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9. 수국2021년 11월 01일 04시 49분 18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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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 후, 스승의 훈련목표량을 끝낸 뒤 우물가에서 등목을 하고 있자니 꼬맹이들이 다가왔다.
"아~ 자크다~"
"돌아왔어~?"
"놀자~"
"쉬고 있을 뿐이라고."
꼬맹이들이 나를 보자마자 돌격해오는 것을 피하고, 수건으로 상반신을 닦고는 상의를 입었다.
"너희들 물에 젖으니 오지 마."
"상관없는데?"
"피하지 마~"
"설마 이전의 장마 때도 밖에 나갔던 건 아니겠지."
작년에, 호우가 내리던 날에 폭포 수행을 하다 어머니한테 혼났던 것을 떠올리며 주의를 주었다. 나도 아이라서 그렇게 할 거라는 거 다 안다.
"어떻게 알았어!?"
"바보, 속았다고."
"너희들~"
아프지 않을 정도로 두 볼을 당겨준다. 꼬맹이들은 일부러 아프다고 소리치며 항의했다. 이런 짓 자체가 놀아주고 있는 것 같다.
"자크, 뭐하고 있어?"
옷소매에 달라붙은 또 한 명의 꼬맹이가 물어보았다.
"음? 근력운동."
"뭐~ 근육도 없으면서."
"이제부터 붙을 거라고."
"왜?"
"왜라니?"
"왜 갑자기 운동하려고 생각한 거야?"
수상하다는 듯, 꼬맹이 중 한 명이 올려다본다.
"그렇게나 이상해? 마리야."
"여자의 냄새가 나."
마리야, 너.......그거 네살배기가 할 말이 아니라고.
"맞구나."
"아니......."
"맞았다~"
"자크 저질~"
내가 말이 없어진 것을 긍정으로 생각한 마리야를 따라서, 다른 꼬맹이들까지 소리친다. 이거, 어떻게 수습해야 좋지.
"그게 어쨌다고. 너희들도, 어머니나 누나를 지키고 싶잖아."
남자아이 둘의 머리에 손을 놓으며 물어보자, 두 사람은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여자를 위해 강해져도 되잖아."
"나, 엄마를 위해 강해질 거야."
"나, 누나의 남친 때릴래."
요한은 몰라도, 파울의 누나는 당분간 애인이 생기지 않겠어.....
"그럼, 강해지기 위해 오늘은 기사놀이를 하자고."
"뭐~ 공주님 역할은 심심한데."
요한이 칼 대신으로 쓸 나뭇가지를 찾으러 가자, 할 일이 없어진 마리야가 투덜댄다.
"뭐 괜찮잖아, 공주님."
"......알았어. 요한이 이상한 짓 안 하나 지켜볼게."
"고마워. 그 녀석. 힘조절을 못할 때가 있으니까."
"오빠는 어른스럽지가 않아. 정말로 연상이야?"
다섯 살에는 어른이고 뭐고 없잖아. 이럴 때, 여자 쪽이 정신연령이 높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리고, 넘어가주는 거는 이번 뿐이야."
"무슨 이야기??'
그 때 마침 요한이 적당한 나뭇가지를 들고 돌아왔다. 파울은 기다리지 못하고 요한한테 달려들었다. 둘 다 의욕이 가득하다.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고~"
"뭐, 자크는 안 해?"
"어머니한테 심부름을 부탁받아서 말야."
이유를 말하자, 납득한 요한은 다음에 놀자며 마지못해 용서하였다. 꼬맹이들과 작별의 인사를 한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 집은 현관 양쪽에 수국의 화분이 있어서, 바로 알아볼 수 있다.
"왔어. 뭘 사면 돼?"
"먼저 머리카락을 마저 말리도록 하렴."
현관문을 열자, 어머니가 새로운 수건을 들고 오더니 내 머리카락을 닦아주었다.
내가 든 것은 이미 젖어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잘도 이렇게나 젖은 채로 갈 생각을 했다니."
"해가 떴으니 마르지 않을까~ 싶어서."
"정말, 자기 일에는 신경쓰지 않는 면이 애비랑 똑같아."
"나탈리에."
호랑이도 말하면 온다는 느낌으로, 아버지가 고개를 내밀었다.
"안 돼요. 쉬는 날은 하지 않는다고 약속했죠? 그리고 뻑뻑해진 가구가 있으니 고쳐줬으면 해요."
"알았다......"
싱긋 미소지으며 아버지에게 일의 금지를 명한다.
"밀가루랑 달걀 많이 사와도 돼?"
"왜?"
"쿠키를 만들어서 아가씨한테 주고 싶어."
"아가씨라니, 공작가의?"
내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하자, 어머니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 이걸로 끝. 갔다 오렴."
