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화 폐허2022년 02월 13일 19시 55분 51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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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진찰을 받은 라니아스는, 늑골과 다리의 뼈가 부러진 것이 확인되어 설령 마차라 해도 이동하기 어렵다고 판단되었다.
아직도 의식이 없는 라니아스를 [인질]로 잡은 것은 불안했지만, 의식을 되찾은 뒤의 그가 어떻게 될지는 쟈넷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침해가 아직 떠오르지 않은 사이에, 쟈넷은 짐마차의 조수석에 앉았다.
마차를 모는 자는, 은룡. 농부가 밭일을 할 때 입는 조잡한 복장이다.
쟈넷의 옷은 신전의 무녀복. 목에 건 붉은 보석의 목걸이를 옷 속에 숨기고서, 그 위에 어제 은룡이 빌려준 상의를 걸치고 있다.
금발머리는 풀어헤친 채다. 때때로 바람에 흔들리기 때문에, 그 때마다 손으로 눌러 진정시킨다.
"갑니다."
그렇게 말한 은룡은, 말의 고삐를 쥐었다.
짐마차는 천천히 언덕을 내려가서, 갈림길까지 가싸.
똑바로 나아가 다른 언덕을 올라가는 길과,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짐마차는 주저하지 않고 깊은 숲속으로 들어갔다.
"길이 다르지 않아?"
짐마차가 나아가는 길은, 백작가로 가는 길과 다르다.
"조금 돌아갑니다."
은룡은 그렇게 말하고 고삐를 쥐었다.
"어디로 가길래?"
대답은 없다.
쟈넷은 가슴가로 손을 들어서, 손가락으로 보석의 감촉을 확인했다.
"그 몸짓은 질투가 나는군요."
"무슨 뜻?"
"무자각이라니, 이것 또한 얄밉군요."
은룡은 그렇게 말하며 좁은 길을 달렸다.
점차 해가 솟아나며, 빛과 그림자가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나 지났을까.
"슬슬 도착합니다."
길이 구불구불하게 꺾이다가, 이윽고 커다란 호수가 보인다.
"얼지 않는 호수, 에스파토 호입니다."
"에스파토 호......"
쟈넷은 숨을 삼켰다.
은룡이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숲의 나무들을 지나치자, 이윽고 시야가 단번에 트인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폐허의 마을.
마을로 들어가자, 길은 돌바닥으로 바뀌었다. 돌은 검게 그을리고 군데군데가 쪼개져 있다. 그 약간의 틈새로 잡초가 뿌리를 내려 커다란 잎을 펼치고 있다.
검게 그을린 벽과, 무성한 식물. 호수의 옆에는 빛바랜 어항의 부두가 보인다.
"제 아버지는 이 마을의 영주였습니다. 레리어트 백작으로 말이죠."
은룡의 눈이, 고지대의 붕괴한 건축물을 바라보고 있다.
"그럼, 화염의 체벌을......"
"맞습니다......이 프로파드의 마을은, 성스러운 화염에 의해 불태워진 마을입니다."
예전에.
이 프로파드는, 작지만 나름 번영한 마을이었다.
하지만 7년 전.
제왕 자넷의 정책을 비판한 레리어트 백작은, [모반]을 일으키려다가 영지인 프로파드와 함께 성스러운 화염에 의해 불태워진 것이다.
성스러운 화염에서 거대한 불덩어리가 연이어 프로파드의 마을로 쏟아졌고, 화염은 마치 의지가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불태웠다. 운 좋게 숲으로 도망친 자도, 제도에서 파견된 정규군에 둘러싸여서 몰살되었다고 들었다.
"잘도......무사했네."
쟈넷의 말에, 은룡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삼남이라서, 14살 때 친족 집에 양자로 들어갔습니다. 당시는, 여기를 떠나 3년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그랬구나......"
"양부모님은 좋은 분이셔서, 일족은 물론이고 영지 주민들도 몰살당한 백작가의 사람인 저를, 당초의 약속대로 딸의 데릴사위로 들일 셈이었던 모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순 없다면 제가 파혼을 요청했습니다."
은룡의 말에, 감정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마음이 과격하다는 것을 쟈넷은 느꼈다.
"그 양부모 분들은?"
