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45. 양산
    2021년 11월 21일 14시 56분 54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728x90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1313ff/47/

     

     

     장마가 그치고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얀의 친가에서도 야채의 벌레를 쫓기 위해 허브를 심었던 모양이어서, 어느 정도는 잡초와의 구분을 할 줄 아는 덕에 가르칠 때도 보충 정도로 끝났다. 한 명이 늘어난 것만으로도 꽤 도움이 된다고 실감했다. 아버지도 그걸 느꼈는지 잘하고 있다고 한 마디 칭찬하면, 얀의 눈부신 시선을 받아서 난처하다. 얀의 검은 눈동자는 존경과 동경의 색을 싣게 되면 그 순간 반짝거리게 되어서 성가시다.

     마침 내 앞에 있는 눈도 딱 그렇다.

     

     "잠깐만, 기다려......"

     

     고아원 입구에 들어오자마자 곧장 돌격해 온 것에 뒤덮여서, 나의 시야는 잠시 시커멓게 변했다. 뛰어든 기세 때문에 늘어난 체중을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럼에도 다가오니, 뒤로 쓰러질 수밖에 없게 된다.

     

     "아, 알았으니까......유리아.......풉!"

     

     상대의 이름을 다 말하기도 전에, 얼굴을 핥아버리면 말할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유리안의 목덜미에 손을 들어서 쓰다듬었다. 유리안은 그럼에도 볼에 자기 볼을 문지르고 있다.

     

     "유리안."

     

     내가 쓰러진 채로 있자, 누군가가 강한 어조로 유리안의 이름을 불렀다. 유리안은 내 위에 올라탄 채로, 목소리의 주인을 돌아보았다.

     

     "아니카 님, 안녕하세요."

     

     "이자크 군, 미안하네요. 갑자기 뛰쳐나와서 멈출 수 없었어요."

     

     아니카 님은 미안해하며 웅크려서는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손수건을 꺼내서 얼굴을 닦아주었다.

     아니카 님이 지시하자, 유리안이 이제야 물러나 주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서 다시 유리안을 쓰다듬었다.

     

     "괜찮습니다. 저도 유리안을 좋아하니까요."

     

     유리안은 비트 후작가의 개다. 아니카 님이 고아원을 방문하게 되어서 그런지, 다니엘 님은 군의 구조견 후보였던 유리안을 입양했다.

     나도 아니카 님이 읽고 쓰기를 가르칠 때 도와주기로 하였다. 그렇다 해도, 내 휴일과 아니카 님의 방문일이 겹칠 때뿐이라서 한 달에 두 번 올까 말까 한 정도지만.

     

     "자크, 글씨 이뻐~ 이상해~"

     

     "어울리지 않아~"

     

     "상관없잖아."

     

     아이들이 낄낄대며 웃는다. 아가씨의 글자를 참고로 연습했던 탓인지, 글자가 예쁜 모양이다.

     

     "어머, 글자가 예쁜 건 대단한 일이잖아요."

     

     아니카 님이 그렇게 달래준다.

     

     "유리안도 글자가 예쁜 쪽이 좋지?"

     

     남녀 양쪽을 돌봐주던 아니카 님이, 아직 글자를 못 쓰는 세살배기의 그림의 모델이 되어주고 있는 유리안에게 말을 걸었다.

     

     "유리안은 어느 글자가 좋니?"

     

     유리안은 느릿한 움직임으로, 각각의 칠판을 바라보며 확인했다.

     그리고, 코끝으로 내가 쓴 칠판 가장자리를 툭 찔렀다.

     그 순간, 침을 삼키며 지켜보던 아이들은 웅성거리거나, 아연실색하거나 하는 여러 반응을 보였다.

     

     "맞지? 글자가 예쁜 남자아이는 멋진 법이란다."

     

     "나, 글자 더 연습할래!"

     

     "나도~"

     

     "자크 따윈 금방 넘어줄 테니까!"

