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제2화 부하
    2022년 02월 11일 21시 07분 48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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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7752eo/3/

     

     

     하리스가 돌아간 뒤, 쟈넷은 천천히 일어났다.

     아직도 머리가 아프다.

     창문 바깥을 보니, 새하얀 빙설산맥의 능선이 이어져 있다.

     건국신화의 용이 가져다 주었다는 성스러운 화염이 없으면, 이 땅은 순식간에 얼어붙고 말 것이다.

     아버지의 연구는, 성스러운 화염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기대지 않고 빙설산맥에서 내려오는 냉기를 완화시키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제왕의 권력의 흔들림을 의미하는 연구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는 붙잡혔다.

     반년 뒤.

     아버지가 죽는 것은, 아버지의 연구가 제왕에게 이득이 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ㅡㅡ그리고, 쟈넷의 능력도 필요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반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쟈넷은 모른다.

     알고 있는 것은, [성스러운 화염]은 쟈넷이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며......아마, 이대로 간다면 반란군도 패하고 말 것이다.

     [성스러운 화염]을 꺼트릴 수는 없으니까.

     쟈넷은 창가에 앉아서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목숨은 몰라도, 아버지는 구해야만 한다ㅡㅡ이 나라를 위해서도.

     "쟈넷 님, 상태는 어떠신지요?"

     문 너머에서의 목소리에, 쟈넷은 가운을 끌어당겼다.

     "나쁘지 않아. 들어와도 돼."

     목례한 뒤 들어온 자는, 눈알이 날카롭게 번득이는 풍채 좋은 남자와, 메마르고 교활해 보이는 미소를 입가에 띠고 있는 남자였다.

     눈이 날카로운 쪽은 구르마스. 또 한 명의 교활해 보이는 남자는, 라니아스.

     명목상 쟈넷의 부하지만, 실제로는 둘 다 쟈넷의 감시자다.

     표면상 쟈넷의 명령을 거역하지는 않지만, 충성심은 털끝만큼도 갖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제각각 사상이 달라서 사이가 좋지는 않다.

     구르마스는 황자파, 라니아스는 제왕파. 제국의 미묘한 세력구도가, 여기에도 있는 것이다.

     정말 훈훈한 직장이다.

     [은룡]과 쟈넷의 싸움을 황자에게 보고한 자는, 아마도 이 구르마스 쪽일 것이다.

     이 남자는, 쟈넷을 모시면서도 쟈넷을 위험시하는 것을 숨기려들지 않는다.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남자다. 그런 면에서, 쟈넷은 이 남자를 신뢰하고 있다.

     "황자님은 돌아갔어?"

     가운을 걸치면서, 쟈넷은 구르마스에게 물어봤다.

     "예. 이것을 건네주라고 말씀하시고서."

     구르마스는 그렇게 말하며, 나무상자를 쟈넷에게 내밀었다.

     기시감을 느끼면서, 쟈넷은 그걸 손에 들었다.

     안에 든 것은 건국기념행사의 초대장과, 투명한 붉은 보석의 목걸이.

     기억과 다르지 않은 내용물이다.

     "이건?"

     "쟈넷 님과 부디 동반하고 싶다고, 황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쟈넷은 수긍했다.

     내통을 의심하는 주제에 어장관리하는 듯한 선물이네, 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초대라고 하지만, 쟈넷의 입장에서는 소집이다.

     쟈넷에게 조금이라도 반항의 의사가 있다면, 아버지에게 위험이 찾아온다.

     전에는, 아직 아픈 몸을 무리하게 이끌고서 호화찬란한 건국제에 참가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 힘 때문에, 공식석상에서 쟈넷을 냉대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관여하려 하는 자도 없다.

     화려한 식전, 화려한 야회. 쟈넷은 항상 고독했다.

    ㅡㅡ나쁜 남자.

     쟈넷은 쓴웃음을 지었다.

     결국, 하리스는 쟈넷을 고르지도 거절하지도 못했다.

     때때로 이렇게 어장관리 같은 짓이나 한다.

    ㅡㅡ똑똑한 황자님이야.

     약간 기쁘다고 느꼈었던 자신은, 얼마나 어리석었던 걸까.

     선물 받은 목걸이를 차고 있어도, 황자는 멀리서 자신을 둘러싼 원의 가장자리에 서 있을 뿐. 황자의 옆에는, 아름다운 재상의 딸이 있었다.

