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목걸이2021년 11월 05일 02시 16분 09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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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쌓였다. 그래서 저택의 눈을 치웠다. 적설량은 10cm정도여서, 나도 도와줄 수 있었다.
정문에서 저택의 현관까지의 제설작업이 끝났을 즈음에 점심삭사를 먹고, 오후에는 저택 주변의 보도를 치우기 시작했다. 몇 시간 동안 그러고 나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아버지, 잠깐 놀고 와도 돼?"
휴식시간이니 상관없다고 아버지가 허락해서, 나는 치운 눈을 쌓아둔 곳으로 향했다.
내가 눈을 뭉치고 있자, 아가씨가 메이드 카트린 씨와 함께 다가왔다.
"아, 아가씨. 카트린 씨도 안녕하세요."
"뭐하고 있었나요?"
"자."
타원형으로 뭉친 눈덩이에다가 잎으로 된 귀와 붉은 열매로 눈을 붙인 눈토끼를, 아가씨의 앞에 내밀었다.
"토끼.......?"
"정답."
눈을 휘둥그레하며 눈토끼를 응시하는 아가씨의 중얼거림을 긍정한다.
"귀엽네요."
"깨끗한 눈이 적어서 이 정도 밖에 만들지 못했지만."
카트린 씨는 칭찬했지만, 나는 가장 간단한 것을 만들었을 뿐이었기 때문에 쓴웃음이 나왔다.
".......귀여워."
그렇게 중얼거리는 아가씨가 눈토끼에 손을 뻗자, 나는 곧바로 들어올려서 만지지 못하게 하였다.
"이건 눈을 치운 걸로 만든 거라 만지면 안 돼."
보기에는 예쁘지만 병균이 걱정되고, 아가씨가 손에 동상을 입어도 곤란하다.
"류디아 님, 나중에 그릇을 가져올 테니 테라스 같은 곳에 두면 어떨까요?"
우리들이 시선으로 공방전을 자아내고 있자, 카트린 씨가 중재안을 제시해주었다.
카트린 씨의 제안에 아가씨는 눈을 빛냈지만, 나는 약간 고민했다.
"녹아버릴 텐데 괜찮아?"
아가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지지 않을 거지?"
또 고개를 끄덕이자, 어쩔 수 없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알았어. 나중에 카트린 씨한테 줄게."
"그럼, 아버님한테 오래 유지되도록 마법을 걸어달라고 부탁할게요."
기뻐하는 아가씨의 발언이 마음이 걸렸다. 뭐, 공작님이라면 아가씨를 위해서 흔쾌히 마법을 걸어주겠지만.
"그러고 보니, 왜 카트린 씨도 나왔죠?"
오는 것이 평소보다 빠른 느낌이 든다.
아가씨는 어째선지 허리에 손을 대며 당당히 선언했다.
"저의 티타임에 어울려주고 있답니다."
"오?"
지금까지는 차를 다 마신 다음에 왔었는데, 왠일로.
"자크를 빌려도 상관없나요?"
"마침 휴식 중이니 상관없습니다. 이런 자식이라도 좋다면 마음껏 부려주십시오."
아가씨가 양해를 구하자, 아버지가 미소지으며 승낙했다.
"그럼, 아버지 갔다 올게."
눈토끼를 서늘한 그늘에 두고서 아버지한테 말하자, 꿀밤을 맞았다.
"끝나면 제대로 작업해라."
"예."
나는 제대로 대답하고서, 아가씨 일행과 온실로 향했다.
카트린 씨가 우려준 따스한 차를 마시자 몸이 포근해졌다.
"하지만, 왜 갑자기 차를?"
마주 앉은 아가씨에게 물어보자, 차를 한입 마신 뒤, 깔끔한 동작으로 찻잔을 받침 위에 놓고서 대답하였다.
"온실에서는 이렇게 함께 쉴 수 있잖아요."
"아, 그렇구나."
확실히 안쪽에 있는 온실이라면, 앉을 수 있는 장소도 있고 남의 눈도 신경쓰지 않을 수 있으니 좋다.
"혼자서 차를 마시기보다는, 함께 마시는 편이 좋잖아요."
"그럼 카트린 씨와 함께 마시지 그랬어?"
"......카트린을 권유하기에는 용기가......"
아가씨는 말꼬리를 흐린다. 카트린 씨는 소극적인 성격이라서 싫어할 것 같긴 해.
"내가 말해줄까?"
"아뇨, 제대로 제가 말할게요."
