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24. 금사매
    2021년 11월 07일 15시 07분 46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728x90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1313ff/26/

     

     

     

     정원에서 작업을 하고 있자, 집사이며 스승인 하인츠 씨가 다가왔다.

     

     "스승님, 무슨 일인가요?"

     

     잠시 미세하게 눈썹을 찌푸리는 스승. 내가 스승님이라고 부르면 반드시 보이는 걸로 보아, 버릇이라고 생각한다.

     

     "제랄드 님께서 부르십니다. 따라오시죠."

     

     "어, 저를요?"

     

     나, 뭔가 저질렀나?

     

     놀라면서도 스승을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내빈용 응접실이었다.

     

     "데리고 왔습니다."

     

     "실례합니다."

     

     인사하며 들어가자, 반대편 소파에 앉아있는 공작님과 눈이 마주쳤다.

     

     "일하는 중에 불러서 미안했다, 이자크."

     

     "아뇨."

     

     왜 불렀나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자, 뒤돌아 선 다른 사람이 일어서며 돌아보았다. 아는 사람이었다.

     

     "오랜만이구나, 이자크."

     

     "다니엘 님."

     

     전에 유령으로 착각할 때보다는 안색이 좋다. 그 사실에 약간 안도한다.

     공작님이 1인용 소파를 가리키길래 그곳에 앉았다. 곧장 메이드가 내 몫의 홍차를 내어주고는 물러났다.

     

     "저기......비밀 이야기인가요?"

     

     차를 마시고 있자, 공작님이 긍정했다.

     

     "그래. 디아한테도 비밀로 하고 싶다. 괜찮을까?"

     

     "내용에 따라서는요."

     

     내 대답에, 공작님은 재밌다는 듯 눈을 가늘게 하였다.

     

     "그렇게 되었다. 그럼......."

     

     "제랄드, 내가 말하지."

     

     다니엘 님의 오청에, 공작님은 설명할 권리를 양보했다.

     

     "이자크, 내 부인이 투병 중인 것은 이야기했겠지."

     

     "예."

     

     "그 부인의 병을 고치기 위해, 네 힘을 빌리고 싶어."

     

     예상 외의 내용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게 무슨.....?"

     

     "내 아들인 척을 해줬으면 해."

     

     더욱 더 모르겠다.

     내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다니엘 님은, 미안하다는 듯 눈썹을 축 늘어뜨렸다.

     

     "무리한 말이라는 건 잘 알아. 하지만 나 혼자서는 부인에게 현실을 마주 보게 할 수 없어서......"

     

     "현실?"

     

     "내 아들은, 작년에 죽었다."

     

     서늘한 감각이 내 가슴에 와닿았다. 새싹 같은 눈동자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더니, 살아있었다면 나와 같은 나이였다고 가르쳐주었다.

     

     "원래 아이를 낳기 어려웠던 부인에게, 아들은 기적과도 같았다. 병약하지만 밝게 웃는 아이여서, 나도 부인도 애지중지했었다. 그 아들을 잃고, 부인은 아들이 이제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

     

     그것이 다니엘 님의 부인의 마음의 병이라고 한다.

     

     "이자크를 봤을 때는 놀랐어."

     

     "예?"

     

     "얼굴이 아들과 닮아서 말야."

     

     내 머리카락과 눈의 색이 다니엘 님의 아들과 비슷하다고 한다.

     

     "아들과 비슷한 이자크가 대화 상대가 되어준다면, 조금씩 위화감을 인정하고 회복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하지만, 나도 상응하는 각오를 하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다.

     나는 제대로 생각하고 한숨을 쉬었다. 다니엘 님의 눈을 바라보며 말한다.

     

     "저, 아들인 척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지만 다니엘 님의 부인의 병문안은 가고 싶어요."

     

     다니엘 님은 눈을 치켜떴다. 공작님도 놀란 모양이다.

     

     "괜찮아......?"

     

     "제가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싫어서요."

     

     먼저 유령 같았던 다니엘 님에게 다가간 것은 나다. 자신의 행동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

     

     "....... 고마워."

     

     다니엘 님은 울먹이는 듯한 표정으로 웃었다.

     가만히 홍차를 마시고 있던 공작님은, 찻잔을 받침에 올리고는 내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래서, 비밀로 해줄 거지?"

     

     "예."

     

     나도 아가씨를 울리고 싶지 않으니, 절대 말 안 해.

     

     

     며칠 후, 나는 다니엘 님의 저택 앞에 와 있었다.

     정면 현관의 문에서 이름을 대니, 미리 말해놓았는지 하인이 정중하게 안으로 안내해주었다.

     마중해 준 다니엘 님은, 기쁘게 웃으면서 나를 먼저 아들의 방으로 안내했다. 다니엘 님의 지시로 하인 한 명이 옷장을 열자, 그곳에는 옷이 주욱 걸려있었다.

     

     "병 때문에 거의 입지 못한 것들 뿐이다. 괜찮다면 입어줄 수 있을까?"

     

     "저기, 여쭤보는 걸 잊고 있었는데요, 다니엘 님의 작위는......"

