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06. 비 그침
    2021년 10월 30일 08시 31분 26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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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1313ff/8/

     

     

     

     만년필로 잉크를 찍는 소리만이 나야 할 서재에, 의외로운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요즘은 외출할 때 미소를 지으며 보내주는데 그게 정말 귀엽단 말이다. 처음에 부끄러워하던 것도 귀여웠지만......"

     

     방의 주인, 제랄드 폰 에른스트 공작 자신이 서재의 조용함을 깨트리고 있다. 노래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딸의 자랑을 한없이 이어나가려는 그를 달래는 목소리가 들린다.

     

     "제랄드 님, 입이 아니라 손을 움직이십시오."

     

     "손도 움직이고 있잖아."

     

     확실히 시선은 앞을 바라보고 있으며, 오른손으로는 글을 쓰고 있다. 날아온 편지에 대한 답신을 확인하면서도 가족의 귀여움을 말하는 재주를 본 앵녹색 눈동자에 난처함이 깃들었다.

     

     "그럼, 조용히 있으면 더욱 빨리 진행되겠군요."

     

     "아니, 난 넘쳐나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토해내지 않으면 죽게될 거다. 하인츠는 날 죽일 셈이냐."

     

     진지하게 항의하자, 집사 하인츠는 말문이 막혔다. 혼내야할지 말지 판단하기 힘들다.

     

     "애초에 하인츠가 집 이외에서는 말하지 말라고 해서, 나는 직장에서 참고 있다고."

     

     "당신은 가족의 일을 꺼내면 제한이 없으니까요."

     

     "당연하지. 나의 가족 사랑은 메마르지 않으니까."

     

     "그렇기 때문입니다. 제랄드 님은 조금 더 신분과 주변 사람의 눈길을 의식하셔야 합니다."

     

     "나는 가족만 있으면, 주변은 아무래도......"

     

     "그래도 괜찮습니까? 전날, 제랄드 님의 일처리를 들은 류디아 님께서 정말 존경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년필을 끄적이면서, 제랄드는 작게 웃었다. 또 딸의 일이냐며 하인츠는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난 정말 좋은 후배를 가졌군."

     

     "........지금은 집사입니다."

     

     "하인츠는 완고해."

     

     "제랄드 님께서 너무 자유분방한 것입니다."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두 사람이 문으로 시선을 돌리자, 꾀꼬리같은 귀여운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렸다.

     

     "류디아예요. 아버님, 계신가요?"

     

     목소리가 끝날 무렵에는 이미 하인츠가 문까지 가서 열었다. 열린 맞은편에는 어린 소녀가 무언가를 손에 든 채 있었는데, 하이츠의 안내로 서재에 들어왔다.

     

     "오, 천사가 내려왔다고 생각했더니 내 디아였구나."

     

     "아버님, 아첨이 너무 심해요......."

     

     "난 언제나 진실만 말해. 서재까지 오다니 무슨 일이지?"

     

     "오늘은 아버님께서 쉰다고 하여, 함께 플로라를 보러 가면 어떨까 해서요......방해되었나요?"

     

     "그거 멋진 제안이다. 부디 공주님과 함께 가고 싶구나. 그리고 마침 편지의 답신도 모두 썼으니, 전혀 상관없단다."

     

     하인츠가 책상 위를 확인하자, 이미 밀봉까지 끝낸 편지봉투가 있었다. 어느 사이에 끝냈냐면서, 그 마술같은 일처리에 내심 경악한다. 가족에 관해서 발휘되는 능력에 불가사의함을 느끼고 만다.

     제랄드는, 하인츠가 놀리는 사이에 물흐르는 듯한 움직임으로 딸의 손을 잡고 서재를 나갔다. 집사는 우수하니 맡겨두면 편지를 보내줄 것이다.

     

     "쉬는 날을 할애하게 만들어 미안하게 됐구나."

     

     부인의 방으로 향하면서, 제랄드는 류디아에게 미안한 듯 그렇게 사과했다.

     

     "아니요, 아버님께서 일하시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어서 기뻤답니다."

     

     "그러고 보니, 그건 플로라한테 줄 거? 조금 빠르지 않을까?"

