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인 네가 아무리 싫다고 해도 이 결정은 번복할 수 없다! 추한 마음을 가진 자 따위는 차기 왕비가 될 자격이 없으니까!"
너무 심한 말투라서,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알렉산드라는 반론을 제기했다.
"전하, 기다려 주세요. 저는 그쪽의 엘 님과 단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어서요."
알렉산드라의 기억으로는, 몇 달 전 갑자기 사티스로부터 그가 맡고 있는 소소한 공무를 떠맡게 되어 사정을 물어보기 위해 왕궁 내에서 사티스를 찾던 중 정원 한 구석에서 사티스와 엘로 추정되는 인물이 밀회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어렴풋이 본 것이 전부였다.
"엘과 얘기해 본 적이 없다고!? 그건 네가 엘을 무시하고 학대했다는 증거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애초에 왜 남작가인 엘 님이 왕궁 안에 있는 거죠?"
누군가의 주선이 있지 않는 한, 남작영애는 쉽게 왕궁을 드나들 수 없다.
"엘을 모욕하는 거냐! 이제 질투는 그만둬라!"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알렉산드라가 아무리 설명해도 사티스한테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관계에서 사티스는 말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알렉산드라! 네가 아무리 비겁한 짓을 해도 나와 엘을 갈라놓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진실한 사랑으로 맺어졌기 때문이다!"
"진실한 사랑인가요 ....... 어머나, 그것 참."
그렇게 중얼거리며, 알렉산드라는 작게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사티스가 측근들에게 명령을 내릴 때도 '진실한 사랑'이라는 말을 열변을 토했기 때문에, 이미 이쪽은 정보를 입수해 놓았다. 참고로 사티스의 측근들과 알렉산드라는 한심한 주군을 모시면서 친밀감을 느꼈고, 함께 뒷수습을 하는 과정에서 동포와도 같은 강한 유대감을 형성했기 때문에 사티스의 정보는 이곳에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다.
알렉산드라의 여유로운 웃음에 섬뜩함을 느꼈는지, 사티스가 "뭐야?"라며 움찔하자, 알렉산드라는 박수와 함께 "전하, 대단하세요."라고 극찬했다.
"뭐!?"
놀란 사티스의 팔에다가, 엘은 불안한 지 자신의 팔을 둘렀다. 누가 봐도 연인 사이인 두 사람을 알렉산드라는 더욱 축하해 준다.
"두 사람은 진정한 사랑을 찾으셨네요."
여기까지는 알렉산드라한테 문제가 없다. 몇 년 동안 실행했던 '사티스 전하 명군 계획'이 백지화되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사티스 본인이 원하지 않는 것 같으니 어쩔 수 없다.
사티스의 방식과 장소가 문제였지만, 단순한 약혼 파기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 그래! 그러니 너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저의, 죄, 말인가요?"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약혼 파기가 아니라, 이를 계기로 사티스가 알렉산드라를 함정에 빠뜨리려 한다는 것이다. 그의 계획은 알렉산드라를 단죄 후 수도원으로 보내고, 몇 년 후 사면을 하면서 불러들여 측비로 맞아들여 은혜를 베풀고 평생을 부려먹을 생각이라고 한다.
(단죄한 상대를 측비로 삼을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여전히 사티스 전하께서는 현실을 보지 못하시는군요.)
환상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티스는, 측근들을 시켜 알렉산드라가 엘을 괴롭혔다는 증거를 만들어내라고 명령했다. 이를 들은 측근들은 곧바로 알렉산드라에게 보고했다.
(전하께서 좋아할 거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이렇게까지 싫어하실 줄이야......)
이것에는 알렉산드라 역시 상처를 입었다. 사티스를 평생 도우려고 했던 충성심은 조용한 증오로 변해간다.
(이 나를 함정에 빠뜨린다면 용서치 않겠어요. 이 자리에서...... 당신을 쳐내겠습니다.)
으름장을 놓기 위해 미소를 짓자, 사티스가 움찔한다.
"아, 알렉산드라, 여유를 부리는 것도 여기까지다! 증거는 이미 다 모아놓았다고!"
"그렇군요. 그럼 그 증거를 보기 전에, 한 번만 제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