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13. 왈츠
    2021년 11월 03일 03시 30분 19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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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1313ff/15/

     

     

     

     쾌청한 오후, 왕성에 호화로운 마차가 연이어 입장한다. 그 중에는 검정 바탕에 금색 장식을 한 마차도 있었다.

     마부가 마차의 문을 열자, 주변의 시선이 모이는 곳에 금발 청년이 나타났다.

     주변을 신경쓰지 않는 청년은, 단내가 풍기는 미소를 지으며 뒷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손을. 아가씨."

     

     "아버님......왕녀전하께서 계신 장소에서 그 발언은 좀 불경하지 않나요......?"

     

     지적당한 청년은, 기죽지 않고 교정한다.

     

     "오, 그랬었나. 그럼, 나의 천사는 어때?"

     

     "정말, 아버님도 참."

     

     농담하는 청년에게 미소짓는 그의 딸 같은 소녀가, 자그마한 손을 포갰다.

     그림이 되는 부녀의 주변으로 자연스레 길이 만들어졌다.

     

     "디아, 미안구나. 원래는 비아가 다과회를 열어서 익숙하게 해줄 생각이었는데."

     

     "플로라가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는걸요. 그리고 아버님께서 사과하실 필요는 없답니다. 저도 여동생이 생겨서 정말 기쁘니까요."

     

     "의외로 긴장하지 않는구나."

     

     "하고 있어요. 왕족 분들에게 실례되지는 않나 정말 걱정이에요. 하지만......"

     

     "하지만?"

     

     "아버님과 함께인걸요."

     

     "그래. 돌아가고 싶어지면 언제든 말하거라. 지금부터 돌아가도 되고."

     

     "아직 왕자전하께 인사도 드리지 않았는데, 그건 불경해요."

     

     "나만 전하를 만나도 되는데......만나게 하고 싶지 않아."

     

     아쉬운 듯 중얼거리는 아버지를 보며, 류디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요?"

     

     ".......나도 멀리서 모습을 본 정도지만, 소문으로 듣기로는 정말 평판이 좋아."

     

     어릴 적부터 이미 총명하고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도 깊어서, 이대로 성장하면 현왕이 될 거라는 소문이다.

     

     "휘황찬란한 황금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하고 있다고 들었지만, 성격도 훌륭한 분이시네요."

     

     "그게 문제야. 그래서 오히려 힘들어......"

     

     그것이 제랄드가 우려하는 요인이다.

     제랄드는 잡념을 떨치려는 듯 다른 화제로 바꾼다.

     

     "그러고 보니, 저택에서는 달지 않았던 거구나."

     

     에스코트하는 오른손과 반대인 왼쪽 손목에 피어오른 꽃을 시선으로 가리킨다.

     

     ".......이건, 부적이에요."

     

     "꽤 귀엽구나. 이자크는 디아에게 어울리는 것을 잘 알고 있어."

     

     "!?"

     

     이름도 꺼내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챈 것일까.

     

     "이자크는 수속성이었지. ......꽃의 시간을 가두는 마법이라니 훌륭해. 나도 배우고 싶군."

     

     놀라서 입을 뻐끔거리던 류디아는, 이해가 따라감과 동시에 새로운 의문이 떠올랐다.

     

     "마, 법.......?"

     

     "이런, 내가 쓸데없는 말을 해버린 모양이구나."

     

     그에게 미안한 짓을 했다고, 제랄드는 혼잣말을 하였다. 류디아는 수제였다는 사실을 몰랐던 모양이다.

     

     "좋은 친구를 뒀구나."

     

     "네......"

     

     솔직하게 수긍하는 류디아를 보며, 제랄드는 딸의 성장을 기쁘게 생각하였다. 정말 그가 집에 와줘서 다행이다. 그를 만나기 전의 그녀였다면, 지금 이렇게 부드러운 표정을 짓지 않았을 것이다. 복장도 같은 것으로 맞출 수 없었을 테고.

     

     "제랄드, 역시 너도 왔었군."

     

     "첸바르카, 자네도 딸과 함께 왔나?"

     

     파티장의 홀에 도착하자, 지인이 말을 걸어서 제랄드가 그쪽을 바라보았다. 녹색 드레스를 입은 소녀를 에스코트하면서, 제랄드보다 키는 낮지만 체격이 좋은 청년이 다가왔다. 그걸 확인한 류디아가 스커트의 옷자락을 잡으며 인사의 준비를 하였다.

     

     "디아, 그는 기사단 부단장을 하고 있는 첸바르카다."

     

     "첸바르카 폰 아우구스트라고 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작은 레이디."

     

     "류디아 폰 에룬스트라고 합니다. 아버지께서 신세지고 있습니다."

     

     가슴에 손을 대며 인사하는 체나르카에게, 류디아는 양손으로 스커트를 들어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오히려 신세지는 쪽이니 걱정 마시길. 아, 이쪽은 딸인 도르데리제입니다."

     

     "아우구스트 후작가 장녀인 도르데리제입니다. 에룬스트 공작가의 영애를 만나뵈어 영광입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의 짙은 갈색 머리를 휘날리면서, 도르데리제가 긴장한 기색으로 서둘러 인사를 하였다.