"그럼 갈게요."
햇살이 강하다며 빵모자를 씌운 어머니가 배웅해주었다. 나는 비어있는 천주머니와 지갑을 들고 시장이 있는 상업구로 갔다.
식재 구매의 심부름을 부탁받은 나는, 일단 시장바닥의 식품구역으로 가서 부탁받은 것을 샀다. 단골가게가 있기 때문에, 자주 사던 것은 항상 주던 걸 달라고 말하면 끝나니 편하다.
아직 못 산 식재를 떠올리며 고개를 들자, 묘한 것을 눈치챘다. 사람이 많은 시장길인데도 사람들이 피하는 장소가 있었다. 멀리서 보니 뭔가 빛나는 것이 보인다.
뭔가 빛나고 있는데?
자기보다 키가 큰 어른들의 틈을 비집고, 호기심에 다가갔다. 잠시 지나자, 빛나는 것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똑바로 보면 너무 눈부셔서, 무심코 눈을 감았다.
그곳에는 웬일로 귀족 소년이 있었다.
왠지 도자기처럼 하얀 피부와 벌꿀색 눈동자도 반짝거리는 원인이기는 했지만, 무엇보다도 찰랑찰랑하고 곱슬기가 없는 금발의 반사광이 엄청나다. 놀랍게도, 천사의 고리같은 후광도 제대로 나 있다.
"너, 미아?"
보고 말았으니 어쩔 수 없다면서, 황금의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나와 같거나 조금 연하로 보이는 그는 이쪽을 향하며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미, 아?"
"길을 잃어버렸냐는 의미라고."
"이 장소에는 오고 싶어서 왔지만.......그래, 돌아가는 법을 몰라서 헤매고 말았지."
햇빛을 반사시키는 금발이 눈부셔서,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왜 그래?"
"너, 눈부셔서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아."
눈이 따갑다. 왠지 물리공격력이 있는 금발이다.
"그것은, 미안."
"아니, 난 금색같은 화려한 게 안 맞을 뿐이라서, 네가 사과할 필요는 없어."
내 취향 문제일 뿐이고, 황금의 소년은 나쁘지 않다.
"이제 조금 나아졌어. 좋아, 가자."
나는 자신의 빵모자를 눌러쓰고, 소년의 손을 잡고 걸어갔다.
"어, 어디에......"
"메인스트리트로 나가면 네 지인도 찾을 수 있을 거야. 어딘가에서 만날 예정 아니었어?"
"아......확실히, 무슨 일이 생기면 분수가 있는 광장에서 만나자고 했었지."
"그럼, 그쪽으로."
나는 손을 잡을 채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소년을 이끌었다.
"어떻게 내가 귀족이라고 알았지?"
"그런 좋은 옷과 화려한 외모를 보면 다 알아본다고."
"제일 수수한 옷을 골랐는데......"
"너는, 일단 가발부터 만들어. 갈색이나 검은 걸로."
"그렇군, 다음부터는 신경쓰겠다."
"또 올 셈이냐고..... 다음에 올 때는 말해. 내 옷을 빌려줄 테니."
"정말?"
나의 제안에 소년은 반색했지만, 곧장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나한테는 평민과 연락할 방법이......"
"난 이자크. 아버지인 데니스 바움가르트너는 귀족들 사이에서 유명한 정원사니까 일을 의뢰하는 척 하면서 편지라도 보내면 돼."
"공작가의 그......"
황금의 소년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유명하다는 사실에, 나는 내심 자랑스러워졌다.
"이자크, 너는 총명하군."
들어본 적이 없는 칭찬에 놀라서 소년을 보자, 눈부신 미소가 그곳에 있었다. 난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너, 눈부시니까 이쪽 보지 마."
"......이자크 같은 자는 처음이다. 차라리 시원시원해."
"너, 화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여러 관점에서 사물을 보라고 아버지한테서 배웠다. 그래서 평민의 생활을 보고 싶어서 오늘 와 보았다."
"네 주변, 어른들만 있냐?"
"어떻게 알았지?"
"말투가 너무 딱딱해. 친구를 만들어서 좀 더 놀라고."
"친구......"
소년은 질렸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잡혀있던 손을 풀고 내 손을 붙잡았다.
".......이자크는, 내 친구가 되어줄 수 있나?"
"뭐. 싫은데? 너, 눈부신데다 말투도 기분 나쁜걸."
"아하핫, 나 개인을 이유로 이렇게까지 거절할 줄은......"
"너, 이상한 녀석같아~"
"네게 그런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아."
그는 웃음을 그치지 않은 채 대답한다. 아가씨도 전에 나를 이상하다고 말했었는데, 난 평범하게 지냈을 뿐이라서 왜 그런지 모르겠어.