     약혼은 형식뿐. 원하는 것은 황자의 마음이 아니라고 스스로 구분 지었을 관계일 텐데도 섭섭함을 느꼈던 것은, 쟈넷의 제멋대로에 불과하다.

     쟈넷은, 보석 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돌려준다고 말하면, 난 반역죄가 되는 걸까."

     작게 중얼거린 목소리에, 구르마스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바뀐다.

     그런 대답을 들은 것은 완벽히 예상 밖이었던 모양이다.

     "농담이야."

     쟈넷은 상자를 닫았다.

     적어도, 지금의 황자는 쟈넷과의 관계를 끊을 생각이 없다. 이것은 그 증표이며, 이 이상은 아닌 것이다ㅡㅡ그렇게 단정 지으면, 마음에 풍파는 일어나지 않는다.

     "채굴장의 상태는 어때?"

     "입구의 암반에 균열이 발견되어서, 보강공사를 지휘하고 있습니다."

     라니아스가 걸어나와서, 그렇게 설명했다.

     방심할 수 없는 눈빛.

     쟈넷은 이 남자의 눈이 싫었다.

     묘한 이야기지만, 쟈넷의 앞에서 공손한 태도를 취하는 라니아스 쪽이, 구르마스보다 믿을 수 없다.

     라니아스 말에는 성의가 없는 것이다.

     "알았어. 채굴장의 안전 확보는 최우선 사항이니, 제대로 해."

     그렇게 말하면서, 전에도 같은 말을 했구나 생각한다. 그리고 이 남자한테 [안전]을 부탁하는 것은 무모하다고도 다시 생각했다.

     "역시, 이 일은 구르마스가 하는 게 좋겠어. 라니아스는 채굴이 끝난 홍련석의 운반처리의 지휘를 맡길게."

     쟈넷은, 본심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미소 지었다. 이 정도의 기예는 쟈넷도 가능하다

     "라이나스는 건국제에 따라가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어. 라니아스는 의식에 해박해 보이니까."

     "......알겠습니다."

     라니아스는 구르마스 쪽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따로 이상한 일은?"

     "딱히 없습니다. 아마 은룡 쪽도 부상을 입었다고 생각합니다. 당분간 습격은 없을까 합니다."

     "그렇구나."

     쟈넷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서 경계는 해둬. 이제 가봐."

     쟈넷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는 방을 나가려 했다.

     "잠깐. 구르마스한테는 아직 할 말이 있어."

     "제게?"

     멈춰 선 구르마스를 곁눈질하며, 라니아스가 문에서 나갔다.

     쟈넷은 싱긋 웃었다.

     "일단, 말해둘까 생각해서."

     쟈넷은, 손에 든 상자를 사이드테이블에 놓았다.

     "무엇, 일까요."

     구르마스는 가만히 쟈넷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무슨 말을 들을지 예상이 안 되는 모양이다.

     "일을 당신한테 맡긴 이유야."

     쟈넷은 싱긋 웃었다.

     "당신 쪽이 그나마 채굴장의 안전을 신경 쓰고 있어서야."

     구르마스의 눈이 깜짝 놀란 것처럼 부릅뜨였다. 그 말은 정말 상상 외였던 모양이다.

     "당신은, 나는 몰라도 광부들의 안전은 지키잖아?"

     일이라는 측면에서는, 제왕의 개인 라니아스보다 구르마스 쪽이 믿을 수 있다.

     "쟈넷님?"

     쟈넷은 나무상자에 눈길을 줬다.

     "구르마스는, 나랑 황자의 약혼을 반대하는 거지?"

     쟈넷의 물음에, 구르마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구르마스가 황자의 충신이라는 것은 틀림없다ㅡ그것은, 전부터 알고 있던 일이다.

     황자에게 있어, 쟈넷이란 제왕 자네스와의 관계를 위험하게 만들 불씨다. 이 남자가 쟈넷과 황자의 관계를 떼어내려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안심해. 나, 이제 무리는 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쟈넷 님?"

     "사랑도 없고 정치적 이득도 없는데, 황자가 나를 선택할 리가 없다고 깨달았어. 제도에 가면, 그 뜻을 폐하께 알릴 거야."

     아버지를 구출하려고 황자의 힘을 빌리려는 것은 잘못이었다.

     약혼을 확고한 것으로 만들려던 노력을, 더욱 다른 방향으로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는 아직 모른다ㅡㅡ모르지만, 이대로는 아버지를 구할 수 없다.

