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05. 편지지
    2021년 10월 30일 00시 44분 06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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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1313ff/7/

     

     

     

     "와줬어요."

     

     현관문을 열자, 의기양양해하는 아가씨가 있다.

     우비를 입은 메이드 카트린 씨는 뒤에서 아가씨가 젖지 않도록 우산을 대어주고 있다.

     

     "뭐하는 거야, 아가씨."

     

     "비가 오는 동안은 한가하다고 했었잖아요. 그래서 제가 손수 글자를 가르쳐주기로 했답니다."

     

     아무래도 아가씨 쪽도 가정교사가 오지 않는 모양이다.

     일어나서 대화하기도 뭣해서, 두 사람을 부엌으로 안내했다. 타월이 없어서 세탁을 끝낸 손수건을 2장 건네주자, 카트린 씨는 아가씨의 머리카락과 드레스 끝자락을 닦고 나서 자신의 젖은 부분을 닦았다.

     

     "잘도 왔네. 이런 곳까지 오다니, 아가씨는 대단해."

     

     ".......별일 아니랍니다."

     

     사실은 위세를 떨고 싶었겠지만, 볼을 붉히고 고개숙이며 말했기 때문에 부끄러워하는 것을 다 알겠다.

     

     "잠깐만, 차를 내올게."

     

     "그거라면 제가."

     

     나의 말을 가로막는 카트린 씨.

     

     "오늘은 카트린 씨도 손님이니 괜찮아요."

     

     부엌으로 가서 물을 끓이고는, 머그컵을 준비한다.

     제일 새로운 찻잎으로 우릴까.

     아가씨의 앞의 테이블에 머그컵을 놓고, 서 있는 채인 카트린 씨한테도 하나를 건넨다.

     

     "고마워요."

     

     카트린 씨가 받아든 것을 확인한 나는, 남은 머그컵으로 차를 마시려고 했다. 하지만 시선을 느끼고 멈추었다.

     

     "뭐지요?"

     

     뭔가 말하려는 카트린 씨를 올려다보자, 그녀는 주저하면서도 입을 열었다.

     

     "안 앉아요......?"

     

     "손님이 서 있으니 앉을 수 없지요."

     

     이대로도 마실 수 있다면서 웃자, 카트린 씨는 곤란한 듯 눈썹을 늘어뜨렸다.

     눈짓으로 어떻게 할래요? 라고 카트린 씨를 추궁하자, 아가씨가 팡팡 치고 있는 소파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걸 확인하고, 나도 맞은편의 1인용 소파에 앉았다.

     아가씨는 만족스럽게 차를 마시기 시작하였다. 카트린 씨도 이어서 머그컵에 입을 대었는데, 안심한 듯 작게 한숨을 쉬었다. 긴장이 조금 풀렸다면 다행이다.

     

     "맛있네요."

     

     "다행이다. 어머니가 기뻐할 거야."

     

     ".......확실히 이자크의 어머님께서 만드신 찻잎이 좋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차는 우리는 방법이 중요하다고요."

     

     "그거 영광인데."

     

     "카트린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프로랑 비교하지 마~"

     

     흥 하며 점잔을 빼는 아가씨에게 쓴웃음으로 대답한다. 거론된 카트린 씨는, 약간 부끄러워하며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다.

     한숨 돌리고 나서, 어떻게 글자를 가르쳐 줄 건지 물어보았다. 비에 젖기 때문에 책은 들고 오지 않은 모양이던데.

     아가씨는, 팔의 소매자락에서 밀랍으로 봉해지지 않은 편지를 꺼내들었다.

     

     "이거랍니다."

     

     아가씨는 내 눈앞에 편지봉투를 내밀었다.

     

     "빨리 열어보세요."

     

     "그래."

     

     내민 편지봉투의 안에서 내용물을 꺼냈다. 안에는 2장의 편지지가 들어있었다. 펴보니 수기로 쓴 글자가 나열되어 있다.

     

     "아가씨, 글씨 예쁘네."

     

     "공작영애로서 당연한 소양이랍니다."

     

     당연하다며 가슴을 펴는 아가씨의 볼은 약간 붉었다. 기쁜 모양이다.

     오늘은 이 글자를 읽는 법을 가르쳐 줄 모양이다.

