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장미2021년 11월 05일 23시 42분 55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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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골에 오한이 달렸다.
뭐지?
장미의 가지치기를 돕고 있던 나는 잠시 손을 멈췄다. 원인을 찾아보려고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아버지와 시야 가득히 피어있는 장미밖에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아버지가 주의를 줘서, 작업이 틀리지 않게 정신 차리며 가지를 쳤다.
오전에 가지치기 작업을 끝낸 나는, 자른 장미가 들어있는 바구니를 품고 안뜰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안뜰과 인접한 복도의 유리문이 열리자, 그곳에 모르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딱히 숨을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지나치기로 했다.
하지만 나의 발걸음에는 무신경한 형씨. 시험삼아 가까이 다가가 보았지만, 그래도 반응이 없다.
나, 유령이라도 보고 있나?
"형, 살아있어?"
"뭐......?"
유령인지 아닌지 본인에게 물어보았더니, 형은 그제서야 나를 눈치챘다.
새싹같은 색의 눈동자인데도, 그다지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마른 잎 같다고 생각했다.
형은 놀란 것처럼 눈을 부릅뜨더니, 왠지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눈동자에는 약간 빛이 돌아와 있다.
"그래..... 괜찮아."
"괜찮지 않을 때는 웃지 않아도 괜찮잖아?"
아무리 봐도 무리해서 웃는 느낌이 든다.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바구니에서 노란 장미를 한 송이 꺼내서 형에게 주었다.
"자."
형은 반사적으로 받아 들고는, 한창 피고 있는 장미를 바라보았다.
"괜찮다면, 줄게. 살아있으면 꽃이 필 테니까."
"고마워."
"왜 그렇게 기운이 없어?"
"부인이 계속 투병 중이라서......"
"낫지 않는 병?"
"그래. 낫지 않는...... 마음의 병이니까."
새싹 빛의 눈동자가 어두워진다.
"이대로 몸까지 망가지고, 부인까지 잃을 거라 생각하면......."
짝!
내가 꽃바구니를 두고 손뼉을 치자, 장미를 들지 않은 쪽의 손으로 머리카락을 긁적이던 형이 튀어 오르듯이 고개를 들었다.
"형, 밥 혼자서 먹어?"
"...... 그래."
"제대로 먹고 있지 않지?"
"....... 그다지 식욕이 없어서."
"형, 귀족이라면 친구도 많이 있잖아."
"많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가끔이라도 좋으니 친구하고 먹으라고."
형은 나의 제안에 깜짝 놀랐다.
"혼자서 먹으니 밥이 맛없는 거라고. 그리고 부인이 상태가 나쁘다면 형을 걱정해 주 가족이 었다는 뜻이잖아. 그럼 형 자신이 제대로 자기 걱정을 해야 돼."
형은 눈을 부릅뜨고서, 다시 한번 손 안의 장미를 보았다. 그리고 얼굴에 가까이하여 향기를 맡았다. 그림이 되는 그 동작을 보고, 역시 귀족이라고 실감했다.
"나는....... 꽃을 사랑하는 일도 잊었던 모양이구나."
한심하다는 듯 미소 짓는 형씨.
"다니엘, 따라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더니 이런 곳에서 헤매고 있었나."
약간 초조한 기색으로 이름을 부르는 공작님. 형씨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안심한 듯한 음성으로 바뀌었다.
"제랄드."
"왜?"
"그런가......"
갑자기, 형씨는 유쾌한 듯 웃었다.
"그래서 너는 나를 저택으로 초대한 건가."
소리 내어 웃는 형씨를 보고, 공작님은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인 후, 겸연쩍은 듯 미소 지으며 내 쪽을 돌아보았다.
"...... 이자크, 밝혀버린 거냐."
"뭐. 뭐를요?"
도대체 무슨 이야기야.
"다니엘, 이 아이는 이자크. 우리 집의 견습정원사다. 이자크, 그는 내 친구인 다니엘이다."
나는 즉시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이자크 바움가르트너입니다. 조금 전에는 실례를 범해서 죄송했습니다! 멍하니 서 있어서 유령인가 하고 생각해서요."
숙인 머리 위에서, 뿜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심코 고개를 들자, 입가를 손바닥으로 막으면서 웃고 있는 공작님과 쓴웃음을 짓는 형씨, 아니 다니엘 님이 있었다.
"모르는 아이가 유령으로 착각하다니, 상당하구만, 다니엘."
"이제는 자각했어......"
다니엘 님의 대답에, 공작님은 약간 눈을 치켜뜨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의 배가 꼬르륵하며 울렸다. 원래 메이드들한테 장미를 갖다 준 후에 점심 식사를 할 예정이었다.
"좋은 소리야. 이쪽까지 배가 고파지는 것 같아."
"저기, 그......."
"일하는 도중이었지? 돌아가서 빨리 점심을 들도록 해라."
"예."
상사인 공작님이 식사를 허가해주었기 때문에, 꽃바구니를 품고는 실례했습니다 라고 인사하였다.
