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3 일을 하겠다니 말도 안 됩니다2021년 07월 18일 23시 10분 29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원문 : https://novelup.plus/story/133552962/273590496
바깥은 화창하게 개었다.
새벽 무렵에 약간 비가 쏟아졌었지만, 이젠 흙냄새도 나지 않는다.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둘만 있는 실내를 네모나게 비추고 있다.
창의 나무틀이 테이블 위에 십자 모양을 그린다. 달팽이가 창가에 혼자 남겨진 것처럼 껍질 안에 들어가 있다. 실내에 내리쬐는 빛이 그 부분만 결여되어있다.
릭은 아무 생각도 없이, 가만히 그 빠진 부분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제일 좋은 차를 가져왔어."
아루루는 바구니에서 다기와 꿀단지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귀엽다는 듯 테이블에 늘어놓았다.
어린 시절부터 익숙한 광경이었다.
이런 때의 아루루는 정말 즐거워한다. 몇번을 한다 해도.
그녀의 머리카락이 빛을 투과시켜서, 윤곽이 빛나보인다.
"뭐야. 멍하게 있기는."
"아아, 응."
"지금부터 차를 우릴 것인데."
"그래."
"그래가 아니라, 뜨거운 물 말이야."
아루루는 물을 끓여달라는 모양이다.
릭은 부엌에 가서, 주전자에 물을 넣고 조리용 난로 위에 두었다. 휴대용 난로다. 놋쇠로 된 홀치즈같은 모습의 도구다. 보통은 여행하다가 취식하기 위해 쓰는 것이지, 집안에서 쓰는 것은 아니다.
릭이 옆에 달린 쇠장식을 당기자 부싯돌에 스치면서 기름이 묻은 석면의 노심에 불이 붙었다.
혼자 있을 때, 식사준비는 대부분 이걸로 끝낸다.
"오. 고마워."
끓어오른 주전자를 손으로 되돌리자, 아루루는 작게 박수하는 시늉을 했다. 그녀는 뭔가 의식이라도 하는 것처럼, 스푼으로 찻잎을 재어서 도자기로 된 주전자 안에 넣었다.
차는 지금도 꽤 사치스런 물품이다. 평화로워지기 전에는 더욱 고가여서, 즐기기 위해 마신다고 하기 보다는 약의 일종으로 썼다고 한다.
"찻잎은 인원 수만큼 넣고 추가로 한숟갈 더. 보이지 않는 손님의 몫. 이게 기본이다."
"흐음~"
"원래는 물을 넣기 전에 주전자도 한번 데워두면 좋았지만."
"맛은 그렇게 변함없잖아."
"변한다고."
"그래."
"차에 대한 일은 맡겨두게나. 이대로 잠시 기다려봐!"
차에 대한 것이라면, 아루루는 까다로워진다. 취미인 것이다.
"릭의 집에서 차를 우릴 때가 제일 즐거워."
"그래? 왜?"
"집에서는 마음대로 못해. 내가 차를 달이려고 하면, 하인들이 대신 하겠다거나 도와주게 되어버리니까, 편하게 할 수 없단 말이다."
"사치스런 불만이구만."
"그렇게 유쾌한게 아니라고. 품위있게 있지 않으면 아빠......아, 아니, 아버지의 집사가 보고는 잔소리를 늘어놓아. 감시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난 지금도 아루루한테 감시당하고 있는데."
"뭐 어찌되었건."
아루루는 귓등으로 흘려보냈다. "여기서의 나는 자유다."
그런 이유가 어디까지 진짜인지는 몰라도, 아루루는 릭의 집에 올 때 부지런히 도구나 과자 등을 가져왔었고, 시간이 나면 차도 우려주었다. 덕분에 릭의 집에는 투박한 책장에 어울리지 않는 우아한 다기가 놓여져 있다.
아루루는 고양이라도 품는 것처럼 주전자를 기울였다.
릭의 앞에 놓여진 컵에 차가 채워진다.
컵에는 이국의 꽃이 그려져 있다. 바보같을 정도로 커다란 꽃잎이 항아리같은 모양을 만드는 이상한 꽃이다. 이게 실재할지 아닐지 릭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이런 기묘한 꽃이 피어있는 장소가 있는 걸까?
있다면, 한번 가보고 싶구나.
차를 마시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 맛있지."
"아아 응."
"더 기뻐해주면 어때. 말해두겠지만, 이 내가 차를 내어주는 인간은, 너 이외에는 기껏해야 아빠와 엄마.....앗차. 내 부모님 정도라고. 더 기뻐해."
"그래그래. 앗싸~"
"좋아."
아루루가 생각없이 말한 '부모' 라는 단어가, 릭의 생각을 돌린다.
릭의 부모는, 16살에 여행을 떠났다.
그렇다. 지금의 릭과 같은 나이에서다.
아크우드 가문의 규칙으로는, 16살에 완전한 자유행동이 허락된다. 다시 말해 어디에 가든 무엇을 하든 기본적으로 상관하지 않는다는 방임주의다.
결국 아버지는 자유롭게 되자마자 바로 집을 나섰다는 말이 된다.
"또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어."
눈앞에 아루루의 얼굴이 솟아났다.
숨소리가 닿을 정도로 가깝다.
"어차피 또 모험하러 가고 싶다거나 하는 뜬구름잡는 일이나 생각하고 있었겠지."
"가, 가까워."
"너한테는 그런 것 없어."
릭은 욱해서는 조용해졌다.
"아, 그 눈은 납득하지 않은 눈이네."
"......딱히."
"딱히, 뭐가?"
"딱히 용사가 되지 않아도 되는데."
"릭은 이미 용사라고."
아루루가 약간 강한 어조가 된다.
"된다 안 된다가 아냐. 이미 용사야. 태어날 때부터 계속 그랬어. 스스로도 알고 있잖아."
"알고 있지만 말야, 그."
"왜?"
"모험이나 여행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래서."
"적어도 일하고 싶구나 해서....."
"일해에?"
아루루는 뱀이라도 튀어나온 것처럼 몸을 젖혔다.
"일, 일, 일, 일하고 싶다고오?!"
"그런 부자연스러운 몸짓은 됐으니까."
"안 돼."
아루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보다, 무리야."
그녀는 이런이런, 하는 식으로 손을 벌리면서 자리에 앉았다.
"전에서 말했지만 그다지 전해지지 않은 걸로 보이네.....어쩔 수 없지, 행정지도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주섬주섬 두터운 가죽표지의 책을 꺼내들었다.
책의 표지에는, 아루루의 옷에 붙은 것과 같은 사자와 소녀의 문장이 있었다.
이것도 물론, 날뛰는 사자가 용사를, 그걸 억누르는 소녀가 감찰관을 의미하고 있다.
"에~ 감찰관 핸드북."
아루루는 책을 폈다. 곧장 목적의 페이지가 열린다.
"용사규제법, 가이드라인, 일상행위의 제한."
그렇게 아루루는 읽어준다.
"자, 복창해!"
"싫은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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