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69 하이엘프의 마을 후편
    2021년 02월 13일 21시 44분 56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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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ncode.syosetu.com/n2651eh/69/

     

     

     

     "뭐, 서서 얘기하는 것도 뭣하니, 따라와. 오랜만의 방문객이니, 차라도 내줄게."

     "........응."

     

     뭔가 맥빠지네요...... 저의 이미지대로라면, 깊은 숲 속에 수령 수천 년의 거목이 있고 그 위에 몇몇 가옥이 있거나, 사슴이나 토끼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거나, 반짝거리며 빛나는 샘이 있는 느낌이었지만, 실제로는 심한 안개가 낀 듯한 새하얀 공간에 갑자기 나타난 티테이블 세트만 있었습니다.

     하이엘프 언니가 손을 휘젓자 갑자시 찻주전자와 컵이 퐁 하고 나타납니다.

     언니......태도는 김빠질 정도로 태연하지만, 보고 있자니 젊은데도 패기가 없다고나 할까, 어딘가 지친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어쩔 수 없다며 테이블에 앉아서 언니가 따라준 허브티에 입을 대며 숨을 돌리고 있자, 언니는 그런 절 바라보면서 테이블에 팔꿈치를 댈 것처럼 약간 몸을 내밀었습니다. 

     

     "너......누구? 보아하니 하프엘프 같지만, 그런 머리의 엘프는 없을 거고, 그 봉인은 수명이 있는 자가 통과할 수 없을 텐데?"

     "수명......?"

     "나 같은 하이엘프는 수명이 없어. 뭐, 일단 네 이름을 말해줄래? 난 셀에리알. 세리아면 돼."

     "캐롤......"

     저의 이마에 약간 땀이 솟았습니다.

     저는 이전부터 본래의 모습으로 성장하면 그 후는 모습이 바뀌지 않겠구나....하고 은연 중에 생각하고 있었지만, 설마 수명까지 없을 줄이야.

     "그래, 캐롤이구나. 그런데 넌 그 슬라임 비슷한 것이 뭘 보여줬어? 갑자기 불태워 버리다니, 그건 고향에서 가족과 만나는 환영을 보여줄 터였는데."

     "가족이라니.....내 존재를 없었던 걸로 취급했던 사람들? 아니면 성가시니 죽이려 했던 사람들?"

     "그렇구나......"

     저의 대답에 세리아의 입술에서 미소가 사라졌습니다. 하프엘프라면 보통 어느 정도 박해받는 것을 이해해 준 모양입니다.

     그리고 슬라임 비슷한 것이 현생의 가족이 아닌 전생의 가족을 보여준 것은, 현생의 가족을 전혀 가족이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겠네요.

     그건 그렇고ㅡㅡ

     "여긴 어디?"

     ".........모르고 온 거니? 여긴 요정계. 수명이 정해진 자가 사는 물리계와  정령이 사는 정령계 사이에 있는 세계야."

     

     .......그래서 이상하게 마소ㅡㅡ정령력이 강했던 거네요.

     세리아의 말에 따르면, 이 세계에는 사람과 동물이 살고 있는 [물질계] 와, 정령과 악마같은 정신생명체가 살아가는 [정령계] 와 [마계] 가 있는 모양입니다.

     그 사이에 요정이 사는 [요정계] 가 있는 모양이지만, 요령이란 소위 그 작고 날개가 나 있는 그 요정을 말하는 거지만, 나중에 발생한 엘프와 드워프 등도 아슬아슬하게 요정에 포함되는 모양입니다.

     그 요정계 말인데, 인간같은 생물도 아슬아슬하게 존재할 수 있답니다. 어느 부분이 아슬아슬하냐고 하냐면, 정신력이 낮거나 마소에 대한 저항력이 낮은 사람ㅡㅡ다시 말해 '레벨이 낮은 사람' 이 어느 정도의 시간을 요정계에서 지내면, 바로 마물화되고 만다고 합니다.

     그것도 수인이나 엘프같은 일반적이 아인이 아닌, 하피나 켄타우로스같은 마물에 가까운 존재가 된다고 합니다. 무섭네요.

     

     "이 주변엔 그런 녀석은 없어. 내 영역이니깐 말야. 지성을 잃은 녀석은 물질계로 가버리고."

     "다른 하이엘프는?"

     무심코 질문하자 세리아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습니다.

     "하이엘프는......이제 나 이외엔 존재하지 않아. 수명이 없어도 사고와 다툼으로 죽어가는걸. 벌써 수천 년 전에 나 이외엔 전부 죽어버렸어."

     "......미안."

     "딱히 됐어. 새삼스럽잖아. 그래서 캐롤......네 목적을 들려줄래?"

     "실은....."

     인족이 다시 아인을 박해하며 침략하려고 하고 있다. 거기에 대항하기 위해 마왕의 유품인 마도구를 빌려줄 수 없나 부탁하러 왔다, 라고 솔직히 고하자, 세리아가 노골적으로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인족은 또 그런 짓을 하고 있니? 그 아이들이 목숨 바쳐서 전쟁의 덧없음을 가르쳐 줬었는데....."

     "그 아이들이라니......마왕?"

     "그 아이는......내 자식이야."

     "........."

     설마, 마왕이 세리아의 자식이었다니.

     "캐롤......나쁜 말을 안할 테니 포기해. 내가 준 마도구 덕에 그 아이의 힘은 올라갔지만, 그 탓에 목숨이 꽤 깎여나갔어. 그건 하이엘프같은 순수종이 아니면 버틸 수 없어."

     "............"