     

     "그럼 하는 김에 쓰는 법도 가르쳐 줘."

     

     "어...... 하지만."

     

     "괜찮아."

     

     아가씨는 필기도구를 갖고 오지 않았는지 당황한 기색이었다. 나는 조금 기다리라고 말한 뒤, 1층 창고에서 필요한 것을 가지러 갔다. 한 세트를 준비하고 아버지의 허락을 받은 뒤 2층으로 돌아왔다.

     얕은 나무상자에 봉처럼 생긴 물건을 넣고 돌아온 나를 아가씨는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카트린 씨도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상자는 테이블 위에 놓기 뭣해서 옆바닥에 두었다. 두 사람은 내부를 확인하자 더욱 영문을 모르게 된 모양이다. 바닥이 넓은 그릇같은 나무상자에는 흙이 깔려있고, 단순한 나뭇가지 두 개와 T자형의 나무 도구가 있을 뿐. 흙이 있기 때문에 차가 있는 테이블과 함께 두지 않았다.

     

     "그걸로 어떻게 하려고요?"

     

     "이렇게."

     

     가지를 들고 가지 끝을 흙에 대어서 이동하자, 그 부분이 파이며 궤적이 선으로 된다.

     아가씨는 획기적인 물건이라도 본 듯 말없이 놀랐다. 카트린 씨는 그렇군요, 라며 납득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자크.......사실은 머리 좋지요?"

     

     "사실은 그렇냐니 무슨 뜻이야. 그보다 단순한 서민의 지식이라고. 그보다, 일단 이 편지를 보면서 쓰면 되지?"

     

     아가씨한테 어떻게 읽는지를 물어보며 한 글자씩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쓰기 시작하자 곧장 지적이 들어온다.

     

     "쓰는 순서가 틀렸잖아요!"

     "발음이 달라요! 그 발음은 더욱 혀를......."

     "거기선 더욱 둥글게......"

     

     "아가씨, 스파르타식이야."

     

     "예!? 사, 사람이 모처럼 가르쳐주는데......!"

     

     농담으로 말했는데, 있는 힘껏 가르쳐주던 아가씨는 얼굴을 붉히며 화냈다.

     이런. 이대로 가면 울겠어. 아니면 리얼로 번개가 떨어져.

     

     "미안! 나 바보라서 말하는 것만으로는 몰라. 아가씨, 함께 쓰자."

     

     "정말로 바보네요."

     

     "응. 똑똑한 아가씨가 있어서 다행이야."

     

     "당연해요."

     

     둘이서 이런말 저런말 하면서 글씨를 쓰자, 공부라기보다는 노는 것 같아서 즐거웠다. 아가씨도 흙 위에 글자를 쓰는 감각이 즐거운지,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아가씨한테서 합격점을 받은 내가 글자를 쓸 수 있게 되자, 이제는 익숙해지기 위한 반복연습을 할 뿐이어서 두 사람에게 차를 다시 내어준 후 혼자서 연습했다.

     차를 마시며 나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가씨는 눈꺼풀을 닫았다 열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가씨~ 자도 돼~"

     

     "선, 생님인, 제가 잘 수는....."

     

     그렇게 의사표시를 했지만, 카트린 씨가 아가씨의 손에서 머그컵을 떼어놓는데 저항하는 기색은 없었다. 카트린 씨가 머그컵을 테이블에 놓는 소리와 함께, 아가씨의 눈꺼풀이 완전히 감겼다.

     

     "저기........"

     

     조금 지나자, 속삭이는 정도의 음량으로 카트린 씨가 말을 걸어왔다.

     

     "예."

     

     "그 때는 고마웠습니다."

     

     "아뇨, 제 행동은 경우에 따라 카트린 씨의 입장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생각없이 해서 죄송했습니다."

     

     "그런......저는 두려워서 스스로 해명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일면식도 없던 당신이 저를 위해 류디아 님을 지적해준 점, 정말 기뻤습니다....."

     

     "평소에 아버지의 꿀밤을 맞고 있어서요."

     

     정말 아팠다며 쓴웃음을 짓자, 그 모습을 떠올린 카트린 씨가 가엾다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전 언니들과 다르게 기량이 좋지 않아서 아버지께서 시집보내는 것도 곤란해하셨고.......오빠와 다르게 가문을 이을 수도 없어서...... 그 때 직장을 잃었다면 집안에 민폐를 끼칠 뻔 했습니다."