     

     "좀 있다 보자."

     

     "어, 어어......"

     

     유리안의 인기는 대단하구나. 내가 적으로 취급되다니. 어찌 되었든, 아이들한테 의욕이 생긴 것은 다행이다.

     유리안이 있는 쪽으로 돌아보자, 미소 짓던 아니카 님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부끄러움을 감추려는 듯 아니카 님께 미소 지었다. 그러자, 아니카 님이 갑자기 날 부둥켜안았다.

     

     "아, 아니카 님.....!?"

     

     "다니엘과 다르게, 저라면 괜찮지요?"

     

     "예?"

     

     왜 갑자기 다니엘 님의 이름이 나오는 거지.

     곤란해하는 사이, 아니카 님이 칭찬하는 것처럼 머리를 쓰다듬는다.

     

     "저기..... 부끄럽, 습니다만."

     

     아무래도 유리안과 같은 취급이라고 깨달은 나는, 아니카 님이 만족할 때까지 수치심을 견뎠다.

     

     

     

     "미안해요. 8월에 들어서면, 당분간 오지 못하게 돼요."

     

     고아원의 아이들과 헤어질 때, 아니카 님은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그걸 들은 아이들은 에~ 하며 섭섭한 듯한 항의의 목소리를 내었다.

     

     "무슨 일 있었나요?"

     

     "시즌 오프라서, 다니엘의 영지로 가야 해요."

     

     귀족들은, 파티를 열기에 적합하지 않은 여름에는 영지로 귀성하던가, 피서지에 체류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8월 초에 있는 제1왕자의 생일 파티 다음날에는 출발해요."

     

     "그런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아니카와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떼어놓는 일을 도와줬다.

     

     

     

     오전 중에 고아원 방문을 끝낸 아니카 님과 점심식사를 먹고 나서, 중앙광장에서 헤어졌다.

     시장의 식품 구역을 빠져나오려던 차에, 프랑크의 모습을 발견했다.

     

     "레니 씨, 안녕하세요. 오늘도 피부가 고우시네요."

     

     "응, 우리 과일 덕분이지. 사가지 않을래? 많이 줄게."

     

     "오늘은 어제 샀던 레몬에 어울리는 물고기를 찾으러 왔습니다. 나중에 다시 올게요."

     

     "우리 레몬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겠네."

     

     "안녕하세요. 마르코 씨, 허리는 어떠세요?"

     

     "늙은이 취급하지 마. 보는 대로 쌩쌩하다고."

     

     "프랑크, 생선보다 고기는 어때. 좋은 다리살이 있는데."

     

     "로지나 씨의 추천이라면, 고민되네요."

     

     몇 미터 앞의 프랑크는, 스쳐 지나는 몇 명의 가게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나아갔다. 거기다 반드시 상대의 이름을 불러줬기 때문에, 나는 솔직히 감탄했다.

     마침 그때, 프랑크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다. 젊은 형씨였는데, 삐죽한 머리카락은 짧았지만 목덜미 부분만은 머리카락이 길다. 황록색 부분 염색을 해놓고, 목덜미의 긴 머리카락의 일부에 날개 장식도 해놓아서, 어쨌든 자기주장이 강하다. 그리고 여우처럼 찢어진 눈의 한쪽에 흉터가 길다.

     

     양키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딱 보아도, 어떻게 보아도 양키 같다.

     그 양키 같은 형씨가 편한 느낌으로 프랑크에게 말을 걸자, 프랑크는 약간 주눅 든 듯 눈썹을 내렸다. 그리고 두세 마디 한 뒤에, 형씨가 프랑크를 뒷골목 쪽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프랑크 일행이 사라진 뒷골목의 입구까지 가서, 먼저 귀를 쫑긋 세웠다.

     위험해지면 사람을 부르자. 그렇게 결심한 나는,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뒷골목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무신 개 같이 일하고만 있노. 얻을 거나 퍼뜩 얻으라카마."

