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12장 267화 전쟁에서 유일하게 한가한 남자(3)
    2024년 06월 12일 23시 40분 41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728x90



     순식간에 뒤돌아본 세레스티아가 무릎을 꿇자, 뒤이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두 사람 역시 얼굴을 깊숙이 숙였다. 바로 뒤쪽, 그리고 바로 눈앞에 있던 마왕을 여전히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데, 어긋난 선글라스를 낀 채로 겁먹은 기색의 작은 마왕은 세레스티아에게 칭찬의 말을 건네는 것부터 시작했다.



    "꽤 하잖아....... 또다시 내 기척을 알아차릴 줄이야. 눈을 가리기 전에 들킨 건 처음이라고......"

    "그렇지 않아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봅니다만."

    "그럼, 지금부터 엄청난 백전백승이 시작되겠지?"



     그래도 도전해 볼까 싶어서, 마왕은 대면한 상태에서 양손으로 세레스티아의 눈을 가렸다.



    "누구~게!"

    "마리요."

    "아닌데요. 누구~게!

    "몹이요."

    "아닌데요. 누구~게!"

    "에리카일지도 모르겠네요."

    "아닌데요. 누구~게!"

    "그럼 모리."

    "아닌데요. 누구~게!

    "아스라ㅡㅡ"

    "이 부끄러운 접대는 언제까지 계속되는 거야?"



     인내심에 지친 마왕이 손을 놓아버렸다.



     기적의 미모가 드러난다. 감정이 없는 눈동자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듯한 완벽한 얼굴.



     신의 장난으로 지상에 태어났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세레스티아를 앞에 두고도 흔들리지 않는 마왕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내 [크로노스]의 제1석인 세레스티아여, 접대는 적당히 끝내거라."

    "하지만ㅡㅡ"

    "이 일에 관해서 '하지만'라고 하지 마라. 논리 싸움으로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야."



     어린아이 모습의 크로노에게 이인자 선언을 받고서 억지로 입을 막혀버렸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입술이 너무나도 손쉽게, 아무렇게나 막혀버린다.



     만져질 때마다 달콤한 쾌락이 뇌로 가서, 저항할 수 없는 마비되는 자극을 가져다주었다.



    "앗차, 방해할 생각은 아니었어. 돌아가려고 토끼뜀으로 큰 점프를 하는 중에 보았기 때문에,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어서."

    "방해가 아니에요. 원래는 제가 항상 곁에 있어야 해요. 그런데 왜 연일 못 뵈는 날이 있는 걸까요?"

    "음~ 출장 중이라서다."



     토라진 채로 비난하는 말투에도, 당당하게 가슴을 펴며 대답한다. 그래도 손쉽게 용서해 버리는  자신이 한심스럽지만, 손가락으로 주인의 뺨을 찌르며 은근한 호소를 이어가며 묻는다.



    "...... 그 모습은, 설마 저쪽을 향해 가실 셈인가요?"

    "맞아. 조금 절벽을 통해 침입해 보려고."



     마왕은 선글라스에 탱크톱, 긴 바지를 입고서 ...... 분필로 보이는 하얀 가루가 든 가죽 가방을 허리에 차고 있다. 손아귀의 습기를 조절하기 위함일 것이다.



     마왕다운 방식으로, 신전 뒤쪽에서 몰래 들어간다고 한다.



    "너희들이 총동원되어 일하고 있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 등반해서 뒤에서 방해하고 올 게. 설마 뒤에서 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지."

    "크로노 님은 마음 내키는 대로 하세요. 베네딕트는 저희들이 처리할 테니까요."

    "응, 맡기마. 멋지게 처리한다면 아까 말했듯이 보상을 주겠다."

    "과분한 영광입니다."



     고마운 말씀을 받고는 무릎을 꿇은 채 눈높이를 맞추고,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약간 얼빠진 표정을 짓는 마왕을 가만히 바라본다. 이별의 순간까지 제대로 바라보며 즐긴다.



    "............"

    "............"



     바라보고 있자, 무슨 생각인지 갑자기 크로노가 본인은 주관적으로 악랄하다고 생각하는 미소를 지었다.



     가끔 연습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누구나 두려워하고, 겁을 먹고, 본능적으로 위기를 깨닫게 하는 웃음이라고 한다.



    "............"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참지 못하고 왕궁에 가져가고 싶을 뿐이었다.



    "그럼, 이제 가봐야겠어. 다들 조심해. 큰 부상만은 당하지 말고. 손가락을 삐끗하면 치료해 줄 테니 빨리 말해줘. 참고 버티면 안 된다? 사람의 몸은 바보가 만든 점토 공예품이 아니니까."
    "잠깐만요."
    "응?"



     뒤돌아보며 주의사항을 연발하는 그의 뒷모습에다 무심코 말을 건넸다. 떠나려는 크로노에게 다가가 무심코 뺨에 키스를 했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비어있던 마음이 한꺼번에 채워지고 몸이 불타올라서, 이것이 입술이라면 자신은 어떻게 되었을지.



    "...... 축복을. 정상 등정을 기원할게요."

    "비교적 쉽게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뭣하면, 여기서 바로 올라갈 수도 있고............ 그래도 한가한걸. 시간이 남으니까 절벽이라도 올라갈까 하는 느낌이야."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