     

     그렇게 자조하는 카트린 씨.

     

     ".......그래서 저는, 지금 류디아 님을 모실 수 있어 행복해요."

     

     무릎 위의 소녀를 바라보며, 푸른 눈동자를 부드럽게 빛낸다. 검은 머리카락에 녹색기가 들어가자, 꽃이 피어오른 듯 하다.

     

     "데이지같아."

     

     "네........?"

     

     "전, 카트린 씨가 미소짓는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웃으면 데이지가 피어오른 것 같네요."

     

     "그런......"

     

     그렇지 않다며 점점 목소리가 사그라드는 카트린 씨.

     카트린 씨는 그 이상 말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어서, 나는 글자의 연습으로 돌아갔다. 평온한 시간이 흐른다.

     

     "잘 자네."

     

     슬슬 깨워야겠다며 연습을 끝냈지만, 미소지으며 잠든 표정을 보니 왠지 깨우는 게 주저된다.

     

     "어젯밤은 평소보다 늦었으니까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의문을 느낀 카트린 씨는, 시선으로 알려줬다. 시선이 내 손에 있는 편지지에 꽂힌다.

     

     "만족하실 때까지 그만두지 않으셨어요."

     

     예쁘게 쓰여진 글자들. 이렇게나 많은 글자를, 작은 아가씨가 한번의 실패 없이 썼다면 기적일 것이다. 보지 않아도, 전부 깔끔하게 쓰려고 분투하는 아가씨의 모습이 상상된다.

     

     애썼구나아.

     

     "소중히 간직할게요."

     

     기뻐진 나는 웃었다. 소중한 보물로 삼자.

     하지만 내 탓이라고 알게 되면 더욱 깨우기 힘들어진다며 일으키는 것을 주저하고 있자, 등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자크."

     

     "아, 아버지."

     

     아버지한테 무슨 일이냐고 묻자, 창밖으로 눈길을 준다. 이제 곧 해가 저무니 돌려보내야 한다는 뜻이다. 응, 그건 나도 알고 있어.

     

     "........자크?"

     

     그러자, 일으키지 않았는데도 아가씨가 몽롱한 눈으로 몸을 일으켰다.

     

     "안녕, 아가씨."

     

     "안녕하세요...... 자크라니 누구......?"

     

     눈꺼풀을 비비면서, 아가씨는 처음 듣는 단어가 뭔지 물어보았다.

     

     "내 별명."

     

     "자크......."

     

     "아가씨도 그렇게 불러도 돼."

     

     "정말.......?"

     

     "응."

     

     아가씨한테 다가가서 눈높이를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자, 꽃이 피어오르는 것처럼 미소지었다.

     고 생각했더니, 갑자기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서는 몸을 굳혔다. 그리고는 고개를 옆으로 붕붕 저었다.

     

     "아, 아니에요......!!"

     

     뭐가??

     잘 모르겠지만, 당황하던 아가씨는 카트린 씨와 아버지의 존재를 깨닫고 평정심을 되찾았다.

     아가씨는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며 다가갔다.

     

     "아가씨, 불초자식이 민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엥, 나 민폐 끼쳤어?

     

     "이 정도는 별일 아니랍니다."

     

     점잔 빼는 아가씨.

     저택까지 돌려보내려 했지만, 카트린 씨가 있으니 괜찮다며 거절당했다. 적어도 현관까지 바래다주자.

     

     "그럼, 실례할게요."

     

     아가씨의 말에 맞춰서, 카트린 씨도 조용히 인사한다.

      

     "그래. 길바닥 조심하면서 돌아가~"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고 아가씨가 발걸음을 돌리기 전에, 말을 걸었다.

     

     "아가씨, 이거 고마워."

     

     편지봉투에 다시 넣은 편지지를 들며 감사를 전했다. 그러자 아가씨는 즉시 발길을 돌렸다.

     

     "막 다루면 용서 못해요. 자크."

     

     목소리만 들은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소중히 삼을 것이 당연한데, 믿지 않네.

     우산의 그림자가 빗속 저편까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곧바로 우산에 가려져서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아가씨의 귀가 조금 붉었던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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