     

     "후작인데?"

     

     "입겠습니다."

     

     역시 공작님의 친구인 만큼, 상위 귀족이었다. 나의 즉답에, 다니엘 님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후작부인을 만나는데 서민적인 차림을 하면 실례된다고.

     하인 남자가 줄자로 내 사이즈를 재더니, 약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나 생각했더니, 하인은 다니엘 님에게 다가가서 귓속말을 했다.

     

     "뭐 잘못되었나요?"

     

     "아니, 아들이 입었던 것은 이자크에게 약간 작은 모양이라서. 애들의 성장 속도를 잘못 생각했어."

     

     "저, 이대로 만나도 실례가 되지는 않을까요?"

     

     "아니, 저택 안이니 상관없겠지만......"

     

     다니엘 님은 하인에게 뭔가를 말하고서, 아들의 옷장에서 한벌의 옷을 준비시켰다.

     

     "부인이 준비했던 거다. 옷이 맞는 사람이 없어서 이대로 처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지....."

     

     "그건 아깝죠."

     

     재활용이라는 단어가 귀족한테는 없나 생각했지만, 누군가에게 주게 되면 그 이유를 물어보는 원인이 될 거라고 깨달았다.

     

     "빌려도 될까요?"

     

     "그래. 실용품은 써야만 의미가 있으니. 그냥 버리는 것보다 훨씬 나아."

     

     내가 죽은 후에도 당분간 이런 느낌이었을지도.

     가슴에 뭔가가 맺히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한번, 비슷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사진 속의 온화한 소년을 보았다.

     

     "이 녀석도 나랑 마찬가지였나."

     

     가족을 두고 사망했다. 그 부분은, 머리와 눈동자 색 이외에도 닮았다고 생각된다.

     

     "기다리게 했습니다."

     

     옷을 모두 갈아입고 방을 나서자, 기다리고 있던 다니엘 님이 약간 놀랐다.

     

     "....... 많이 닮았구나."

     

     "감사합니다."

     

     약간 필터가 걸린 감상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답례를 말했다.

     다니엘 님의 부인의 방은, 아들의 방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다니엘 님이 노크하고는 말을 건다.

     

     "아니카, 들어갈게."

     

     조금 기다린 뒤, 아무런 대답이 없는 것을 확인한 다니엘 님은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침대에 앉아있는 여자가 있었다. 정원과 인접한 유리문 쪽을 바라보던 옆얼굴이, 천천히 이쪽으로 향했다.

     

     "에리, 어스......? 에리어스! 너, 언제 돌아왔니?"

     

     내게 초점이 맞춰지자, 눈동자가 빛났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자크 바움가르트너라고 합니다. 이건 문병 선물이고요."

     

     침대 맡까지 가서,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등 뒤에서 들고 있던 노란색과 흰색 백일초와 등자 나무의 초롱 백합으로 만든 꽃다발을 내밀었다. 안개꽃 대신 박하꽃을 곁들여 놓았다.

     

     "어머, 예뻐. 하지만 이런 꽃이 우리 집에 있었나?"

     

     "이건 제가 일하는 저택에서 핀 것입니다. 아버지께 부탁해서 조금 나눠 받았지요."

     

     "어머, 다니엘을 그런 식으로 부르다니, 심술부릴 나이가 된 걸까."

     

     음, 절묘하게 대화가 어긋난다.

     

     "조금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요, 밥은 잘 드시고 있나요?"

     

     "내 걱정은 안 해도 된단다. 에리어스는 한창 자랄 때이니, 많이 먹고 체력을 기르렴."

     

     "저는 자주 먹고 있으니 괜찮아요."

     

     다니엘 님은 우리들의 대화를 약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고 있다.

     

     "저기, 싫다면 안 드셔도 됩니다만, 인삼 파운드 케잌도 만들어 왔는데요. 괜찮다면......"

     

     "어머, 에리어스가 요리도 했어? 화상 입지는 않았고!?"

     

     "괜찮으니, 한입이라도 좋으니 드셔 보세요!"

     

     나는 제대로 맛을 본 후에, 파운드 케이크의 한 조각을 아니카 님께 내밀었다. 받아 든 아니카 님은 깜짝 놀라면서 파운드 케이크를 잠시 바라보더니, 입에 갖고 가서는 조금 먹었다.

     

     "맛있어."

     

     "다행이다."

     

     미각이 사라지지는 않은 모양이어서, 나는 안도하며 웃었다.

     

     "어머니한테 배웠습니다. 입에 맞으니 기쁘네요."

     

     웃는 나를 보고, 아니카 님은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그러나 잠시 지나자 다시 생글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요리사의 도움을 받은 거였구나. 그거라면 안심이야."

     

     젠장, 역시 안 되나. 어긋나는 정보는 개찬되어버리는 모양이다.

     

     "다니엘 님도 괜찮다면 드세요."

     

     "괜찮을까......?"

     

     "물론이죠. 아, 저도 먹어도 될까요?"

     

     "그래, 상관없다만."

     

     "그럼 잘 먹겠습니다."