     

     "토끼처럼 귀여운 아가씨구나. 부디 긴장하지 마."

     

     "네, 네에......"

     

     "너, 면전에서 내 딸을 유혹하지 마....."

     

     "그럴 필요는 없어. 나는 부인만 유혹하거든."

     

     "아 예예. 그보다, 네 입장과 얼굴을 보고 긴장하지 말라는 말은 무리다."

     

     아버지끼리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와중, 류디아는 첫대면의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도르데리제 님, 저는 나이가 가까운 분과 대화하는 게 처음이랍니다. 괜찮다면 이후로도 친하게 지내주시면 기쁘겠네요."

     

     "그, 그런, 아름다운 류디아 님과 친하게라니 송구스러워요."

     

     미소짓는 류디아와 송구스러워하는 도르데리제. 딸들의 대화를 지켜보면서, 아버지끼리 파티장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잡담을 끝낸 참에, 악단이 서 있는 장소에서 관악기가 드높이 울렸다. 그걸 신호로 파티장에 있는 모두가 입을 다물고는 폭 넓은 계단 끝에 있는 양문을 향하여 일제히 고개를 조아렸다.

     천천히 양문이 열리고, 국왕과 제1왕비와 제2왕비, 그리고 제2왕자가 나타났다. 국왕이 중앙에 서자, 다른 세 명이 뒷편에 섰다.

     

     "자, 오늘의 주역에게 등장을 부탁해볼까."

     

     그렇게 말한 국왕이 제1왕비의 옆으로 물러서자, 열린 문 앞에 금발과 밀랍을 녹인듯한 눈동자의 소년이 나타난다. 그가 나타난 순간 박수와 환호가 일어났고, 그는 그걸 산들바람처럼 받아내며 국왕이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장소까지 걸어왔다.

     

     "로이 레오나르드 폰 로젠하임이다. 더운 와중에도 나를 위해 모여준 것에 감사한다. 나는 아직 미숙하지만, 국민을 위해 정진하여 아바마마의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부디 신하 여러분도 이 나라를 위해 힘을 빌려줬으면 한다. 그리고, 미래를 함께 짊어질 젊은 동지들과 만날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 부디 이 나라의 미래를 논의하자."

     

     말을 끝냄과 동시에, 조금 전보다도 열띤 환호성과 박수가 울려퍼졌다.

     박수를 치면서, 제랄드는 주변 사람들이 듣지 못할 음량으로 중얼거렸다.

     

     "얼굴도 잘 생겼다니 치사해."

     

     "네가 할 말이냐."

     

     옆데 있던 첸바르카가 그걸 주워듣고는 경악한다.

     

     "이제는 아버님이 가장 멋있다고 말해주지 않겠지......"

     

     "그렇게 들은 적이 있다는 게 어디야."

     

     제1왕자가 개회선언을 하자, 악단에서 부드러운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자식의 유무에 관계없이 와 있는 중진들에 대한 인사가 끝나자, 근처에 있는 상위 귀족들이 앞다투어 축사를 건네며 자신의 자제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에룬스트 공인가."

     

     "예. 알고 계셨다니 영광입니다. 생일 축하드립니다, 전하."

     

     제랄드는 눈을 깔면서 공손히 신하의 예를 취했다.

     

     "고마워. 공의 우수함은 내게도 들릴 정도야. 거기다 그 수려한 용모까지 있으니 잘못 볼 리가 없지."

     

     "황송합니다. 저보다 눈부신 외모의 전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다니요."

     

     "그쪽의 소녀는 공의 따님인지?"

     

     "예. 저의 딸인 류디아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류디아 폰 에룬스르라고 합니다. 생일 정말로 축하드립니다."

     

     다른 귀족과는 다르게, 제랄드는 왕자가 물어볼 때까지 딸을 소개시키지 않았다. 피할 수 없다 해도, 아슬아슬해질 때까지 제쳐두고 싶었다.

     

     "요정처럼 덧없다고 생각했는데, 잘 보니 다부진 눈동자를 하고 있군. 정말 아름다운 여성이다."

     

     "그런......."

     

     볼을 붉히는 류디아에게, 왕자가 손을 내민다. 때마침 왈츠가 흐르기 시작한다.

     

     "저와 한 곡 추시겠습니까, 류디아 양."

     

     ".......네."

     

     주변 사람들이 어린 두 명을 여러 눈길로 바라보는 중, 표면상으로는 딸을 위해 미소를 보내주고 있는 제랄드는 평소보다 한층 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정말로 7살인가?"

     

     "너도 저랬었다고."

     

     장래가 두려운 아이였던 그의 유년기를 알고 있던 첸바르카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아버지의 대화를 모르는 류디아는, 왕자의 숙련된 춤솜씨에 놀라면서도 따라잡으려고 호흡을 맞추었다.

     

     "잘 하네. 첫 상대로 그대를 골라서 다행이였어."

     

     "처음......인가요? 아무리 봐도 그렇게는......"

     

     "정말이야. 배울 때는 혼자였으니까."