"그래. 아가씨는 강해졌구나."
"......그거, 칭찬하는 건가요?"
"응. 진짜 멋있어~"
내가 미소를 가득 지으며 칭찬하자, 아가씨는 찡그린 표정을 지었다. 역시 여자아이한테 강하다거나 멋지다는 말은 안 좋았던 모양이다. 나로서는 최고의 칭찬이었는데.
그런 뒤로 겨울에는 온실에서 티타임을 가진 다음, 나는 작업을 하고 아가씨는 당분간 이야기한다는 패턴이 굳혀졌다.
"그래서, 로이 님이......"
음? 뭔가가 걸린다.
전생의 게임에서도 비슷한 이름의 금발 캐릭터를 보았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뭐였더라. 기억이 애매한 것은 여동생을 도와줬을 때라서 그런가?
아가씨의 이야기를 절반만 들으면서, 전생의 기억을 들추어냈다. 클리어를 도와줄 때에도 금발 캐릭터가 있었는데......
[이 녀석, 스펙 괴상하지 않아?]
[2차원이니 괜찮아! 타이치도 소년만화에서 먼치킨 같은 거 읽으면서]
[그야 싫지는 않지만~ 그보다, 왜 좋아하는 로이 님하고 사귀지 못한 거야?]
[사랑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도 있어!!]
아, 생각났다. 여동생이 연호하는 바람에 유일하게 이름을 외운 공략캐릭터였다. 여동생은 전투를 하게 되면 일단 공격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타입이어서, 유리한 위치로 유도해서 요격하는 일은 전혀 하지 않았었지.
".......풀네임 길었었지. 뭐였더라. 로이......로이......?"
"로이 레오나르드 폰 로젠하임 전하예요."
무심코 입에 꺼냈는데, 아가씨가 가르쳐주었다. 그거다. 하지만, 왜 아가씨가 알고 있지?
아가씨를 본다. 옅푸른색의 눈동자와 옅은 금발. 고양이처럼 약간 치켜올라간 눈꼬리. 분위기는 조금 다르지만, 아가씨의 이름도 전생에서 들은 적이 있는 느낌이 든다. 복장은 처음으로 만났을 때랑 비슷한 듯한.....?
[류디아 아가씨도 라이벌이지만 싫지는 않아]
[머시기 디아 아가씨라면, 그 화려하고 조금 꽉 끼는 큰 가슴의?]
[참나, 이름보다 가슴을 먼저 외워? 이러니까 3차원 남자들은......!]
[아니, 네가 좋아하는 로이 님도 남자라고. 현실에 있었다면 비슷했을 거라니까]
[2차원이 현실로 튀어나올 리가 있겠어!? 타이치는 바보!!]
[너어...... 그런 말 하면, 이제 도와주지 않는다]
이런, 기억이 단순한 오누이 싸움으로 번지며 페이드아웃된다. 그게 아니라, 여동생이 불렀던 라이벌 영애의 이름과 여기 있는 아가씨의 이름이 같았고, 게임의 화면에 있던 캐릭터도 겉모습이 비슷하다.
그러고 보면 그 게임도 캐릭터마다 쓸 수 있는 마법속성이 달랐었지. 우연 치고는 공통점이 너무 많아서, 떠올릴 수 있는 만큼 최대한 게임의 개요를 떠올려보았다.
아, 이거 여성향 게임이구나.
나는 이제야, 여기가 게임 세계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트린 씨가 내어준 차를 마시며, 일단 진정한다.
일단, 나는 확실하게 여동생이 했었던 여성향 게임......그대의 별이었나? 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아가씨는 주인공이 메인 히어로인 로이 루트로 가게 되면 경우에 따라서 실연당한다. 공략 대상이 숨은 캐릭터를 포함해 총 7명 정도였으니, 해피엔딩과 배드엔딩을 합해 14분의 1의 확률인가. 에룬스트 가문은 어떻게 되어도 안녕하니, 견습정원사인 나로서는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리고 이건 다른 사람이 개입하면 호된 꼴을 보게 되는 연애사.
미래를 알게 되었어도, 너무 불확실했던 나머지 나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양껏 생각했지만, 전생의 기억이 있어도 의미가 없다는 감상만 떠올랐다.
일단 아가씨가 우는 것은 싫으니, 아가씨가 로이 님을 좋아하게 된다면 응원해주면 되나? 어떻게 해야 응원할 수 있을까. 분명, 아가씨가 다니게 될 예정인 학교는 어느 나라의 병역제도와 비슷하게, 규정치 이상의 마력보유자는 반드시 다녀야 했지. 학교인가...... 가보고 싶다. 마법의 공부가 어떤 것인지도 흥미있다.
