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답하고 억울해서, 괜히 상처받은 기분이 들었지)
그런 시시한 감정에 휘둘려서 그녀를 대하다니,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을 한 것이다.
ㅡㅡ내가 아직 어렸을 때, 엘세와 루피노 님과 셋이서 지내는 일도 적지 않았다.
[루피노, 정말 고마워. 당신 덕분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
[별일 아니었습니다. 당신을 위해서라면야 얼마든지]
[후후, 매번 의지하고 있어]
두 사람은 강한 신뢰관계로 맺어져 있으며, 항상 가까이에서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범접할 수 없는 끈끈한 유대감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런 엘세를 지지하고 도와주는 루피노 님을 동경하고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부러워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도 나는 그 사람처럼 될 수 없었다)
루피노 님은 누구보다 훌륭한 분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그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제국 최고의 훌륭한 마법사이며, 총명하고 성실하고 겸손한 루피노 님에 대한 존경심을 계속 품고 있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엘세 역시 훌륭한 여성이었다.
[저는 엘세에게만 이런 일을 한다고요]
[어머, 고마워라. 특별 취급이네]
[......뭐 그런 거죠]
루피노 님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한 것은, 연애에 너무 문외한인 엘세 정도였을 것이다.
엘세에게 향하는 루피노 님의 눈빛은 언제나 다정하며 애정을 담고 있었다.
누가 봐도 두 사람은 잘 어울렸다. 엘세를 좋아했던 나조차도 그렇게 생각할 정도였다.
그녀가 죽은 뒤에도 루피노 님이 그녀를 계속 그리워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가 없군요. 하지만 당신처럼 똑바로 그녀를 계속 그리워할 힘도 없으니 어쩔 수 없겠지만요]
몇 년 전, 거의 마시지 않는 술을 손에 든 루피노 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난다.
그래서 나는 티아나가 엘세의 환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루피노 님에게 그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당해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도 루피노 님은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말하지 않았다. 티아나가 내 아내라는 입장인 것, 그 이유만으로.
계약결혼이라는 이기적인 조건을 내가 강요해서 시작된 것이지만, 성실한 그는 자신의 마음을 계속 숨기고 있었다.
(티아나는 분명 모르고 있겠지)
그녀는 루피노 님의 호의가 '티아나 에버렛'이 아닌 '엘세 리스'에게 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타인의 호의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예전부터 그랬고, 현생에서 계속 왕국에서 학대받으며 호의와는 정반대의 감정을 항상 받아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루피노 님은 말이나 태도로 표현하지 않으시니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가 가끔씩 티아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과거 엘세에게 향했던 눈빛과 같았다.
나는 가까이에서 항상 보고 있었기 때문에 금방 알아차렸다. 저건 연인과 겹쳐본다는 어중간한 것이 아니다.
분명 한 명의 여성으로서, 루피노 님은 티아나에게 호의를 갖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과거의 일이라고 자신의 감정에 대해 거짓말을 하며 계속 숨기고 있다.
“...... 정말, 미워질 정도로 잘난 사람이네.”
내가 루피노 님의 입장이었다면 그와 같은 일은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이나 그녀의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녀가 돌아보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티아나는 얼마 전 암묵적으로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줬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것에 대해 기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감정을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있었다.
애초에 이런 태도로는 더 좋아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실망하여 냉담해질 가능성도 있다.
(...... 하지만 그녀의 손을 놓을 수 있는 단계는 이미 한참 지났어)
어쨌든 정신을 차리고 티아나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해도, 가슴 한구석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감정은 한동안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