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화 야회 후편2022년 02월 12일 19시 49분 33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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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은 누구냐."
하리스의 목소리에 언짢음이 배어있다.
"몰라요."
쟈넷은 대답하고서, 하리스의 팔에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술기운이 아직 돌고 있는지, 다리가 휘청거려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내게 인사하러 오지도 않고 모르는 남자한테 안기고 걷지 못할 정도로 취해버리다니......"
"그럼, 추태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절 버리시면 되잖아요."
쟈넷이 중얼거렸다.
"꽤나 자포자기한 말투인데."
하리스는 눈썹을 찌푸렸다.
"이런 저따위를 신경 쓰다가는, 입장이 나빠져요."
"......그건 이상한 말이군. 너는 내 약혼녀 아닌가."
하리스의 팔에 붙잡혀서, 움직일 수가 없다.
하지만 목소리는 언짢아해도, 몸에 두르고 있는 팔은 생각보다 상냥해서, 쟈넷은 당황했다.
"이전부터, 넌 이상해."
"그럴지도 몰라요."
하리스의 말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게나 내 약혼녀가 되는 일을 고집해왔으면서."
"제가 고집할 정도로, 황자님은 고집하지 않고 계시잖아요? 신경 쓰실 일은 아니에요."
쟈넷은 하리스의 곤혹스러워함에 쓴웃음을 지었다.
이것은 그것일까. 항상 자신을 따라다니던 쟈넷이었는데, 갑자기 그 집착을 버린 것에 대한 의문인 걸까.
"나한테서 조금 전의 남자로 갈아탔다는 건가?"
"설마요."
하리스만 믿고 있어서는, 아버지를 구할 수 없다. 하지만 은룡을 믿는다 한들, 사태가 좋아지지도 않을 것이다. 누군가한테 부탁하면 뭔가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하려고 해도, 스스로 결정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 뿐이에요."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도록 구속당하고 있는데도, 쟈넷의 부상당한 팔의 상처에 아픔은 전혀 없다. 솜으로 묶여있는 듯하다.
"저기...... 놓아주시겠나요?"
"너의 약혼자는, 그 남자가 아닌 나라고?"
"그건 그렇지만요."
"그럼, 내게서 도망칠 필요는 없을 거다."
이해가 안 되는 이론이기는 하다.
하지만 취해버린 탓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평소였다면 반발해버렸을 황자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어쩌다 몸을 맡기고 만다.
"도망치는 여자는, 그렇게나 아까운 것인가요?"
"도망치고 있나?"
".......도망치는 것은 아니지만요."
어쩌다 이런 일이 되어버린 걸까.
하리스에게 안겨진 채, 쟈넷은 소파에 앉았다.
술기운도 있어서 그런지, 닿고 있는 하리스의 체온이 기분 좋다.
불가사의한 안도감이 마음을 채운다. 그럼에도,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솔직하지 않았다.
"약혼자로서의 걱정이라면, 충분히 의리를 다하고 계시다고 생각해요."
"의리로 걱정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아."
어느 정도, 하리스의 목소리에 분노가 섞인다.
"그래서 상관 말라고 말씀드리고 있잖아요. 저는 황자님의 방해를 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나의 방해? 꽤나 기특하군. 너 답지 않아. 어떤 어둠에서도 강제로 빛을 밝히려고 했던 주제에."
쟈넷은 쓴웃음을 흘렸다. 그 말대로다. 전에는 황자의 사정 따윈 전혀 보지 않았었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올바르다고 믿고 밀고 나갈 뿐이었다. 그리고, 궁지에 빠졌다.
"저와 아버지는 양날의 검. 고르는 것도 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지요. 그래서 황자님은, 저를 고르지 않아요. 버릴 수도 없고......하지만 그걸 탓할 수는 없어요. 황자님께는 황자의 입장이 있잖아요. 이제야 그걸 깨달았을 뿐이랍니다."
"왜 멋대로 결정짓지? 어느 쪽이든, 결정하는 건 나일 텐데. 네가 결혼을 내다니, 이상해."
하지만, 결국 황자는 자신을 고르지 않고 아버지를 죽일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을, 쟈넷은 참았다.
"전 애초에 제멋대로인 여자인걸요. 잘 아시잖아요?"
쟈넷은 자신의 손끝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그리고, 저와의 약혼은 황자님의 [득]이 될 것이 전혀 없잖아요."
제국에서 비할 데 없을 정도의 힘을 가졌어도, [성스러운 화염]을 다룰 수 없다면 제왕을 거스를 수 없다. 제왕이 필요 없다고 한다면, 버려진다...... 그것뿐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도 정도 없으니까, 그건 당연하다.
"구르마스인가?"
하리스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아뇨......구르마스가 반대하고 있긴 하지만, 아니에요."
"너는......오직 여자의 미소를 위해서만 남자가 목숨을 건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일이 없었나?"
하리스의 손가락이, 쟈넷의 볼을 어루만졌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소리를 내며, 몸이 떨린다.
달콤한 그 말에 취해버리려 한다ㅡㅡ하지만.
"....... 제 탓에 목숨을 잃는 사람이 있는 건 사실이네요."
쟈넷은 달달한 분위기를 뿌리쳤다. 시야 구석에 리아나의 모습이 비쳤다.
분명하게, 황자를 발견하고는 이쪽으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하리스 님."
방울이 울리는 것처럼 귀여운 목소리.
"하리스 님, 아버지께서 꼭 소개하고 싶은 분이 있는 모양이에요."
단아한 미소. 쟈넷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 그리고 하리스가 자신의 권유를 거절하지 않으리라 확신하고 있다.
"부디, 마음대로 하세요."
쟈넷은 황자에게 웃어 보였다.
"덕분에 꽤 좋아졌답니다."
"쟈넷."
"재상 각하께 안부 전해주세요. 전 문병 와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해요."
쟈넷은, 무심코 목걸이에 눈길을 줬다.
"그것을, 화내고 있는 건가?"
그것이란, 부상 입은 쟈넷의 내통을 의심한 것이겠지.
"아니요. 오히려 감사해요. 구르마스를 통해서 그렇게 전했을 텐데요."
빈정거림이 아니다.
의심이건 뭐건, 쟈넷을 신경 써준 점에는 틀림없다.
"조금 시간을 줘라."
쟈넷의 귓가에서, 하리스가 속삭였다.
"내게는 아직 장작이 부족해."
"네?"
하리스는 천천히 일어섰다.
"......이득이 될지 안 될지는, 내가 정한다. 화염은 내가 다스린다."
그리고 하리스는 생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리아나 쪽으로 걸어갔다.
쟈넷 쪽을 돌아보지는 않는다.
"부탁이니, 내게 희망을 갖게 하지 마."
목걸이에 손을 대면서, 쟈넷은 중얼거렸다.
하리스의 몸에서 벗어난 피부가, 온기의 상실을 느낀다.
ㅡㅡ나는, 이제 기대하고 싶지 않아.
리아나와 함께 떠나는 하리스의 등은, 멀다.
목걸이의 붉은 보석이, 화염처럼 반짝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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