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화 은룡2022년 02월 12일 10시 05분 27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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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帝都) 코르.
그 중심에 있는 궁전 근처의 동쪽 언덕에, [성스러운 화염]이 불타는 탑이 있다.
거기서 만들어지는 [열]이, 제국에 생명을 가져다준다.
쟈넷은, 플로라와 함께 마차를 타면서 탑을 바라보았다.
하급귀족 출신인 쟈넷이 표면상 우대받는 것은, 화염을 다루는 쟈넷의 힘이 제국 최고였기 때문이다. 이 얼어붙은 대지에서는 화염의 마술을 다루고 홍련석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술사가 귀중한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성스러운 화염을 다루는 일은 역시 황족이 아니면 무리일 것이다.
쟈넷의 목소리에 응하지 않았던 성스러운 화염은, 오늘도 붉게 타오르고 있다.
"언니, 상처가 아픈가요?"
플로라가 가만히 있는 쟈넷을 신경 쓴다.
마차가 속도를 늦추고 있음에도 흔들거린다. 흔들릴 때마다 상처가 욱신거리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그래도, 쟈넷이 침묵한 이유는 그것이 아니었지만.
"아니, 괜찮아. 잠깐 긴장했을 뿐이야."
쟈넷은 플로라를 안심시키려는 듯 미소 지었다.
"많은 사람을 만나야만 하는걸."
".......무리는 하지 마세요."
"괜찮아. 너도 무리하면 안 돼."
쟈넷은, 플로라에게 다짐해두었다.
"기념식전이 끝나면, 넌 미라 숙모님의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네."
제도에 체류하는 며칠 동안, 쟈넷과 플로라는 아버지의 여동생이며 백작가에 시집간 숙모의 저택에서 신세 지게 되어있다.
이것도 전번과 같다. 다른 점은, 전번에는 구르마스가 빈틈없이 지시하여 준비해놓았던 것을, 이번에는 쟈넷이 제대로 감독, 지시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쟈넷이 생각했던 이상으로 구르마스가 업무에 충실하며 유능했다고 실감함과 동시에, 반대로 라니아스라는 남자에 대한 불신감이 높아지는 결과가 되었다.
건국제는 성스러운 화염의 탑 앞에서 정오에 이루어진다.
탑이 있는 언덕을, 마차가 천천히 오른다.
식전회장은, 이제 머지 않았다.
"이쪽입니다."
마차에서 내려온 두 사람을, 라니아스가 공손이 안내한다.
탑의 옆에 만들어진 원형극장의 주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식전회장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황족과 귀족. 그리고 약간의 유복한 시민뿐이지만, 회장 밖에서도 식전의 클라이맥스는 볼 수 있다. 식장 주변에는 노점이 늘어서 있어서, 1년에 한 번 있는 축제에 사람들은 들뜬 기색이었다.
"사람 진짜 많네."
쟈넷이 주변을 둘러본다.
야외극장이기 때문에, 지붕은 없다. 햇살도 포근하고 푸른 하늘은 청명하지만, 공기는 차가웠기 때문에 외투는 벗을 수 없다.
하지만, 추운 것은 지금 뿐이다. 식전이 시작될 즈음에는 이 원형극장의 지하에 있는 화로에 마력의 불이 지펴져서, 관객석은 밑부터 따스해지는 구조로 되어있다.
그 불을 지피는 자는, 쟈넷 같은 화염의 마술사들이다. 쟈넷은 15세 때부터 4년이나 그 일을 해왔다.
항상 뒤편에서 식전을 만들어 온 쟈넷이지만, [손님]으로서 참가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쪽입니다."
작년까지는 귀족 중에서 거의 말석에 앉았던 쟈넷과 플로라였지만, 올해는 황족과 가까운 귀족석으로 안내받았다.
이것도 기억과 같다. 주변의 고귀한 귀족들한테서 미묘한 시선을 모으는 부분까지 같다.
ㅡㅡ나, 정말 미움받고 있는 거네.
내 탓에 플로라까지 몸 둘 바를 모르게 되어버리고 말아서,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두 쟈넷의 힘을 두려워하고 있어서, 대놓고 깔보지는 않는다.
"우리들, 올해는 일하지 않아도 되려나?"
알고 있는 일이긴 하지만, 쟈넷은 라니아스한테 물어보았다.
"오늘은 이쪽에서 천천히 관람하라는 폐하의 어명이옵니다."
"......그래. 익숙지 않네."
쟈넷의 말에, 라니아스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며 물러갔다.
팡파르를 울리는 악단이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사람들의 술렁거림과 분주한 움직임.
"언니, 황족 분이 나타나신 모양이에요."
플로라가, 귀족석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칸막이석을 가리켰다. 그 자리에는 제왕과 제비, 황자 외에도 재상 부자가 앉아있었다.
올려다보자, 단정한 황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장을 입고서, 재상의 딸 리아나를 공손히 에스코트해주고 있다.
