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 045 기대와 실망
    2021년 03월 07일 23시 58분 19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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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ncode.syosetu.com/n6977fi/70/

     

     

     

     정신을 잃은 모양이다

     새된 비명을 듣고 눈이 뜨였다.

     

     한순간,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어둡고, 따스하고 좋은 향기가 나서.....다시 한번 눈을 감고 싶어진다.

     

     ".......!!"

     "ㅡㅡ!"

     

     소리가 들리지만, 의미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무사해!?"

     "새언니!!"

     "회복마법을!"

     

     몸이 가벼워지며, 빛이 눈을 자극했다.

     축 늘어진 레티시아가 날 감싸고 있던 것이었다.

     떨어지는 갑옷에서, 나와 마리온을 감싸고......

     

     "아아아아! 레티시아!? 레티시아!!"

     

     어째서 이런 일이, 어째서!?

     

     "진정해요, 에리비라 양!"

     

     선생들이, 레티시아에게 손을 뻗지 않고 날 말린다.

     

     "레티시아! 레티시아!?"

     "조금 머리를 맞았지만 괜찮아. 정신을 잃은 것 뿐이니."

     "내가, 내 탓으로!!"

     "아니, 틀려. 미안. 저거 내 탓이야."

     

     마리온의 옆에 있던 메후틸트가, 겸연쩍은 듯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내 증폭이 저것에도 걸린 모양이야. 골렘도 매직아이템이었나보네....... 정말 미안."

     "그런 일은......"

     

     지금 말해도.......

     이미 일은 일어나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메후틸트가 나쁜 게 아니다.

     내가 저런 이상한 명령 방식을 썼으니까.

     내가 분에 넘치는 결과를 보여주려고 했으니까.

     

     내 힘이 약해서, 증폭된 골렘을 다스리지 못했으니까.

     억누르는 게 아니라, 제어불능이라고 알게 된 즉시 마리온을 구하러 갔었다면.

     애초에 제어가 실패했을 때의 일을 생각해서, 좀 더 거리를 벌려뒀어야 했다.

     

     "내 탓이야."

     

     내가, 내가, 내가.......

     

     "레티시아는 만일을 위해 양호실에서 쉬게 해요. 여러분은 교실로 돌아가요. 메후틸트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모리아 선생이 착착 지시를 내린다.

     

     "음. 예. 마리온, 같이 가자."

     ".......응."

     

     "측근들은.......글로리아를 부탁할 수 있을까요?"

     "예!! 아, 저기......먼저 에리비아를 교실에 데리고 갈게요. 그 후에 이르마와 라우라를 양호실로 데려갈게요."

     "그래요. 그걸로 부탁할게요."

     "알겠슴다!"

     "예~!"

     

     내 탓이다.

     내 탓이란 말이다.

     

     항상 이렇다.

     항상, 항상 이렇다.

     알고 있었는데......

     

     기대하면 실망한다.

     믿으면 배신당한다.

     

     그래서 기대를 하면 안 된다.

     누군가를 믿으면 안 된다.

     

     저주의 혈통 탓에 불합리하게 경외시되어서,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기대는 안 한다, 누구도 믿지 않는다.

     그건 어머니의 가르침이다.

     지금이라면 알겠다.

     분명 어머니도 실망하고서, 배신당하는 일을 되풀이해 온 것이다.

     

     나는......기대를 하고 말았다.

     레티시아가 말을 걸어줘서, 매일이 정말 즐거워져서.

     정말로, 정말로 즐거워져서.

     어쩌면, 이런 시간이 계속 지속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하고 말았다.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기대하면 안 된다.

     믿으면 안 된다.

     

     기대해버리면, 믿어버리면, 그걸 잃었을 때 크게 실망한다.

     자신을 괴롭히지 않게 하기 위해, 기대하지 않는다. 믿지 않는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평온한 것이었다.

     

     레티시아한테까지, 이렇게나 민폐를 끼치다니.

     .......레티시아 쪽은, 분명 내게 실망했을 것이다.

     

     

     "네 탓이잖아!"

     "레티시아를 암살하려고 한 거 아냐?"

     "저주받은 가계니까, 그럴지도 몰라."

     "그럴려고 레티시아한테 다가간 거였네!?"

     

     여긴.....교실이다.

     언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그러부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린 걸까?

     레티시아 덕분에, 아무곳도 상처입지 않았는데도 머리가 멍하다.

     

     보내는 적의가 정겹고, 기분좋다.

     그래, 여기가 나의 있을 장소다.

     여기에 있으면 돼.

     밑바닥에 있으면, 그 이상으로 실망은 안 할테니까.

     

     "무책임한 말만 늘어놓고 있잖아!"

     

     글로리아의 푹신한 꼬리가, 스커트를 어루만진다.

     ........왜 이 애가 여기에?

     그런 일을 당한 레티시아를 따라갔어야 했을 텐데.

     

     "무책임하지 않은데요!"

     "글로리아는 무섭지 않아요? 언제 저주받을지 모르는데도?"

     "저주가 무서워서 입학을 그만둔 아이도 있대요."

     "그런거, 단순한 소문이잖아!"

     "하지만, 정말 있을지도 모르고......."

     

     여러 소리가 들려오지만, 의미까지는 머릿속에 안 들어온다.

     

     "그보다 새언니를 암살한다니 말이 돼. 우리들이 입학했을 때는 아직 언니가 복귀할지 알 수 없었잖아!"

     "하지만......."

     "저기 말야, 좋아하는 사람을 상처입히고 싶은 사람 따윈 없다고! 그래서 에리비라가 새언니를 상처입힐 리가 없어!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 정도는 잘 안단 말야!"

     

     글로리아의 목소리.

     좋아해.

     그래.......그 사람을 좋아했다.

     잘 변하는 표정도, 보란 듯이 호기심 왕성하고 억지스러운 면도.

     하지만, 이제 끝.

     레시티아도, 이젠 내게 다가가려 하지 않을 테지만.

     

     "그래서, 이 애가 새언니를 상처입힐 리가 없다는 거야!"

     

     이제 됐어.

     이제 됐으니까.

     

     날 감싸려하지 말아줘.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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