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영어로 하면 워리. 철자는 worry(2)

 

　그래서 어쩌면 나와 필리아와 함께 보내는 평온한 시간이 그런 그녀의 마음을 심하게 혼란스럽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물과 싸울 때는 누구보다 강렬해 보이는 시이나도, 사실은 한 명의 섬세한 소녀에 불과하다.
　그렇게 생각하자 평소 그녀를 너무 무서워했던 것이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시이나를 무서워했던 것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그다음에는 가능하면 그녀의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말도 진솔하게 전했다 .......

　그랬더니 그 .......
　왜, 왜 그녀에게 ...... 키...... 키, 키.......

　...... 크흠.
　............ 키, 키스를 ...... 당하고 말았다 .......

"으으......"

　생각만 해도 얼굴이 뜨거워진다. 귀까지 열이 난다.
　빨리 뛰는 심장을 억누르려고 가슴에 손을 얹어보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마치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열기가 가득한 그녀의 눈빛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뭐 그...... 키스의 후반부에 대해서는 의식이 많이 희미해져서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
　...... 필사적으로 나를 원하는 시이나가 왠지 모르게 정말 사랑스럽게 느껴졌다는 것만은 기억한다.

　...... 하아 .......
　............ 시이나 .......

"...... 앗!?"

　어느 사이엔가 손가락으로 입술을 훑으며 그때의 느낌을 되새기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큭....... 안돼, 안돼!　이러면 안 돼!

　키스를 받은 후, 시이나는 내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했다.
　하지만 결국 그때의 나는 필리아 때처럼 나도 좋아한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시이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 리는 없다.
　어떻게 보면 시이나는 내 첫사랑의 상대다.

　다만 그 ...... 항상 표정이 없던 그녀가 지금껏 본 적 없는 행복한 표정으로 설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두근거려서 ...... 으으.

　그때 시이나에게 나도 좋아한다고 답해줬더라면 지금쯤 시이나랑 ......!

"왜 나는 항상 중요한 때에......!"

　으으으으으음.......!
　
...... 아니, 진정하자. 일단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히자.

　스읍~ 휴우~ 스읍~ 휴우~....... 좋아.
　
...... 조금 진지하게 두 사람을 생각해 보자.

　십여 일 전, 필리아에게서 좋아한다고 고백을 받았고, 어제는 시이나에게 고백을 받았다.
　솔직히 나는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 걸까?라는 의문과 혼란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지만, 저렇게 정면으로 호감을 표하면 기쁘지 않을 리가 없다.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두 사람을. 지금까지 힘들게 살아온 만큼 앞으로는 계속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과는 별개로 야한 짓도 하고 싶지만.

"일단은 두 사람이 나와 어떻게 되고 싶은지, 가볍게 탐색해 나가야 할까 ......"

　나로서는 둘과 모두 다정하게 지내고 싶지만, 사람에게는 사람마다 가치관이 있다.
　이 세상에서는 일부다처제가 보편화되어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 일부다처제는 귀족이나 상인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는 부자들에 주로 해당되는 경향이 있다.
　평민 따위는 보통 일부일처제의 건전한 관계가 압도적 다수다.
　그러니 부모에 의해 노예상에게 팔려온 필리아나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 시달렸을 시이나에게 일부다처제는 낯선 제도일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만을 바라보게 하고 싶은 욕심은 당연한 것이다.
　만약 두 사람이, 혹은 둘 중 한 사람이 일부일처제를 원한다면...... 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일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

"나는...... 대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