ㅡㅡ어울리네.
빈틈없이 섬세한 하얀 피부. 예쁘게 묶어 올린 블론드의 머리카락. 단아한 몸짓. 여성이 봐도 넋이 나갈 정도로 아름다운 공주님이다.
쟈넷의 가슴이 찌릿하며 아파온다.
이 광경을 보는 것은 두 번째일 텐데도, 왜 괴로운 걸까.
가슴이 아픈데도, 어째서 눈을 뗄 수 없는 걸까.
황자가 칸막이석 안에서 주변 사람들한테 손을 흔들면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언뜻 쟈넷 쪽을 바라본 듯한 것처럼 보였다.
쟈넷은 공손히 고개를 숙인 뒤, 시선을 칸막이석에서 떼고는 일어섰다.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하는 것은 쟈넷의 착각이다. 그렇게 깨닫는 것이 두렵다.
"언니?"
왜 그러냐는 듯 눈길을 주는 플로라를 향해, 쟈넷은 미소 지었다.
"비즐 님께 인사하고 올게. 바로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마."
식전이 시작되기까지 여기에 계속 있으면, 싫어도 황자 쪽을 보고 만다. 황자와의 약혼을 포기하겠다고 결정한 이상, 그것은 미련이다.
쟈넷은 혼자 자리를 이탈했다.
출구를 지나치자, 서늘한 공기가 볼을 쓰다듬는다. 어쩐지 가슴이 싸늘하고 이픈 것은, 그 탓이다.
"쟈넷?"
마술사석 쪽으로 걸어가던 때, 한 여성이 쟈넷을 불러 세웠다.
"마리아."
주근깨가 난 얼굴에, 연약한 팔다리. 미인이라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애교가 있는 둥근 눈동자.
쟈넷의 얼마 없는 친구이며, 우수한 마술사다.
"이런 곳에서 뭐 하고 있어? 넌 귀족석에 있어야만 하잖아?"
"맞아. 그래도 식전 전에 모두랑 만나고 싶어서."
"그럼 곤란해. 네가 오면, 모두 네게 기대고 말 거야."
마리아는 키득거리며 웃더니, 마술사들의 자리 쪽으로 쟈넷을 안내했다.
"데니스 님도 없고, 쟈넷도 플로라도 없어. 이 나라의 마술사가 몽땅 빠진 바람에, 식전이 꽤 힘들어졌지 뭐야."
"비즐 님도 마리아도 있잖아."
"비즐 님은 몰라도, 내가 10명이나 있어도 쟈넷은 못 이겨."
조금 전보다는 훨씬 등급이 낮아진 관람석의 풍경이지만, 쟈넷에게는 편안했다.
익숙하고 그리운 모습의 사람들.
무엇보다도, 여기서는 귀족석의 가장 안쪽의 칸막이석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쟈넷?"
말을 건 자는, 나이 든 남성. 아버지 데니스와 동년배이며, 이 나라 굴지의 대지의 마술을 다루는 비즐이다. 쟈넷이 후보라는 형태로라도 황자와 약혼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남자의 조력이 컸다.
"조금 시간이 남아서, 비즐 님께 인사를 드리려고요."
"오랜만인데. 정말 예뻐졌구나."
"감사드려요. 여동생과 함께, 무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어요."
쟈넷의 말에, 비즐의 표정이 복잡하게 일그러진다.
"아직도, 데니스는 연구를 하고 있어서.......식전에도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모양이다."
"잘 지낸다면, 그걸로 됐어요. 나라를 위한 연구니까요."
두 사람 사이에, 약간의 침묵이 생겨났다.
"아무래도, 남쪽의 별궁은 지내기 괜찮은 모양이다."
비즐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가요......" 쟈넷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의 주거지를, 비즐 나름대로 찾아준 모양이다.
전에는 계속 자리에 앉아있어서, 비즐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자신이 하나의 생각에만 갇혀버리고 말았었다고, 쟈넷은 깨달았다.
"저, 뭔가 도울 일이 있을까요?"
"그야 뭐, 홍련의 마술사가 해줬으면 하는 일은 산더미처럼 있지만......"
비즐은 쓴웃음을 지었다.
"오늘은 빨리 자리로 돌아가. 네 입장이 위태해지니."
"네."
쟈넷은 정중히 고개를 숙인 뒤, 순순히 따르기로 했다.
자신의 입장은 어찌 되든 상관없지만, 플로라나 비즐에게 민폐를 끼칠 수는 없다.
자신과 아버지가 이 나라의 불씨라는 점을, 쟈넷은 이해하고 있다.
그리운 사람들과의 해후를 끝내고, 쟈넷은 다시 통로로 나갔다.
식전이 목전에 다가왔기 때문에, 원형극장 전체가 분주했다.
ㅡㅡ어?
쟈넷은, 문득 걷고 있는 한 남자에게 눈길을 빼앗겼다.