"이자크."
이름이 불려서 발걸음을 멈추자, 새싹 빛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고마워. 장미가 예쁘게 피면 부인한테도 보여줄게."
나는 미소로 대답하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메이드들에게 장미를 갖다 주고 점심식사를 먹은 후에는, 별저로 이어지는 복도의 연못과 정자의 손질이다. 나는 정자를 둘러싼 미니 장미의 가지치기, 아버지는 수련과 물을 손본다.
허리에 매달린 바구니에, 가지치기를 한 미니 장미를 넣는다.
"기다려주세요, 에라 선생님!"
"아가씨?"
매우 다급한 아가씨의 목소리가 났다. 아가씨의 소리가 난 것 자체를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소리 난 쪽을 바라보니, 건너편 복도의 저택 옆의 입구에서 아가씨가 나오고 있었다. 누군가를 필사적으로 쫓고 있다. 그 누군가는, 아가씨보다 앞쪽에서 경보급 속도로 성큼성큼 걷고 있었다. 보폭의 차이도 있어서, 아가씨가 전혀 쫓아갈 수 없었다.
누구지, 저 아줌마. 머리를 전부 뒤로 묶은 포니테일의 아줌마는, 뭔가 대단한 기백이다.
아줌마는 복도의 중간에서 잠시 다리를 멈추고는, 내가 있는 정자 쪽으로 향해왔다.
정자 쪽으로 똑바로 걸어온 아줌마는, 기분 탓이 아니라 확실하게 내 쪽으로 향해오고 있다. 내 앞까지 온 아줌마는, 나를 노려보며 내려다보았다.
"당신이 아가씨의 섀도우네요."
"예?"
저, 인간인데요.
"에라 선생님."
아가씨가 당황한 기색으로 아줌마를 불러서 말을 가로막으려 한다. 하지만 에라 선생이라고 불린 아줌마는, 아가씨에 상관없이 나를 노려보며 할 말을 하였다.
"당신의 질이 낮은 탓에 아가씨한테도 악역향이 나오고 있어요. 아가씨의 섀도우라면, 어울리는 수준이 되어야만 해요!"
그렇게 내뱉고는, 에라 선생이라는 작자는 나의 목덜미를 쥐고는 납치했다.
"어어어?"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었던 나는 그대로 끌려갔다. 떠날 때, 그다지 표정은 변함없지만 어안이 벙벙한 아버지와, 다시 필사적으로 쫓아오는 아가씨가 보였다.
끌려간 곳은 상당한 넓이에 반해 가구가 거의 없는 방이었다. 도중에 강제적으로 옷을 갈아입게 되었다. 남이 도와주는 건 싫어서, 스스로 갈아입었다. 하지만 스카프를 매달 필요성을 몰라서 달지 않았더니, 메이드가 달아준데 더해 머리도 빗어주었다.
"여기, 뭐하는 곳인가요?"
뭐지, 꽤 안 좋은 예감이 든다.
"댄스의 연습실이에요."
에라 선생은 그렇게 말했다. 실화냐.
"그런데, 이건 누구의 옷인가요?"
매우 재질이 좋은 옷이다.
"내 어린 시절의 옷이었다."
연습실의 문 쪽을 바라보자, 공작님이 즐겁다는 듯 미소 짓고 있었다.
"이야, 내 옷을 어린애한테 입히는 것도 썩 괜찮아. 이자크, 어때. 내 양자가 되지 않겠나?"
"농담은 그만해주세요."
"그거 아쉽군."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는 공작님. 그 옆에서는 아가씨가 가만히 서 있다.
"아가씨, 다려서 지쳤어?"
얼굴을 들여다보자, 깜짝 놀란 아가씨가 튕겨 나듯이 거리를 두었다.
아가씨는 시선을 두리번거린 후, 휙 하고 다른 쪽을 바라보았다.
"뭐...... 뭐, 좀 나아진 것 같은데요?"
"응? 고마워."
"괜찮다면 가져라."
공작님이 말하자, 나는 놀랐다.
"예? 받을 수 없어요!"
이런 고가의 옷, 필요 없어. 입을 기회도 없고. 아니, 지금 입고 있지만.
"그럼, 생일선물이라는 건 어떤가. 이제 곧 생일이니."
"음......"
"왜 아버님이 자크의 생일을 알고 있나요!?"
"우리 집의 하인이니까."
"잡담은 거기까지 해주시겠나요."
하이힐로 바닥을 밟는 소리에, 무심코 등이 뻣뻣해졌다. 또 코앞까지 와서는 내려다본다. 무서우니까 그거 그만뒀으면 해.
"이자크라고 했나요. 당신은 이제부터 아가씨의 댄스 시간에 동석하도록 하세요."
"예......."
"큐네르트 부인은 정말 교육열이 대단하십니다. 자, 받아줄 거지? 이자크."
"적어도 렌탈로 부탁드립니다."
나와 아가씨가 쫄아든 분위기 속에서, 계속 흐뭇해하는 공작님. 진짜로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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