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모를 텐데도 불구하고 계속 생각나는 정보를 궁금해하며, 눈물을 흘리며 나를 정성껏 보살펴주는 엠마를 바라보고 있다. 엠마가 준비한 물로 목을 축이고 있자, 그녀가 조심스럽게 내게 말을 건넨다.
"...... 아가씨, 몸은 어떠세요? 기분은 괜찮으세요?"
그러고 보니 나는 왜 이렇게나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에 침대에 누워있는 걸까 생각하는 순간, '크리스티나'가 그녀만의 것이었을 때의 마지막 기억이 떠올랐다.
엠마가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날 크리스티나는, 수면제를 다량 복용하고 자살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 이유까지 떠올랐을 때, 나도 모르게 메마른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우리들은 다른 세계의 사람일 텐데, 크리스티나도 나와 마찬가지로 약혼남인 왕자를 평민 여인에게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다.
크리스티나의 기억에 따르면, 평민 여인 레이라는 희귀한 빛 속성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성녀라며 교회의 추천으로 나와 전하를 비롯한 귀족들이 다니는 학교에 편입해 왔다. 내가 보기에는 너무 친근하게 구는 태도, 매너도 모르는 듯한 행동으로 보였으나,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 능숙했던지 어느새 사니아스 전하를 비롯한 그의 측근들까지 그녀를 신뢰하고 호의를 베풀게 되었다.
"사니아스 님 정말 대단하세요!" 라는 뻔한 말을 하면서 자랑하는 가슴을 전하의 팔에 갖다 대는 모습도 여러 번 목격했다. 정숙한 숙녀로 자란 크리스티나로서는 믿을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쉽게 해주는 칭찬, 그리고 호의에서 오는 자기 긍정과 우월감, 청년의 욕망을 자극하는 부드러운 여성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접촉. 그것들에 사니아스 전하들은 완전히 매료되었다.
만약 레이라가 평범한 평민이었다면 그들의 관계도 학생 시절의 불장난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성녀가 될 몸이다. 그런 그녀와 전하의 사이가 깊어지면서, 점차 교회 사람들은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성녀가 왕가에 시집가면 교회의 권력도 커진다. 그래서 그들의 사이를 부추기는 세력이 교회 내에 생겨났다.
이를 환영한 것은 점차 레이라에게 마음을 기울어지고 있던 사니아스 전하였다. 원래 전하와 크리스티나의 약혼은 전적으로 정치적인 전략에 의한 것이었다. 중립파인 노츠그랜드 후작가를 끌어들이려는 왕실 측과, 더 강한 권력을 원하는 노츠그랜드 가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맺어진 약혼이었다. 그래서 사니아스 전하는 노츠그랜드 후작, 다시 말해 크리스티나의 아버지에게 어떤 교환 조건을 제시했다.
그 교환 조건은 크리스티나를 왕비로 삼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크리스티나의 오빠를 재상 보좌관이라는 요직에 앉히고, 여동생을 왕의 동생의 아들에게 시집보낸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왕가의 뜻도, 노츠그랜드 가문의 뜻도 모두 달성할 수 있다. 무엇보다 딸 한 명의 희생으로 왕가에 큰 은혜를 베풀 수 있다고 생각한 크리스티나의 아버지는 사니아스 전하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거기까지만 해도 파혼으로만 끝날 줄 알았는데,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파혼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어느 순간부터 레이라가 크리스티나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일이었지만, 잃어버렸던 사적인 물건이 물증으로 내밀어졌고, 지인들이 있지도 않은 일을 증언하기 시작했다. 필사적으로 부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전하와 그의 측근들처럼 지위가 높은 영식들은 입을 모아 크리스티나가 학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