예리하고 사나운 표정을 한 듬직한 남자다. 기억과는 다른 머리색이기는 하다. 하지만, 틀림없이 아는 남자다.
ㅡㅡ은룡.
채굴장에 나타났던 은룡을 장식한 화려한 복장과는 다르게, 그렇다 할 특징이 없는 외투를 걸치고 있다.
남자 쪽도, 쟈넷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쟈넷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쟈넷 외에 남자의 정체를 눈치챈 자는 없는 모양이다.
"평안하셨나요."
쟈넷은 친근하게 미소 지었다.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남자는 잠깐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오랜 지인을 대하는 것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여전히 아름답군요."
"......마음에도 없는 말을."
쟈넷이 쿡 하고 웃자, 남자는 "설마요." 라고 말했다.
"당신한테라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남자는 많을 겁니다."
".......빈정대는 말이 아니라면 좋겠지만요."
"꽤, 진심입니다만."
구애의 글귀처럼 들려도, 실제로는 목숨을 빼앗으려던 사이였던 만큼, 웃을 수 없다.
남자는 부드럽게 쟈넷의 손을 잡고는 귀족석 쪽으로 함께 걸어갔다.
"신사 같네요."
"누구한테나 이렇지는 않지만요."
남자는 싱긋 웃었다.
목숨을 걸고 싸운 상대이기는 하지만, 쟈넷의 안에는 은룡에 대한 미움이 없다. 오히려, 이 남자를 존경까지 하고 있다.
플로라가 반란군에 몸담는 미래를, 쟈넷은 바꾸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은룡은 플로라를 맡기기에 걸맞은 남자다.
반년 뒤에는, 황자도 자신도 기댈 수 없게 되니까.
"아버지는 남쪽 별궁에 있어."
쟈넷은 자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남자는, 그것에 대답하지 않은 채 갑자기 멈춰 섰다.
남자의 시선 끝을 눈으로 좇다가, 쟈넷은 놀랐다.
귀족석의 입구에, 장신이 남자가 서 있었다. 예리한 눈동자로, 쟈넷과 남자를 바라보고 있다.
"황자님?"
어째서 황자가 여기에 있는 거람.
은룡이 여기에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일까.
쟈넷은 태연함을 가장하면서, 두뇌를 회전시켰다.
"마중 나온 모양이군요. 아름다운 공주님."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서, 쟈넷한테서 떨어지며 목례를 했다.
"당신처럼 아름다운 분이 혼자 걸으면 위험합니다. 이제부터는 주의를."
"고마워요."
쟈넷이 방긋 미소 짓자, 남자는 "언젠가 또 뵙죠." 라고 말하고는 등을 돌렸다.
남자가 떠나는 발소리를 뒤로 들으면서, 쟈넷은 황자에게 목례를 했다.
"쟈넷."
약간 분노가 담긴 목소리다.
"어디에 갔었나?"
"마술사석 쪽으로 인사하러 갔다 왔답니다."
쟈넷은, 격한 동요를 숨기면서 대답했다.
등줄기에 싸늘한 땀이 흘렀다.
"쟈넷은 내 약혼녀라서 마술사석에 갈 필요는 없었을 텐데?"
"저는 홍련의 마술사. 마술사이기 때문에, 약혼자 [후보]까지 도달한 신분입니다."
호흡을 크게 하면서, 쟈넷은 대답했다. 조금 전의 남자가 은룡이라고 들켜서는 안 된다.
그 남자가 여기서 붙잡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방금 전의 남자는 누구지?"
"글쎄요?"
쟈넷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혼자 걷고 있자니, 보내줬어요. 친절한 분이네요."
"꽤 즐거워 보였다만."
황자의 눈이 찌를 듯이 쟈넷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심문하는 것 같다.
몸이 경직되어버리는 것을, 필사적으로 감춘다.
"그런가요."
쟈넷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요. 제게 그렇게나 상냥히 대해 주신 분은, 드물었거든요. 기뻤어요."
쟈넷의 말에, 황자의 표정이 언짢음으로 물든다.
"황자님이야말로 이런 곳에서 뭐하고 계시죠? 리아나 님이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요."
"무슨 말을 하고 싶지?"
"아무것도......전, 이제 황자님의 방해는 안 하겠다고 결심했으니까요."
"잠깐만. 쟈넷."
등을 돌리고 떠나려던 쟈넷의 팔에, 황자의 손이 뻗어온다.
".......아얏."
아물지 않은 상처의 아픔에, 쟈넷은 무심코 작게 비명을 질렀다.
"미안......괜찮은가?"
서둘러 손을 빼낸 황자의 표정에 동요가 엿보인다.
식전의 시작을 고하는 팡파르가 울려 퍼진다.
"실례했습니다. 괜찮아요. 황자님도 빨리 돌아가세요."
쟈넷은, 고개를 숙이고는 그 자리에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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