     

     "카, 카모......"

     

     "나가 와 여깄는지 알기나 하노!"

     

     "매끼나라 고마! 카모....."

     

     "남자 시끼가 자꾸 머라카노."

     

     남국 사투리?

     

     나는 눈앞의 광경에 어안이 벙벙했다.

     일단, 양키같은 형씨는 좋은 사람 같다.

     프랑크는 괜찮아 보이니, 보지 않은 것으로 치고 이 자리에서 떠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한 타이밍에, 양키 같은 형씨가 나를 눈치챘다.

     

     "뭐냐 꼬마. 도련님의 친구냐?"

     

     "티모, 무슨 말을......"

     

     이쪽을 바라본 프랑크와 제대로 눈이 맞았다. 굳어버린 프랑크를 보고,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난처해졌다.

     

     "저기......"

     

     "................ 봤냐."

     

     "미안."

     

     "티모, 확보."

     

     "예이."

     

     "엥?"

     

     대답보다 빠르게, 티모라고 불린 형씨는 나를 뒷골목으로 끌고 가서는, 프랑크의 앞까지 데려오자 양팔을 꽉 붙잡아서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요구사항은 뭔데."

     

     "뭐?"

     

     "뭐, 가 아니라고. 꼬리를 잡혔으니, 지불할 건 지불해야지."

     

     다시 말해 입막음 비를 물어본다는 건가.

     

     "분명, 자크라고 했었지. 애초에, 왜 훔쳐 듣고 있었냐."

     

     "아니..... 프랑크가 협박을 당하나 생각해서."

     

     "도련님을 걱정하다니, 좋은 녀석이잖아!"

     

     "빙신아, 니 모습 때문에 악당 취급당했다고. 그보다 나쁜 놈 취급한 상대를 칭찬하지 마."

     

     "얼굴은 바꿀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죠."

     

     "고건 고래."

     

     "저기, 오해해서 죄송했습니다."

     

     "아, 상관없어. 불량배로 보이다니 멋있잖아."

     

     "기뻐하지 마."

     

     불량배를 동경하는 학생 같은 대답에 내가 반응하기 곤란해하자, 프랑크는 완전히 어이없다는 눈초리를 형씨한테 보냈다.

     

     "뭐, 무전취식범 때도 그렇고, 형씨가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알겠다. 그래서, 뭐가 좋은데?"

     

     "그럼, 프랑크가 이 나라에 온 이유를 가르쳐 줘. 이유에 납득하면 입을 다물게."

     

     "...... 좋아.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프랑크는 조금 생각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조건을 승낙했는지 딱 잘라 대답했다.

     

     "돈벌이를 위해서."

     

     "엥."

     

     "이 나라는 돈이 벌리니까. 유행이나 기술이나 여러 정보를 얻어서, 우리 지역에서 버는 거야."

     

     그를 위해 정보수집이 쉬운 왕도의 식당에서 일하는 모양이다.

     

     "프랑크는 몇 살이야?"

     

     "여덟 살인데, 왜 물어."

     

     "두 살 아래구나아."

     

     내가 11살이 되었으니 지금은 3살 아래인가. 그래도, 이렇게나 돈에 열심인 여덟 살 아이가 있어도 괜찮은 걸까.

     

     "왜 그렇게 돈 벌고 싶은 건데?"

     

     "뻔하잖아, 이 세상은 돈으로 돌아가. 내 위에 남자 형제 4명이나 있어서 아버지한테 기댈 수 없어. 자기가 먹을 돈 정도는 자기가 벌어야지."

     

     "훌륭합니다, 도련님."

     

     프랑크의 발언에 감탄한 듯, 형씨가 박수를 친다.

     

     "하지만, 왜 남국 사투리를 숨기고 있어??"

     

     "바보냐, 남국 사투리로 말하면 누나들이 쫄잖아. 소문을 좋아하는 누나들은 좋은 정보원이라고."