     "......그럼, 폐하의 심경이 나빠지는 것은 아닐지?"

     "폐하는 내 힘이 필요해. 그렇게 간단히 버리지는 않아."

     쟈넷은 웃었다.

    ㅡㅡ지금은.

     언젠가, 아버지도 나도 필요로 하지 않겠지만. 이라고 가슴속으로 중얼거린다.

     "황자한테서 손을 뗄 테니, 채굴장의 안전 확보는 당신이 책임지고 제대로 해. 일에 관해서는, 당신을 믿고 있으니까."

     "어떻게 되신 겁니까?"

     구르마스가 의아한 듯 쟈넷을 바라본다.

     "언제든 포기하지 않는 쟈네스 님답지 않습니다만."

     "당신한테 그런 식으로 보였다니, 의외네."

     쟈넷이 그렇게 말하며 웃자, 구르마스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보였다.

     "큰 부상을 입고서도 의심받는데 소침해지지 않을 정도로 유들유들한 성격이 아니라서 말야."

     그러고 보니, 전에는 그 마음을 필사적으로 숨기려 했었네.

     약점을 보이는 일은 지는 것과 같다며 애를 썼었다.

     무엇을 하든, 무엇을 견디든, 결국은 쓸데없었지만.

     "당신한테 말해도 부질없긴 해. 잊어."

     "쟈넷 님......"

     구르마스의 커다란 눈이 쟈넷을 응시한다.

     그럴 정도로, 의기소침해진 쟈넷은 의외였던 것일까.

     "황자님한테는 감사를 표했다고 전해. 어떤 이유가 있든, 문병을 와준 것은 틀림없는걸."

     반란군과의 애통을 의심한다고 해도, 일부러 제도에서 직접 상태를 보러 올 정도로는 쟈넷을 신경 쓰고 있었으니까.

     "그건......쟈넷 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편이."

     "무리야."

     쟈넷은 그렇게 말하면서 나무상자를 쓰다듬었다.

     "나, 이제 자신에게 거짓을 말하지 않기로 정했는걸."

     돌아갈 때.

     쟈넷을 대하기 어려워하던 하리스의 모습을 떠올렸다.

     "불평이라도 말해버릴 것 같으니까. 하지만, 황자와 다툴 수는 없는 일이잖아?"

     아군으로 삼겠다는 것은 포기지만, 적으로 만들고 싶은 것은 아니다.

     ".......오해하시는 모양이니 말씀드리지만, 저는 쟈넷 님께서 부상을 입었다는 보고 이외에는 드리지 않았습니다."

     구르마스는 뜻을 굳힌 듯, 쟈넷에게 눈길을 주었다.

     "쟈넷 님을 몰아세우고 싶은 것은, 제가 아닌 라니아스 쪽입니다."

     "그랬어?"

     그건 의외였다.

     "그래......"

     하지만, 의외이긴 해도 납득은 갔다.

     "나를 실각시켜서, 플로라를 후임으로 내세울 셈이려나."

     구르마스는 눈썹을 찌푸렸다.

     플로라도 쟈넷 정도는 아니지만, 홍련석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있다.

     쟈넷보다 플로라 쪽이 다루기 쉽다고 라니아스가 생각해도 이상하지는 않다.

     그렇게 두지 않아.

     플로라한테, 쟈넷과 같은 고생을 시키다니, 웃기지 마라.

     "이참에 말씀드리지만, 재상의 계집애보다 쟈넷 님 쪽이 황자와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찬성은, 역시 할 수는 없겠지만요."

     그렇게 말한 구르마스는 고개를 숙였다.

     "당신도 복잡하겠네. 나한테 아첨해도 좋은 일은 하나도 없어. 무리해서 치켜세우지 않아도 돼."

     완곡한 구르마스의 말에서 서투른 상냥함을 느끼고, 쟈넷의 가슴은 뜨거워졌다. 아무렇지도 않게 재상의 딸을 계집애라고 부르다니 좋은 배짱이라면서, 웃었다.

     구르마스의 눈이 눈부신 듯이 가늘어졌다.

     "그 표정......당신은, 치사한 사람이다."

     구르마스는 중얼거렸다.

     그 눈의 날카로움이 느슨해졌다.

     "채굴장 쪽은 맡겨주십시오. 업무에서 당신을 배신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 기대할게."

     쟈넷이 수긍하자, 구르마스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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