     

     제랄드와 잡지 않은 손에, 두꺼운 장정의 책같은 것을 품고 있는 류디아. 딸이 든 것이 동화책인가 생각하여 물어보았다.

     

     "아니요...... 이건 아니에요. 나중에, 그, 보여드릴게요."

     

     "그래. 기대하고 있으마."

     

     부인의 방 앞까지 도착하자, 먼저 앞서나간 하인츠가 문을 열었다. 숨을 헐떡이는 모습도 일절 없이, 표정도 수면처럼 조용하다. 설령 어린 딸의 보폭에 맞췄다고는 해도, 일처리에 빈틈이 없다는 남자라고 제랄드는 생각하였다.

     

     "여어, 비아. 여전히 여신처럼 아름답구나. 우리들의 보석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라나?"

     

     "어머님, 함께해도 괜찮나요?"

     

     "어머, 제랄드와 디아. 둘이 함께라니, 플로라도 기뻐할 거란다."

     

     미소지으며 소파에 앉아 갓난아이를 품은 숙녀. 두 아이의 어미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그늘없는 아름다움은, 제랄드가 칭찬할만도 하다.

     류디아와 제랄드도 폭이 넓은 화려한 소파에 앉았다. 류디아가 부모 사이에 앉는 형태가 되었다.

     

     "옥타비아 님, 뭔가 따스한 것을 가져올까요."

     

     "그래, 딩그라의 밀크티를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며칠이나 이어진 장마 때문에 여름이 다가왔다고는 해도, 서늘한 느낌의 공기를 배려한 하인츠가 메이드에게 홍차를 준비시켰다.

     홍차가 나오는 동안 두 사람이 옥타비아의 팔 안을 들여다보자, 그녀와 같은 분홍색 눈동자와 마주친다.

     

     "귀여워, 플로라."

     

     흐뭇한 자매의 모습에, 부모의 눈길에 따스함이 늘어난다.

     

     "오는 게 늦어서 미안했다."

     

     "어머, 보나마나 또 일했던 거겠죠?"

     

     "답장을 보냈던 것 뿐이야."

     

     "삼성장이란 직업은 정말 인기가 많네요."

     

     질투하겠어요, 라는 농담을 하자, 제랄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일 때문에 인기있어도 기쁘지 않아. 난 너 이외의 사람의 인기는 필요없으니까."

     

     "이 이상 저한테 아부해도 나오는 건 없는데요?"

     

     "그렇지 않아. 애정은 뭘 바라고 하는 게 아니거든."

     

     "아버님이 그 나이에 3성장을 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하인츠한테서 들었어요."

     

     "단순히 2속성을 가졌기 때문에 좋게 평가해 준 것 뿐이란다."

     

     마술성, 약술성, 의술성의 3성은, 교육과 의료가 연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각 성장의 위에 3성장을 두고 있다. 나라를 지탱하는 중요한 직책이기 때문에 권력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짐이 무거워서, 공작이라 해서 거드름을 피울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

     

     "그렇지 않아요! 아버님은 대단하세요!"

     

     "고맙구나, 디아."

     

     "비도 그쳤으니, 모두 함께 정원을 산책할까요."

     

     "비아, 몸상태는 괜찮고?"

     

     "정말, 여보까지 환자 취급하다니, 3개월이나 저택 안에 있는 쪽이 훨씬 안 좋다고요."

     

     "저, 수국를 볼 수 있는 장소를 알고 있어요."

     

     옥타비아의 제안을 듣고, 출생 후에 여성의 체력이 얼마나 회복되는지 모르는 제랄드는 신경이 쓰였으며 류디아는 정원을 안내한다며 의기양양해하였다. 두 사람의 다른 반응에, 옥타비아는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어머, 멋져. 디아는 정원에 해박하네."

     

     "아....... 음, 요즘 산책이 취미라서요......"

     

     "오, 아직 비아한테 이자크를 말해주지 않았나 보구나?"

     

     "아버님!"

     

     왜 그렇게 초조해하는지, 제랄드를 알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소문에 듣기로 나의 귀여운 디아가 정원사 견습 소년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어머니의 말에, 류디아는 움찔한다.

     

     "디아의 입에서는 전혀 듣지 못했어. 나, 섭섭해......"

