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43부 400+4화 괴물 NOT FOUND(2)
    2024년 05월 29일 22시 23분 43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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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ㅡㅡ



    (힘을 억압, 아니 은폐해야겠어)



     처음 만난 크레슨이 경계심에 휩싸인 것을 계기로, 나는 자신을 약하게 위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지금 이대로는 '여기에 이물질이 섞여 있어요! 괴물이 여기 있어요~!'라고 큰 소리로 호소하는 것과 같다. 눈에 띄고 싶지 않은데 눈에 띄게 되다니 전생자답지 않냐고? 그건 그럴지도 모르지만, 불편하니까.



    (엘레멘트를 농축 환원. 초압축하여 에테르의 막으로 감싸서 모방. 이 세계의 인간에게 에테르는 미지의 마력 물질일 테니, 아마 의식하지 않으면 인지하기 어려울 터. 들키지 않도록 은폐하자)



     일본인이 공기 중에 떠도는 마력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 세계의 인간이 에테르를 의식적으로 인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이용해 나는 자신의 엄청난 마력을 감추었다. 이렇게 하면 그냥 무력한 아이로 보일 것이다. 나는 무뚝뚝한 얼굴로 차를 마시는 크레슨에게 말을 건넸다.



    "어때? 이제 제대로 사람으로 보여?"



    "그래. 소름 끼칠 정도로 그냥 어린애처럼 보여."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틀림없겠지. 성공 성공!"



     죽어도 불복,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얼굴에 크게  있는 크레슨과의 관계는 매우 좋지 않다. 처음 노예의 목걸이 효과를 사용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인지, 아무리 애지중지해도 전혀 그리워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나는 크레슨에게 노예의 목걸이 효과로 억지로 말을 듣게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렇구나, 또다시 첫 단추를 잘못 끼웠구나.



     당연히 함께 목욕을 하려고 하니 전력을 다해 거절당할 법도 했다. 내심 조금 상처받았지만, 그가 싫어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인과응보. 내 행동이 그대로 호감도라는 눈에 보이는 형태로 되돌아오는 이상, 이 세상에 대한 미련도 사라진다.



     뭐, 당연하지. 익숙하고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혼자만 떨어져 나와서 나를 몰랐던 시절의 사람들과 다시 시작하라고 하면 당연히 싫을 수밖에 없겠지. 버질, 올리브, 크레슨, 로리에. 아직 만나지 못한 가메츠 할아버지, 교장, 오크우드 박사, 하인즈 스승님. 이그니스 님과 로건 님, 카가치히코 선생과 셰리, 오레가노 아저씨. 보고 싶다며, 나는 차를 마시면서 맹렬히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반대로 아버지만은 어디를 가도 아버지라서 안심했지만, 그래도 역시 이쪽의 아버지와 저쪽의 아버지는 다르다.



    "야, 또 새고 있다고."



    "어이쿠, 안 되지 안 돼. 평상심을 유지해야."



     세상을 감싸고 있는 달걀 껍데기 같은 감옥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다른 세상, 다른 시간으로 이동하려고 하면 정전기라도 걸린 듯이 튕겨져 나간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달걀 껍데기를 깨고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대로 또 18살이 될 때까지 이 세상에서 살라는 것은 극력 사양하고 싶으니, 이제 결심을 하고서 과감하게 움직여야 할 때가 왔는지도 모른다. 크레슨의 말을 빌리자면, '나, 열받았어!'. 언제가 지나도 돌파할 수 없는 장애물 앞에서 주저앉아 있는 것은 내 성미가 아니다.



     전생에서 나는 루프물 작품을 꽤 좋아했고, 애니메이션도 만화도 소설도 영화도 즐겨 읽을 정도로 좋아하는 장르였다. 하지만 막상 내가 당사자가 되어보니 전혀 즐겁지 않다.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 모르는 사람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몸소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루프물 작품의 주인공들은 대단하다. 얼마나 멘탈이 강한가. 아니, 멘탈이 약해도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기 때문에 그들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도 '주인공'답게 필사적으로 발버둥 쳐야 하지 않을까.



    "어이,"



    "왜?"



    "뭐가 그렇게 화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들이대면 주변에도 민폐라고. 어린애처럼 신경질 부릴 거면, 어디 한적한 산골짜기라도 가서 혼자서 화풀이나 하고 와."



    "나이스 아이디어. 그거 채택. 그나저나 미안해. 용서해 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지만 사과할게."



     내가 순순히 사과하자 이쪽의 크레슨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반응을 보이면서도 할 말은 정확히 하는 걸 보니, 역시나 대단한 녀석이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으니, 이후로는 적당히 지내도 괜찮아. 너무 저택의 물건들을 많이 망가뜨리지 말고. 교체하기 귀찮으니까. 그리고 간식은 검은 머리의 개 수인이나 대머리 아저씨, 혹은 무서운 얼굴의 파란 머리 메이드장에게 말하면 줄 테니 마음대로 먹어."



    "어, 어이! 젠장! 뭐냐고 너는!!"



     전이 마법으로 사라져 버린 나를 향해 크레슨이 외친다. 내가 누구냐고? 그것을 지금부터 재인식하기 위해, 내가 나답게 되기 위해 노력하기로 결심했어. 이제 지긋지긋해, 이런 상황! 이 세상이 어떻게 되더라도 나는 세상의 껍질을 깨부술 거야!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지금 당장 너희들 곁으로 돌아간다! 돌아갈 거야,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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