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 047 위태로워도
    2021년 03월 08일 14시 22분 32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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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ncode.syosetu.com/n6977fi/72/

     

     

     

     "미, 미안해요. 확실히, 절실한 문제네요."

     "네."

     

     매우 굳어버린 표정의 레티시아가 사과했다.

     

     "저기."

     

     글로리아가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그건 머리카락을 뽑아서 그런게 아닐까? 나도 보면서 걱정했었는걸? 그런 짓을 하면 두피가 아파할 테니까."

     "모근이 붙어있지 않으면, 그만큼 머리카락의 양이 필요해요. 머리카락은 유한해서 아무래도 모근을 뽑게 돼요."

     

     그래서 일족의 남자들은 머리가 벗겨지는데도 머리카락을 뽑지 않을 수 없어서.....알면서도 매우 서글픈 모습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 탓도 있어서 외부와의 결혼이 정말 적기 때문에, 골렘술은 지방에 머무른 채 유출되지는 않았지만 발전도 거의 없다.

     

     "음~ 그건 심각하네."

     "네."

     

     .......정말 심각하다.

     

     "어쨌든, 저주 따윈 무섭지 않아요. 에리비아가 저주에 해박하다면, 여러가지로 가르쳐줬으면 할 정도에요. 알게 되면 막는 방법도 알 수 있게 되는걸요."

     

     레티시아는 일부러 밝은 목소리를 내어 교실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준다.

     

     "죄송해요. 제가 배운 건 골렘술 뿐이에요. 저주에 대해선 가문에도, 이미 전혀 남아있지 않아서요."

     "어머, 아쉬워라."

     

     .......진심으로 아쉬운 모양이다.

     

     "모두들, 저를 위해서 화내줘서 감사해요. 조금 오해가 있어서 이런 일이 되고 말았지만, 그 마음은 기쁘네요."

     

     당신들이 나빠요.

     사과하세요.

     

     그런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반성을 재촉한다.

     상냥하지만, 강하다.

     

     "예....."

     "미안해요. 에리비라."

     "미안해."

     "죄송했습니다."

     

     나보다 신분이 높은 애들이, 순순히 고개를 숙인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레티시아도 알고 있을 터인데도, 그녀는 태연한 표정이다.

     

     "그리고, 에리비아. 상관하지 말라거나, 내버려두라는 식으로 말하면 안 돼요."

     "전 딱히, 평소의 일이었는데요."

     

     그래, 평소의 일이고, 난 그걸 받아들인다.

     싫은 일이어도, 받아들이면 나름대로 심한 일이 되지는 않으니까.

     나만 참으면 된다.

     그걸로, 나도 주변도 평화로워지니까.

     

     "지금까지는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달라요. 오해당한 채로도 상관없는 건 당신 뿐인데요? 저는 싫고, 모두도 곤란해요."

     "어째서 모두가......"

     "오늘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면, 모두는 이제부터도 존재하지 않는 저주에 계속 떨었을 거에요.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포기하고 아무것도 안한 탓에 모르는 사이 가해자가 되었다고요."

     "........"

     

     그런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계속, 나만 참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나만.......

     

     자연스레 반 친구들에게 얼굴을 향했다.

     이렇게 정면에서 그녀들을 보는 것은........처음일지도 모른다.

     

     "미안해요."

     

     솔직하게, 사과하는 말이 나왔다.

     

     "모두가 두려워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그런, 이쪽이야말로."

     "몰랐다고는 해도, 미안해요."

     "미안해요."

     

     내가 사과하자, 그녀들도 계속 사과해주었다.

     그 말은 분명 거짓말이 아냐.

     

     "이제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으니, 머리를 풀어보는게 어때요?"

     

     레티시아가, 풀어헤친 채인 나의 머리를 한 움큼 들어올렸다.

     이 사람의 행동은 때로 돌발적이어서 모두를 놀라게 한다.

     

     "이렇게나 예쁜 머리카락인걸요."

     

     레티시아는 예쁜 보석과 자그마한 새라도 만지는 것처럼 손 위의 내 머리카락을 바라보다가, 살짝 입을 대었다.

     

     "!?"

     

     머리카락에 입을 맞춘 레티시아의, 조금 위를 바라보는......진지한 시선에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찰랑거리며 손에서 머리카락이 떨어진다.

     

     한 순간 보였던 꿰뚫는 듯한 시선은......분명 나 이외는 눈치채지 못한 걸까?

     

     "분명 그 편이 어울릴 거에요."

     

     라며, 작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는, 평소보다 점잖은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레티시......."

     "새언니! 역시 대단해요!"

     "쿨럭."

     

     글로리아가 머리부터 레티시아에게 부딪혀든다.

     흘끗 불만스러운 표정을 나에게 보여주는 걸로 보아......당신도 레티시아의 저 시선을 눈치챈 건가요?

     

     "멋진 중재였어요! 홀려버릴 것 같았어요!!"

     "그, 그런 걸까."

     

     "하지만, 무리하시면 안 돼요! 머리를 맞았으니까, 안정을! 자, 양호실로 돌아가요! 자자자!!"

     

     글로리아는 레티시아를 쑥쑥 밀었고, 레티시아는 그에 따른다.

     

     "그렇네. 양호실에서 조용히 있을게. 그럼 여러분, 내일 봐요."

     "가~시~라~구~요~!"

     "그래그래."

     

     레티시아는 손을 흔들면서 교실을 나선다.

     그녀가 떠나간 뒤는, 태풍이 지나간 모습 같았다.

     누구 할 것 없이 한숨을 쉬며,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후우."

     

     나도 작게 한숨을 쉬었다.

     진정.....될 리가 없다.

     레티시아가 머리카락을 만졌을 때, 그 눈을 봤을 때부터 심장은 시끄러울 정도로 두근거렸고 조용해지지를 않는다.

     뭔가 뜨거운 것이 가슴 한가운데에 박힌 것 같은, 그런 이상한 감각이 계속 이어진다.

     

     성큼성큼, 한 아이가 내 앞에 왔다.

     확실히, 식당에서도 선두에 있던.......

     

     "새치기, 하니까 그래요."

     "그럴 셈은 없었지만요."

     "알고 있어요. 제가 멋대로 곡해한 것 뿐."

     

     외면한 채 입술을 비죽이는 표정에는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다시 돌아보고 똑바로 말하는 건 나쁘지 않다.

     

     "기분, 알겠어요."

     

     글로리아라면 어쩔 수 없다.

     그녀는 신분도 높고, 오빠와 레티시아가 약혼도 하고 있다.

     

     하지만, 난 특별하지 않다.

     특별하지 않은데도, 특별한 그녀의 마음에 들어버려서......

     

     입장이 반대였다면, 나도 저편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처럼 정면에 나서려 하지도 않고, 참가하지 않은 척을 하며, 옆에서 그냥 비난의 눈초리로 바라보기만 하는, 제일가는 비겁한 자로서.

     

     하지만, 이제 그런 일은 안 한다.

     

     레티시아가 내게 자신감을 주었다.

     

     "알겠지만, 양보하지 않을 거에요."

     "그런 말은 안 할 거에요. 양보받는 게 아니라 손에 넣어보일 테니까. 두고 보라구요!"

     "네."

     

     정면에서의 선전포고라면, 이쪽도 정면에서 맞설 수 밖에 없다.

     아무래도 내가 머물 곳은, 꽤 위태로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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