     

     "엥......."

     

     슬픈 듯 볼에 손을 갖다대는 옥타비아.

     

     "어머님, 아니에요! 저기...... 어머님께서 싫어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어째서?"

     

     "제가, 펴......평민 따위랑 함께 있으면 상스럽다고 하지 않을까 해서......"

     

     "그 아이는 디아의 소중한 친구니?"

     

     류디아는 주저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디아의 친구라면 나도 부디 만나보고 싶단다."

     

     놀라서 고개를 드는 딸에게, 옥타비아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어머니의 미소의 의미를 이해하고서, 류디아는 안도와 기쁨이 섞인 미소를 드러내었다.

     

     "자크가 어머니께 실례를 범한다면, 제가 제대로 혼내주겠어요."

     

     "어머나, 애칭으로 부를 정도로 사이좋나보네."

     

     "앗......!? 아니에요!!"

     

     "나는 이자크를 질투해야하나?"

     

     "여보가 고민하다니, 좋은 아이네요."

     

     "나에게 있어서도 작은 친구니까."

     

     "저기 아니라고요, 어머님!"

     

     초조해하는 딸에게 따스한 미소를 보내는 부모.

     잠시 동안 담소를 나눈 후, 산책을 하던 류디아는 잊었던 일을 떠올린다.

     

     ".......아버님."

     

     두꺼운 장정의 책을 꼭 품고서, 다음 말을 주저하는 류디아.

     

     "뭔데?"

     

     "저기...... 저, 조금만 더 아버님과 대화를 했으면 하는데요...... 그래서 그......이자크가 일기를 교환하는 건 어떻겠냐고 해서요......아버님께서 바쁘신 것은 알고 있지만요."

     

     쭈뼛거리며 내민 책을 제랄드가 받아서 펴보니, 안은 완전한 백지였다.

     

     "글자 연습도 되니.......저기......안 될까요......?"

     

     "........!!?"

     

     말꼬리를 흐리고 볼을 붉히며 부끄러워하면서도 위를 바라보며 애원하는 딸을 본 제랄드는, 무릎을 허물며 바닥에 누웠다. 안에서 솟구치는 감정을 견디려는 듯, 그 자세 그대로 부르르 떨었다.

     

     "아버님!? 몸이 안 좋으신가요!?"

     

     "오히려 아주 좋은 상태란다. 디아."

     

     ".......신이시여, 제 앞에 이 천사를 내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바닥에 누운 상태로 신에게 기도를 바치는 아버지를 걱정하는 류디아였던 반면, 놀라지 않은 채 온화한 미소로 딸을 안심시키는 옥타비아.

     

     "그럼 이건 제가 맡기로 하지요."

     

     자신이 들고 있던 일기장이 떨어지지 않았나 생각했더니, 집사가 들고 있었다. 고개를 든 제랄드는 집사에게 항의했다.

     

     "그건 나와 디아의 것이다."

     

     "계속 들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제랄드 님께서 손이 빌 때 건네드리겠습니다."

     

     "맞아. 아버님도 바쁘실 테니, 하인츠가 건네주는 역할을 맡아줄 수 있어?"

     

     "알겠습니다. 류디아 님."

     

     집사한테 일기장을 뺏겨버렸다며 제랄드는 아연실색하였고, 그걸 눈치채지 못한 류디아는 하인츠에게 일기장의 관리를 맡겨서 안심하였다.

     

     "자, 계속 산책할까요."

     

     "네. 아버님 가요. 제가 안내해드릴게요."

     

     "그래, 갈까."

     

     딸이 손을 잡고, 미소짓는 부인에게 안겨서 순진무구한 눈동자를 향하는 차녀가 옆에 있다.

     이렇게 온화한 휴일을 보내는 행복함을, 제랄드는 음미하였다.

     

     그 후 수국의 손질을 도와주던 견습 정원사는, 공작한테 안겨져서 집사가 제지할 때까지 빙빙 돌려진다는 피해를 입게 되었다.


     ※ 아버님이라는 단어말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돌아가신 아버지한테 쓰는 호칭이니 주의할 것. 편지나 시아버지한테는 아버님이라고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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