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060 상냥한 사람
    2021년 03월 22일 15시 13분 07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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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ncode.syosetu.com/n6977fi/101/

     

     

     

     방과후가 되자, 반 정도 강제로 의태의 연습에 어울리게 되었다.

     

     솔직히 조금 귀찮은 면도 있었지만 레티시아를 근처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건 좋다.

     그녀의 귀여움을 보고 분석하는 일은 나에게 있어 중요하니까.

     

     "먼저, 마리온은 어떤 모습을 원하나요?"

     

     "음, 딱히 어떤 거라고 생각해본 일은 없고 적당히 귀여우면 되는데요."

     

     어떤 모습을 원하냐고 물어봐도, 그걸 알면 이미 내 모습은 그걸로 정해졌을 것이다.

     그걸 모르니까 성가신 것이지만.......일단 무난하게 대답해둔다.

     

     "적당히 귀여운 거라. 그렇네요."

     

     레티시아는 조금 생각에 잠기고는,

     

     "그럼, 이런 모습은 어떤가요?"

     

     하며, 자세한 몸의 수치를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키, 체중, 쓰리사이즈, 발의 사이즈, 허리의 위치같은 몸의 밸런스.

     이목구비와 피부와 머리카락, 눈동자 색은 특히나 자세하게.

     머리 모양과 액세서리까지.

     

     말이 빨라서 듣기 어려운 면도 있었지만, 난 거기에 귀를 기울였다.

     모두가 대화하는 모습을 가만히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듯한, 조용하고 낙낙했던 사람이.....이렇게나 필사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 행동이 기뻤고, 또한 늘어놓는 수치에서 상상되는 무난한 귀여움에 놀랐다.

     

     평소보다도 조금 더 이상에 가깝고, 특출나게 예쁘다는 건 아니지만 반감도 사기 어려운 스타일.

     특히 자세히 말했던 이목구비는, 약간 틈이 있어서 완벽하지는 않은 귀여움.

     

     그 모습을 생각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던 것일까!

     분명 오후의 수업 내내 계속 그 일만을 생각해줬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까지 자세한 모습이 전해질 리가 없다.

     

     .......날 위해서 그렇게까지.

     

     골렘에게서 구해줬을 때에는, 내가 슬라임이라고 눈치채지 못했으니까.

     

     그걸 깨달았을 때는, 역시 그렇다며 납득했지만 조금 섭섭했었다.

     슬라임을 도와주는 사람 따윈 없다.

     

     나도 다른 슬라임이 물리공격을 받는다면 절대로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도움받아서.......기뻤던 것이다.

     그런 바보같은 짓을 하냐고 생각하는 반면, 정말 기뻤던 것이다.

     설령, 착각때문에 그랬다고 해도.

     

     하지만 어쩌면 이 사람은......내가 슬라임이라고 알고 있어도 도와줬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진지하게.....

     

     "음, 음.......이런 느낌이려나?"

     

     레티시아는 수치를 말하면서, 위화감이 적도록 수정을 하며 모습을 만들어나간다.

     꽤 좋은 만듦새라고 생각하지만,

     

     "으음~?"

     

     레티시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이곳저곳 세세하게 고치기 시작한다.

     

     이렇게 하다가는 어떻게 되는지, 슬라임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모두 자기 모습을 만들어보려고 이상을 담아낸 결과.......세밀한 곳을 너무 고집한 탓에 전체적으로 보면 기분 나쁜 물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알고 있지만, 가르쳐주지 않는다.

     있는 힘껏 수정하는 레티시아에게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라는 것은 변명.

     

     사실은 이 모습이 실패하기를 바랬으니까.

     

     실패한다면, 이 시간이 계속 이어진다......

     

     "음, 팔은 조금 더 길게."

     "예."

     

     팔을 길게 하면서, 목을 조금 가늘게 한다.

     

     "발은, 이렇게......."

     

     몰래 허벅지의 위치를 올린다.

     

     확실하게 실패하도록, 조금씩 비튼다.

     그 결과, 상당한 괴물이 만들어졌다.

     

     "히익."

     

     아주 쬐끔 기분 나쁘게 보이도록 모습을 비틀었다고는 해도, 만든 본인이 비명을 질러버렸다.

     .........이 모습은 잘 기억해두자.

     여차할 때 쓸 수 있을지도 모르니.

     

     "미안해요. 여러가지로 힘써줬는데도 실패했네요."

     "뭐, 이런 법이에요. 저희들도 자기 모습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려서 의태할 수 없게 된 슬라임도 있다고 들었어요."

     

     사과를 받자 뒤가 켕겨서, 그만 쓸데없는 말을 하고 말았다.

     

     "어. 그거 큰일이잖아요!?"

     "아뇨, 추측이지만, 너무 의태에 빠지지 말라는 뜻으로 해주는 말이 아닐까요."

     "빠져버리나요?"

     "뭐, 뭐든지 될 수 있다는 건, 재밌으니까요."

     "알 것 같아요. 정말 재밌겠네요."

     

     주먹을 꽉 쥔 레티시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강한 어조에는 왠지 실감이 담겨져 있다.

     모습이 고정된 인간들은 그 기분을 알 리가 없는데......그만큼 친절하다는 뜻인가.

     레티시아는 슬라임한테도 친하게 대해준다.

     

     그 상냥함에 압도된다.

     

     "아, 그래. 평균적인 모습은 될 수 있나요?"

     "평균이요?"

     "그래요, 반 친구들이라도 좋고, 기억하는 사람들 중에서라도 좋으니 되도록 많은 사람의 평균이 되어보는 거에요."

     

     그래서 그렇게 들었을 때, 그녀의 말로는 인간의 여자들만으로 한정되는지 알 수 없어서 마물들의 특징도 섞어버렸다.

     평균이기는 하지만, 그녀가 원했을 모습과는 다른 것을 만든다.

     

     "죄송해요. 힘내봤지만, 한쪽으로 치우쳐진 듯 하네요."

     "아, 그렇네요. 아마 평균이라고 들어도 곤란하겠지요."

     

     노렸던 대로 이 모습도 실패하였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요. 너무 해버리면 의태할 수 없게 되는 일도 벌어진다면서요?"

     

     친절한 대사를 듣자, 조금 마음이 아프다.

     

     "그건, 그냥 어른이 말했을 뿐이라구요! 모처럼 여러분이 협력해주고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죄송해요."

     "아직 첫째 날이에요. 처음부터 잘 될 리가 없잖아요. 내일도 노력해봐요."

     "아, 내일도, 괜찮은 건가요!"

     "당연하죠."

     

     레티시아가 푸근하게 웃는다.

     내 모습을 만드는 일을 도와줘도, 그녀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데.

     

     아무 교환조건도 없이, 아무 타산도 없이 타인을 위해 행동한다.

     어수룩하고 친절한, 정말 좋은 사람.

     

     그녀는 귀엽다.

     정말로 귀엽다.

     

     분명, 그 상냥한 마음이 새어나와서 귀엽게 느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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