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082 꿈인가 생시인가
    2021년 04월 23일 17시 58분 42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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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ncode.syosetu.com/n6977fi/122/

     

     

     

     에리비라는 메이드로 변장한 레티시아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발소리가 사라졌어도 당분간은 몸을 움직이지 않은 채, 눈을 감고 있다.

     

     레티시아와의 짧은 대화가 즐거웠던만큼, 갑자기 쓸쓸해졌을 것이다.

     조용한데도 귀을 기울이다가, 정말로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된 것을 확인하고는 이제야 식사의 쟁반을 테이블로 옮겼다.

     의자에 앉아서, 홍차가 들어가 포트를 손에 들자 아직 내부가 뜨거운 것을 느꼈다.

     

     분명 오기 직전에 끓여준 것이다.

     에리비라를 위해서.

     제대로 포개진 옷도, 따스한 식사도, 쿠키를 싼 냅킨에 묶여있는 팔찌도.

     전부, 전부 모두가 에리비라를 위해 준비한 것이다.

     

     ........모두가.

     

     말의 여기저기에서, 레티시아가 항상 모두와 계속 함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에리비라를 위해서 해줬다고는 알고 있지만, 그런데도.......

     징벌실에서 혼자 쓸쓸히 있는 동안, 글로리아와 마리온이 레티시아와 함께 있는 것은 부럽다.

     

     "딱히, 가지지 않았을 때는 괜찮았었는데."

     

     에리비라는 혼자 있는 것으로 자신을 지켜왔다.

     외톨이는 반드시 슬픈 것만은 아니었지만, 에리비라는 상처입지 않기 위해서 혼자를 선택했던 것 뿐이다.

     정말로 원했던 장소를 손에 넣어버리면......혼자가 괴로워진다.

     

     징벌실이라 해도, 여기엔 뭐든지 있다.

     가구는 에리비라의 방에 있는 것보다 고급이고, 학용품은 전부 갖춰져 있고 오락을 위해 읽는 책도 부탁하기만 하면 지급된다.

     다만, 친구만큼은 없는 것이다.

     

     에다의 매일같은 방문은 그녀의 기분전환이 되었다.

     레티시아가 와준 일도, 펄쩍 뛸 정도로 기뻤지만......그만큼 쓸쓸함이 심하다.

     

     요리의 앞에 남았지만, 정말 식욕이 없다.

     차갑지 않은 사이에 급히 가져와 준 요리도, 빠르게 식고 있다.

     

     "먹어야 해. 기운있게 있어야 해."

     

     마지막에 기댈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체력이었으니까.

     레티시아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어?"

     

     그런 생각을 한 자신에게, 에리비라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건 꿈, 이니까."

     

     어젯밤의 꿈 때문이다.

     헤어질 때 조심하라고 엉겁결에 말해버린 것도 그 때문이다.

     

     꿈, 꿈의 이야기.

     누군가가 있었다.

     어느 사이에, 방의 안에.

     누구였는지는 모르겠다.

     어차피 꿈이니까, 눈을 떠버리면 갑자기 흐지부지 되겠지.

     

     누구인지는 흐릿해서 안 보이는데도, 그 누군가의 말은 이상하게도 확실하게 들렸다.

     

     

     "레티시아를 죽이시게."

     

     누군가는 갑자기 그렇게 말했다.

     

     "어째서 제가."

     "괜찮다네. 이걸 쓰시게. 네게 흐르는 저주의 오랜 피가 사용법을 가르쳐 줄 거라네. 잃어버린 마법이니까, 네가 의심받는 일도 없을 걸세. 네가 할 수 있을 리 없는 마법이니까, 레티시아가 죽음과 동시에 네 의문도 풀릴 것이네."

     "그러니까, 어째서 제가 언니를 죽여야 되나요!? 절대로 안 해요!"

     "그럼 다른 수단도 있기는 한데, 정말 괜찮겠나?"

     "괜찮겠냐니......"

     

     "레티시아를 너만의 것으로 만들 기회인데도?"

     

     "네?"

     "레티시아는 누구에게도 상냥해. 너에게조차 상냥해."

     "그래요, 언니는 상냥해요. 누구에게도 변함없이!"

     "맞아. 그래서 누구도 특별해질 수 없어."

     "........."

