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2장 제 7 화, 왕녀와 근위기사단장
    2021년 04월 07일 23시 50분 21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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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ncode.syosetu.com/n2851fy/23/

     

     

     

     해가 저물 무렵의 왕성의 복도를 기분 좋게 걷는 자가 한 명.

     

     "........후훗."

     

     겉모습으로는 가련하고 초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내심으로는 매우 두근거리고 있었다.

     

     "ㅡㅡ세레스티아 전하."

     

     그 호리호리한 등에, 딱딱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도 없던 기나긴 복도가, 긴장감 때문에 차가운 분위기로 변한다.

     

     "학교에서 돌아오셨습니까?"

     "네. 오랜만에 여동생과 대화하러 갔습니다. ......하르마르가 절 불러세우다니 드문 일이네요. 무슨 볼일이라도."

     

     알면서 묻냐는 말을 하고 싶어지는 하르마르.

     

     무슨 용건인지 이해하고 있을 거라고 말하고 싶지만,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면서 내심 일어나는 화를 억누른다.

     

     "어전시합에서, 폐하의 경호를 담당한다고 들었습니다만."

     "네, 그럴 예정이에요."

     ".......저희들을 신용할 수 없습니까?"

     

     왕의 호위는 근위기사단의 관할이다.

     

     아무리 라이트 왕국 최강의 공주라 해도 근위기사단을 제쳐두고서 왕을 호위하겠다니,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근위기사단원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다지 말하고 싶진 않지만, 그 말대로에요."

     "......."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확실하게 말하는 세레스티아. 정면에서 상대하는 하르마르의 눈에 예리함이 깃들었다.

     

     ".....3년 전 사건에서의 실수 때문에 그렇습니까."

     "그것도 이유 중 하나이기는 해요."

     

     또 몇 가지의 문제가 있다는 듯한 말투다.

     

     "그 건에 관련된 자와 의심되는 자들은 전부ㅡㅡ"

     "슬슬 괜찮을까요? 본제를 부탁드려요."

     "........"

     

     당연하다는 듯 이쪽의 생각을 간파한 세레스티아였지만, 이 정도의 일은 '세레스티아라이트니까' 로 해결된다.

     

     "........그 이유라는 것 중에는.....제가 엔제 교도라는 것도 포함되는 겁니까."

     "당신답게 직설적인 말투네요."

     

     하르마르는, 왕이 엔제 교단의 배척을 주장하는 이유에 이 세레스티아가 관여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왕은 이전까지 종교에 대해선 상당히 신중하게 대응해왔기 때문이다.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악질적이라 생각되는 건 면밀한 조사를 한 후 법에 상응하는 벌을 내렸었다.

     

     그런데 엔제 교단처럼 나라에 깊게 침투한 종교에 손을 대려 한다면, 왕보다도 커다란 영향력을 지닌 세레스티아 외의 원인이 있을 리가 없다.

     

     세레스티아가 엔제 교단을 라이트 왕국에서 배척하려는 생각이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떠오르게 되는 이 호위문제도 이해된다.

     

     애초에 납득 따윈 하지 않았지만.

     

     "하지만, 기사인 당신에게 할 말은 없어요."

     

     하르마르는 가슴의 통증과 함께 자연스레 눈을 감았다.

     

     이래서는 엔제 교단에 관한 뭔가의 꿍꿍이가 있음을 전하러 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력부족이라고 듣는 편이, 더 납득하기 쉬웠을 것입니다."

     "그것도 틀리진 않았네요. 당신보다 제 쪽이 더 강하잖아요?"

     

     그 말을 듣자, 하르마르의 자부심과, 가슴 안에 맺혀있던 감정이 불타올랐다.

     

     

     ♢♢♢

     

     

     성의 실내훈련장.

     

     붉은 석양빛이 새어들어오는 훈련장에는, 두 사람의 그림자만 있다.

     

     평소 이 시간은 아직 기사단이 훈련에 매진하고 있을 터였지만, 하르마르의 일갈로 사람을 물리치고서 근처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승부는 한번 뿐으로 괜찮겠습니까? 제가 이긴다면, 근위기사단이 폐하의 호위를 맡는 걸로 하겠습니다."

     "네, 상관없어요. 언제든지 오세요."

     

     눈으로 본 자 모두를 노예로 만드는 절대적인 매료성이 있는 세레스티아의 미소도, 지금의 하르마르에게는 관계없다.

     

     어린 시절부터 의부 라이오넬에게서 배웠던 검을 업신여기고, 자기 뿐만이 아닌 많은 국민의 마음을 지탱하는 엔제 교단의 위기를 암시한 것이다.

     

     엔제 교도인 자신이 세레스티아보다도 우위라고 보여줄 수 있다면, 현명한 왕은 엔제 교단의 배척 같은 어리석은 생각을 고쳐줄 것이다.

     

     그래서, 이전에 했었던 어떤 싸움보다 양보할 수 없는 승부였다.

     

     "그럼ㅡㅡ"

     

     불씨가 튀었다.

     

     강인하다고 일컬어지는 라이트 왕국의 기사들 조차, 주고받는 칼날조차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고속의 참격 때문에 일어나는 불꽃이, 두꺼운 금속음과 함께 쌍방 사이에서 계속 튕긴다.

