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눈가에 힘을 꽉 주어 참았다. 심장은 빨리 뛰고 있었지만, 애써 평범한 표정을 지켰다. 이때만큼 자신이 한때 귀족의 딸로 훈육을 받았던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발걸음이 빨라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질에게 다가가서는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기, 곤란한 일이라도 있나요?"
그러자 질은 놀란 듯이 고개를 돌렸다. 그가 곤경에 처했을 때 짓는 눈썹이 내려간 표정. 그리움에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애써 미소를 유지했다.
"맞아, 이 사람이 아까부터 말을 걸고 있는데,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어."
그러자 이 사람이라고 일컬어진 이웃나라에서 온 상인이 도움을 요청한다.
[아가씨, 당신은 상업 길드의 위치를 아십니까? 이 길드 명찰을 갖고 있는 형씨한테 물어봤는데, 아무래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것 같아서요.]
상인이 말하는 것은 이웃나라의 언어였다. 조지아 전하의 약혼녀로서 주변 국가의 언어도 익힌 나는 그에게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이분은 분명 길드 소속인 것 같지만, 짐작하신 대로 당신의 말이 통하지 않았어요]
[오! 아가씨는 제 말을 알아듣는군요! 꼭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물론이에요]
그렇게 상인과 이야기를 나눈 후, 기억에 그대로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질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
"이 분은 이웃 나라 분이세요. 상업 길드에 가고 싶다고 하시니 안내해 드릴게요."
"당신은 이 분의 말을 알아듣는 거예요?"
"네, 조금은요."
"저는 전혀 몰랐는데, 어쨌든 도움이 되었습니다. 상업 길드라면 저도 지금부터 갈 테니 안내 정도라면 제가 해드릴게요."
그렇게 말하면서, 질은 그때와 변함없는 미소를 내게 지어주었다. 그것은 후작영애로 돌아간 뒤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고 포기했던 미소였다.
아아, 내 눈앞에 질이 있다. 기억도, 꿈도 아닌 진짜 질이. 아직 여러 가지 불안감이 남아 있었을 텐데, 그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릴 정도로 내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 찼다.
거기서부터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그와 함께 상인을 길드까지 안내했다.
"아까는 정말 잘 도와줘서 고마웠어. 음, 나는 질이야. 이 명찰대로 오늘부터 이곳 길드에서 주로 호위 일을 하게 됐어. 네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
"세라예요. 곤란할 때는 서로 돕는 거죠. 신경 쓰지 마세요."
"세라 씨구나. 혹시 호위 의뢰가 있으면 연락해 줘. 네 의뢰를 우선해서 해줄게."
"감사합니다. 약초를 채취할 때 부탁할지도 모르겠네요."
"꼭 그렇게 해줘! 접수처에도 말해둘 테니까!"
그럼 다시 한번 잘 부탁한다며, 그의 커다란 오른손이 내 앞에 내밀어졌다. 지난번에는 그의 기세에 눌려 그가 시키는 대로 악수를 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때는 아직 내 마음에 설레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내 마음속에는 그와의 추억이 있고, 나는 그의 친절함, 일에 대한 성실함, 가끔씩 보여줬던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알고 있다.
약초를 채취하는 틈틈이 나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며 서로에 대해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마음을 터놓고 나를 세라라고 불러주던 따뜻한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있다. 퇴근 후 괜찮으면 밥이라도 먹자며, 조금은 목이 메어 말끝을 흐리며 초대했을 때의 가슴 벅찬 감동은, 지금도 소중하게 가슴에 묻어두고 있다.
앞으로 예전처럼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예전의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내가 아니고, 내 주변도 조금씩이지만 예전과는 다르다.
하지만 만나보고 확신했지만, 나는 질이 좋다. 그를 눈앞에 두면 상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가슴이 꼭 조여 오는 것 같다. 괴롭고, 기쁘고, 행복했다.
앞날에 대한 불안감은 있지만, 그건 누구나 겪는 평범한 일이다. 그리고 그가 예전처럼 나를 웃어줄지 모른다고 해서, 그를 좋아하는 이 마음은 작은 것이 아니다.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를 다시 좋아하게 되었으며, 그와 함께 시간을 쌓아나가면 된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랄까.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같은 도시에 그가 있고, 나의 미래는 이미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되어 있다. 멈춰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
그리고 변화는 분명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조금은 치사하지만, 그가 사실은 초콜릿 쿠키를 좋아한다는 것도, 뒷골목의 조용한 카페를 좋아한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기대와 불안, 그리고 전에 없던 설렘을 안고서 나는 그와 악수를 청했다.
"네, 이쪽이야말로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질."
그의 손은, 기억 그대로 크고 따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