     "그래서 이건, 네가 레티시아의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야."

     

     "그 누구도, 두 번이나 죽을 수는 없으니까."

     

     누구도 두 번이나 죽을 수 없다.

     

     그것이 정말 감미로운 제안으로 들렸다.

     

     "준비는 해두겠네. 저기에 놓아두지. 누구에게도 들키지 말도록......"

     

     

     에리비라는 수프를 뜨던 스푼을 입에 옮기지 않은 채 그대로 내렸다.

     식욕이 없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먹지 않으면.

     

     체력을 회복해야 해.

     그리고, 몸이 나빠지면 레티시아가 걱정한다.

     적어도 차와 쿠키만이라도, 라며 식은 홍차를 한모금 마신다.

     

     야생꽃과 숲을 빠져나온 바람과도 같은 향기 끝에, 잠들어버릴 것만 같은 단맛, 약간의 떫은맛이 마지막에 남아서 사라진다.

     달여낸 이 차를, 웃으면서 마시던 시간이 정말 아득하게 느껴진다.

     

     쿠키의 포장지에서 팔찌를 벗기고, 팔에 찬다.

     

     에리비라가 만들었던 꽃, 글로리아가 짜낸 리본, 색상 결정은 마리온이.

     레티기아가 오기 전에는, 같은 반에 있으면서 말도 나누지 않았던 세 명이다.

     지금, 그녀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에리비라는 쿠키의 포장지를 열었다.

     쿠키에서 나온 기름으로 번들번들해진 포장지에는, 메시지가 쓰여져 있었다.

     

     글로리아가.

     마리온이.

     모리아 선생이.

     에다가.

     라우라가.

     이르마가.

     

     "........함께 있구나."

     

     메시지를 보고 그렇게 깨달았다.

     

     식사는 따스했다.

     레티시아는 자기가 먹기 전에 들고 와줬을 것이다.

     글로리아의 메이드복을 입었으니, 레티시아는 반드시 글로리아의 방으로 돌아간다.

     

     그럼 글로리아 일행은, 레티시아가 돌아오는 걸 반드시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지금쯤 모두가 따스한 식탁을 에워싸고 있을 거다.

     미소지으면서.

     

     에리비라가 이런 쓸쓸한 징벌방에서, 단 혼자서 차가운 수프를 앞에 두고 있을 때.

     

     그녀는 일어서서, 책장 앞에 섰다.

     수업에서 쓰는 것과 같은 교과서가 꽂혀있고, 제일 아랫단에는 무겁고 두꺼운 사전 등이 꽂혀있다.

     

     [저기에 놓아두지.]

     

     꿈 속에서 누군가가 가리킨 장소다.

     사전을 들어보자, 그건 표지만 사전이었고 그 안에는 길이가 긴 병이 몇 개나 들어있었다.

     

     "어째서?"

     

     떨리는 손으로 하나 들어보자, 내부의 액체는 흔들 때마다 옅게 발광했다.

     들어있는 액체에 뭔가의 마력이 담긴 모양이다.

     

     "거짓말."

     

     처음 만지는 것일 터인데, 에리비라는 어째선지 그것의 사용법을 알 수 있었다.

     

     "거짓말.......싫어."

     

     그건 꿈이 아니었다.

     레티시아는 정말로 노려지고 있다.

     빨리 누군가가 이 사실을 알려야 해. 의문의 인물은 에리비라가 안 하면 다른 방법으로 레티시아를 죽이겠다고 말했었다.

     

     하지만......하지만......이런 나여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선생들은 믿어줄까?

     자칫 잘못하면, 더욱 자기가 의심받게 될지도 모른다.

     에리비라가 범인이라고 오해받는 사이에, 레티시아가 다른 방법으로 살해될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좋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에리비라는 그냥 은은히 발광하는 액체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이건, 네가 레티시아의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네]

     

     누군가의 목소리가 뇌리에 떠오른다.

     

     [그 누구도, 두 번이나 죽을 수는 없으니까.]

     

     "언니......"

     

     자신의 목소리가 멀게만 느껴진다.

     

     "언니, 언니. 나, 나, 언니의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 나.......언니, 언니언니언니언니언니언니. 에리비라는 언니의......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

     

     그리고, 특별해지는 방법은, 그녀의 손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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