문득 나의 선택지가 늘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까지의 나였다면, 읽고 쓰기를 못해서 설령 마력량이 규정치를 넘겼다 해도 검사조차 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라면 조금 힘내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 아가씨를 만나서 다행이야."
인생이 조금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더니, 말하고 싶어졌다. 자연스레 미소가 솟아난다.
".......또, 이야기를 듣지 않았죠!?"
들켰다. 그리고 혼났다. 하지만, 왜일까. 화내기보다는 부끄러워하는 듯?
부끄러움을 숨기며 혼내는 아가씨의 설교를, 티타임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들었다.
티타임이 끝나자 나는 온실의 작업에 들어갔고, 아가씨는 다음 수업 때까지 당분간 말을 하였다.
그러던 아가씨는, 돌아갈 시간이 되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래다줄까?"
"괜찮아요."
티세트는 나중에 카트린 씨가 회수하러 온다고 한다. 그래도 온실 입구까지는 바래다 주기로 했다.
헤어질 때, 어째선지 아가씨가 돌아보더니 드레스의 아랫부분에서 뭔가를 꺼냈다. 고개를 숙여서 시선을 맞추지 않은 채 그것을 앞으로 내민다. 금속 사슬이 짤랑하고 울린다.
"자크, 이거."
"응?"
받아들어서 보니, 그을린 은으로 된 목걸이였다. 장식도 없는 심플하고 단순한 금속의 느낌은 내 취향이지만, 아가씨한테는 어울리지 않는다. 로켓을 열자, 작은 네잎클로버가 한 장 들어있었다.
"작은 게 아가씨 같아서 귀여워."
".......왜 그리 쓸데없는 말을 하나요!?"
아, 화났다. 작다고 말한 것이 거슬렸나보다.
"음, 그럼 생각만 하기로 할게."
"자크는 얼굴에 다 드러나니 그게 그거라고요!!"
"뭐~?"
그럼 어쩌면 좋냐고.
".......나, 아가씨랑 같이 있지 않는 게 나아?"
"그, 그건....... 싫어요......"
"그렇구나."
"그러니까, 그게! .......이젠 됐어요."
"그래서 이거, 아가씨 거야?"
"..........자크 것이에요."
왠지 쥐어짜내는 목소리로 말하는 아가씨.
"뭐?"
"부모님께는 압화를 책갈피로 만들어서 드렸지만, 자크는 책을 갖고 있지 않잖아요. 그래서 그 대신이에요."
알고 있다. 얼마 전, 오랜만에 공작님이 기습을 해서는 엄청나게 자랑했었다.
"비싼 것은 아니에요! 싼 것이에요!"
"고마워. 소중히 간직할게."
네잎클로버를 가져간 때부터 꽤 지났지만, 아마 내가 받기 쉽도록 성탄절의 시기에 맞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순순히 받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국교의 신의 탄생일과 크리스마스가 같은 날인 것은 이 세계가 여성향 게임이라서 그랬던 거였구나. 평소에도 우연치고는 너무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 개운해졌다.
"아, 난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는데......"
"받았어요."
"뭐......?"
아가씨는 앙갚음에 성공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토끼. 소중히 간직할게요."
왠지 멋쩍어져서 웃었다. 이런 여자아이,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안 되잖아.
"그럼, 덤으로 하나 더."
아가씨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가씨를 울리는 녀석이 있으면 말해. 한방 먹여줄 테니까."
"왜 갑자기 그런 뒤숭숭한 말을......."
"괜찮으니까, 기억해."
"알, 겠어요......"
내가 웃으면서 말하자, 아가씨는 잘 모르는 채로 수긍했다.
여성향 게임이든 왕자든, 아무래도 좋다. 나는 아가씨 쪽이 더 중요하다. 아가씨를 울리는 녀석이 있다면, 일단 팬다.
설령 아가씨가 이 일을 잊는다 해도 나는 반드시 실행하겠다며, 받은 목걸이에 대고 맹세했다. 신의 탄생일에 하는 것 치고는 뜬금없는 맹세. 하지만, 나의 현실이기 때문에 중요한 맹세다.
이전까지는 성탄절에 기도하는 일이 없었지만, 올해부터는 신께 기도도 해두자.
부탁드리오니, 아가씨가 웃을 수 있는 미래가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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