     

     "저도 배울 때는 혼자였답니다."

     

     "그렇지? 귀족이라는 것은 어린 시절의 교류할 기회가 적어서 곤란해. 오늘도 생일이라며 아바마마께 고집을 부려서 이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했을 정도였어."

     

     "어머, 전하께서 오늘의 파티를?"

     

     "단순한 고집이야. 약간 이용당한 느낌은 있지만, 상상했던 바야."

     

     만족스러워하는 왕자의 모습을 보고, 신하들의 꿍꿍이를 어느 정도 이해한 상태에서 그가 말하는 고집을 부린 거라고 류디아는 이해했다. 이렇게 대화해보니, 그의 총명함이 잘 이해된다.

     

     "저기......전하, 실례지만 말투가."

     

     "후훗, 여기서라면 어른들도 듣지 않을 테니 상관없어. 류디아 양도 그런 뻣뻣한 말투를 쓰지 않아도 돼."

     

     "그런, 불경한 일은......."

     

     "내 쪽에서 부탁했으니, 누구도 탓하지 않아."

     

     "........알았어요, 로이 님."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는 시선에 못 견딘 류디아가 승낙하자, 왕자의 미소가 한층 더 빛났다.

     

     "기뻐. 역시 그대를 고른 것은 정답이었어."

     

     "어째서 저를 골랐나요?"

     

     "제대로 대화해줬으니까."

     

     "네.......?"

     

     "다른 아이들과도 대화해보려 했지만, 너무 긴장하거나 멍하니 바라보는 바람에 대화가 안 되어서 말야......"

     

     아쉬운 듯 쓴웃음을 짓는 로이의 말에, 류디아는 납득했다. 대화를 할 수 없었던 상대의 기분이 잘 이해된다.

     

     "갑자기는 무리라고 생각하기 시작할 무렵에...... 류디아 양, 그대를 만났지."

     

     밀랍색의 눈동자가, 니겔라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본다.

     

     "그대 덕분에 나는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어. 희망을 줘서 고마워."

     

     "그런, 저는 아무것도....."

     

     류디아는 고개를 들며 미소지었다.

     

     "저야말로, 로이 님과 대화할 수 있어서 기뻤답니다."

     

     왈츠가 끝날 때까지 서로에게만 들릴 음량으로 담소를 나눈 후, 노래가 끝나자 두 사람은 박수를 치는 관중들에게 손을 맞잡은 채로 인사하였다.

     로이가 제랄드가 있는 곳까지 류디아를 에스코트해준 것을 신호로, 다시 왕족과 신하의 관계로 돌아간다.

     

     "그럼, 전하. 나중에 또."

     

     "그래, 다음에는 그 유명하다는 정원을 보여줘."

     

     인사를 나눈 뒤, 로이는 다른 신하들에게 인사하러 돌아갔다.

     

     "아버님, 저 실례되는 일을 하지는 않았나요?"

     

     "아니? 정말 훌륭한 숙녀였단다."

     

     미소지으며 아버지가 칭찬해주자, 류디아도 안도와 기쁨에 미소지었다.

     

     

     돌아가는 마차 속에서도, 류디아는 여전히 붕 뜬 기색이었다.

     

     "전하는 소문 이상으로 멋진 분이셨어요."

     

     "응, 그래."

     

     제랄드는 미소지으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대화하는 사이, 조금 있으면 저택에 도착한다는 마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 때문에 대화가 끊기자, 제랄드는 천천히 중요한 말을 꺼내들었다.

     

     "......저기, 디아."

     

     "네."

     

     "만일 전하의 부인이 된다면 기쁘겠니?"

     

     "그거 정말 꿈과 같은 이야기예요."

     

     마치 동화책에서 읽었던 것 같은 전개다. 그래서 류디아는 그대로 긍정했다.

     

     "그렇군. 그럼 디아한테도 말해두마. 오늘의 파티는, 전하의 부인 후보를 찾는 모임과도 같았단다."

     

     "오늘은 전하의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가 아니었나요?"

     

     "그래. 물론 메인은 그렇지. 전하도 몰랐을 수 있겠지만, 폐하의 부하 몇 명에게 그런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열린 파티였다."

     

     아니, 로이는 깨닫고 있었다. 로디와 대화했던 류디아는, 그가 신하의 딴생각을 깨달았음에도 이번 파티에 임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순수하게 축하하는 자들만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류디아는 분했다.

     

     "그래서, 디아는 그 부인 후보라는 뜻이란다."

     

     기정사실로 말하는 아버지를, 류디아는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후보에는 몇 사람 더 올라갈 테지만, 디아가 원한다면 나도 응원하마."

     

     제랄드는 조금 쓸쓸한 듯 보였지만, 곧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디아의 마음이 결정되었을 때는 가르쳐주겠니? 싫다면 싫다고 거절할 테니까."

     

     "네......"

     

     류디아는 그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이야기가 현실감을 띄자, 그냥 놀랐다. 기쁨 같은 감정이 솟구치는 일 없이, 그냥 순수한 놀라움만이 류디아의 마음을 지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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