     

     나는 흥미로움이 솟구쳐서, 푸하, 하고 탄식을 하였다.

     

     "착한 녀석이라고 생각했었지만, 프랑크는 재밌는 녀석이었네. 알았어. 말 안 할게."

     

     "...... 알면 됐고."

     

     교섭이 성립되어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프랑크 일행도 이야기가 매듭지어진 모양이라서, 함께 길거리로 돌아갔다. 나무상자에서 내려온 프랑크가 긴 한숨을 쉰다.

     

     "말도 안 돼..... 이런 쓸모없는 녀석한테 들키다니. 티모, 네 탓이라고! 장소를 따지며 말했어야지!"

     

     "하지만, 도련님을 봤는데 말을 걸지 않을 수는 없잖수?"

     

     "다른 사람을 신경 쓰라는 말이라고."

     

     "음~ 어려운데."

     

     "다음에도 실수하면, 물고기 밥이다. 알았어!?"

     

     "아이고! 좀 봐주시라요, 도련님."

     

     나는 문득 신경 쓰인 일을 물어보았다.

     

     "내가 쓸모없다니 무슨 뜻이야?"

     

     이상해하는 나를, 프랑크가 약간 짜증 난 것처럼 노려보았다.

     

     "형씨한테 이거 저거 물어보아도, 저택의 아가씨가 귀엽다 정도밖에 말 안 했잖아!"

     

     비난 섞인 말을 듣고서, 떠올려보았다. 그러고 보니, 귀족 집에서 일하다니 대단해, 어떤 느낌이었냐고 물어보았던 적이 있었던 느낌이 든다.

     

     "공작가에서 일하고 있어서 좋은 정보가 있나 생각했는데, 연줄을 만들 가치도 없었다고."

     

     자기가 같은 입장이었다면, 더 유효하게 활용했을 거라며 프랑크는 불만스러워했다.

     

     "다행이다."

     

     "뭐?"

     

     "내가 쓸모없으니, 타산 없이 어울릴 수 있잖아.

     

     내가 웃자, 프랑크의 눈이 둥글게 뜨였다.

     

     "빙신. 쓸모없는 걸 기뻐하는 녀석도 다 있네."

     

     "도련님, 부끄러워하네~"

     

     "안 해!"

     

     프랑크는 혀를 찼다.

     

     "뭐, 내 방해만 안 하면 무시하겠지만."

     

     그런 대화를 끝냈을 때, 길가로 나왔다. 그 순간, 햇빛이 어울리는 미소를 장착한 프랑크로 돌아갔다.

     그 재빠른 전환에 무심코 박수를 치고 싶었지만, 그걸 참고 프랑크 일행에게 작별을 고한 뒤 어머니가 부탁한 식자재를 사러 갔다.

     

     

     며칠 후, 화단의 손질을 하고 있자니 쓰고 있는 밀짚모자와는 다른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여전히 아기자기하게 하고 있네요."

     

     "니코."

     

     그림자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자, 양산을 쓴 니코가 있었다.

     

     "양산, 어울려."

     

     "귀찮긴 하지만, 내가 좀 피부가 약하잖니."

     

     피부가 흰 니코는 햇빛에 닿으면 빨갛게 타서 따가운 모양이다.

     

     "여성용 물품이 어울리는 걸 보면, 역시 여장남자구만."

     

     "뭐라구욧."

     

     "싫으면 남자용 양산을 쓰면 되잖아. 그것도 니코한테 어울릴 것 같아."

     

     아가씨의 호위인 포치의 말에 니코가 따지려고 했지만, 내가 문득 생각난 말을 중얼거리자 두 사람이 멈췄다. 포치를 말리려던 아가씨도, 벌렸던 입을 다물었다.

     

     "남자용?"

     

     "응. 무늬가 없는 것이라던가, 니코가 좋아하는 문양의 양산을 만들면 되잖아."