     

     "윽, ........역시 보통 수단으로는 안 되는가."

     

     하르마르가 크게 한 걸음 물러나서, 세레스티아와 간격을 두었다.

     

     "그럼, 어떻게 아시려고요?"

     

     분명히 여유가 느껴지는 세레스티아가 말한다.

     

     서 있는 자들이 보기에는 완전히 호각으로 보이는 검격이었지만, 세레스티아는 하나하나 확실하게 하르마르를 상회하고 있었다.

     

     속도, 기량, 그리고 파워까지도.

     

     "......하나, 제 쪽에서 조언을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제게 말인가요?"

     

     매우 이상하다는 듯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는 세레스티아를 상관치 않고, 하르마르를 말을 이어나갔다.

     

     "시합과 실전은 다릅니다. 저도 의부님도, 시합에서는 당신에게 져서 쓴맛을 보고 말았지만, 실전에서는 패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랬나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데요......"

     

     전혀 자신의 패배의 가능성을 생각치 않는 세레스티아를 보고, 하르마르는 처음으로 그녀가 학생답다고 생각했다.

     

     "그건 실전을......전쟁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전하의 수완 덕에 전쟁이 줄어들었지만, 예전엔 제국과 공화국과도 끊임없이 부딪혀왔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에 경험하고서, 훈련과 실전의 확실한 차이를 느끼고 경악했었습니다."

     

     예전에 맛봤던 전장에서의 오한같은 체험을 떠올린다.

     

     적을 죽이고, 피를 뒤집어쓰고, 누구나 살아남기 위해 미쳐서 발버둥치던 그 광경......

     

     "........베어지지 않으면서 베고, 맞지 않으면서 때리고, 무기를 잃어서 팔이 부러져도 목구멍을 물어뜯는..... 경기로만 경험해봤던 당신으로선, 그런 탐욕을ㅡㅡ"

     "그 설교, 아직도 계속되나요?"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꾀꼬리같은 목소리가, 하르마르의 화를 북돋는다.

     

     ".......아직 이해하기엔 빠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하르마르의 몸에 푸른 마력이 차오른다.

     

     눈동자에는 결사의 빛이 타오르고, 팔을 잃는다 해도, 빈사가 된다 해도, 서로 찔러서라도 거머쥐려 하는 승리에 대한 집념이 느낀다.

     

     "이제, 만족하셨나요?"

     "예........ 이 이상은 필요없겠죠. .............!!"

     

     하르마르가 야수와 같이 추악하고 험악한 표정으로 달려나가서, 검을ㅡㅡ

     

     "뭣이.......?"

     

     검이 하늘을 날았다.

     

     석양빛을 받아서 반짝거리다가, 먼 곳의 벽에 꽂힌다.

     

     "......확실히 시합과 실전은 달라요."

     

     세레스티아가, 검을 빼든 자세 그대로 말했다.

     

     그리고는, 하르마르의 검을 날려보낸 칼날을 천천히 그의 목에 갖다대었다.

     

     "......"

     "시합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어요. 보기 좋음을 의식한 시합전개를 연출해야만 했답니다. 하지만, 실전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어요."

     

     하르마르와는 생각이 전혀 달랐다.

     

     시합에선 그런대로 좋은 시합을 연출했던 것 뿐. 실제로는, 이렇게나 손쉽게 자신을 무력화시킬만한 실력을 갖고 있었다.

     

     자신이 보고 있던 세레스티아의 강함 조차도 표면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음을, 답변과 그 몸으로 경험하여 알게 되었다.

     

     "당신의 '노력하면 이긴다' 라는 생각은 부정하지 않겠지만, 제게도 저의 생각이 있어요."

     

     검을 떼어내고, 우아한 동작으로 자루에 넣는다.

     

     "전, 강함이란 순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단순히 강한 쪽이 이긴다. 그거면 되잖아요? 너무 어려운 일은 말하지 말아주세요."

     "........"

     

     상냥한 미소를 띄우면서, 하르마르가 키워왔던 자긍심을 깨부순다.

     

     하르마르는 모른다.

     

     예전의 세레스티아가, '진정한 의미의 높은 곳' 을 목격했었다는 사실을.

     

     ".......엔제 교단은, 국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걸 당신이....."

     

     기력이 사라진 와중에, 스스로 생각해도 억지라고 들어도 어쩔 수 없을 심정을 토로한다.

     

     "국교가 아니에요. 근위기사단장인 당신이 해도 될 착각은 아닌데요?"

     

     고개를 숙인 하르마르에게 무정하게 못을 박는다.

     

     "애초에 국정에 기사가 참견하는 일 자체가, 월권행위가 아닌가요?"

     "......."

     "종교를 우선하겠다면, 마땅히 기사의 지위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에요."

     

     아이를 타이르는 것처럼, 왕이 심판하는 것과도 같았던 세레스티아의 말이 끝나자, "그럼." 이라고 하며 발걸음을 돌려 그 자리에서 떠나고 말았다.

     

     "......"

     

     세레스티아가 떠나고 해가 완전히 떨어진 후에도, 당분간 수련장의 그림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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