변혁]의 예감. 지난번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화염이 시끄러워. 성스러운 화염의 소리는 내게 들리지 않지만, 다른 화염들이 소란을 피우고 있네. 이런 일은 처음이야."

     "화염은 뭐라고 말하고 있지?"

     "모르겠어요. 다만, 변한다고만. 뭐가 어떻게 변하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당신이 변한다고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멘켄트는 조용히 고했다.

     "당신이 원한다면, 세계는 변합니다. 당신은 화염한테 사랑받고 있으니까요."

     "은룡과 같은 말을 하네요."

     쟈넷은 웃었다.

     "적어도 나는ㅡㅡ"

     하리스는 왕의 지팡이를 움켜쥐고서 앞을 향했다.

     "네 바람을 이루기 위해 세계를 바꾸고 싶다."

     "저도......"

     쟈넷은 어둠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뜨겁다.

    ㅡㅡ이번에는 변화시키겠어.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도망친 바람에 성스러운 화염을 다스릴 수 없었던, 그때와는 다르다.

     마음은 하리스에게 배신당한 절망이 아닌, 사랑받는 기쁨으로 차 있다. 병들고 쇠약해졌다고는 해도, 아버지를 만나고 구할 수 있었다.

     적대관계였던 하리스와 은룡을 연계시킬 수 있었다.

     그때, 원했던 대로......타인에게 흘러가지 않고 골라간 결과다.

     램프의 등불이 쟈넷에게 대답하는 것처럼 일렁였다.

     

     

     

     화염의 탑의 [성스러운 화염]의 방은, 무인 상태였다.

     지난번의 쟈넷이 포위망을 돌파하고 억지로 들어왔던 곳이다.

     그때는 반란군과 정부군ㅡㅡ아마 하리스가 이끄는 부대가 이 탈을 에워싸고 대치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반란군인 은룡이 이 탑 부근에 없고, 황자의 군 또한 없다. 제왕의 병사도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방에 들어온 순간, [시선]을 느꼈다.

     이 시선이 누구의 것인지 판별은 할 수 없다.

     "서두릅시다. 아마 누군가 보고 있을 겁니다."

     멘켄트가 그렇게 말하며, 의식의 준비를 시작했다.

     방은 그렇게 넓은 곳은 아니다. 들어온 문과 반대편에 또 하나의 문이 있다.

     또 한쪽의 문은, 지난번 쟈넷이 억지로 들어왔던 문이다.

     루드는 문의 앞에 서서 검을 들었고, 쟈넷은 루드의 옆에 서서 문에 마술장벽을 둘렀다.

     "시작한다."

     하리스는 천천히 왕의 지팡이를 들며 바닥에 그려진 원의 위에 섰고, 멘켄트는 신께 드리는 대사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불의 신 퓨르여."

     하리스가 낭랑하게 소리내었다.

     대기가 구르릉, 하고 흔들린다.

     화염이 성난 듯이 외치기 시작했다.

     

     [힘을......힘을......]

     

     굳센 무언가가 그렇게 외치더니, 휘몰아치며 점점 하리스 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쟈넷은 느꼈다.

     하리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은색의 지팡이가 창백하게 불탄다.

     "나에게, 힘을."

     하리스가 외친다. 하리스의 몸 주변에 아지랑이가 솟는다.

     방의 기온이 점점 올라간다.

     뜨겁다. 땀이 샘솟는다. 피부가 불타는 것처럼 얼얼하다.

     "왕의 지팡이가......"

     루드가 비명을 질렀다.

     하리스가 가진 왕의 지팡이가 활활 불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스러운 화염에서 주입되는 힘은 멈추지 않는다.

     "부탁한다! 내게 힘을!"

     하리스가 외쳤다.

    ㅡㅡ어째서?

     쟈넷은 불타는 지팡이를 바라보았다.

     신은 틀림없이 하리스에게 힘을 부여하려고 하는데, 임시의 지팡이로는 그 힘을 받아내지 못하고 있다. 아마 지팡이의 허용량을 넘어선 힘일 것이다.

     "마술사공! 화염이!"

     루드가 외쳤다. 성스러운 화염의 안에 커다란 기척이 생겨난다. 가학적인 자네스의 안광을 떠올리게 하는 위압감이 대기에 충만하자, 화염이 맹렬히 날뛰기 시작했다.

     "바라프여! 힘을 빌려주세요!"

     쟈넷은 뜨거워져가는 방에 눈보라를 일으켰다. 불타오르던 화염은 얼음폭풍을 맞자 잠시 움직임을 멈춘다.

     하지만 성스러운 화염의 앞에서는, 인간의 자식의 마술 따윈 잠깐의 진정도 못 시킨다.

     "퓨르여!"

     하리스가 든 왕의 지팡이는 발화를 견디지 못하고 모습을 잃어갔다.

     그럼에도 하리스는 성스러운 화염을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불타오르는 지팡이는, 압박하는 자네스의 힘을 받아내고는 있다. 힘의 승부로는 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팡이 그 자체가 버틸 수 없어 보인다.

    ㅡㅡ이대로 가면 지팡이가 녹아버려.

     지팡이가 사라지고 말면, 신은 성스러운 화염의 힘을 부여하는 것을 그만둘 것인가.

     하리스에게 주입되는 힘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게 되면, 하리스도 쟈넷도 루드도 멘켄트도 이대로 자네스의 업화에 불타버릴 것이다.

    ㅡㅡ아아, 그래. 잊고 있었어.

     "마술사공! 어디로 가십니까?"

     쟈넷은 불타오르는 성스러운 화염으로 뛰어들었다.

     이전의 기억과 마찬가지로.

     "쟈넷!"

     하리스가 외친다.

     불타오르는 업화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자네스의 힘이다.

    ㅡㅡ지팡이가 없어진다면, 내가, 지팡이가 되면 돼.

     "퓨르여!"

     쟈넷은 화염을 향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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