"......그래, 아직 이름을 대지 않았지. 나는 레오다."
"아 그러셔. 레오, 조금 지나면 분수......."
"이자크?"
갑자기 다리를 나를 보며, 레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길가에 있던 물건에 시선을 빼앗겼다. 골목으로 들어가서 서민의 주택지가 늘어선 구역의 현관 중 하나. 본 것이 틀림없나 확인하기 위해, 나는 그 현관 앞까지 걸어갔다. 떨어지지 않도록 손을 잡은 채인 레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역시......"
"수국?"
내가 손으로 만지고 있는 화분을 보며, 레오가 고개를 갸웃하였다.
"그 꽃이 어쨌길래."
"드물어."
나는 적당히 대답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은, 하얀 수국이다. 흰 것은 처음으로 보았다.
"드물다는 것은 알았는데, 흰색일 경우에는 무슨 속성이지?"
"아마......"
"저기, 저희 집에 무슨 용건인가요......?"
흰 수국을 놓은 집의 문이 열리며, 아가씨 정도의 여자아이가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동그란 눈동자를 하고 있으며, 어깨 길이의 석양같은 머리카락은 털끝이 안으로 말려있다.
"아, 미안. 난 견습정원사인데 이 수국이 신기해서 그만."
"신기해......?"
내가 신기해하는 이유를 모르는 모양인 여자아이가 물어보았다.
"혹시, 매년 하얀색으로 피어?"
여자아이는 긍정했다.
"이 수국은 누가 돌보고 있어?"
".......나."
"그렇구나. 난 하얀 수국을 처음 봐서 키우는 법을 물어보고 싶었던 것 뿐이었어. 예쁘게 피우다니 놀라운데."
"그냥, 물을 줬을 뿐인걸.......?"
"그것만으로? 그럼, 정말 대단한 일인데?"
"그런....."
여자아이는 아주 싫지는 않았는지, 부끄러워하면서도 미소지었다.
그러고 보니, 레오가 조금 전부터 말하지 않았던 것을 깨닫고 옆을 보자, 여자아이한테 몰입된 채로 멍하니 서 있었다.
"레오, 왜 그래."
"음!? 뭐야!?"
레오의 뒷머리를 가볍게 치자, 그는 놀라면서도 나에게 항의하지 않았다.
"왜 그러냐고 묻고 있잖아."
"아니, 딱히......"
아무것도 아니라는 레오는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는데, 여자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눈을 돌렸다. 의미를 모르겠어.
"뭐, 됐어. 그럼 이만, 예쁜 수국을 보여줘서 고마웠어."
"벼, 별 것 아니었어요."
"가자, 레오."
"그, 그래."
여자아이는, 갑자기 나타난 우리들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해주었다.
"속성의 일을 그녀한테 말하지 않아도 괜찮았나?"
내가 속성에 따라 색깔이 변한다는 사실을 가르치지 않은 것이 의문이었던 모양이다.
"증거가 없어. 그리고....."
"그리고?"
"저 아이, 아마 마력이 강할 거야."
마력량이 강한 자가 근처에 없으면, 수국은 노랑이나 하늘색이 된다.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사람의 마력에 반응할 때는, 일정 이상의 마력이 근처에 있을 경우 뿐이다.
레오는 그녀가 서민 치고는 이레귤러라는 것을 이해하고서 눈을 부릅떴다.
"그녀의 속성은 뭐지?"
"본 적이 없었으니, 빛속성이나 아니면......"
"찾았습니다!!"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내 말소리가 덮여버렸다. 놀란 우리들이 소리난 쪽을 바라보자, 분수 쪽에서 달려오는 청년이 있었다. 대화하던 사이에 중앙광장까지 도착한 모양이다.
"마테우스!"
"도대체 어디에...... 이 애는 누구?"
핼쑥한 표정의 청년은 열을 올리려 했지만, 옆의 나를 보고 멈췄다.
"그가 여기까지 안내해줬다. 이자크, 그는 나의......형이다."
"네 덕분에 동생과 만날 수 있엇다. 고마워. 뭔가 답례를....."
"아뇨, 필요없어요."
나는 딱 잘라 거절하고는, 작별을 고했다.
"전, 계속 장을 봐야 해서 실례할게요. 그럼 이만, 레오."
"또 봐, 이자크."
손을 흔들며 나를 배웅하는 레오는, 조금 전 헤어졌을 때의 여자아이와 같은 나이의 아이로 보였다. 정말로 또 올 셈이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난 기분을 다잡고 심부름을 재개했다.
다음 날, 사과의 뜻으로 건네준 수제 쿠키를 먹은 아가씨는 어째선지 화를 내며 나를 가볍게 때렸다.
역시 입에 맞지 않았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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