"무사한 모양입니다. 제왕도 양자를 들인 쪽까지 멸망시키지는 않았습니다. 전 약혼녀는 이미 결혼해서 자식이 있다고 합니다."
".......그랬구나."
무엇을 말해야 좋을지, 쟈넷은 알 수 없었다.
"저는 제국을 떠나서, 마술과 무술을 배웠습니다ㅡㅡ물론 일족과 이 마을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은룡은 마차를 세워서, 말을 쉬게 하였다.
마을 입구에 있는 수로에는, 약간의 물이 흐르고 있다.
"호수에서 끌어오고 있습니다. 토사가 섞였는지 수량이 꽤 줄어들었지만."
말이 길가의 풀을 먹기 시작한다.
쟈넷은 마차에서 내려와 타버린 돌바닥 위에 섰다.
"어째서, 내게?"
쟈넷의 물음에, 은룡은 어깨를 들썩였다.
"당신한테 보여주고 싶어 졌거든요."
쟈넷은 쓴웃음을 지었다.
"난 제왕 자네스가 무엇을 했는지 모르는 건 아냐."
화염의 체벌을 받은 곳은 이곳만이 아니다. 규모의 크기는 다르지만, 제왕 자네스는 이렇게 반대세력을 본보기로 살육하며 지배를 공고히 해온 것이다.
"내가 자네스를 따르는 것은, 충성을 맹세했기 때문은 아냐. 벼락출세했다는 건 인정하지만, 좋아서 출세한 것은 아냐. 물론 당신이 보기엔 단즙을 빨아먹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강제로 채굴장에서 일하는 광부들이 보기에는, 제왕의 위세를 빌린 가증스러운 여자다.
"자네스의 학정을 보여줘도, 난 내 일을 포기하지 않아. 그리고 [성스러운 화염]은 자네스의 권력의 상징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 나라에 살아가는 것 전부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꺼트릴 수는 없어."
"맞습니다. 당신이 포기한다 해도, 다른 자가 채굴장의 일을 이어받겠죠. 그리고 당신 정도로 홍련석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가 없는 이상, 채굴은 더욱 위험한 것이 되구요."
"그렇다면, 어째서?"
"저를 알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은룡은 쟈넷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 올곧은 눈동자에, 무심코 두근거린다.
"제가 당신에게 한 짓은, 당신에 대한 원한 때문이 아니라는 것......여성에게 큰 부상을 입혀놓고서 할 말은 아니겠지만."
"알고 있어. 그건 서로 마찬가지였어."
"그리고, 채굴장의 근로환경은 당신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낫다는 점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필요 이상의 홍련석은 자네스의 힘을 강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과 싸울 수밖에 없지요"
쟈넷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네. 성스러운 화염은 지울 수 없지만, 자네스의 힘은 깎아놓아야만 하겠지. 그리고 난 제왕의 기반을 지탱하는 여자인걸."
산들바람이, 쟈넷의 금발을 흔들다.
"당신들이 내게 뭘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사람의 원망을 사는 일만 할 수 있는 여자야."
"그렇지 않습니다ㅡㅡ당신은, 비슷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아니. 비슷한 것은, 머리의 색뿐인가."
머리를 흔들면서 작게 중얼거린다.
바람이 풀잎을 흔든다.
"슬슬 가볼까요."
은룡은 다시 말을 마차와 연결했다. 그리고 쟈넷에게 손을 빌려주면서, 다시 마차에 올라탔다.
"마술사공."
"쟈넷이면 돼."
은룡은 휴우 하고 한숨을 지었다.
"......마술사공은, 누구보다도 화염에 사랑받고 있습니다."
은룡은 쟈넷을 보지 않고 수갑을 쥐었다. 얼굴은 무표정에 가깝다.
마치 쟈넷과 사선을 맞추기를 피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이 나라에는 [성스러운 화염]이 필요합니다. 제왕 자네스한테서 그걸 빼앗으려면, 당신과 그 남자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 남자?"
"그렇지 않으면......"
은룡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입을 닫았다.
말이 천천히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한다.
은룡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쟈넷은 그 옆모습을 바라보면서, 말하기를 기다렸다.
"......"
은룡의 입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쟈넷에게는, 마치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 것처럼 보였다.
마차는 천천히 백작가를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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