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만도 예외는 아니어서, 유일한 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마력 화살의 화살촉을 피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서 있었다.
무언가가 화내고 있다.
강하게, 아주 강하게, 화내고 났다.
화나게 해서는 안 되는 존재가, 화를 내서는 안 되는 존재가 그 감정을 품어 버렸다. 일어난 현실을 본능이 받아들여, 무의식적으로 감지해 버린다.
사람과 천사 따위가 소란을 피웠기 때문인지, 이유는 감히 짐작할 수 없다. 그저 건드리면 안된다고 몸이 정답을 체현하고 있었다. 더 이상 화를 내게 하면 안 된다며, 모두가 한결같이 부동자세로 일관하고 있었다.
사람도, 천사도, 다른 생명체도, 자연조차도.
"큭............"
생사의 갈림길에 있던 하쿠토마저도 깨워버리는 격정. 깨어난 하쿠토는 몸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이변을 가장 먼저 감지했다.
소리가 없다. 사람도, 벌레도, 새도, 불어야 할 바람조차도 숨죽인 듯 고요했다. 개념조차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고요했다.
고요함에 젖어드는 동안 자신도 움직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갑자기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
"앗, 아직 숨이 붙어 있구나 ......"
마파엘에게서 시선을 떼고, 피를 토한 수천룡을 눕혔다. 분노는 조급함으로 바뀌며, 구멍이 뚫린 용의 배에 손을 얹었다.
검은 마력을 흘려보내어 인간과 구조가 다른 용을 탐색하며 치료한다.
[......ㅡㅡㅡㅡ]
조금 늦게 마파엘이 도박을 걸었다. 여전히 수수께끼의 남자한테서 주목받고 있지만, 여기서 이탈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떠난다.
천장도 아무렇지 않게 파괴하고 지상으로 나간다. 두툼한 돌판이건 뭐건 상관없이 한 번의 날갯짓으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 카게하, 내 큰 쪽의 옷 좀 준비해 줄래? 평소인 편이이 움직이기 편해서 말이야."
"......! 아, 옙!"
도망친 천장의 구멍을 향해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며, 굳어 있는 카게하에게 명령한다.
가장 가까이에서 공포에 질려 멈춰있던 카게하도 주인의 부름에 자연스럽게 반응하였다. 잔해가 쏟아지는 지하감옥에서 휘청거리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달려 나갔다.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수천룡 슈린에게 마력을 흘려보낸다. 섬세하고 치밀한 마력 조작으로 육체 구조를 탐색한다.
웬만한 생물이라면 포기했을 것이다. 경험상 이 상처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용이라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언덕에서 전투를 지켜본 결과, 그 회복력과 생명력은 대단했다. 그래서 용이라면 조금만 도와주면 낫지 않을까 예상했다.
(쳇...... 상처가 낫지 않네)
하지만 상처가 자연 치유를 거부하고 아물지 않는다. 낫지 않는다. 조급한 크로노는 별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 무렵, 지상에서는 .......
신전을 뚫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림자.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자유를 되찾은 왕국군은,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그림자를 보았다.
감색의 용에 황금색 문양, 제각각의 날개. 용의 새끼 같기도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다른 기운을 내뿜고 있다.
[...... 마파엘, 무슨 일입니까? 설마 그럴 리가 없겠지만, 그분이 계신가요? 소홀하지 않았겠지요?]
[불명입니다. 그리고 예상외였습니다. 좋든 나쁘든,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아크만과 마파엘에 의한 천사의 대화.
제때 도착한 제3천사에 대한 안도감과, 무엇보다도 짙은 위기감을 동시에 느낀 아크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해야 할 선택지를 잡았다.
[이곳은 맡깁니다]
[알겠습니다. 릴리스 님을 맞이하세요]
말없이 서로의 의사를 확인하고, 아크만이 <침실>로 날아간다.
"앗, 그렇겐 안 돼!"
정신을 차린 넴은 제2천사의 마력 화살을 겨누었다. 조준은ㅡㅡ<침실>.
이거라면 아크만과 겹칠 뿐만 아니라, 피하더라도 <침실>을 파괴할 수 있다. 넴은 망설임 없이 발사했다.
"ㅡㅡㅡㅡ!"
쏘는 순간부터 엄청난 에너지가 한 지점을 향해 달려간다. 제2천사의 무궁무진한 마력을, 현상마저 파괴하는 마력을 사람의 무기인 화살로 발사한 것이다.
본래는 의미에 부합하는 형태로만 허용되는 금기의 마력. 기묘하게도 화살촉은 당사자에게 향하였고, 인간의 최고의 무기로서 인류에게 승리를 안겨준다.
[............]
제2천사의 흰 화살이 마파엘에게 명중하자, ㅡㅡㅡㅡ튕겨져 나갔다.
화살이 맥없지 튕겨 나자 거대한 마력은 터져서 시야를 하얗게 비추었고, 서서히 회복되어 맑아졌다.
하늘에 군림하는 천사를 올려다보며, 말없이 막연한 경외심을 느낀다.... 무의식적으로 숭배한다.
"............어이어이."
넴은 알고 있었다.
그 정체를 알고 있었기에, 절망에 찬 표정으로 마파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제2천사마저도 몰아세우며 사실상 절체절명의 위기까지 몰고 갔던 넴이, 이젠 전의를 잃고 포기하고 있다.
기술을 버리고, 계략을 던지고, 목숨을 버린 것이다.
"이거, 무슨 농담이냐고 ......"
"넴 ......?"
처음 보는 넴의 실망, 절망. 말을 건넨 지크는 가슴에 화살을 맞고도 무사히 떠오르는 마파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던 그 말을 듣고 말았다.
지크 역시 그에 끌려가는 것처럼, 불굴의 의지가 꺾이고 만다. 말 한마디로, 그의 마음은 산산조각이 난다.
"저것은 설마 ............ 진짜 '용'인가?"
신이기도 하고, 신을 죽였다고도 하는 용이 천사의 모체로서 엔다르 신전에 강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