     "내겐 두 자식이 있었는데......아들인 카므는 아인들을 모으기 위해 마왕이 되어 죽었어. 딸은 엘프의 피가 짙어서 마족과의 하프는 안되었지만, 인족을 안에서 바꾸겠다고 말하고서, 그 아이ㅡㅡ니므는 소국이지만 인족의 왕가로 시집간 후, 전쟁에 휘말려 죽었다고 해."

     "............어."

     

     수천 년을 혼자서 살고서, 이제야 얻은 두 자식도 인족 탓에 잃었다.

     마왕ㅡㅡ카므는, 마족과 하이엘프의 하프라는 드문 존재였다고 하지만, 딸은 평범한 엘프로서 태어난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이 '니므' 라니......

     

     ".........그 인족의 소국은......아르세이데스?"

     "아아......그런 이름이었네. 아르세이데스 공국...... 지금도 그 나라가 남아있다면, 어쩌면 그 아이의 자손도, "

     "니므."

     제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저의 음성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세리아는 말을 걸려다 말고 절 바라봤습니다.

     "캐롤.......?"

     "그래. 내 이름은 캐롤・니므・.........아르세이데스. 아르세이데스 가문에서 격세유전으로 태어난, '금기의 아이'."

     

     변신을 풀고 꼬마캐롤의 모습이 되자, 세리아의 얼굴이 굳은 채 눈만이 크게 부릅떠졌습니다. 제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거기서 뭔가를 느꼈는지, 떨리는 손끝을 뻗어서 저의 얼굴을 만지고,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그 아이가.....니므가......아아, 눈매가 닮았어. 니므의 피가 남아있었네. 그 아이의 결단은 헛수고가 아니었구나."

     "...........응."

     

     그로부터 긴 시간을 끌어안긴 후, 갑자기 세리아에게 '할머니' 라고 부르도록 강요당했습니다.

     하지만 세리아는 하이엘프라서 겉모습이 20대 후반 정도의 예쁜 언니였기 때문에, 할머니라고 부르기보다 '큰 언니' 라는 느낌이었지만, 그렇게 말했더니 울먹이는 표정을 지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할머니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당분간 같이 살자고 들었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할머니. 마도구 빌려줘."

     "캐롤! 이야기 들었잖니! 그건 순수종이 아니면 목숨을 갉아먹는단 말야!"

     "아마......나라면 괜찮아."

     세리아라면 신용할 수 있다고 믿고서, 전 모든 것을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전생의 일. 지금의 몸이 가공의 존재와 융합한 상태라는 것. 그 탓에 세리아가 의문으로 생각할 정도로, 순수종같은 머리카락의 색깔이 된 것에서, 지금의 난 하프엘프이긴 해도 순수한 원종의 하이엘프와 섞이지 않은 순수종의 인간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너도 고생했구나. 가능하다면 쓰게하고 싶지 않지만, 만일 캐롤이 그런 존재라면, 그 마도구는 도움이 될지도 몰라."

     "무슨 마도구인데?"

     "저건, '융합' 의 마도구야."

     

     그 마도구는, 원래 엘프와 마족의 하프라는 진귀한 존재였던 카므를 위해 만들어졌다 합니다.

     마족과 엘프종의 혼혈은 보통 어느 쪽으로 태어나고, 니므처럼 하프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만, 하프인 카므는 엘프의 능력과 마족의 능력을 제대로 쓰지 못해서 세리아가 만든 '융합' 의 마도구를 써서 강대한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네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너 아직, 그 몸과 그 가공의 신체가 완전히 융합되지 않은 거야. 앞으로 10년이 지나 겉모습이 같아지면 융합될지도 모르겠지만, 이대로는 '사랑받는 아이' 를 이기는 건 어려울지도 모르겠네."

     

     정령들에게 무조건 사랑받는 '정령에게 사랑받는 아이' 의 일도 가르쳐줬습니다.

     세리아의 말에 따르면, 아득한 고대에 하이엘프들이 정령과 계약하는 마도구를 몇 개 만들었다고 합니다.

     강한 효력을 가진 여러 정령을 사역하는 마도구가 하나. 그걸 보조하기 위해 정령 하나와 계약하는 마도구가 몇 가지. 그것들은 카므와 니므에게 맡겨줬었지만, 그들의 죽음과 동시에 인족의 나라 안에 퍼지고 만 탓에, 그 마도구에 혼이 깃든 상태가 '정령에게 사랑받는 아이' 라고 합니다.

     ........마도구에 혼이 깃들다니? 어찌된 일일까요?

     "이거야. 카므에게 줬던 마도구지만."

     세리아가 보여준 것은 마왕 카므가 쓰고 있던 마도구. 하이엘프의 마법으로 구성된, 물질형태를 갖지 않은 빛의 구슬같은 것입니다.

     "정말로 쓸 거니? 널 믿지 않는 건 아니지만....."

     "고마워, 할머니. 쓸게."

     

     제가 세리아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뻗자, 둥둥 떠다니던 빛의 구슬이 갑자기 날아와서 저의 가슴에 흡수되었습니다.

     

     "읏!?"

     "캐롤!?"

     의자를 쓰러트릴 것처럼 무릎을 꿇자, 세리아가 황급히 달려왔습니다.

     "어째서 마도구가 제멋대로......, 캐롤!"

     "괜찮.......아."

     자신의 안이 뒤죽박죽으로 뒤섞이는 감각에, 멀미와 현기증이 나서 서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세리아는 마도구가 제멋대로 움직였다.....라고 말했지만, 지금이라면 알겠습니다. 카므를 위해 만들어진 이 마도구는, 절 새로운 주인으로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한계..... 일단 괜찮다고 세리아에게 전하고, 제 의식은 그대로 어둠에 휩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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