     

     이상해하는 니코에게,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거, 괜찮겠네."

     

     니코가 불쑥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다음에 만들어보겠다면서, 니코는 어떤 디자인으로 할지 생각에 잠겼다.

     

     "자크는 그런 생각을 자주 떠올리네요."

     

     "음. 보통 아닌가."

     

     아가씨가 감탄하자,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자, 이상한 것이라도 보는 눈초리를 하는 아가씨.

     아가씨는 글라디올러스의 화단을 칭찬한 뒤, 은근슬쩍 말을 꺼냈다.

     

     "저기, 자크...... 사실 다음 달부터 당분간 저택을 벗어나게 돼요."

     

     "아, 시즌 오프니까."

     

     "알고 있었나요......?"

     

     내가 이유를 알아맞히자, 아가씨가 의외롭다는 듯 눈을 치켜떴다.

     

     "그러니, 한 달 이상 만나지 못하게 돼요......"

     

     "그럼, 언제 돌아와도 괜찮도록 정원을 보존해둘게."

     

     "....... 만나지 못한다고요."

     

     "응."

     

     "처음, 인데......"

     

     "그러고 보니, 그렇구나."

     

     한 달 이상 아가씨를 만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 그다지 상상할 수 없다.

     봐주는 사람이 줄어든 정원을, 나는 어떻게 느낄 것인가.

     

     "자크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요!?"

     

     "아니, 하지만......"

     

     "저를 뭐라고 생각하고 있나요!?"

     

     "음. 라이벌."

     

     내가 바로 대답하자, 아가씨는 일시 정지된 것처럼 얼어붙었다.

     우리들의 대화를 바라보던 니코가, 내 어깨에 팔꿈치를 올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물어보았다.

     

     "그거, 무슨 의미로 말한 거야?"

     

     "열심히 하는 아가씨를 보고 있으면, 나도 힘내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러니 라이벌이라고 내가 대답하자, 니코는 긴 한숨을 쉬었다.

     

     "그렇대, 디아 양....... 어라? 듣지 않는 모양이네."

     

     아가씨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도 반응이 없는 걸 확인하고서, 니코는 정신 차리기를 기다리기로 정한 모양이다.

     

     "아, 난 돌아가지 않아. 아버지가 성에서 근무하시고, 우리 영지는 더운걸."

     

     "그래? 하지만 이쪽에는 못 오잖아."

     

     "자크가 우리 집에 와. 어머님께서 또 부르라고 하던걸."

     

     "그래."

     

     나는 미소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니코는 내 반응을 보고, 실눈을 떴다.

     

     "자크....... 너 그런 것은 디아 양한테 하라고."

     

     "그런 거라니??"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니코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 이제."

     

     얼어붙어있던 아가씨가, 미세하게 전율하더니 중얼거렸다.

     

     "자크 따윈 이제 몰라요!"

     

     그렇게 말하고서, 아가씨는 발걸음을 돌려 저택 쪽으로 달려가버렸다.

     

     "자크는 바보 같아."

     

     니코가 옆에서 담담하게 감상을 늘어놓는다.

     

     "........ 아가씨, 왜 화내는 걸까?"

     

     정말로 알 수 없어서, 니코에게 물어보았다.

     

     "다음에 만나면, 라이벌이라고 말한 이유를 아가씨한테 다시 한번 설명해."

     

     "알았어."

     

     나는 니코의 조언을 듣고 제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기회는 1개월 이상 뒤가 되었다. 아가씨에게 사과할 기회를 놓친 채, 나는 아가씨가 없는 여름을 지내게 되었다.

    728x90

    '연애(판타지) > 여성향 게임의 엑스트라조차 아닙니다만' 카테고리의 다른 글

    47. 시즌 오프  (0) 2021.11.22
    46. 길  (0) 2021.11.21
    44. 쿠키  (0) 2021.11.20
    43. 사진  (0) 2021.11.18
    42. 식탁  (0) 2021.11.1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