     

     다니엘 님이 파운드 케이크를 집어든 것을 확인하고, 나는 합장을 하고서 자기 몫을 먹었다. 제대로 음미하면서 중얼거린다.

     

     "역시 막 구운 것이 맛있어요. 아니카 님도 막 구운 쪽이 맛있죠?"

     

     "어, 그래......"

     

     아니카 님은 깜짝 놀라면서도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아니카 님은 조금씩이지만 파운드케잌을 먹었다.

     그런 아니카 님의 모습을, 다니엘 님은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뭔가가 풀린 것처럼 미소 지었다.

     

     "맛있어. 고마워."

     

     "변변치 않았습니다."

     

     나는 싱긋 웃었다.

     

     그 후, 일관되게 나를 에리어스로서 다루는 아니카 님과 1시간 정도 대화가 아닌 대화를 하고서, 원래의 옷으로 갈아입었더니 다니엘 님이 응접실에서 차를 대접해주었다.

     

     "이자크, 보수는 뭘로 해줄까."

     

     "예?"

     

     "나의 무리한 의뢰를 들어줬다. 수습이라고는 해도 그대는 충분히 일해줬으니, 상응하는 보수를 지불하고 싶다만."

     

     "그럼, 저택의 정원을 보여주세요!"

     

     "정원? 우리 집의 정원은 제랄드 정도로 넓지 않고, 진귀한 꽃도 없다만.....?"

     

     "그래도 보고 싶어요. 아버지 이외의 정원사가 손질한 정원을 볼 기회가 거의 없어서요!"

     

     "이자크는 욕심이 있는지 없는지 알기 어려운 아이구나."

     

     끈기에 졌다는 듯, 다니엘 님은 미소 지었다.

     

     

     정원으로 안내받은 나는 눈을 빛냈다. 무심코 이곳저곳을 보게 되어버린다.

     

     "다니엘 님, 금사매가 피어있어요. 오렌지 재스민도 좋은 향기고요!"

     

     다른 사람이 만든 정원이라니, 공부가 되어서 재미있다.

     

     "오렌지 재스민(月橘)을 보면서 달을 볼 수 있도록 이런 배치를 한 걸까. 여기라면 방까지 향기가 닿겠고...... 그러고 보니 열매로 만든 잼도 맛있었지. 다니엘 님은 오렌지 재스민의 잼 좋아하시나요?"

     

     고개를 돌리니, 다니엘 님은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있었다. 이런, 혼자서 너무 떠들어댔다.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아...... 정원에 뭐가 피어있었는지도 깜빡 잊고 있었지 뭐냐....."

     

     추억을 되새겼을 뿐이라면서, 다니엘 님은 웅크리더니 금사매에 손을 뻗었다.

     

     "에리 어스가 지금 무슨 꽃이 피었는지, 자주 우리들한테 가르쳐줬었지."

     

     "꽃을 좋아했었나요?"

     

     "글쎄. 그 아이가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이라고는, 이 정원과 책의 이야깃속 뿐이었으니까."

     

     "밝고 자주 웃는 아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 마지막까지 웃고, 곧장 나을 거라며......"

     

     "호오, 개 멋있네요."

     

     나의 감상에, 다니엘 님은 눈을 휘둥그레 하였다.

     

     "멋, 있어.......?"

     

     "예. 웃으면서 죽는다니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요. 거기다, 마지막까지 살기를 포기하지 않았잖아요? 개 멋있잖아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 아아, 그랬지......"

     

     중얼거림과 함께, 새싹 빛의 눈동자에서 한줄기 눈물이 흐른다.

     

     "에리어스 폰 비트는, 우리들의 자랑이다."

     

     참으려고 미소 지은 후, 다니엘 님은 오열했다.

     한참을 울었던 다니엘 님은, 조금 부끄러운 듯이 웃으면서 감사를 표했다.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았다며, 나는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그렇게 다니엘 님의 저택, 비트 후작저를 떠나서 집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저녁이 되어있었다. 은매화의 화분이 양옆에 선 현관문을 연다.

     

     "어머니, 나 왔어."

     

     "어서 오렴, 자크."

     

     나는 나라고 불러주는 어머니를 보며, 문득 안심했다.

     

     "왜 그러니?"

     

     "음~? 왠지 나 긴장했던 모양이라서."

     

     그러자 어머니가 손바닥으로 등을 쓰다듬어준다. 손바닥도 품어준 가슴도 전해지는 심장소리도 전부 따스해서, 나는 어머니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 어머니."

     

     "응?"

     

     "나, 이번에는 반드시 오래 살 거야......."

     

     "그러니."

     

     어깨의 옷이 젖는데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당분간 그대로 있어주었다.

     

    728x90

    '연애(판타지) > 여성향 게임의 엑스트라조차 아닙니다만' 카테고리의 다른 글

    26. 카테시  (0) 2021.11.08
    25. 포크  (1) 2021.11.07
    23. 푸른 하늘  (0) 2021.11.06
    22. 장미  (0) 2021.11.05
    21. <2장> 손수건  (0) 2021.11.0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